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
From the Universe (5)
케이케이의 굿바이 무대가 있는 오늘은 맨투맨의 컴백 무대가 있는 날이기도 했다.
맨투맨의 앨범은 쉴 틈 없이 발매되고 있었다. 아라 엔터테인먼트의 서중원 본부장은 이전보다 더 작정한 듯 맨투맨의 활동을 밀어붙였다. 서중원 본부장 역시 반응이 좋을 때 상승세를 제대로 타려는 게 분명했다.
“안녕하세요!”
채은호의 목소리가 까랑까랑하게 케이케이의 대기실에 울려 퍼졌다. 일순 멤버들이 얼음땡 놀이라도 하듯 굳었다가 풀려나며 자리에서 일어나 채은호를 맞이했다.
“엇!”
“안……, 안녕하세요.”
다른 신인 그룹이 왔을 때의 어색함과는 분위기가 다른 어색함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맨투맨’은 엄연히 케이케이의 선배 그룹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채은호 개인은 케이케이보다 이후에 데뷔한 게 됐다.
“여어, 도욱이 오랜만! 다들 오랜만이죠!”
멤버들이 잠시 우왕좌왕 하는 사이 채은호의 뒤를 따라 들어온 건 맨투맨의 멤버인 오빈이었다. 오빈은 이전에 도욱과 ‘랑데부 프로젝트’를 함께한 적 있는 사이였다.
“안녕하세요, 형.”
“오랜만이네요. 선배님.”
도욱과 정윤기가 반갑게 그를 맞았다. 오빈이 사람 좋게 웃으며 케이케이의 노래를 잘 듣고 있다고 말했다.
“Continue 안무 진짜 어려워 보이던데. 나도 배워 보고 싶더라고요.”
오빈의 말에 케이케이 멤버들이 오빈이 춤추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맞장구쳤다.
케이케이와 맨투맨이 라이벌 구도를 이루던 것도 잠시였다. 라이벌 구도를 떠나 같은 아이돌을 직업으로 삼는 또래로서 친분을 쌓을 만도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던 건 서강준의 영향이 컸다.
서강준이 있을 당시 맨투맨 멤버들의 분위기는 대체로 침체되어 있었고, 오빈은 도욱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음에도 같은 멤버인 서강준의 눈치가 보여 딱히 도욱과 더 두터운 친분을 다지지는 못했다.
무서워서 피한다기보단 더러워서 피한다는 쪽에 가까웠을 것이다. 괜한 일로 같은 멤버의 심기를 거슬러 팀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도욱을 신경 써 주었던 오빈을 도욱은 기억했다. 도욱은 고마운 마음을 잊지 말자고 생각했다.
어쨌든 서강준의 일로 맨투맨은 팀이 완전히 와해될 수도 있을 만한 위기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채은호가 들어온 뒤 맨투맨은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더 좋은 분위기였다. 제대로 전화위복이었다. 맨투맨 멤버들 모두 입 밖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다른 가수들조차 그러한 분위기를 다 눈치채고 있었다.
오빈이 세계 각지에서 사랑 받고 있는 케이케이에 대해 한국 가수로서 뿌듯하다고 말하며 자신들도 분발해야겠다는 얘기를 했다. 그리고 옆에서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는 채은호의 어깨를 끌어당겼다.
“여기, 은호는 우리 새 멤버. 우리 팀 막내기도 하고~ 활동하다 보면 자주 볼 테니 인사들 하면 좋을 것 같아서요~!”
오빈의 소개에 케이케이 멤버들이 눈으로 채은호와 인사했다. 도욱이 나서 알은체를 했다.
“저번에 시상식 때 무대 잘 봤어요. 벌써 작년 일이긴 한데……. 직접 뵙는 건 처음이네요.”
“앗, 무대 보셨다니. 영광입니다!”
채은호의 얼굴이 환해졌다. 긴장으로 굳어 있던 얼굴이 풀리며 웃는 얼굴이 되자 그야말로 ‘꽃미모’라는 말이 어울렸다. 전형적인 미소년의 얼굴이었다. 남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곱다는 말이나 예쁘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너무 그린 듯이 생긴 데다 무대 화장까지 하고 있으니 사이보그 같은 느낌을 주기까지 했다.
“정말! 만나 뵙고 싶었어요!”
게다가 인사할 때부터 느꼈지만 굉장히 구김 없이 해맑은 느낌이었다. 정말로 존경하는 가수를 만난 듯 조금 부담스러울 정도로 눈을 빛내며 인사하는 채은호에 도욱은 옆머리를 쓸어 넘기며 어색하게 웃었다.
“은호가 케이케이 팬이래~!”
“맞아요! 팬이에요! 저……. 악수 한 번만 해주시면 안 될까요?! 제발요!”
김원의 설명에 채은호가 열성적으로 끄덕이며 도욱에게 물었다.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는 해도 채은호도 동료 연예인이었다. 이렇게 팬을 자처하고 나서며 악수하고 싶다는 동성의 아이돌은 처음이라 도욱은 어색하게 손을 내밀었다.
심지어 다른 기획사 소속 가수도 아닌 콧대 높기로 유명한 아라 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였다. 오빈조차도 성격이 좋은 것과 별개로 아라 엔터 소속으로서 나름의 프라이드가 있는 편이었다.
채은호가 그런 도욱의 손을 영광스러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이 조심스럽게 맞잡았다.
“으악! 손 당분간 안 씻어야겠어요! 절대 안 씻겠습니다!”
“하하.”
케이케이 멤버들 모두 지나치게 해맑은 채은호에 조금 벙 찐 상태였지만, 아무튼 도욱이나 자신들을 좋아한다고 하니 기분이 나쁘진 않아 다들 웃었다.
오빈과 채은호가 인사를 하고 나간 뒤 케이케이 멤버들은 모두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무슨 애니메이션처럼 생긴 애가…….”
“마, 서준이랑 비슷한 이미지라 엄청 차가울 줄 알았다 아이가.”
안형서와 정윤기의 말에 박태형도 조용히 끄덕였다.
“춤……. 잘 추던데…….”
“그러게 무대 위에서는 카리스마 있던데 그냥 도욱이 형 빠돌인데요?”
석지훈이 덧붙이자 도욱이 관자놀이를 긁적였다.
이전에 채은호가 다른 그룹으로 데뷔했을 때는 그 그룹 자체가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해 도욱도 실제 성격이 어땠는지는 알지 못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현실감 없어 위화감이 들 정도로 해맑은 친구였다.
‘빈이 형도 그렇고……. 잘되면 좋겠지만…….’
맨투맨 자체는 아니지만 서중원 본부장을 무너뜨리려는 도욱의 계획이 성공하면 맨투맨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이 미칠 게 분명했다.
운동화 속에 모래가 들어와 밟히는 것처럼 그것이 도욱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내 도욱은 고개를 저었다.
‘아들인 서강준이 없는 맨투맨을 서중원 본부장이 어떻게 키울까……. 지금이야 전폭적인 지원이 있겠지만…….’
도욱은 아라 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을 생각했다. 최고의 가수로 키워진 아라 엔터테인먼트의 소속 가수들의 끝이 좋았던 경우는 드물었다.
최고의 가수가 되기까지도 가수들 본인의 의지보다는 기획사에 의해서 정신적, 체력적으로 한계에 내몰리는 경우가 많았고 대부분 정산과 재계약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아라 엔터를 나가게 되면 언론 플레이에 당해 이미지가 손상되는 이들도 많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서중원 본부장과 서중원 본부장을 따르는 이들이 있었다. 물론 그런 서중원 본부장을 키운 현재의 사장도 그 책임을 피하진 못할 것이다.
‘아라 엔터는 이미 상장까지 한 회사다. 주주들 손에서 새로운 임원진이 구성될 수 있어.’
단기적으로는 맨투맨이나 아라 엔터테인먼트의 소속 연예이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일 수 있었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득이 될 터였다.
도욱은 생각했다. 서중원 본부장을 무너뜨리기 위해 도욱이 준비하고 있는 계획은 두 가지 정도가 있었다. 서중원 본부장 정도를 무너뜨리려면 플랜A와 플랜B가 모두 필요할 거라는 게 도욱의 생각이었다.
‘사실은 C까지 필요할지도…….’
그때, ‘인생가요’ 조연출이 대기실로 와 소리쳤다.
“케이케이 세트 완성됐습니다! 나와서 대기 하실게요!”
구철민이 일어나 알겠다고 답하고는 멤버들을 재촉했다. 준비를 마친 멤버들이 잰걸음으로 무대를 향해 달려 나갔다.
***
케이케이의 대기실에서 나온 오빈과 채은호는 자신들의 대기실로 돌아갔다. 방긋방긋 웃고 있던 채은호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꺼림칙한 기분이었다. 채은호는 얼마 전 서중원 본부장과의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아라 엔터테인먼트 서중원 본부장의 사무실.
서중원 본부장은 짜증 섞인 얼굴로 전화를 끊었다.
“하여튼 해외에서 잘된다고 하면 눈이 멀어서는.”
뉴스패치 국장과의 전화였다. 지난 앨범 성적이 좋았던 맨투맨이 또 한 번의 컴백을 앞두고 있으며 이번 앨범으로 국내에서 케이케이와 다시 한 번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겠다는 게 서중원 본부장의 생각이었고, 은근히 기사에 구도를 형성해 달라는 부탁 차원의 전화였다.
무리한 요구도 아니었다. 최근 맨투맨이 무서운 상승세를 타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고, 아라 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를 좋아하는 팬덤은 여전히 탄탄한 편이었다.
뉴스패치 국장은 앞으로도 잘 해보자는 식으로 웃으며 서중원 본부장과의 의를 다졌다.
그러면서도 서중원 본부장이 부탁했던, 최성준 기자에 관한 정보는 넘겨주지 않았다.
어차피 최성준 기자가 힛 엔터테인먼트와 연결고리가 있다는 것 정도는 서중원 본부장도 이미 알아낸 사실이었다. 확인 사살이 필요했을 뿐인데, 국장 입장에서는 힛 엔터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끈인 최성준을 내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케이케이는 더는 뉴스패치가 우습게 볼 수 있는 ‘중소 기획사 아이돌 나부랭이’가 아니었다.
최근 뉴스패치의 기사들은 대부분이 케이케이에 관련한 기사였다. 그것도 모두 호의적인 기사들이었다.
케이케이가 LIL과의 작업 당시 사진들을 뉴스패치에 넘겨 단독으로 기사를 쓰게 하면서 뉴스패치와 힛 엔터테인먼트의 관계는 무척이나 우호적인 관계가 되었다. 이후에 케이케이가 해외 시장에서 잘 나가게 되자 대중들은 그러한 케이케이의 소식에 흥분했고, 뉴스패치는 놓치지 않고 케이케이의 기사를 쏟아냈다. 거기에는 이대형 팀장의 영업도 한몫 한다는 걸 서중원 본부장은 알고 있었다.
이대형 팀장 정도의 인재는 아라 엔터에 이미 서넛은 더 있었다. 때문에 이대형 팀장이 이직할 당시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같은 능력이 있어도 권한의 크기가 달랐다. 이대형 팀장이 힛 엔터의 팬-마케팅팀 안에서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 했고, 이대형 팀장은 그야말로 날아다니고 있었다.
“건방진 새끼.”
서중원 본부장은 자신의 제안을 거절한 이대형 팀장을 생각하며 이를 갈았다. 미꾸라지 같은 새끼에 열을 낼 건 없었지만, 문제는 케이케이였다.
맨투맨을 하루 빨리 정상의 자리에 올리고 자신도 아라 엔터테인먼트의 대표가 되기 위해서는 케이케이부터 끌어내려야 했다.
그 일이 쉽지만은 않을 듯했다. 그러나 서중원 본부장은 생각했다.
연예인의 이미지는 한순간이었고, 제 아무리 좋은 이미지가 공고히 구축됐다고 하지만 계속해서 흔들면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털어서 먼지가 안 나올 리 없다는 게 서중원 본부장의 생각이었다. 딱 자신다운 생각이었다.
“최성준도 엮어서 보내 버리든가 해야지.”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사무실 문이 열리며 맨투맨의 매니저와 맨투맨 멤버들이 들어왔다. 매니저는 채은호를 앞세웠다. 최근 맨투맨의 인기를 견인하는 건 채은호 덕이 컸다.
채은호를 맨투맨에 투입하기로 결정한 건 서중원 본부장이었다. 확실히 서중원 본부장도 아이돌을 키워내는 감각은 있는 사람이었다.
“본부장님. 은호랑 애들 데리고 왔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맨투맨 멤버들과 함께 채은호가 언 채로 서중원 본부장에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서중원 본부장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채은호를 훑고는 표정을 지운 채 말했다.
“그래요. 은호 군. 활동 잘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아……. 감사합니다! 다 본부장님 덕분입니다!”
“네가 교육 시켰냐? 잘 시켰네.”
서중원 본부장이 픽 웃으며 매니저에게 한마디 하자 매니저 또한 고개 숙여 인사했다. 회사의 실세 앞에서 모두 군기가 바짝 들어 있었다. 그는 자신들의 목을 쥐고 있는 이나 마찬가지였다.
“맨투맨의 올해 목표는 뭐라고?”
“1등…, 1등입니다.”
맨투맨의 리더가 교육받은 대로 말했다.
“그래. 1등이에요. 쓰는 돈이 얼만데 1등해야지. 데뷔까지 시켜줬는데 케이케이 같은 어디 시장바닥 애들한테 지고 그러면 그 그룹은 존재할 의미가 없는 거예요. 봐주는 것도 한 번이지.”
아직 나이 어린 채은호는 두려움에 고개를 숙인 채 눈을 꽉 감았다 떴다. 맨투맨은 해체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상황에서 기사회생한 그룹이었다. 원인이 누구였건 결과적으로 그랬다. 그런 팀이니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버림받아질 게 더욱 분명했다.
맨투맨 멤버들은 이를 악물었다.
“저……. 그러면 케이케이 멤버들과 친해지는 것도 안 될까요?”
두려움을 이겨내고 한 채은호의 질문에 맨투맨 멤버들은 모두 아찔함을 느꼈다. 채은호가 케이케이의 광팬인 것은 멤버들도 알았지만, 이 자리에서까지 질문을 할 만큼 철없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뭐?! 하하. 아주 당돌하네. 어려서 그런가.”
서중원 본부장이 기가 막힌 듯 웃다가 답했다. 그의 눈이 음흉하게 빛났다.
“아니, 됩니다. 친해지세요, 은호 군. 친할수록…… 좋겠네요.”
***
그 시각, 오백호 실장은 도욱의 앞으로 도착한 시놉시스와 1부 대본을 검토하며 인상을 쓰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내용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