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6
소녀들 (2)
한국 팬들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불안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한국에서의 활동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해외에서의 활동에 주력할 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실제로도 케이케이의 다음 일정은 미국 TV 프로그램 출연과 콘서트 해외 투어였다.
해외 투어 콘서트는 연례행사처럼 해오던 것이었지만, 달라진 점이 확연히 존재했다.
이전에는 해외 투어 국가가 아시아 국가에 집중 포진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인도와 중동 국가들은 물론이고 뉴욕, LA를 비롯한 뉴욕의 5개 도시와 브라질, 칠레, 멕시코 등의 남미권 국가 등까지 해외 투어 일정에 추가되었다.
지난 <미쉘의 밤> 출연 이후 시드니와, 파리, 런던에서의 소규모 공연까지 추가되면서 그야말로 ‘세계 일주’를 해야 하는 셈이었다.
엄청난 투어 일정이었다.
단순히 투어 일정이 길어지는 것만이 걱정은 아니었다. 한국에서 자주 볼 수 없게 된 것은 분명히 한국 팬들로서 아쉬운 일이었지만, 케이케이가 세계적인 스타가 된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다만 다음 앨범에 대한 걱정 또한 팬들 사이에 만연했다.
최초로 빌보드 차트에 진입한 적 있었던 원맨도 빌보드 진입 이후 모든 활동의 방향성을 미국 및 해외 시장에 맞췄었다.
그러면서 이후 앨범 타이틀곡 가사의 3분의 2 이상이 영어 가사였다. 원맨의 음악 색깔을 완전히 잃은 수준은 아니었지만, 팝송에 가까웠고 해외 시장을 너무나도 의식한 것이 느껴지는 곡이었다.
기대가 큰 만큼 부담도 컸을 게 분명했다. 그것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원맨의 업적은 대단한 것이었지만, 결국 노래는 개별적으로 평가되는 것이었다. 한국의 대중들은 원맨의 신곡에 냉담했다. 음원 차트에서 1위를 한 것은 기대감에 대중들이 노래를 들어본 며칠뿐이었다.
이전 노래의 엄청난 인기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이었다.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해외에서도 이전 곡에 비하면 크게 좋은 성적은 얻지 못했다.
그것은 원맨이나 원맨의 앨범을 기획한 이들의 실수였다. 갑작스럽게 해외에서 인기를 얻게 된 터라 그 인기를 이어가는 방법으로 해외의 수요에 맞추려고 애쓰다 보니 한국의 수요도, ‘한국적’인 것에서 오는 새로움에 열광하던 해외의 수요도 맞추지 못한 것이다.
이런 사례가 있었으므로 팬들의 입장에서는 케이케이 또한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다음 앨범을 해외 시장에 맞추려 하다가 인기를 잃게 될까 우려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케이케이가 잘해내리라는 믿음을 가진 팬들이 훨씬 다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커뮤니티 내에 글이 올라오는 건 불안을 조장하는 몇몇 안티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잘될수록 망하길 바라는 사람도 많아졌다.
케이케이가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스타로 막 발돋움하려는 순간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런 인간들이 몰려들었다.
그중에는 몇 달 차이로 데뷔해 더 잘되는 듯했지만 어느새 궤도가 달라져 버린 맨투맨의 팬들도 상당수 있었다.
맨투맨은 채은호 영입 후 다시 인기가 오르면서 어느덧 케이케이의 뒤를 바짝 쫓아오고 있는 형세였다. 물론 케이케이를 넘볼 수준이 아니었고, 케이케이는 거대한 벽인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맨투맨보다 후배인 케이케이가 맨투맨보다 더 잘된 것이 꼴 보기 싫었던 맨투맨의 팬들이 최근 올라간 인기에 힘입어 어떻게든 해보려고 분란을 만들고 있었다.
빌보드 뮤직어워드의 시상식이 끝난 후.
여섯 명의 멤버들은 다 같이 대형을 갖춘 채 트로피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 이 순간을 누구보다 응원하고 축하해주었을 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사진을 올리는 일은 안형서가 맡았다.
상을 받은 이후 그렇게나 기다렸던 레이나의 무대가 진행되는 순간, 안형서는 박수를 치면서도 눈물을 참느라 눈가가 다 벌겋게 올라와 있었다.
시상식이 끝나고 엔딩 멘트가 울려 퍼지는 때에서야 안형서는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그러한 안형서를 발견한 도욱이 안형서의 어깨를 토닥여주자 안형서는 더욱 더 큰 눈물을 쏟았다.
그렇게 한참을 더 감동의 바다에서 헤엄친 뒤에야 사진을 찍을 정신도 생긴 안형서와 다른 멤버들이었다.
시상식장에서 다시 숙소인 호텔로 돌아가는 차 안.
김원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지 트로피를 보며 감격에 젖은 채 영어로 무언가를 계속해서 염불처럼 외고 있었다.
하늘에 올리는 기도 같은 것이었다.
“형······. 어······. 무서워요······.”
듣다 못한 박태형이 조심스럽게 김원에게 말했다. 그제야 김원이 조용해졌다.
안형서는 사진을 올리러 팬카페에 접속했다가 팬들이 올린 글들을 탐독하는 데 정신이 빠져 있었다.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주는 팬들의 글을 보니 안형서의 눈가가 다시금 촉촉하게 젖어들 때였다.
안형서는 댓글이 많이 달린 게시글을 클릭했다가 생각지 못한 글을 발견하게 되었다.
“음? 이런 글이 있네······. 이거 봐봐.”
앞으로 케이케이의 활동에 대한 걱정 어린 내용이 담긴 글이었다.
옆에 앉은 도욱에게 안형서가 휴대폰을 내밀자 도욱이 유심히 그 글을 살폈다.
“아······.”
“우리가 확실히 외국에 계속 있긴 하지······. 당분간도······.”
안형서도 팬들의 불안이 이해가 된다는 듯 중얼거렸다.
“뭐, 이 부분 너무 걱정하지 말아달라고 써야 하나. 어차피 우리 금방······.”
“그러면 확실히 불안한 여론은 잠잠해질 것 같긴 하네요.”
“그치?”
“근데 얘기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형 말대로 어차피 금방이니까.”
“하긴······.”
도욱의 말에 또 금세 안형서가 수긍했다. 괜히 안형서가 언급하면 얘기만 많아지는 수가 있었다. 어차피 이런 불안들은 다음 앨범이 나오고 활동이 시작되면 잦아들 터였다.
도욱은 생각했다.
‘이 정도 분위기는 감수할 만하다.’
오히려 이러한 불안감이 해소되었을 때 느끼는 만족감이 더 크다는 것을 도욱은 알고 있었다. 반전에서 오는 쾌감이 있을 것이었다.
안형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팬카페에 사진을 게재했다.
순식간에 수백 개의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축하와 함께 자신들에게 잊지 않고 고마움을 표현해준 케이케이 멤버들에 대한 고마움이 댓글의 주된 내용이었다.
***
[미국 TV에서 케이케이 얼굴 본다! 쿨 코크 모델..]
[케이케이 美 ‘쿨 코크’ 모델 전격 발탁!]
[한국 그룹 최초 미국 현지 모델, 미국 전역 전파 탄다!]
[인기 어디까지? 미국에서도 완전히 통한 케이케이의 매력!]
[역대급 광고 모델, 쿨 코크 패키지에 케이케이 얼굴..]
[한국이 배출한 월드스타, 케이케이 매력 탐구]
[케이케이, 한국에 이어 미국에서도 쿨 코크 모델 된다!]
빌보드 뮤직 어워드 신인상 수상 이후 케이케이의 행보는 그야말로 거침없었다.
케이케이가 해외의 라디오나 TV쇼에 나가는 것은 너무나도 익숙한 그림이 되어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뛰어난 성과는 바로 미국 현지 CF 광고 모델이 된 것이었다.
탄산음료 업계 세계 1위의 기업이자 콜라 회사인 ‘쿨 코크’는 이미 한국에서 케이케이가 모델을 했던 콜라 회사였다.
그곳에서 빌보드 뮤직 어워드 수상 이전부터 계약 제의가 들어왔었다.
단순한 광고가 아니었다. 미국 현지 모델이 되는 것이었다. 거기에 미국 내 모든 콜라의 패키지에 케이케이의 얼굴이 새겨지게 됐다.
케이케이는 완벽하게 월드 스타의 대우를 받고 있었고, 그러한 반열에 올라 있었다.
-진짜 너무 대박이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진짜 전무후무한 세계적인 인기ㅠㅠㅠㅠㅠㅠ할리우드 진출했던 이병호도 이 정도 아니었던 듯ㅠㅠㅠㅠㅠ
-박제성 선수 다음 국위선양 아니냐
-비교 불가ㅋㅋ 둘 다 너무 대단한 것임ㅋㅋ
-이거는 대박이 아닐 수가 없다
-나 지금 저거 구하러 미국 가야 하는 부분?ㅎㅎㅎ;;;
-미국 사는 키링..공동 구매 진행해주라..ㅠㅠㅠㅠㅠㅠ콜라 가지고 싶어
-사진 봤어? 짱인데 콜라 사러 뉴욕 간다
-나 텍사스 사는 키링인데 현지 인기 진짜 장난 아닌 것 같아 학교 갔는데 케이케이 좋아하는 팬 모임 있을 정도야ㅠㅠ 한국에서 중학교 다니다가 여기 와서 힘들었는데 케이케이 덕분에 일상생활에서도 너무 큰 힘이 된다
-매일 놀라는 것도 일이네ㅋㅋㅋㅋㅋㅋㅋ
-인도에서 회사 다니는데 나 한국인이니까 케이케이 아냐고 내 상사가 물어봄
-이렇게 되면 한국 활동은 진짜 물 건너 가겠다 그저 팝스타 좋아하는 기분
-오빠들 응원해요ㅠㅠ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ㅠㅠ;
-외국에 수출당해 버렸어[email protected]!!
동시에 팬들은 어느 정도 한국에서의 활동은 멀었다는 사실을 차츰 받아들이고 있었다. 케이케이의 인기가 이렇게까지 올라간 이상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러나 해외 투어가 시작된 후 얼마 안 가 한국의 팬들은 믿을 수 없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케이케이, 해외 투어 종료와 함께 깜짝 컴백!]
[케이케이 컴백한다! 한국 시상식 일정 모두 참석...협의 중]
[내년 초 컴백, 케이케이 한국에서의 활동 계획 밝혀...]
[“세계적인 스타됐지만 달라진 것 없어..” 케이케이 전격 인터뷰]
[케이케이 박태형, <댄싱댄싱> 심사위원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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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지도 못했던 컴백 소식이었다.
기사에 따르면 해외 투어 일정을 마친 후, 한국의 가요대상은 물론이고 연기대상 시상식에도 모두 참석하고 곧바로 컴백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의아할 정도의 스케줄이었다.
지금 미국은 물론이고 해외 전역에서 케이케이를 부르는 곳들이 넘쳐나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이케이는 한국에서의 활동을 선택한 것이었다.
한국 활동을 바랐던 팬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팬들은 어리둥절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런 스케줄 가운데 앨범 준비를 했다는 것도 믿기지 않았다.
케이케이의 반전에 가까운 활동 계획이 밝혀지자, 그것 자체만으로 엄청난 이슈가 되었다.
도욱은 뜨거운 반응들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빌보드 뮤직 어워드를 기점으로 1~2주 정도만 미국 활동을 한 뒤, 해외 투어로 해외에서의 기반을 탄탄하게 다진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다.
이러한 활동 계획은 <미쉘의 밤> 촬영 날 이루어진 회의에서 도욱이 낸 아이디어였다.
도욱은 해외에서의 활동만큼 한국에서의 활동이 중요하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현재 얻게 된 해외에서의 인기도 한국 활동을 기반으로 인터넷과 SNS를 활용해 키워온 것이었다. 이제 와서 이러한 방향성을 수정하는 무리수를 둘 필요는 없었다.
다음 앨범의 음악 또한 해오던 대로 할 생각이었다.
세계적인 제작자와 작곡가들이 케이케이 쪽에 컨택을 해왔지만, 앨범제작팀 심준 팀장과의 협의 끝에 도욱은 수록곡 몇 곡 외에는 그들의 곡을 받지 않기로 했다.
타이틀곡은 도욱이 <우주에서 온 연인> 촬영에 들어가기 직전에 작업해 둔 곡이 될 것이었고, 수록곡은 오케이 앨범에 들어가기로 했던 곡들을 사용하기로 했다.
심적으로 부담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그래도 가장 잘하는 것을 해나갈 생각이었다.
한국 활동을 안 하는 것 아니냐는 팬들의 우려를 낳았던 석지훈의 ‘캠핑 48시간’ 하차는 석지훈 개인의 문제였다.
석지훈은 예능에 집중하다 보니 이대로 예능 쪽에서만 활동하게 될 것 같았다. ‘캠핑 48시간’은 물론 석지훈의 이름을 알리고, 많은 인기를 얻게 해준 고마운 프로그램이었지만 지금 석지훈은 음악을 하고 싶었다.
그 때문에 아역 배우도 그만두고 연습생을 시작했었다. 도욱이나 정윤기와 마찬가지로 석지훈도 나름대로 작곡에 욕심을 내고 있었다.
석지훈은 오히려 예능은 나중에도 할 수 있지만, 지금이 아니면 음악 작업의 때를 놓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컴백은 진짜 생각도 못 했나봐. 완전 난리 났네.”
“그러게요.”
런던의 한국 문화원에서 작은 공연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공항으로 출발하며 오백호 실장이 말했다.
도욱도 캐리어를 끌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 도착해서 바로 갈 곳이 있다고?”
“네. 근데 그전에 조애니 부장님을 만나 봬야 할 것 같은데요.”
“조 부장님을?”
“네.”
도욱의 답에 오백호 실장이 의아한 눈으로 도욱을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