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181화 (181/225)

# 181

One in a Million (2)

박태형은 여전히 감감무소식이었다.

도욱이 연락을 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미국 TV 녹화 스케줄이 잡히고 나면 더는 미룰 수 없었기 때문에 멤버들은 상의 후 오백호 실장에게도 사실을 알렸다.

일단은 오백호 실장이 사실 정도는 인지하고 있어야 이후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대처할 수 있을 것이었다.

역시나 오백호 실장은 불같이 화를 내며 박태형을 당장 찾아오겠다고 했다.

조용하고 얌전한 성격 탓에 처음 박태형을 대할 때 오백호 실장조차도 조심스러웠던 게 사실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는 그냥 조용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제 할 일은 잘하고 있다는 인상이었다.

그 때문에 오백호 실장이 도욱 다음으로 큰 걱정을 하지 않는 멤버가 박태형이었다.

그런 박태형이 마음대로 숙소를 비우고 집에 내려가서는 연락 두절에 올라오지 않고 있다고 하니 오백호 실장으로선 더욱 염려되는 상황이었다.

“무슨 일 생기면 어쩔 거냐. 너희가 책임지기라도 할 거야?”

평소 잘해 오던 박태형이었기 때문에 더 걱정이었다.

조용한 애들이 한 번 사고 치면 크게 친다는 게 오백호 실장의 생각이었다.

당장에 박태형의 본가로 가 일단은 눈앞에 두고 뭐가 문제인지 얘기를 들어보든 하자는 게 오백호 실장의 주장이었다.

확실히 오백호 실장의 입장은 멤버들과는 달랐다. 아끼는 동생으로서 박태형을 걱정하는 마음도 물론 있었지만, 그에게 있어 박태형의 신변에 아무런 문제도 없게 하는 것은 바람이 아닌 의무였다.

그러나 누가 보아도 박태형이 정신적으로 방황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무작정 데리고 오게 할 수는 없었다.

“오겠다고 했으니까 조금 더 태형이, 인마한테 시간을 주면······.”

정윤기가 하는 말에 오백호 실장이 그를 노려보았다.

“너희 다 잘한다고 오냐 오냐 해줬더니 말야, 어?!”

걱정과 불안으로 오백호 실장의 언성이 높아졌다.

“백호 형······.”

오백호 실장에게 늘 핀잔을 듣는 역할이긴 하지만, 가장 편한 사이기도 한 안형서가 오백호 실장의 눈치를 보며 그를 불렀다.

“어차피 아직 도욱이도 드라마 촬영 중이잖아요. 미국은 끝나고 갈 거고······. 그 전까지만 기다려 보면······. 형······. 처음 있는 일이니까 좀 봐주······.”

“처음 있는 일이니까 더 걱정이지! 도욱이 촬영도 거의 다 끝났잖아. 낼 모레가 끝 아냐? 미국 비자 신청도 해놨구만. 암튼 내가 내려가서 달래서라도 데려올 테니까, 나도 그렇게 무작정 멱살 끌고 오겠다는 건 아니고.”

조금 누그러진 채 오백호 실장이 답했다. 오백호 실장의 누그러진 기색을 눈치챈 도욱이 말했다.

“제가 다녀올게요.”

도욱의 말에 오백호 실장의 눈이 커졌다.

오백호 실장에게 얘기하기 전, 서로 앞다투어 직접 박태형을 데려오겠다고 했던 멤버들이었다. 그러나 다른 멤버들은 시간을 빼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미국 TV 방송이 갑작스럽게 잡히면서 뒤에 있던 스케줄을 끌어왔기 때문이었다.

석지훈은 ‘캠핑 48시간’ 외에 하나 더 고정으로 하고 있던 맛집 투어 프로그램의 녹화가 연이어 있었고, 안형서는 몬스터의 권지형 솔로 앨범 피처링 작업이 한창이었기 때문에 스케줄이 빠듯했다.

게다가 정윤기와 김원은 오케이 디지털 싱글 발매일이 앞당겨진 상황이었다.

미국 TV 진출에 맞춰 홍보 효과를 노리려 일주일이나 발매일을 당겼다. 그러다 보니 곡 작업과 녹음 때문에 하루가 멀다 하고 밤을 새우고 있었다.

드라마 촬영 때문에 정신없이 바빴지만 드라마 촬영이 끝나면 오히려 미국 스케줄 전까지 2~3일 정도 휴식기를 갖는 게 도욱이었다.

스케줄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도욱은 박태형의 ‘친구’로서도 직접 박태형을 찾아 가고 싶기도 했다.

“도욱이 네가? 드라마 촬영은 어쩌고.”

“끝나고 바로 가 볼게요. 이틀 정도 시간 있잖아요.”

“그럼 그때까지는! 그냥 손 놓고 기다리자는 거야?”

“태형이가 온다고 했었고······. 형도 아시잖아요. 태형이가 저희한테 피해갈 일을 할 애는 아닌 거······. 형도 걱정돼서 그러시는 거 알지만······. 형 말대로 저 며칠 후면 촬영 끝나니까 제가 가서 얘기해 보고 데리고 올게요.”

도욱의 말에 오백호 실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이 데리러 가는 것보단 도욱이 박태형을 찾아가는 것이 훨씬 나을 거라는 건 알았다. 자신이 잘 달랜다고 해 봐야 친구인 도욱보단 못할 게 분명했다.

“그럼 무슨 일 있으면···!”

“제가 책임질게요.”

도욱에게서 박태형에 대한 강한 신뢰와 굳은 의지를 본 오백호 실장은 한숨을 쉬었다. 다른 멤버들이면 모를까 도욱이었다.

네가 어떻게 책임질 거냐 물으려던 오백호 실장은 입을 다물었다. 도욱이 저런 식으로 나오면 오백호 실장으로서도 막기 힘들었다.

“그리고 형······. 위에 보고는 안 해주셨으면 하는데······.”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그거까진 안 돼.”

오백호 실장에게 박태형의 일에 대해 멤버들이 말하기를 꺼린 것은 무엇보다도 이 부분 때문이었다.

오백호 실장 자체는 어떻게든 설득하면 이해해줄 수도 있었다. 그간 쌓인 정과 신뢰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오백호 실장도 회사의 일원이었다. 윗선에 보고를 해야 하는 입장이었고, 알려진다면 케이케이가 회사 내 가장 훌륭한 수입원이자 아티스트인 것과는 별개로 박태형 개인에게는 불이익이 가해질 수 있었다.

박태형이 여태까지 팀 활동에 최선을 다해온 것은 모두가 아는 바이지만, 상품에 대한 재평가는 언제나 이루어지고 있었다.

앞으로는 개인 활동이 더 많아질 텐데 윗선에서 박태형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가 불성실한 이미지로 잡혀서 좋을 건 하나도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조용한 성격 때문에 무대는 잘하지만 외에는 끼가 없는 것 아니냐는 평가를 듣는 박태형이었다. 다른 멤버들과 달리 뚜렷한 개인 활동이 없는 것도 그 이유였다.

오백호 실장도 그걸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선에서 결단이 내려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케이케이 멤버들과의 신뢰는 그 어떤 가수들과의 관계에서 가졌던 신뢰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후······.”

크게 한숨을 내쉰 오백호 실장이 말했다.

“이틀이야. 도욱이 너 마지막 촬영하고 이틀 뒤에도 태형이 소식 없으면 회사에 알리고, 내가 내려가 볼 거다.”

“네.”

도욱이 끄덕였다. 멤버들은 도욱이 혼자 책임을 지게 한 것 아닌지 걱정되기도 했지만, 박태형과 도욱 모두를 믿었다.

또 멤버들끼리 이야기했을 때 친구인 도욱이 강력하게 어필한 사항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기도 했다.

물론 최선은 하루라도 빨리 박태형이 마음을 잡고 돌아오는 것이라고 멤버들은 생각했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도욱이 덧붙였다.

“너무 걱정 마세요. 제가 꼭 데리고 올게요.”

박태형은 돌아오지 않았고, 도욱은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도욱을 직접 터미널 앞에 내려다 준 오백호 실장의 걱정 어린 눈길이 따라 붙었지만 도욱은 잘 다녀오겠노라 인사했다.

오백호 실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박태형이 그랬듯이 도욱에게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었다.

울진으로 가는 버스 안은 대부분 중장년의 사람들이라 캡 모자를 깊게 눌러 쓴 도욱을 알아보는 이는 없었다.

버스는 차가운 겨울 도로를 내달렸다.

***

도욱이 울진에 도착한 건 저녁 열 시 정도였다.

늦은 시간 연락도 없이 남의 집에 방문한다는 것이 대단한 결례인 줄은 알았지만, 박태형이 연락이 되질 않으니 도리가 없었다.

그나마도 개인 정보를 모아 놓느라 집 주소를 정확히 알고 있어 다행이었다. 부모님들의 연락처까지 알면 좋았겠지만, 울진에 내려가면서 연락처를 바꿔 알아낼 방법도 없었다.

박태형의 부모님은 낡은 아파트를 리모델링한 곳에 살고 있었다.

딩동, 하고 벨을 누르자 곧 안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다행이도 박태형의 목소리였다.

“누구······.”

인터폰으로 묻던 박태형의 목소리가 굳었다. 모자 아래 도욱의 얼굴을 확인한 게 분명했다.

“누구니?”

박태형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 뒤에서 한참 이런저런 말소리가 들렸지만 제대로 대화의 내용을 파악하기는 힘들었다.

한참을 지나도 다른 답이 들려오지 않아 다시금 벨을 누를까 도욱이 고민하던 차였다.

철제 현관문이 끼익, 하는 소리를 내며 작게 열렸다. 박태형은 상당히 당황한 얼굴이었다.

집에 내려와 있어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집밥을 먹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박태형의 얼굴은 조금 야위어 있었다.

“도, 도욱아······. 여기까진 어떻게······.”

“내가 못 올 곳 왔어?”

“아, 아니······.”

“가자. 미국 가야 돼.”

“어어?”

박태형이 당황한 듯 되물었다.

박태형과 도욱은 박태형의 본가 근처의 바닷가로 나왔다. 겨울 바다 바람이 세찼지만, 오히려 정신이 깨는 기분이었다.

“스케줄 잡히면 어떡하려고 휴대폰을 꺼놔.”

“미안······.”

우선 미국 쪽에서 연락이 온 사실을 알려주며 도욱은 박태형의 잘못을 짚었다. 박태형은 기쁨도 누리지 못하고 고개만 숙인 채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금방 올라가려고 했는데······.”

박태형이 우물거렸다.

도욱은 재촉하지 않고 차분하게 박태형의 말을 기다려 주었다. 말하지 않아도 이미 짐작하고 있는 게 있었다. 다른 멤버들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박태형을 기다려 주고, 이해해주고, 몰아세우지 않으려 배려했었다.

박태형이 어렵게 자신의 이야기를 더듬더듬 이어 나갔다.

“······그래서······. 아무런 도움도 안 되고······.”

역시나였다.

케이케이라는 그룹은 이미 최정상에 위치해 있었다. 여전히 미국 등 세계적인 큰 무대가 남아 있었지만, 처음 아이돌 가수가 되려고 했을 때 이루고자 한 것들은 다 이룬 상태였다.

그룹을 떠나서 개개인으로서도 자신의 길을 찾을 때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다른 멤버들은 조금씩 그것들을 해오고 있었다. 도욱이야 말할 것도 없이 작곡이면 작곡, 연기면 연기 모든 분야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며 활약했다. 솔로 가수로도 활동했고 이후로도 활동할 예정이었다.

정윤기나 김원도 래퍼로서 자신들의 길을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석지훈은 깔끔한 말솜씨와 독특한 캐릭터로 예능에서 활약했다.

안형서는 뛰어난 노래로 현재는 OST 곡과 다른 가수들의 피처링을 해주었지만, 언제든 솔로 앨범을 낼 수 있는 상태였다.

그에 비해 박태형은 케이케이라는 그룹을 벗어나면 아무것도 없었다.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질 만했다.

팀 내에서는 ‘춤 담당’이라는 담당을 나름대로 맡고 있었지만, 무대가 아니면 특별한 끼를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더욱 자신이 무능하게 느껴졌다.

그런 상황에서 케이케이의 노래가 빌보드에 진출하고 멤버들의 개인 활동이 가속화되면서 박태형은 절벽 앞으로 내몰린 기분이었다. 자신이 없어도 충분할 것 같았다.

“무언가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생각하다 보니······.”

그러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쉴 틈도 없이 너무 열심히 달려온 탓에 이제야 박태형은 다른 가수들이 활동 중 겪는 ‘방황’을 경험하고 있었다.

바다의 짠내가 바람 사이로 훅 하니 끼쳐 왔다.

“그래도 이렇게 연락도 안 되면 다들 걱정하고······. 멤버로서도, 친구로서도 정말 속상하다.”

도욱의 말에 박태형의 고개가 더욱 숙여졌다.

박태형을 데리고 올 수 있을 것이라고, 박태형이 절대로 케이케이의 활동이나 가수라는 직업에 회의를 느껴 연락이 두절된 것이 아니라는 것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가 도욱에게는 있었다.

그리고 박태형의 고민을 해결해줄 수도 있을 듯했다.

“이거······. 너지?”

박태형의 어깨 위에 도욱이 손을 얹으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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