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
왕관을 쓰려는 자 (3)
“사실은······.”
도욱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최성준 기자와 따로 만난 적이 있습니다.”
“네? 따로요?”
이대형 팀장이 전혀 생각지 못했다는 듯 되물었다. 오백호 실장이 끄덕이며 첨언했다.
“도욱이한테 사과하고 싶다고 따로 연락이 왔더라고요. 수정 기사만으로는 우리도 성에 안 차던 때에······. 괘씸하기도 하고 한번 만나보자 싶어서 만난 겁니다.”
“그랬군요.”
“갔더니 자기가 아이돌에 대해 편견이 있을 수밖에 없던 얘길 하더군요.”
“아······. 뭐 사연이 있을 순 있지만 그렇다고 죄 없는 도욱 씨에 대해서도 그렇게 기사를 냈던 건······.”
이대형 팀장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어느새 식사를 마친 세 사람의 테이블을 종업원이 깨끗이 치웠다. 후식으로 수정과가 나와 있었다. 식당 안은 여전히 한가했다.
“그래서 무슨 얘기였습니까?”
이대형 팀장의 물음에 도욱이 다시 답했다.
“동생이 아주 심한 학교 폭력을 당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처참한 얘기였어요······.”
말하는 도욱의 표정이 잠시 어두워졌다. 최성준의 동생이 떠올라서였다. 지금은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씩 밖에 나가 산책도 하고, 병원에도 꼬박꼬박 다니며 치료중이라고 들었다.
“그 폭력의 가해자가 서강준, 아니 서준이라고······. 그런데 텔레비전 틀면 서준이 천사 같은 얼굴을 하고 웃고 있으니 최 기자님은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 있었던 거죠.”
“아······.”
이대형 팀장이 탄식과 같은 신음을 뱉었다.
도욱은 조금 입이 타는 듯해 수정과를 한 모금 삼켰다. 입 안에 달짝지근하면서도 쓴맛이 돌았다.
얼마 전 있었던 서강준에 관련한 일련의 사건들을 떠올린 이대형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된 일인지 대충 감이 잡힌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혹시 그 자필로 인터넷에 고발 글을 쓴 친구가······.”
“네. 최성준 기자님 동생이었어요.”
“그렇군요.”
이대형 팀장이 안타깝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때 인터넷을 통해서 글을 올려 보라고 하는 얘기들······. 최 기자님과 같이 했었습니다. 저도 학교 폭력 피해자 친구를 둔 적 있었고······. 그런 인간이면서 연예인으로 활동하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는 게 도저히 용서가 안 됐습니다.”
도욱은 대학원의 일까지 도욱이 최성준 기자에게 흘렸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이 정도 설명이면 충분할 듯싶었다.
도욱의 말에 이대형 팀장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이대형 팀장은 서중원 본부장의 입장을 떠올려 보았다.
‘서준을 끌어내리게 된 일의 뒤에 있는 최성준 기자, 그 기자와 힛 엔터테인먼트와의 관계.’ 그것에 대해 서중원 본부장은 아마 자기 식대로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의 일에 거치적거리는 존재가 있으면 제거한다.’는 게 서중원 본부장 방식의 생각이었다. 그러니 최성준 기자의 뒤에 누군가 또 있다면, 맨투맨의 라이벌 그룹이었던 케이케이의 힛 엔터테인먼트는 아닌가 하는 생각에 다다랐을 것이다.
심지어 최성준 기자와 도욱이 개인적으로 연락하는 것까지 알아낸 것이라면, 괜히 이대형 팀장을 떠 보려한 게 아니라 어떤 확신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대형 팀장은 생각하며 속이 조금 갑갑해져 왔다.
서중원 본부장은 건드려서는 안 될 인간 부류 중 하나였다. 소문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갖은 수단 안 가리고 일하는 사람이었다.
이성적으로 이대형 팀장은 도욱의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케이케이가 승승장구하는 걸 서중원 본부장이 보고만 있었던 건 케이케이를 무시했기 때문이었다. 힛 엔터테인먼트같이 별 힘없는 중소기업에서 잘나가 봤자 얼마나 잘나가겠나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손 놓고 있는 사이 케이케이는 정상의 자리에 까지 와 있었고, 맨투맨은 2등 그룹이 돼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서중원 본부장에게 그가 케이케이와 도욱을 더 견제하고 주목할 만한 미끼를 던진 셈이었다.
최성준 기자를 조금이라도 도와서는 안 됐다. 그러나 그것은 이대형 팀장의 이성이었다.
강도욱이라는 사람을 생각하면 그것은 도욱이 내린 가장 이성적인 판단이었다. 곧고 바른 도욱의 성품이라면 그런 서강준이 용서가 안 됐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렇군요.”
이대형 팀장이 생각을 정리하곤 입을 열었다.
“뭐······. 그 정도라면 서 본부장도 물고 늘어질 건 없을 것 같긴 한데. 이미 케이케이가 서 본부장의 목표가 된 이상 어떤 식으로 물고 늘어질지 알 수 없어요. 여기 계신 오 실장님도 아시겠지만······. 워낙 자기 일 위해서는 물불 안 가리는 분입니다.”
오백호 실장이 익히 알고 있다는 듯 끄덕였다. 도욱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더는 연관되는 일이 없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를 정리하려던 이대형 팀장이었다. 보기 드물게 이대형 팀장의 말을 다 듣지 않고 도욱이 말했다.
“그래서요.”
“네?”
“그래서 저는 서중원 본부장에게 당하지 않으려고요.”
“아, 네. 그래야겠죠. 물론.”
“서중원 본부장을 쥐고 흔들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요, 제가.”
도욱의 말에 이대형 팀장의 눈이 커졌다. 놀란 듯 입도 벌어졌다.
“물불 가리지 않고 한 일 중에 좋은 일이 뭐가 있을까요. 악한 일들뿐이었겠죠. 그러니 이 팀장님도 걱정하시는 거고요. 저는 서중원 본부장 같은 악인이 권력으로 악행을 일삼지 못하게 할 겁니다.”
“어떻게······.”
“일단은 제가 그런 힘을 가져야겠죠.”
시간을 두고 도욱이 말을 이었다.
“그의 약점을 잡을 수 있다면 더 좋겠고요.”
서중원 본부장이 이대형 팀장을 이용하려고 했다. 그렇다면 도욱도 마찬가지였다.
더군다나 이대형 팀장은 케이케이와 한 배를 타기로 완전히 굳게 결심한 사람이었다. 이대형 팀장의 입장에서도 언제 케이케이에게 위해를 가할지 모르는 서중원 본부장을 견제해야 하는 건 당연했다.
그러니 이대형 팀장이 자신을 도울 것이라고 오늘 도욱은 확신했다.
‘그것도 아주 큰 도움이 될 거야······.’
그런 예감이 도욱을 스쳤다.
이대형 팀장은 도욱에게서 본 적 없던 정을 보고 있었다. 도욱의 검은색 눈동자에 피어오르는 것은 어떠한 결의였다.
***
앨범제작팀 심준 팀장은 연습실에서 안무 연습 중인 도욱을 따로 불렀다.
일전에 도욱이 제작사 ‘화앤수’를 아냐고 물었던 것과 관련한 일이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오는 심준 팀장에게 도욱은 케이케이의 음원 공백을 막기 위해 드라마 OST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드라마 OST라는 말에 심준 팀장은 좋은 의견이라며 반색했다.
그러나 어떤 드라마 OST에 어떻게 참여하는가 하는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일단 ‘어떤 드라마’인지 중요했다. 드라마의 성적은 곧 OST의 성적으로 연결됐다. 드물게 OST 자체만 뜨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 드라마의 성적과 음원 성적이 비례하는 건 공식에 가까웠다.
거기에 시청률이 높지 않은 드라마의 OST에 참여해서 대중들의 눈에 별달리 띄지 않을 경우 오히려 케이케이에게 손해만 될 수도 있었다.
물론 시청률이 높지 않아도 OST라고 하면 기본 음원 성적은 나와 주기 때문에 유명하지 않은, 소위 말하는 ‘듣보’ 가수들은 어떻게든 드라마에 업혀 가 보려 OST를 부르려고 했다.
그러나 케이케이처럼 이름 있는 가수는 기본 성적이 아니라 상위권의 성적을 내주어야 했다. 음원이 잘 되지 않으면 드라마와 상관없이 케이케이의 음원 성적이 되는 수가 있었다.
케이케이가 OST에 참여한다고 하면 분명히 케이케이의 이름도 드라마 홍보 전략에 들어갈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떻게’도 문제였다. 드라마의 OST에는 수많은 이권이 개입하기 마련이었다.
음원 차트에서 기본 성적을 낼 수 있음은 물론이고 잘 안 된다고 하더라도 드라마가 방영될 때마다 흘러나오니 저작권료가 상당했다. 거기에 드라마가 중간 이상의 성적이라도 낸다 치면 더 많은 부가 수익이 생겼다. 자동으로 해외진출까지 가능했다.
그러니 케이케이가 아무리 인기가 많다고 해도 드라마 제작사와 투자사, 방송사 등 수많은 이권이 들어오면 케이케이가 그 OST에 참여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더욱이 케이케이는 OST 시장에서 ‘그(그녀)가 부르면 무조건 된다!’ 하는 류의 발라드 가수도 아니었다.
그러한 심준 팀장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도욱은 특정한 드라마 제작사와 드라마를 언급했다.
“거기서 지금 새 드라마 나오지 않나요?”
심준 팀장이 조금 알아보자 곧바로 ‘후계자들’이라는 드라마가 나왔다.
스타 작가인 정은수 드라마가 쓰는 드라마였다. 주연진도 무척이나 셌다. 20대 청춘스타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때문에 드라마 판에서는 이미 대박을 예감하고 있었고, 기업마다 상당한 액수의 PPL을 넣어 둔 상태였다.
촬영에 이미 들어간 상태고 방송은 2주 정도 남아 있었다.
“오, 그러네. 도욱이 네가 배우도 하니까 이쪽도 잘 아는구나?”
“뭐······. 그런 건 아니지만.”
“근데 판이 너무 커서······. 우리가 OST 쪽은 잘 안 하니까. 끼어들 수 있을지 모르게다. 일단 네가 한다고 하면 연락이 오긴 할 것 같은데.”
심준 팀장의 말대로였다.
심지어 조연 배우 중에는 아이돌 출신 배우도 있었기 때문에 메인 OST 곡의 경우 그 기획사에서 가져갈 가능성이 컸다.
“일단 연락을 넣어두긴 했어. 미팅을 했으면 좋겠다고.”
“네. 감사합니다.”
도욱도 백퍼센트 확신을 가지고 진행하는 일은 아니었다.
사실 모든 일이 그랬다.
‘잘될 걸 안다고 해서 나까지 잘되는 건 아니니까······.’
다만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대중들에게도 잊히지 않을 가장 빠르고 강력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연락을 기다려 보자고 말하던 심준 팀장이 무척이나 심각한 얼굴로 도욱에게 물었다.
“근데······.”
“네, 뭐 문제가 있나요?”
“근데······. 너한테 캐스팅 제의 들어오면 어떡하지? 주연 배우 갈아치우겠다고 하면?”
“하하, 형도 참.”
심준 팀장의 말에 잠시 긴장했던 도욱은 맥이 빠져 웃음을 터뜨렸다.
“제가 어떻게 주민호를 제치고 들어가요!”
도욱이 웃으며 말하자 심준 팀장이 도욱을 치며 자신감을 가지라는 식으로 장난을 쳐댔다. 도욱은 어이없는 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연습실에서 안무 연습을 하던 안형서가 물을 마시러 정수기 쪽으로 왔다가 심준 팀장을 발견하곤 인사했다.
“몸은 괜찮아?”
“네······. 이제 진짜 나았어요. 죄송해요.”
안형서는 아프고 난 뒤로 계속 저 상태였다. 그만 미안해해도 된다고 말해도 듣지 않아 멤버들끼리 ‘죄송봇’이라고 부르는 데도 계속 ‘죄송’과 ‘미안’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살았다.
“네가 제일 힘들 텐데. 목은 아직은 쓰지 말구.”
“네에.”
뒤돌아 대답하고 물을 마시는 안형서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일 지경이었다. 심준 팀장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안형서를 보았다.
그러나 도욱은 안형서에 대해서는 크게 염려하지 않았다. 지금이야 컴백이 밀려 미안한 마음이 크겠지만, 정상 컨디션을 회복하고 컴백을 하게 되면 안형서도 짐을 덜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안형서의 짐을 빨리 덜어 주기 위해서라도 OST에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도욱은 생각했다.
***
며칠 후, 심준 팀장의 휴대폰에 모르는 번호가 찍혔다. 제작사 ‘화앤수’로부터의 연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