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
게릴라전 (3)
***
케이케이는 떨리는 마음으로 민국대학교 강당 뒤쪽 대기실에서 공연을 준비 중이었다.
“오! 한 시 차트에서도 1위다!”
“내가 새벽에 지붕 뚫었을 때부터 알아 봤다 안 하나.”
“하아······. 이제 좀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아요. 열두 시간 정도 실시간 차트 1위 유지했으면 조금 맘 놓아도 되는 거겠죠.”
안형서와 정윤기, 석지훈은 대기실 의자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음원차트를 확인했다. 석지훈의 말에 안형서와 정윤기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케이케이의 이름값이 이제 상당한 만큼 발표 후에 몇 시간 정도 실시간 차트 1위를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문제는 ‘그 순위를 유지할 수 있는가.’였다. 케이케이라는 이름을 보고 노래를 들어본다고 해도 노래가 좋지 않으면 금방 정지 버튼을 누를 테고 순위는 금방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최근 겨울 발라드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음원차트 순위는 하루가 다르게 바뀌었다.
“내일이면 예지은 씨 스페셜 앨범 나온다고 하지 않았나?”
안형서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말했다. 예지은은 청아한 목소리로 젊은 세대는 물론이고 중장년층까지 꽉 잡고 있는 음원 강자였다. 예지은이야말로 음원차트 1위가 따 놓은 당상이라고 생각되는 가수였다.
“일단 줄세우기는 했으니 가오는 세웠다. 마”
케이케이의 앨범은 음원차트 1위부터 6위까지를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 타이틀곡 ‘Connection’이 1위였고, 그 아래로 수록곡들이었다. 이 정도만 해도 절반의 성공이었다.
다만 하루 만에 음원차트 1위 자리를 빼앗긴다고 생각하면 입이 썼다. 정윤기가 애써 스스로를 달랬다.
당장 얼마 후에 있을 게릴라 공연에 어느 정도의 인원이 올지도 걱정이었고, 음원차트 순위도 걱정이었다.
자신감은 있다가도 사라지고, 사라졌다가도 생겼다. 한마디로 왔다 갔다 했다.
아무리 정상의 자리에 있어도 평가받는 일은 두렵기 마련이었다. 정상의 자리였기 때문에 더 두려웠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도욱이 형······.”
준비를 마치고 온 도욱이 세 사람에게 말했다. 석지훈이 물에 떠내려가며 지푸라기라도 잡는 듯한 얼굴로 도욱을 쳐다보았다.
“잘되고 있는데 왜 그렇게 걱정하세요.”
“이게 다······. 휴······.”
안형서가 설명을 하려다 한숨을 내쉬었다.
도욱의 말대로 잘되고 있었다. 공개한 신곡 ‘Connection’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음원차트 순위뿐 아니라 마이튜브에서의 뮤직비디오 조회수도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심지어는 외국 음원차트 순위에서도 굉장한 순위를 내고 있었다. 빌보드 차트에도 순식간에 차트인 했다.
단 하루 만에 어마어마한 성과를 내고 있었다. 내일 앨범을 발매할 예지은을 걱정할 수준이 아니었다.
물론 안형서가 설명하지 않아도 도욱도 그 불안을 잘 알고 있었다.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느끼는 불안이었다. 더욱이 컴백 무대가 너무나 다른 형식의 무대였다. 성공할지 실패할지 가늠도 할 수 없는 무대였다.
아무도 도전하지 않아서 그 선례를 알 수도 없는······. 케이케이는 이제 케이케이만의 길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도욱이 진지한 검은 눈 안에 멤버들이 한 명씩 들어왔다.
도욱도 멤버들의 긴장감을 덜어주고 싶었다. 불안을 나누고 싶었다. 그러나 각자 감내해야만 하는 몫이 있는 것이었다. 무대에 올라가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한 번 무대가 시작되면, 그다음부터는 몸이 먼저 반응했다. 머릿속을 돌아다니던 잡생각은 사라지고 오직 노래만이 자신들을 부르는 목소리만이 머리를 지배했다.
“······그냥 떨려서 그래.”
안형서가 호흡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저는······.”
뒤이어 나타난 박태형이 갑자기 말을 꺼냈다.
“제가 생각할 때는······. ‘Continue’만큼 아니······. 그보다 더 잘될 것 같아요.”
박태형이 무언가 이목을 집중시키며 말을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박태형에게는 어떠한 확신이 있는 듯했다.
신곡 ‘Connection’은 케이케이의 음악 색깔 그대로 세련됨 그 자체였다.
지난번 해외에서 열풍을 일으키며 빌보드 신인상의 주역으로 만들어준 ‘Continue’가 파워풀한 곡이었다면 ‘Connection’은 흥겨우면서도 부드러운 곡이었다.
케이케이하면 떠오르는 군무도 절도 있는 동작들이 아닌 웨이브가 가미된 동작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뮤직비디오만 보고서 안무를 다 알 수는 없었지만, 케이케이의 변화한 포인트 안무 동작들에 팬들은 어서 무대를 보고 싶어 했다.
무대를 보고 나면 단지 노래를 들었을 때보다 더 ‘Connection’이라는 곡에 빠져들게 될 것임을 박태형은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몸으로 노래를 익히는 박태형이 이미 그랬기 때문이었다.
물론 방송 없이도 많은 사람들이 무대를 보게 하려면 오늘의 공연이 온, 오프라인으로 모두 성공적이어야 했다.
박태형의 말에 정윤기도 긴장된 표정을 풀고 웃으며 말했다.
“마, 태형이가 그렇다는데 그런 거 아니겠나.”
나머지 멤버들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대기실 문이 열리며 스태프가 고개를 내밀고는 외쳤다.
“스탠바이해 주세요! 공연 10분 전입니다!”
“저!······.”
밖에 몇 명이나 왔는지 물어보려던 김원의 부름을 뒤로한 채 스태프는 대기실 안에 소리만 지른 채 사라져 있었다. 대기실 문 밖에서는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물었어도 어차피 대답은 해주지 않았을 터였다. 오백호 실장조차도 물어오는 멤버들을 피해 대기실을 나가 공연장 쪽에서 현장을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케이케이 멤버들은 자연스럽게 둥그런 원을 그리며 모였다.
“후······. 마, 몇 명이 왔든지······. 최선을 다해서 최고의 무대 만들자.”
정윤기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고는 도욱을 쳐다보았다.
“아이 케이!”
도욱의 선창에 정윤기가 이어 외쳤다.
“유 케이!”
“가자!!!”
케이케이 멤버들의 구호가 대기실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
그 시각.
프렌즈 본사 건물, 가장 큰 회의실에서는 프렌즈 대표를 비롯해 me앱 사업본부장 등 이번 프로젝트와 관련된 임원진들이 모여 me앱 생중계 현황을 보고 받고 있었다.
“진짜 엄청나구만!”
프렌즈 me앱 사업본부장은 화면을 보며 박수를 쳤다.
화면 위에는 실시간 me앱 접속인원수와 가입자수가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눈 깜박하면 그새 단위가 달라져 있었다.
생중계를 보기 위해 me앱에 접속한 인원이 무려 35만 명이었다. 벌써 접속인원에 대한 기사가 나가고 있는 상태였다.
me앱 가입인원은 최대치를 찍고 있었고, 프렌즈가 잡은 me앱 가입자수 목표치는 이미 오늘 하루 안에 달성 가능한 수준이었다. 국내 스트리밍 사이트로서는 최대 가입자를 보유하게 된 셈이었다.
아직 공연은 시작하지도 않았고, 앞으로 아홉 번의 공연이 더 남은 것을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목표 달성률이었다.
이러한 인원 동원이 가능했던 것은 케이케이의 팬들이 국내에만 있는 것이 아닌 해외에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계 각지의 팬들이 몰려들면서 어마어마한 효과를 내고 있었다. 인터넷 쪽으로는 여전히 규제가 심한 중국 정부의 규제까지 한국 사이트에 한해 완화되면서 중국의 팬들까지 유입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중국 케이케이 팬들의 인원은 한국에선 생각하기 힘든 숫자였다.
프렌즈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는 ‘me앱, 케이케이, 민국대학교, 게릴라, 케이케이 컴백, connection’ 등 케이케이에 관한 키워드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케이케이 팬뿐 아니라 일반 대중들에게도 꽤나 흥미를 돋우는 이벤트였던 것이다.
“박 본부장님, 이거 진짜 대박인데요?”
함께 화면을 보고 있던 me앱 사업팀 실장이 말했다.
me앱은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넘어 방송으로까지의 사업 확장을 노리는 프렌즈로서는 상당히 공을 들인 사업이었다.
“이 정도면 초대박이지!”
박 본부장이 룰루랄라 노래라도 부를 듯이 신나하며 말했다.
“이야, 신 대리가 케이케이, 케이케이 노래를 부르더니······. 효과 한번 엄청나네. 일 년 열두 달을 홍보해야 될 거였는데 말이야. 외국에서는 더 대단하구만!”
여러 스타들을 모델로 고용하려던 자본을 케이케이 한 팀의 공연 제작비로 쓸 때에는 많은 고민이 뒤따랐다. 그러나 여러 평가표와 수익모델 비교 등을 통해 지금의 선택을 했고, 정확히 옳은 선택이었다는 것에 박 본부장은 입이 찢어질 듯했다.
“신 대리 그거 지금 현장에서 울고 있는 거 아닌가 모르겠어요.”
“현장은 어때?”
신 대리는 광고 모델을 정할 때 돈을 조금 더 많이 들이더라도 광고 효과가 확실할 케이케이를 주력 모델로 삼아야 한다고 몇 번이나 주장했던 이였다. 같은 시각 현장을 총괄하는 me앱 담당자로 파견되어 있었다.
박 본부장의 물음에 실장이 답했다.
“엄청나답니다. 지금 공연장에 못 들어간 팬들이 민국대학교 밖으로도 줄을 서 있대요.”
“뭐? 거기에 다 못 들어갔다고?”
“네.”
민국대학교 강당의 수용 인원은 5천여 명이었다.
싱글벙글하던 박 본부장의 표정에 웃음기가 조금씩 사라졌다.
“이거, 이거······.”
“네? 무슨 문제라도······.”
“그냥 대박이 아니라 진짜 난리가 나겠는데?”
“아······.”
실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것이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오늘 공연의 결과에 귀추를 주목하고 있는 건 케이케이와 프렌즈 관계자들, 팬들이나 일반 대중들만이 아니었다.
방송 관계자들과 대형 기획사들의 관계자들도 이를 갈거나 초조해하면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프렌즈와 손잡은 케이케이의 공연. 방송사를 통하지 않은 인터넷 생중계만으로 돌풍을 일으킨다면 여태까지 공고히 다져왔던 권력에 균열이 가게 됐다.
더는 스타가 대중에게 다가가는 통로가 방송사만이 아니게 되는 것이었다.
수많은 스타들에게는 또 하나의 창구가 생기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미 케이케이에게 제약은 없었다.
그 순간 접속인원은 40만 명을 넘어 섰다. 공연 1분 전이었다.
***
me앱의 접속자들이 보고 있는 화면에는 텅 빈 무대 위가 잡혀 있었다.
화면 오른쪽 상단에는 시간이 카운트다운되었다. 불과 공연 1분 전이었지만 모두 음소거처리 되어 있었기 때문에 화면만 보아서는 현장의 상황을 알기 힘들었다.
그러나 5천 석을 꽉 채운 만원 관객.
그러고도 들어가지 못해 길게 민국대학교 강당 건물을 둘러싼 채 건물 밖으로 나오는 소리라도 듣고자 둘러서 있는 1천여 명의 팬들.
공연장에 가지는 못했지만 이 무대를 함께하고 싶은 전국, 아니 전 세계 40만 명의 팬들.
모두 눈으로 확인했고, 그 열기에 대한 기사가 쏟아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모르고 있는 건 귀마개를 한 케이케이뿐이었다.
케이케이가 놀라는 극적인 순간을 잡아내기 위해 me앱과 공연담당자들은 케이케이에에게 무대에 올라서기 전까지 귀마개를 하기를 요청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상태.
멤버들이 스태프의 신호를 보고는 한 걸음, 한 걸음 무대 위로 올라서기 시작했다.
가장 처음 발을 내디딘 건 도욱이었다.
강렬한 무대 조명에 눈이 부셨다. 어둠뿐이던 무대 뒤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도욱의 실루엣이 보이자 공연장에 있던 관객들의 함성이 일제히 쏟아졌다.
대강당의 천장을 뚫을 듯한 함성이었다.
도욱은 천천히 귀마개를 뺐다.
“꺄아아아아아악―!!!!!!”
me앱 화면 가득 관객들을 보며 입 벌린 채 황홀한 표정을 한 도욱의 얼굴이 잡혔다. 동시에 댓글창에 수많은 글들이 빠르게 올라오고 있었다. 프렌즈에서 이미 어느 정도 인원에 대비해 증설해놓은 서버가 불안정해질 정도였다.
도욱은 울컥하는 감정을 가라앉히며 지정된 자리에 섰다.
뒤이어 다른 멤버들이 올라오며 도욱과 마찬가지로 눈앞의 광경을 목격했다.
여섯 명의 멤버가 모두 무대 위에 올라섰을 때, ‘Connection’의 전주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