# 223
시작 (2)
***
둥, 둥, 둥―
암전 된 무대 위. 북소리가 커다랗게 울리며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그리고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무대 정중앙에 핀 라이트 조명이 켜졌다.
조명이 켜진 곳엔 도욱이 서 있었다.
북소리만 계속될 뿐, 아무런 반주도 나오지 않는 상황. 그러나 간격을 두고 울리던 북소리는 어느 순간부터 빨라지며 베이스에 깔리는 리듬이 되었다.
도욱은 박자에 맞춰 노래를 시작했다.
calling me when you feel-
감미로운 도욱의 목소리가 공연장 안을 파워풀하고,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끝을 끌며 음은 점점 더 높아졌다.
흔들림 없이 마이크를 뚫고 내뻗어진 음은 귓속으로 파고 들어 전율을 일으켰다.
무대를 기다리며 숨 죽이던 객석의 가수들과 관객들이 일제히 참았던 숨을 터뜨리듯 함성을 내질렀다.
와아아아아아
휘이이익!
함성과 휘파람, 박수, 모든 소리가 뒤섞이며 공연장의 열기를 뜨겁게 달구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빌보드 시상식.
세 부문의 후보자로 올랐으며, 그중 탑 소셜 아티스트상과 탑 댄스상을 거머쥔, 2관왕 케이케이 공연의 시작이었다.
선창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킨 도욱은 지휘하듯 몸을 움직였다. 북소리가 옅어지며 트럼펫을 주축으로 한 여러 악기들이 반주를 만들어냈다.
‘Connection’의 진짜 전주였다.
도욱의 뒤편 커다란 화면 위로 화려한 그래픽이 떠오르며 도욱의 주변을 에워쌌다. 빠르게 움직이는 그래픽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공연장에 설치된 모든 화면의 그래픽이 하나로 연결되는 모양새를 갖추었다.
그리고 그 순간 엄청난 화력의 타오르는 불기둥이 솟구쳤고, 도욱을 중심으로 한 양옆으로 멤버들이 튀어 올랐다.
점프의 높이까지 맞춘 듯 동일한 높이였다. 박차오른 박태형이 한 발 앞으로 나와 공중제비를 돌았다.
와아아아악!
케이케이!
Love you!!!
함성이 한층 더 소리를 키웠다. 시상식 관객들 중 대부분이 케이케이의 팬들이었다. 케이케이 팬들의 소리가 공연장을 뚫을 듯했다.
활활 타오르는 불기둥처럼 가만히 있기엔 너무나 뜨거운 열기였다. 자리에 앉아 있던 가수들이 더욱 무대를 즐기고자 일어섰다.
그때부터 ‘Connection’의 노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혼자 있다고 생각될 때 뒤를 돌아봐.
거기 내가 서 있어-
치고 나오는 안형서의 목소리, 아름다운 한국어 가사가 또 한 번 빌보드 시상식장을 달구고 있었다.
김원과 정윤기의 랩 내용에 맞춘 그래픽들이 움직였다. 그와 함께 엄청난 인원의 백댄서들이 무대 위로 등장했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인원이었다.
대인원은 하나가 되어 움직였다. ‘Continue’에서도 보인 적 있던 놀라운 군무였다. ‘Connection’에서는 따로 각을 맞추는 군무가 없었지만, 이번 무대에서도 케이케이의 자랑 중 하나인 칼군무를 선보이기 위해 특별히 멤버들이 준비한 것이었다.
‘Continue’에 비하면 부드러운 안무였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하나된 듯한 안무를 해내는 케이케이 멤버들과 무대 위의 댄서들이 대단해 보이는 것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밤하늘에 보이는 별처럼, We all connected―
노래가 고조되며 석지훈이 connected라는 가사는 내뱉는 순간 공중에서 수십 대의 드론이 날아왔다. 드론들은 공중에서 케이케이의 로고와 같은 모양의 대형을 그려냈다.
엄청난 스케일이었다. 조명이 어두워지며 드론의 불빛이 더욱 밝게 빛났다.
그 아래에서 케이케이와 대인원의 댄서들이 하나되어 ‘We are all connected’의 안무를 반복했다.
무대 위의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공연장의 모든 이들이 ‘We are all connected’를 열창했다.
단 한 명의 사람도 빠짐없이 입을 모았다.
무대 위의 모습도 장관이었지만, 무대 아래의 모습도 장관이었다.
‘아······.’
도욱은 심장이 멎을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실제로 격렬한 라이브 무대로 당장 과호흡이 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물론 도욱이나 멤버들 모두 숱한 공연과 관리로 이제는 그런 위기 상황은 발생하지 않도록 조절하고 있었지만, 너무나 큰 흥분감이 온몸을 감싸 안아 내부에 있는 모든 에너지가 폭발할 듯 들끓는 것까진 조절하기 힘들었다.
‘지금은······. 지금이라면······. 죽어도 괜찮을 것 같다.’
도욱은 울려 퍼지는 목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자신이 쓴 곡, 자신이 쓴 가사, 자신이 부른 노래. 동시에 모두가 함께하는 노래였다.
‘꿈이었으면’을 부르던 김보명은 이제 도욱의 기억에서 너무 흐릿했다. 그러나 애써 도욱은 김보명을 기억했다.
김보명도 도욱이었다. 이전에는 전부였으나, 이제는 일부였다.
그리고 어쨌든 도욱이 이곳까지 오게 된 이유였다. 그 이유가 어두운 색이라고 해서 그것을 잃고 싶진 않았다.
‘죽어도 괜찮을 만큼 행복하지만······. 더 오래······. 행복하고 싶다.’
반복되던 후렴구가 점점이 잦아들었다.
그러나 열기는 쉬이 가시지 않았다. 도욱은, 멤버들은 벅찬 얼굴로 무대 위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한데 모여 대형을 이루고 카메라를 향해 티끌 하나의 거짓 없는 미소를 지어 보이는 멤버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다.
카메라는 이 모든 모습들을 빠짐없이, 고스란히 잡아 내고 있었다.
무대 위 조명이 모두 꺼졌음에도 케이케이를 향한 객석의 박수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시상식을 진행하는 MC들이 당황하며 객석을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객석에서는 쉽게 케이케이를 놓아주지 않았다.
결국 MC도 진행을 포기한 듯 케이케이의 무대를 칭찬하기 바빴다.
무대를 내려가는 케이케이 멤버들은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은 탓에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지만, 자신들을 향해 쏟아지는 박수 소리를 모두 간직했다. 몸의 모든 세포 하나하나에 박수 소리가 새겨지는 듯했다.
“너희 괜찮아?”
오백호 부장이 대기실로 돌아온 케이케이 멤버들에게 가장 먼저 한 말이었다.
무대 아래에 있던 오백호 부장은 잠시 넋이 나갈 정도였다.
멤버들은 한 명, 한 명, 정말로 영혼이 부서져라 무대에 최선을 다했다.
늘 최선을 다하는 멤버들이었지만, 오랜만에 하는 무대였다. 거기에 이 순간이 영원하진 않을 거라는 생각들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열정적인 무대가 되어 있었다.
구철민이 바쁘게 움직이며 멤버들에게 생수를 나눠주었다.
멤버들은 정말로 혼이 나간 듯, 멍한 표정이었다.
“다들.”
겨우 숨을 고른 도욱이 입을 열었다.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대기실 바닥에 앉아 있거나 누워 있던 멤버들이 도욱의 말에 시선을 모았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도욱은 한 번도 하지 않은 말을, 이제는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 말 외엔 표현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최고예요.”
도욱의 말에 멤버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마. 진짜 다들······. 최고다.”
정윤기가 말했다.
‘최고.’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었고, 케이케이의 위치를 단정지어 최고라고 부를 순 없을 것이었다.
오를 산은 다행이도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오를 산이 있다는 건 오히려 아직 어린 케이케이 멤버들에겐 다행인 일이었고, 그래서 최고라고 자부하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멤버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최고’라 말해주고 싶었다.
***
[빌보드 2관왕 케이케이가 보여준 레전드 무대]
[빌보드 집어삼킨 케이케이를 향한 함성]
[케이케이의 에너지... 美 대륙을 흔들다!]
.
.
-자랑스럽다. 케이케이.
-와... 이건 뭐..ㅋㅋ 국뽕 아니라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부분ㅋㅋ
-빌보드 역사에서도 길이남을 무대였다
-진짜 충격적일 정도... 말이 안 됨
-멤버들 모두 가수 해줘서 너무 고맙다ㅠㅠ 케이케이 없는 세상..이제 상상이 안 된다ㅠㅠ
-케이케이 같은 그룹이... 향후 십 년 안에 또 나올 수 있을까?
“십 년 안에 나오면 그건 다 도욱이 때문이겠지······.”
스크랩해 두었던 빌보드 시상식 당시의 기사를 또다시 읽으며 안형서가 말했다. 벌써 몇 달이나 지났는데도 아직도 멤버들은 무대 영상을 돌려 보거나, 기사를 찾아 읽으며 추억을 하곤 했다.
안형서의 말에 도욱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로서도 자신 없는데요.”
노래가 좋다고, 돈이 많다고, 모든 게 다 되는 게 아니었다. 케이케이와 같은 그룹이 탄생하기 위해선 멤버들의 작은 성격 하나까지도 모두 맞아야 했다.
“그리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아직은 케이케이가······.”
“알아, 알아. 그냥 벌써부터 서운해서 그래.”
“도욱이 형이 이해해요. 형서 형 자기 앨범 망하더니 봄 타나 봐요.”
석지훈의 말에 안형서가 석지훈을 노려보았다.
망했다고 하기엔 안형서의 솔로 타이틀곡인 ‘너, 그리고 나’는 아직도 음원차트 순위권에 있었다.
그저 안형서가 술을 마시고 장담했던 ‘빌보드 차트 1위 진입’이라는 케이케이도 아직 못 해본 성공 기준에 부합하지 못해서 ‘망했다’는 놀림을 당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아마 케이케이의 새 앨범은······.’
도욱은 조심스럽게 새 앨범의 빌보드 차트 진입 순위를 생각했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너무 기대는 말아야지.’
힛 엔터테인먼트 신사옥 대회의실.
케이케이 멤버들이 모두 모여 케이케이의 새 앨범 컨셉 회의를 준비 중이었다.
멤버들이 모여 있는 곳은 이전의 회의실과는 차원이 다른 규모와 시설을 자랑하고 있었다.
김원과 정윤기, 박태형은 회의가 시작되기 전 마이크와 프로젝터 등을 구경하겠다며 이것저것 만져 보고 있었다.
잼 뮤직을 인수하며 힛 엔터테인먼트는 사옥을 아예 이전했다. 이제는 옆 건물로 확장하는 수준으로 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신사옥은 이전의 회사가 있던 곳에서 삼십 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빌딩이었다.
지어진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17층 빌딩 전체를 힛 엔터테인먼트가 쓰게 되었다.
힛 엔터는 잼 뮤직뿐 아니라 ‘소녀들’의 혜성 엔터테인먼트까지 자회사로 인수했다.
정혜성 대표는 여전히 혜성 엔터의 대표였지만, 힛 엔터의 자회사로서 힛 엔터의 간섭을 조금은 받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소녀들’의 더 큰 발전과 앞으로의 사업을 위해서는 그 방법이 나을 것이라는 게 정혜성 대표의 판단이었다.
더욱이 힛 엔터 내부에는 프로듀서로도 앞으로 활약할 도욱이 있었고, 이제는 대표가 된 조애니 대표와 운영 방침이 모두 잘 맞았으므로 정혜성 대표로서는 자신의 기획대로 제작은 하면서도 탄탄한 자본을 끌어올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도욱은 힛 엔터의 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잼 뮤직과 혜성 엔터테인먼트에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조애니 대표는 도욱을 미래의 대표감이라 칭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먼 얘기였다.
당장은 다음 앨범 컨셉을 정하기도 급급했다.
‘새로운 시도를 하기로 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