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5
막판 (1)
“뭐?!”
서중원 본부장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런 씨······.”
욕을 뇌까리며 서중원 본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챙겨 들었다. 책상 앞에 서 있던 비서가 재빨리 움직여 본부장실 문을 열었다.
“차 대기시켜.”
“네. 알겠습니다. 어디로 모시면······.”
비서의 물음에 서중원 본부장이 잠시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하는 듯했다.
“양재동.”
“예.”
비서가 답하고는 아래에서 대기 중일 서중원 본부장의 기사에게 연락을 넣었다.
서중원 본부장의 본가는 한남동에 있었다. 양재동이라고 하면 양재동의 한 오피스텔을 말하는 것일 터였다.
서중원 본부장의 유희가 있는 곳이었다. 한동안 제집처럼 드나들던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밸런타인의 데뷔와 대표 선임을 위한 이사회를 앞두고는 거의 발길을 끊었었다. 정신이 없기도 했고, 거동을 조심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기사에게 연락을 넣은 비서는 그다음 곧장 양재동 오피스텔의 주인에게도 연락했다.
“본부장님 삼십 분 내로 양재동 도착할 것 같습니다. 네. 네.”
비서가 통화를 하는 동안 서중원 본부장은 엘이베이터 앞에 서 도욱에 대해 생각했다.
“거슬리는 새끼······.”
이 정도면 일부러 자신의 일을 망치려 드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래 봐야 제 아들과 동갑인 애송이였다. 그런 애송이가 자신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우연이 겹쳐 악연이 되는 듯했다. 우연이어도 악연이 됐으면 그저 악연인 것이다.
“싹을 자르고 씨를 말려야 했는데······.”
쯧, 서중원 본부장이 혀를 찼다. 애초에 이렇게 신경을 거스를 만한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끔찍할 만큼 짜증이 일었다.
자르지 않은 싹이 자라나는 게 보기 싫어 이전에 해왔듯이 다른 대형 기획사와 손을 잡고 방송사를 통해 압박했더니 케이케이는 아예 방송을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인터넷 플랫폼을 개척했다.
심지어는 케이케이가 키워놓은 me앱이 너무 커지는 바람에 아라 엔터테인먼트 소속 연예인들도 어쩔 수 없이 me앱에 출연해야만 했다.
‘안 된다면 불이라도 질러 버려야지.’
계속 거슬리는 체로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서중원 본부장은 이를 갈았다. 동시에 생각했다. 맨투맨이 케이케이에게 그랬듯, 밸런타인이 소녀들에게 밀리게 할 순 없었다. 이번에는 초반에 승부를 둬야 했다.
비서가 통화를 마치자 서중원 본부장이 한 번 더 지시했다.
“내일 진 실장이랑 미팅도 잡아 둬.”
“네. 알겠습니다.”
서중원 본부장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비서가 최대한 깍듯하게 답했다.
띵―
때마침 경쾌한 알림음과 함께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
[‘소녀들’ 다혜 “데뷔의 순간 너무 감격스러워 눈물 보인 것..기쁨의 눈물”]
[밸런타인에 소녀들까지...여자 아이돌 그룹 전성시대 오나?]
[소녀들의 반란!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신인에서 올해의 기대주로!]
[음원차트 역주행 ‘우리들의 시간’... 뛰어난 음악으로 승부한다]
[화제의 소녀들 칼군무.. 마이튜브 조회수 폭발!]
-기합 빡 들어갔네ㅋㅋ 보기 좋다ㅋㅋ
-우리들의 시간 음원차트 1위 가자!~~~ 대박기원!!
-다혜 진짜 너무 귀여움ㅠㅠ 찹쌀떡같이 생겼음ㅠㅠㅠㅠㅠㅠ
-완전 씹덕♡♡♡
-다혜야 ! 언니가 많이 ! 아 ! 낀 ! 다 !
-다혜 우는 거 진짜 졸귀임,,, 움짤에서 벗어날 수 없음,,
-왼쪽에서 세 번째 멤버 이름 좀 알려주세용 긴생머리용
-리더 윤지인데용~
-윤지여신님 절 가져주세요...
-애들이 다 평범하게 생긴 것 같으면서도 주변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평범ㅋㅋㅋㅋㅋㅋㅋ
-평범은 오바임.. 탈일반인급임
-휴가 나온 군인입니다. 일요일에 부대에서 인생가요 보는데 미소가 입가에서 떠나질 않더군요.. 저희 부대에 공연하러 꼭 와주었으면 하는데요
-우리 부대 먼저
-아저씨라고 불릴 나이인데 나이도 잊고 넋 놓고 봤다 회춘한 기분 흐흐
-연습 열심히 한 티가 남
-혜성엔터? 처음 들어보는데 무대 퀄리티가 좋네요ㅋㅋㅋ
-확실히 수수하고 청순한 매력들이 있는 듯
-밸런타인이 낳냐 소녀들이 낳냐
-꼭 있어 이런 비교충들 ㅉㅉ
-소녀들 압승이야
-밸런타인이 미모는 낳지 않냐?ㅋ
-예쁜 건 사실 근데 무대가 생각보다 구림
-예쁘긴 한데 너무 아라엔터 스타일이라 신선함이 떨어지는 듯ㅋㅋ
-다들 아기 낳고 있네ㅋㅋㅋㅋㅋㅋㅋㅋ순산하세요~
인생가요 데뷔 무대가 있었던 날로부터 얼마 후.
소녀들의 데뷔곡 ‘우리들의 시간’은 음원 차트에서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며 3위권 내에 안착하는 어마어마한 성적을 내고 있었다.
실시간 검색어에 한 번 오르내리며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노래를 들어본 것이 큰 힘이 됐다.
노래가 워낙 좋다 보니 입소문을 타고 음원 순위가 오른 것이다.
따로 언론 플레이를 하지 않아도 이 정도 차트 역주행에는 기자들도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아라 엔터에서 부탁한 보도자료들을 형식적으로 냈던 밸런타인의 기사들과는 달리 소녀들에 대한 기사는 기자들이 직접 취재한 것이기도 했다.
화제성에 힘입어 인터넷을 주로 하는 젊은 세대의 팬들도 확실히 확보해 나가고 있는 상태였다.
맨 처음 소녀들의 가능성을 알아본 이들이 인터넷을 통해 무대 영상을 퍼다 날랐고, 혜성 엔터 쪽에서도 소녀들 관련한 많은 사진과 영상 등을 자신들의 SNS 계정에 올리면서 팬들의 수요에 착실히 응답했다.
화제성이 좋다 보니 ‘인생가요’ 외에는 다른 가수들에 밀려 잡지 못했던 음악 방송 스케줄도 곧바로 잡을 수 있었다.
몇몇 케이블 음악 예능에서는 인터뷰를 따고 싶다는 연락까지 온 상태였다.
사실 이미 밸런타인은 첫 한 주 동안 거의 모든 신인 겨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활발하게 활동 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에서의 인기와 노래의 힘으로 소녀들은 이미 어느 정도 팬덤을 구축한 밸런타인의 팬덤을 위협하고 있었다.
소녀들의 본격적인 방송 활동이 이제부터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변 없이 더욱 더 빠르게 소녀들의 인기가 올라갈 것은 분명해 보였다.
케이케이 멤버들은 미국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도착한 상황이었다. 짐을 찾는 곳에서 자신들의 캐리어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장시간의 비행으로 모두 피곤한 얼굴에 모자를 눌러쓴 채였지만 멤버들을 알아본 이들이 계속해서 멤버들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옆에 선 오백호 실장이 피곤으로 인해 더욱 험악해진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지 않았다면 분명 사인을 받으러 왔을 것이었다.
주변의 시선은 이제 너무 익숙한 것이었다. 도욱은 아랑곳 않고 짐이 나오길 기다리며 인터넷 연예면의 기사들을 보는 중이었다. 도욱의 입가에 희미하게 미소가 걸렸다.
‘확실히 더 빠르게 반응이 오고 있어······.’
원래도 소녀들은 어느 정도 위치까지 올라갈 만큼 차곡차곡 쌓아 나가는 그룹이었다.
그러나 도욱의 투자로 퀄리티가 한층 높아지면서 인기를 쌓아 나가는 속도가 남달랐다. 이대로라면 무리 없이 밸런타인을 제치고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할 수 있을 정도였다.
휴대폰을 보고 미소 짓는 도욱을 보며 안형서가 도욱의 휴대폰을 수상쩍게 힐끔거렸다.
도욱의 휴대폰 화면에 떠 있는 소녀들의 기사에 안형서가 농담조로 말했다.
“너 우리 기사 안 보고 소녀들 기사 보고 있는 거였어?”
“아······.”
도욱이 조금 난감해하자 안형서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야. 태형아 도욱이도 역시 친구보단······. 뭐라고 해야 돼. 투자자니까······. 돈? 친구보다 돈인가? 아니, 친구보다 소녀?!”
도욱을 놀릴 기회는 흔치 않은 것이었기 때문에 안형서가 신나서 얘기했다. 옆에 있던 박태형은 안형서의 말에 그저 애매한 표정으로 웃고 있을 뿐이었다.
“아니에요. 태형이 기사는 벌써 다 봤어요.”
“아······.”
도욱의 답에 이번엔 안형서 쪽에서 ‘아.’ 하고 아쉬운 소리를 냈다.
“벌써 다 봤다고?”
“네. 착륙해서 비행기모드 풀자마자 봤어요. 다들 칭찬 일색이더라, 태형아.”
도욱의 쐐기를 박는 말에 안형서는 본전도 찾지 못하고 침묵했다.
박태형의 기사가 난 이유는 다름 아니라 어제가 <댄싱댄싱> 방송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케이케이가 미국에 가 있는 동안 <댄싱댄싱>의 방송은 어느새 중반부였다. <댄싱댄싱>의 시청률은 기대 이상이었다. 첫 화에서 케이케이가 화제성을 잘 모아준 덕분이었다.
몇몇 참가자들이 박태형을 심사위원으로 인정하지 못한다는 인터뷰를 하면서 소위 말하는 ‘어그로’도 제대로 끌렸다.
박태형을 좋아하는 이들로서는 화가 나는 게 사실이었지만, 반작용으로 박태형의 무대에 대해서는 극찬이 따랐다.
그다음 방송 회차들도 기가 막힌 퍼포먼스들로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팀 대항이라는 대결 구도에 각 팀을 응원하는 팬들이 생겨나면서 방송은 날이 갈수록 흥미진진해지고 있었다.
어제는 조용했던 박태형이 리더십을 발휘하며 팀 무대를 이끄는 내용이 방송을 타면서 새벽 내내 박태형의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렸다.
“마, 칭찬 억수로 많던데. 왔다 갔다 하면서 고생한 보람 있다 아이가.”
정윤기가 덧붙였다.
2주에 한 번은 <댄싱댄싱> 녹화가 있었기 때문에 박태형은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강행군을 치뤄야만 했다.
이제 남은 촬영분은 한국에서 녹화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다음 주부터는 생방송 대결이죠, 형?”
“으응.”
갑작스러운 자신에 대한 칭찬에 민망한 낯을 하고 있던 박태형이 석지훈의 물음에 답했다.
<댄싱댄싱>은 박태형의 개인 활동이었고, 단체 활동만으로도 이미 바쁜 상태였음에도 케이케이 멤버들은 살뜰하게 서로를 챙기고 있었다.
“오, 짐 나왔다!”
김원이 케이케이의 팬클럼 키링 굿즈로 나온 스티커를 잔뜩 붙인 캐리어를 가리키며 외쳤다. 김원이 가리킨 캐리어는 안형서의 것이었다.
안형서의 캐리어를 시작으로 다른 멤버들의 캐리어도 차례대로 컨베이어벨트 위에 올려져 나오고 있었다.
멤버들은 서둘러 자신들의 짐을 챙겼다.
그리고 입국장 문을 나섰다.
“케이케이다!”
입국장 문을 나서자마자 누군가 케이케이를 부르며 소리쳤다.
그와 함께 엄청난 플래시 세례가 케이케이 멤버들을 향해 쏟아졌다.
기자들이 와 있을 거란 언질을 듣긴 했지만 가히 놀라운 숫자였다.
미국 활동에 대한 소회와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밝힐 기자회견을 따로 하겠다고 일정을 잡아 놓았음에도 하루라도 빨리 케이케이의 소식을 전하고자 하는 언론들의 관심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여기 좀 봐주세요!”
“여기도요!”
생각지 못한, 거하다 못해 과한 환영이었지만 케이케이 멤버들은 찌푸리는 대신 자신들을 부르는 기자들에게 최대한 화답했다.
곧바로 올라가게 될 기자들의 기사 제목도 알 것만 같았다. 미국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돌아온 케이케이, 그야말로 ‘금의환향’이었다.
***
아주 오랜만에 돌아온 숙소였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멤버들은 짐 정리도 미루고 차례대로 쓰러져 있었다.
기자회견은 모레였다. 내일까지는 충분히 쉬며 시차적응도 할 예정이었다. 도욱 역시 짐 정리는 내일로 미뤄둔 상태였다.
샤워를 마치고 도욱이 방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휴대폰에 메시지 하나가 도착해 있었다.
최성준 기자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잡은 것 같아요]
[(사진)]
최성준 기자가 보내온 사진은 모두 다섯 장이었다.
세 장의 사진에는 모두 서중원 본부장이 있었다. 서중원 본부장이 한 오피스텔에 들어가는 모습, 1101호 앞에 서 있는 모습, 그리고 1101호에 들어가는 모습까지 찍혀 있었다.
그리고 두 장의 사진에는 주민아가 있었다.
1101호에서 나오는 주민아의 사진이 두 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