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204화 (204/225)

# 204

복마전 (4)

케이케이는 뉴욕에서의 공연 이후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를 돌았다. 첫 번째 공연을 앞두고 있었던 테러 위협만 한 긴급 상황은 없었지만, 공연마다 크고 작은, 생각지도 못한 사건들이 발생했다.

예상보다 사람이 너무 몰려 예정된 장소에 모든 인원이 들어오지 못한 적도 있었고, 공연 도중 흥분한 팬이 호흡 곤란을 일으킨 적도 있었다.

야외 공연이 많다 보니 날씨가 변수가 되기도 했다.

비바람이 부는 가운데 했던 공연은 한국 통영에서의 공연을 기억나게 했다.

생각지도 못한 사건에는 물론 놀랄 만큼 좋은 일도 많았다.

투병을 하느라 케이케이의 공연을 가지 못한다는 한 팬의 사연이 도착하면서 V TV 제작진에서는 케이케이와 함께 그 팬을 위한 이벤트를 기획하기도 했다.

샌프란시스코의 병원의 정원에서 공연을 한 것이다.

덕분에 창문을 통해 입원 중인 팬도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고, 케이케이 멤버들은 팬의 병실에 깜짝 방문을 하기도 했다.

소식이 각종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또 한 번 케이케이에 대한 칭찬이 쏟아져 나왔다.

팬들에게도, 케이케이에게도 진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이러한 공연의 과정은 세밀하게 카메라에 담기고 있었다.

V TV 쪽에서는 8회 차로 생각했던 방송 회 차를 10회로 늘린 상태였다.

공연과 공연 준비 과정을 집약적으로 담아내기에 8회도 부족했던 것이다. 멤버들 각자의 매력이 뚜렷해 촬영을 하면 할수록 누구 하나의 이야기도 생략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게 ‘COME HERE’ PD의 판단이었다.

근 한 달에 걸친 시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만은 분명했다.

미국에서 케이케이의 인기는 무쇠 팬이 달구어지듯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잠시 잠깐의 관심이 아닌 오래도록 식지 않을 열기였다.

이제 미국에서 대중매체를 접하는 이라면 케이케이를 모르는 이는 없었다. LIL이나 레이디 나나를 안다면 케이케이의 이름 정도는 안다는 뜻이었다.

‘COME HERE’이 정식으로 방영되면 그 뒤의 반응도 무척이나 기대할 만했다.

그렇게 마지막 촬영이자 공연일이 바로 다음 날로 다가와 있었다.

마지막 공연지는 라스베이거스였다.

화려하다 못해 현란하기까지 한 도시는 케이케이의 미국 게릴라 공연의 대미를 장식할 만한 도시였다.

“여기가 라스베이거스에서도 제일 큰 카지노예요.”

라스베이거스 통역 및 안내를 맡은 현지 한인 가이드의 말에 멤버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입을 벌렸다.

도시 자체가 화려했는데 그 도시에서도 가장 큰 카지노는 확실히 눈이 팽글팽글 돌아갈 정도였다.

“와······.”

“카지노에 다 와보네. 저희 해 봐도 되는 거죠?”

“형 그러다가 도박에 중독되는 거 아냐?”

“저도 해보고 싶은데······.”

멤버들이 와글거리며 하는 말들에 가이드가 웃으며 답했다.

“슬롯머신 정도만 해 보세요. 재미 삼아.”

가이드의 말에 멤버들이 너도 나도 지갑 속 현금을 확인했다.

라스베이거스 공연을 앞두고는 멤버들도 미국 생활에 많이 적응한 모습이었다.

거대한 대륙의 도시를 옮겨 다니며 오래 타지 생활을 하며 공연까지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멤버들 나름대로 이 시간들을 즐기려 애쓰고 있었다.

오백호 실장이나 관계자들도 멤버들의 고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도시를 옮길 때마다 하루 정도는 연습 대신 관광지를 구경하며 쉴 수 있도록 멤버들을 배려했다.

“오······. 나 50불 정도 있다. 빨리 해 봐야지!”

안형서가 신나서 카지노 입구 안으로 들어갔다.

가이드와 멤버들도 안형서의 뒤를 따라 엄청난 수의 슬롯머신이 줄줄이 깔려 있는 구역으로 향했다.

거기에 뒤쪽으로는 멤버들이 불편하지 않게 일정 거리를 두고 경호원 두 명이 따라붙었다.

물론 카지노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중에는 케이케이 멤버들을 알아보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뒤쪽에 뻔히 경호원들이 보이는 데다 모두 스타를 구경하는 것보단 게임의 세계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케이케이 멤버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유일하게 카지노 방문 경험이 있는 김원이 자리를 잡고 앉아 슬롯머신을 작동시켰다. 멤버들은 우선 김원이 하는 것을 보고 자신들도 해 볼 생각이었다.

잭팟이 터지길 기대하며 모두 흥미진진한 눈으로 돌아가는 슬롯머신 화면을 뚫어져라 보았다.

“What the······.”

결과는 당연하게도 ‘꽝’이었다.

실망스러운 말투로 김원이 중얼거리자 석지훈이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초심자의 행운이라는 게 있다니까 제가 해보겠습니다.”

“우리 수가 여섯인데 한 명은 뭐라도 걸리겠지!”

안형서의 말에 석지훈이 답하자 안형서의 눈썹이 올라갔다. 어쨌든 다른 멤버들도 하나둘 자리를 잡고 앉기 시작했다.

사람이 꽤 많았기 때문에 일렬로 붙어서 앉을 수는 없어, 최대한 가까운 자리를 찾아 앉았다. 가이드는 안형서가 가장 걱정되는지 안형서의 뒤에 섰다.

뒤쪽에 있던 도욱도 한 번쯤은 해보려 자리를 찾고 있을 때였다. 바로 맞은편 기계에서 백발의 노인이 일어서고 있었다.

‘저기에 앉아야겠다······.’

도욱이 자리에 앉으며 떠나가는 노인 쪽을 보았을 때였다.

장소 자체가 넓었지만 워낙 여러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끼리 스치는 정도의 일은 흔했다.

그러나 방금 노인과 스친 젊은 남성의 움직임은 분명히 부자연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젊은 남성이 ‘Sorry.’ 하고 인사하며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려고 했다. 도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도욱은 뒤편의 경호원들을 돌아보았다.

마침 도욱이 벌떡 일어서자 움직임을 눈치챈 경호원 중 하나가 도욱과 시선이 맞았다.

“······저기!”

도욱이 손가락으로 젊은 남성 쪽을 가리키며 다급하게 외쳤다.

도욱의 외침에 주변에 있던 이들의 시선이 도욱 쪽으로 쏠렸다. 노인 또한 마찬가지로 도욱을 보았다.

“당신 지갑이요!”

도욱의 외침에 노인이 반사적으로 지갑을 넣어 두었던 바지 뒷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당연하게도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몸이 먼저 반응한 듯 경호원은 도욱이 가리키는 대로 젊은 남성을 쫓고 있었다.

젊은 남성의 걸음은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고는 사복을 입었지만, 체격이나 분위기로 누가 보아도 경호원인 듯한 이가 쫓아오자 이내 달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추격전에 장내에 있던 사람들이 한 번씩 그들을 돌아보았다. 도욱은 반대편으로 돌아가 입구 쪽으로 향했다.

소란스러워진 상황에 카지노 내부 인력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입구의 경호원들에게 도욱이 빠르고 간결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마침 케이케이의 경호원에게 쫓긴 젊은 남성이 도욱이 있는 쪽으로 오고 있었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거인과 같은 체구의 카지노의 사설 경호원들이 젊은 남성을 가로막았다.

젊은 남성이 잠시 잡아뗐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미 위층의 본부에서 CCTV를 확인한 후, 경찰을 호출해 오고 있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신나게 슬롯머신을 돌리고 있던 멤버들도, 지갑을 소매치기 당할 뻔한 노인도 벙 찐 얼굴로 범인이 잡히는 과정을 보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와중에 도욱은 자신을 도운 경호원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그는 미국 공연을 하는 동안 내내 케이케이의 곁은 지키고 있던 한국 사설 경호원이었다.

이런 일이 사실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카지노 측에서는 빠르게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소매치기범은 빠르게 경찰 쪽에 인계되었고, 피해자에게 관리 소홀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를 하는 중이었다.

한쪽에서는 도욱에게 도움을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해오기도 했다. 사례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지만 딱히 그 정도 일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도욱은 고개를 저었다.

“어···. 어떻게 알았어?”

가볍게 감사 인사만을 받은 도욱이 돌아서자 박태형이 물었다. 박태형은 진심으로 경이롭기까지 하다는 눈빛이었다. 도욱의 바로 옆자리에 박태형도 있었다. 박태형도 거구의 노인을 보긴 했지만, 인파의 일부로만 인식했을 뿐 아무런 특이점도 발견하지 못했었다.

“그냥······. 보여서······.”

멤버들이 슬롯머신보다 더 신기한 걸 보는 듯한 얼굴로 도욱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도욱은 조금 머쓱한 말투로 답했다.

도욱은 언제나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 평소 어느 것도 허투루 넘기지 않고, 특히 사람들을 깊이 관찰하는 버릇이 있었다. 거기에 뛰어난 신체 능력이 더해지면서 소매치기범까지 잡아내는 수준이 되었던 것이다.

물론 오늘 잡힌 소매치기범이 아주 베테랑은 아니어서 가능했던 부분도 있었다.

허름한 모자에 워커를 신은 백인 노인이 눈짓으로 도욱에게 감사를 표했다. 기꺼이 감사 인사를 받은 도욱은 멤버들과 함께 다시 슬롯머신을 즐기러 떠났다.

도욱의 뒷모습을 보던 노인의 눈이 가늘어졌다.

“날 도와준 저 동양인······, 혹시······.”

노인이 확실하지 않다는 듯 중얼거릴 때였다. 옆에 서 있던 카지노 매니저가 의외라는 듯 답했다. 매니저는 방금 전까지도 소매치기를 당할 뻔한 그가 기분이 상했을까 안절부절못하던 차였다.

“마틴 씨도 누군지 아시는 겁니까?”

그의 이름은 마틴이었다.

많은 돈을 쓰지 않아 이곳 카지노의 VVIP 고객은 아니었지만, 일 년에 한 번쯤 장기간 라스베이거스에 머무르며 가벼운 게임들을 즐기는 이였다.

물론 매니저가 그를 아는 건 다른 이유에서였다.

“아니, 누군지 모릅니다. 뛰어나게 훌륭한 외모를 가지고 있어서 혹시 셀러브리티가 아닌가 해서요. 동양의 셀러브리티는 그쪽도 모르려나······.”

“아뇨. 세계적인 보이밴드의 멤버예요. 케이케이라고······.”

“아! 케이케이? 들어본 적 있어요! 뮤직비디오가 인상 깊었는데······. 그 그룹의 멤버란 말입니까?”

“네. 정말 놀라운 일이네요. 그런 스타가 마틴 씨를 돕는 일까지 하다니.”

“그러게. 놀랍군요. 마치 영화 속 ‘영웅’ 같네요.”

매니저의 눈이 흥미롭다는 듯 빛났다. 마틴과 대화를 하는 건 매니저도 처음 있는 일이었고, 무척이나 영광인 일이었다.

“마치 당신이 만들어낸 캐릭터처럼 말이지요?”

마틴의 입가 주변 주름이 진해졌다.

***

‘인생가요’ 방송이 끝난 후.

한국 인터넷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는 오늘 데뷔한 여자 아이돌 그룹이 올라와 있었다.

1 우천취소

2 LG트윈스

3 소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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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우리들의 시간

8 인생가요 다시보기

9 다혜

10 밸런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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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들’이 ‘밸런타인’보다 높은 순위였다. 무대가 끝난 직후 밸런타인이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무대 시간으로 특별대우를 받은 것으로 인해 실시간 검색어가 급상승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더 이슈가 된 것은 소녀들의 무대였다.

정혜성 대표의 말 그대로였다. 예상하지 못했던 실력파 신인의 등장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신선한 충격이었다.

기존에 보던 대형 기획사의 아이돌들과 소녀들은 전혀 다른 느낌이기도 했다.

정형화된 것 없이 다듬어지지 않아 더욱 자연스러운 얼굴과 표정, 이마에 맺히는 땀이 고스란히 드러날 정도로 최선을 다하는, 때 묻지 않은 움직임.

그러면서도 여느 대형 기획사 못지않은 퀄리티 높은 곡과 의상. 탄탄한 노래 실력과 군무.

똑같이 높은 무대 퀄리티를 자랑해도 ‘간절함’과 무대를 향한 ‘열정’은 TV 밖으로도 표출되기 마련이었다.

무대가 끝나기 무섭게 인터넷에는 ‘소녀들이 누구냐, 어디 기획사냐, 깜짝 놀랐다’ 등등 많은 댓글들이 올라오며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거기에 1위 발표 시간, 출연진 전원이 올라선 무대에서 2초 정도 잡힌 막내 다혜의 그렁그렁한 눈과 눈물 한 방울은 어마어마한 파급력을 선사했다.

남녀 모두의 마음을 빼앗기 충분한 순간이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이었다. 오전만 해도 순위권 밖에 있던 음원 순위까지 100위 안에 진입해 있었다.

단 한 번뿐인 무대였지만, 방송을 본 관계자들이라면 이제 학습한 바가 있었기에 어떠한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소녀들’이 제2의 케이케이와 같이 중소 기획사의 한계를 넘어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혜성 엔터라고······. 청월에서 일했던 정혜성 대표가 세운 회사입니다. 그리고······.”

“말해.”

비서의 보고를 듣는 서중원 본부장의 목소리가 본부장실 안을 낮게 울렸다.

“케이케이의 강도욱이 투자했다는 얘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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