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2
언제까지나 (4)
석지훈이 양손으로 깍지를 끼고 흔들며 손을 풀었다.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에서 있었던 내기의 결과로 업데이트는 승자인 석지훈의 몫이 되었다.
패자는 어쩌면 당연하게도 정윤기였다.
“아, 마. 나는 괜찮다. 이거는 다 내가 리더라서! 리더라서 벌어진 일이니까! 내 책임감의 증거니까!”
박태형마저 정윤기를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박태형의 안타깝다는 눈빛을 받은 정윤기가 큰소리를 치며 말했다. 뮤직비디오 촬영을 한 번 만에 끝내자고, 당시에도 케이케이의 리더로서 케이케이 멤버들의 능력을 믿는다는 취지에서 한 발언이었지만······.
그래도 한 번은 말이 안 됐다. 보통 스튜디오 개인 촬영을 할 때도 기본으로 두 번은 촬영했다. 단체 촬영은 사실 잘해야 세 번 정도가 보통이었다.
단체 군무 촬영 횟수를 맞힌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열 번도 넘게 찍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첫날엔 다섯 번이었다. 그래서 안형서는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해 좋아라 뛰고 있었다.
그러나 최 감독에게서 돌아온 말은 잔인한 것이었다.
해가 다 져가서 이제 찍을 수 없으니 내일 한 번 더 찍자고 한 것이었다.
여태 찍은 것도 괜찮긴 하지만 더 좋은 그림을 잡아내고 싶은 최 감독의 욕심이었다. 그러나 개인적인 욕심도 아니었고, 멤버들도 두바이 사막에까지 온 이상 최상의 결과물을 들고 서울로 돌아가고 싶었다.
결국 다음 날까지 촬영은 이어졌다.
케이케이 멤버들은 합치면 14번 정도 사막에서 군무를 춘 셈이었다.
서울로 돌아와 하루 정도 휴식을 가지고 연습실에서 안무를 해 본 케이케이 멤버들은 모래주머니를 차고 달리다 모래주머니를 뗀 것 같은 연습 효과를 누렸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가장 많은 횟수를 말한 석지훈이 이겼고, 가장 적은 횟수를 말한 정윤기가 진 내기였다.
도욱은 정윤기를 한 번, 석지훈이 업데이트하겠다고 컴퓨터에 올린 사진을 한 번 보고는 정윤기를 더는 볼 수 없어 고개를 돌렸다.
정윤기의 엽기 사진을 제공한 건 안형서였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안형서는 자신의 ‘셀카’뿐 아니라 멤버들의 사진도 다량 보유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아무렇게나 타이밍 재지 않고 찍어서 웃기게 나온 사진도 많았다.
거기에 안형서와 정윤기는 연습생 시절도 함께 보냈기 때문에 데뷔 전 사진도 꽤 많이 있었다.
사진 속 정윤기는 열여덟의 정윤기였다. 가수가 되겠다고 갓 서울로 상경한 앳된 소년이 우는지 웃는지 알 수 없이 표정을 일그러뜨린 채 케이크 조각을 맨손에 쥐고 있었다.
안형서의 설명에 의하면 이 날은 정윤기의 생일이었다.
연습생들끼리 정윤기를 놀래주려 작당 모의를 한 상태였고, 그날 정윤기는 ‘운수 좋은’ 하루를 보냈다.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하면서도 연습생들은 흔한 선물 하나 건네지 않았고, 심지어는 냉랭한 태도로 연습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말이나 건넸다.
안 그래도 고된 연습생 생활에 언제 데뷔를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생일 날 믿었던 연습생 동기들마저 차갑자 정윤기는 폭발 직전의 상태가 되었다.
정점을 찍은 게 당시 연습생 춤 교육을 맡았던 안무가 노태현이었다.
노태현도 모의에 합류해서는 정윤기의 춤 실력에 대해 평소보다 열 배 정도 더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결국 정윤기는 어린 마음에 연습실을 뛰쳐나왔다.
연습실을 뛰쳐나온 정윤기를 기다리고 있던 건 다른 연습생이 가져 온 케이크였다. 화와 당황이 섞여 말을 잇지 못하는 정윤기에게 짓궂은 연습생들은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케이크를 잘라 정윤기의 맨손에 쥐어줬던 것이다.
“히히, 그때 진짜 다들 짓궂었다니까!······.”
안형서가 마치 그 자리에 자신은 없었던 것처럼, 작당 모의했던 인물 중 자신은 포함되지 않는 것처럼 유체이탈 화법을 쓰며 말하자 정윤기는 조용히 주먹을 꽉 쥐었다.
그 장면을 가장 신나서 낄낄거리며 찍고 있었던 게 안형서라는 건 이 사진만 봐도 자명했다.
사진 속 정윤기는 카메라 마사지를 받기 한참 전의 앳된 얼굴이었다. 맹물에 씻었다고 표현해도 될 듯했다. 거기에 갓 서울에 올라와 멋을 내기 시작한, 그래서 오히려 과하고 해괴한 패션을 한 정윤기.
해골이 잔뜩 그려진 머플러에 빨간색 반팔 티셔츠에 흰색 비니를 쓴. 머리부터 발끝까지 엉망이었다.
사진 속 정윤기는 무언가를 원망하며 울 듯했지만, 보는 이는 웃겨서 죽을 것 같은 사진이었다.
“아, 어릴 때라 그런지 피부 뽀얀 거 봐라!”
정윤기는 애써 자신의 사진을 포장했다.
사실 조금 전까지도 데뷔 전 사진은 말도 안 되지 않냐고 상당히 격하게 항의했던 정윤기였다. 그러나 가장 웃긴 사진 인 것도 사실이었으므로 이 사진을 올리겠다는 멤버들과 안 된다는 정윤기 사이의 줄다리기는 무척 팽팽했다.
정윤기는 이미지가 있으니 아마 오백호 실장에게 물어보면 안 된다고 할 거라 호언장담했다.
멤버들이 팬카페나 SNS에 올리는 사진은 회사 차원에서 철저히 관리되고 있었다. 오백호 실장선에서 허락이 있어야 엽기 사진 업데이트도 가능했다.
정윤기의 말에 멤버들은 단체 메시지방에 사진을 올리며 오백호 실장에게 허락을 구했다.
[오백호 실장님 : ㅋㅋㅋㅋ 웃기게 생겼네]
첫 마디는 그거였다. 정윤기의 미간이 순식간에 구겨졌다. 그러나 그 ‘웃기게 생긴’ 걸 팬카페에 올리라고 허락하진 않을 듯해서 인내했다.
[오백호 실장님 : 올려ㅋㅋ 어차피 얼굴로 승부하는 것도 아니잖아 윤기는 ]
[안형서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맞아요 맞아 백호 형 말씀이 다 맞아요]
[김원 : 이런 게 팩트폭력?ㅋㅋ]
[석지훈 :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모티콘)]
그렇게 더 큰 상처만 남긴 채 정윤기는 사진 업데이트 건에 대해 체념하게 되었다.
“괜히 한 번이라고 해가꼬······. 하아······.”
정윤기의 깊은 한숨과 함께 팬카페에는 정윤기의 데뷔 전 모습이 적나라하게 찍힌 사진이 올라가게 되었다.
[제목: 컴백 전 팬 여러분들께 드리는 선물 (눈 감고 들어오세요)
안녕하세요 여러분의 영원한 막내 지훈입니다^^
뮤직비디오 공개가 이제 내일 모레입니다! 너무 떨리네요...
공개되면 아시겠지만.. 저희가 조금 고생을 했어요ㅋㅋ 조금ㅋㅋ
절대 생색내는 건 아니고요^^; 그냥 그만큼 노력했다! 알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뮤비 촬영장에서 멤버들끼리 작은 내기를 했었는데요.
승자는 물론 저 최강 막내 v^^v
패자는 리더 형이었어요^^~!
내기 내용은 뮤비 공개 후 설명해 드릴게요!
뮤비 기대 많이 해주세요!
그럼 패자의 벌칙 사진을 공개합니다. (photo by X형서)]
글이 올라가자 팬들 사이에서의 반응은 말할 것도 없이 뜨거웠다. 시크하게 보이던 정윤기의 색다른 모습에 팬들은 열광했다.
웃긴 것도 사실이었기 때문에 인터넷에 퍼지면서 하나의 ‘웃긴 짤’이 되었다.
정윤기의 데뷔 전 사진은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못할 때나 너무나 먹고 싶던 걸 손에 쥐었을 때,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짜증나는 상황 등 여러 가지 상황에서 유용하게 쓰였다. 손에 쥔 케이크와 표정의 절묘한 조화였다.
거기에 멤버들끼리 내기를 했다고 하니 궁금해 하는 팬들도 많았고, 멤버들끼리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에 흐뭇해하는 팬 역시 많았다. 컴백을 기다리던 팬들에게는 소소한 이벤트가 되었다.
석지훈이 ‘고생했다’고까지 말한 뮤직비디오의 내용이 과연 무엇일지 뮤직비디오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졌다.
***
정은수 작가의 드라마 ‘후계자들’ 마지막회 시청률은 20%였다.
‘후계자들’이 방영되는 동안 음원차트 10위권을 계속해서 유지하며 케이케이의 ‘말해 봐’는 함께 인기를 누렸다.
‘후계자들’의 종영과 함께 다음 날이 되자 ‘말해 봐’ 또한 10위 아래의 순위로 떨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와 함께 음원차트 1위부터 8위까지의 순위에는 당당히 케이케이의 새로운 노래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케이케이의 정규 3집 앨범 ‘Continue : 우리는 계속’의 수록된 총 8곡의 곡들이 모두 ‘줄 세우기’를 하며 음원차트에 진입한 것이다.
타이틀곡이 1위로 진입한 적은 꽤 있었어도 앨범 전체곡이 나란히 줄 세우기를 하며 상위권 모든 순위를 점령한 것은 처음이었다.
음원 차트 역사상 손에 꼽힐 만한 일이었다. 이전에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밴드가 신곡 앨범을 냈을 때 앨범 수록곡 9곡 중 6곡 정도로 ‘줄 세우기’에 성공한 적은 있었지만, 아이돌 가수의 앨범으로는 두 번째 있는 일이었다.
거기에 실시간 차트를 보면 그래프가 놀라울 정도였다. 다른 1위곡들도 첫 진입 시 높은 곡선을 그리며 진입하지만 이번에는 진입 시 이용자 수의 단위부터 달랐다.
음원 사이트에서 평균적으로 1위를 할 때 진입 이용자 수가 4만 명 선이라고 한다면, 이번 ‘Continue’ 1위 진입 시 이용자 수는 9만 명에 달했다.
놀라운 숫자였다. 차트의 지붕을 뚫었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었다.
케이케이의 팬뿐만 아니라 가요를 듣는 대중들이 케이케이의 음악을 얼마나 기다리고, 많이 듣는지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케이케이 정규 3집 ‘Continue’ 발매와 동시에 전 차트 1위!]
-실시간 차트 뭐야?
-그래프 무슨 일..눈으로 보고도 못 믿겠음
-대박..음원 차트에 온통 케이케이밖에 없네ㅋㅋㅋㅋ
-케이케이는 음원 독재를 멈춰라ㅡㅡ;;
-이번 노래 진짜 좋음 앨범 전체 곡이 다 좋다..요즘같이 디지털싱글 유행하는 때에 수록곡 이렇게 빵빵하게 준비해서 오는 가수도 드물고..케이케이 응원한다!
-지금 뉴욕에서 제일 핫한 DJ가 참여한 곡도 있던데 ,, HEy 였나? 추천!
-수록곡 중에 <잘 가라는 인사> 발라드인데 너무 좋긔ㅠㅠ
-케이케이는 댄스 발라드 할 것 없이 다 잘하는 듯
-믿고 듣는 케이케이! 기다린 보람이 있다~!
-그래프가 지붕을 뚫었네 뚫었어ㅋㅋㅋㅋ
-지붕 뚫고 케이킥!
-케이케이 이제 한국 가수 중에 대항할 가수 없는 느낌ㅎㅎ.. 한강의 기적 다음 갈 중소의 기적! 이렇게 될 줄이야..
-사운드에서 자본 맛이 난다ㅋㅋ 미국 가서 작업하더니 더 발전한 느낌임ㅋㅋ
-자본 스멜~~~~
-레알..고퀄 쩌는 부분ㅇㅇㅇㅇ
-무대 빨리 보고 싶다 노래가 이 정도면 무대는ㄷㄷ
-지금 뮤직비디오 공개 됐어요!
-http://mytube.com//watch?k=McdKWsVi
-ㄱㄱ
한강진역의 한 공연장에서 이루어진 케이케이의 3집 앨범 쇼케이스 현장은 케이케이를 보기 위해 몰려든 팬들과 취재를 하기 위해 초대된 기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이전 히트곡 세 곡과 신곡 수록곡 두 곡을 선보인 케이케이는 마이튜브 뮤직비디오 공개 시간에 맞춰 공연장 내부에서도 뮤직비디오를 공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케이케이 멤버들의 주도하에 팬들이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오! 사! 삼!······.”
팬들이 외치는 카운트다운 소리에 도욱의 심장도 떨려왔다.
‘과연······.’
“이!!!”
“일!!!”
“꺄아아아악―!!!”
기대감에 부푼 엄청난 함성이었다. 동시에 공연장의 브라운관을 통해 뮤직비디오가 재생되었다.
그리고 마이튜브에서도 막 공개된 뮤직비디오의 조회수도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심상찮은 기운이 몰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