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149화 (149/225)

# 149

내일 아닌 오늘 (3)

도욱은 자신의 영어실력이 자신의 의견을 어떠한 오해 없이 전달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김원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했다.

“조금 더 기교 없이 덤덤하게 불렀으면 좋겠어요. 무미건조하게 부르라는 건 아니고······. 곡 자체가 워낙 달달한 분위기이기 때문에 보컬까지 달짝지근한 목소리를 내면 너무 느끼할 수 있어서······.”

“음······.”

“그리고 조금 더 진심을 담아서 불렀으면 좋겠는데······.”

듣고 있던 김원과 앨범제작팀 심준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어를 전혀 알지 못하는 LIL과 댄 윌슨은 도욱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하다는 듯 도욱과 김원 쪽을 주시했다.

김원이 댄 윌슨과 LIL을 번갈아보며 도욱의 말을 전했다.

김원은 스윗한 멜로디와 스윗한 목소리의 시너지가 너무 강한 것 같다, 때문에 조금만 기교와 감정을 빼는 게 좋을 것 같다, 하고 설명했다. 덧붙여 가사의 연인들이 ‘true lover’들임을 강조했다.

김원의 말을 들은 댄 윌슨이 잠시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다가 도욱을 보고는 가볍게 웃었다.

반면 LIL은 찌푸리며 마이크를 열어 말했다.

“내 해석으로는 곡을 살리기 위해서는 이렇게 부르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데. 사랑 노래잖아요.”

LIL의 반박에 도욱은 조금 고심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방금 전 LIL이 부른 방식도 나쁘지 않았다. 좋았다. 그러나 조금 보컬이 과장된 점이 원래 LIL이 다른 노래를 불렀던 방식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도욱이 만든 곡에 최선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원래 부르던 방법으로도 불러보고, 도욱이 제안한 방법으로도 불러보자고 도욱이 제안하려던 때였다.

옆에 앉아 있던 댄 윌슨이 LIL을 불렀다.

“미스터 강의 말에 따르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

댄 윌슨의 말에 LIL의 눈썹이 대번에 구겨졌다. 댄 윌슨은 지금의 LIL을 만든 사람이었다.

LIL은 댄 윌슨이 자신에게 새로운 시도와 변화를 요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번 콜라보 앨범의 기획 의도부터가 그랬다.

해오던 대로만 해도 차고도 넘쳤지만, 그만큼 매너리즘에 쉽게 빠질 수 있는 환경이었다. 댄 윌슨은 LIL이 벌써부터 멈춰 버려서 나중에 정말 변화를 꾀해야 할 때 아무것도 못 하는 겁쟁이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저 동양의 어린 프로듀서는 그런 생각까지 한 걸까? 그건 아니겠지······.’

LIL은 생각하며 별수 없이 고개를 끄덕여야만 했다.

물론 도욱이 거기까지 구체적인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도욱이 통할 것이라 생각했던 방법, 즉 아예 새로운 장르적 시도를 함으로써 케이케이의 비중을 늘리려는 방법은 댄 윌슨의 의도에 완전히 부합하는 것이었다.

댄 윌슨은 그 부분에서 도욱이 보내온 노래를 듣고 놀랐으며, 지금 도욱의 지적에 또 한 번 놀란 상태였다.

도욱은 LIL에게 필요한 부분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었다.

‘현재 LIL은 지나치게 자신의 기교에 의존하고 있어. 감정 표현도 사실 진짜로 이입한 게 아니라 기교의 하나일 뿐이다. 이런 노래 방식이 오래되면 그저 노래 잘하는 기계가 될 뿐이지.’

댄 윌슨이 생각하는 동안 LIL은 목을 다시금 다듬었다.

녹음실 밖 사람들은 LIL이 새로운 곡 해석을 내놓을 때까지 차분히 LIL을 기다렸다.

케이케이 멤버들은 긴장감으로 가득한 녹음실에서 자신의 파트를 눈과 귀로 되뇌었다.

곧 LIL의 노래가 다시 시작되었다.

“Where is the love? I’m sailing through the light―”

이번에는 확실히 이전에 부른 것보다 기교 없이 평이했다.

기교를 걷어내자 LIL이 가진 본연의 목소리가 드러났다. 허스키한 목소리가 몽롱하게 녹음실에 울려 퍼졌다.

정말로 저 먼 별에 있는 연인을 그리워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LIL의 노래에 모두의 눈이 크게 떠졌다. 아니 실은 눈을 감고 싶어지는 목소리였다. 노래를 듣는 이들의 표정이 모두 환해졌지만 정작 LIL은 그런 반응은 보지 못했다. 노래에 빠져들었기 때문이었다.

‘이거다! 스스로도 부르면서 느끼고 있을 거야.’

도욱은 생각했다. 실제로도 LIL은 자신의 귀로 듣기에고 노래가 훨씬 나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LIL은 자연스럽게 눈을 감으며 노래를 음미했다. 노래를 부르면서 점점 더 곡 속으로 빠져 들고 있었다.

여러모로 곡 속에 녹여 내려 애 썼던 기교와 힘을 빼니 편했다. 물론 습관처럼 붙은 기교를 덜어 내려니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감정적으로 편안했다.

노래를 부른다고 생각하지 않고 사랑하는 연인들의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러니 노래에 빠져들었고, 덤덤하게 부르는 데도 불구하고 감정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자신의 파트가 끝나고도 잠시 노래에 젖어 있던 LIL이 녹음실 부스 밖으로 나왔다.

댄 윌슨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거 봐’ 하는 표정을 지었다. LIL은 본래도 자신의 프로듀서를 신뢰하고 있었지만, 한 번 더 놀랐다.

LIL은 댄 윌슨을 한 번, 도욱을 한 번 보고는 도욱에게 인사했다.

“아름다운 곡이야.”

“LIL의 목소리 덕분에 아름다운 곡이 됐습니다.”

도욱의 답에 LIL이 기분 좋게 웃었다. 오랜만에 즐거운 녹음이었다는 말과 함께였다.

***

이후의 녹음은 나름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역시 가장 매끄러웠던 건 김원이었다. 김원은 단 두 번 만에 녹음을 끝마쳤다.

멤버들은 미국에 오기 전 짧은 영어가 아닌 랩 파트를 맡은 정윤기를 걱정했었지만 의외로 정윤기도 잘해냈다. 랩 연습을 할 때 외국 곡으로도 연습을 많이 하다 보니 랩을 할 때만큼은 영어 발음이 꽤나 좋았다.

안형서도 팝송 연습을 많이 한 덕에 자신의 파트를 부르는 데 무리가 없었다.

사실 석지훈과 박태형의 파트는 두 소절도 되지 않아서 문제가 될 것도 없다는 게 맞는 말이었다.

파트 분배는 가사를 붙인 곡의 가이드가 완성되었을 때 댄 윌슨이 직접 도욱과 협의해가며 한 것이었다.

댄 윌슨은 프로듀서로서 LIL이 이번 앨범에서 콜라보 하게 될 많은 가수들의 음악색과 실력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프로듀서 경력이 십 년이 넘어가는 그인 만큼 케이케이의 경우에도 한두 곡을 들어보고는 금세 각자의 색깔과 실력을 파악해 파트를 분배했다.

댄 윌슨이 제안한 파트 분배에 약간의 조율을 요청한 것 외에는 도욱도 별다른 불만이 없었다. 그가 정확한 판단력을 가진 것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석지훈과 박태형의 파트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이었다. 사실 다른 멤버들도 그렇게 많은 것만은 아니었다.

‘케이케이의 앨범이 아니니까······.’

도욱은 생각했다. 그나마 그 부분을 만회할 수 있는 점이라면 ‘바람 부는 날’ 아카펠라 버전과 같이 멤버들이 한데 모여 화음을 쌓는 부분이 2절에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랩과 화음을 쌓는 부분으로 케이케이의 존재감은 확실히 있을 거야.’

작곡가로서 다른 멤버들에게 디렉(direction)을 줄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도욱의 차례는 마지막이 되었다.

조금 진이 빠진 상태였기 때문에 한 시간 정도의 휴식 후 도욱의 녹음이 진행되었다.

휴식 시간, 다른 스케줄 때문에 먼저 녹음실을 떠난 LIL은 매니저를 통해 수제 샌드위치와 커피 등을 케이케이 멤버들에게 전달했다.

“그럼 가볼까요?”

댄 윌슨이 녹음실 안에 들어간 도욱을 향해 물었다.

이제 가수의 위치로 돌아올 때였다. 도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작곡가로서 이런 저런 충고들을 멤버들에게, 심지어는 LIL에게까지 한 도욱이었지만, 가수일 때는 또 달랐다.

이론적으로 알고 있다고 해서 곧바로 그렇게 다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면 모두 다 최고의 가수가 되었을 것이다.

도욱은 헤드폰을 고쳐 쓰고는 흘러 나오는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Where is the love? I’m swimming in the river you've been―”

도욱이 부르는 파트는 LIL이 불렀던 후렴구 바로 뒤에 오는 같은 멜로디가 반복 되는 파트였다.

댄 윌슨은 들려오는 노래에 집중했다.

다시 한 번.

댄 윌슨은 별다른 지적도 없이 다섯 번 정도 더 도욱에게 다시 노래 부르기를 요구했다. 다른 멤버들에 비해서 녹음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따로 왜 다시 불러야 하는지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도욱은 동일한 방식으로 같은 부분을 연속해서 불렀다.

일곱 번째 같은 파트를 불렀을 때 댄 윌슨에게서 드디어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도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댄 윌슨을 보았다.

“좋아요. 긴장했었죠?”

“아······. 네. 감사합니다.”

도욱은 자신도 느끼지 못한 긴장이 목소리에 배어나왔음을 깨달았다. 댄 윌슨은 도욱 특유의 편안한 호흡을 이끌어내려 계속해서 노래를 부르게 한 것이었다. 도욱은 댄 윌슨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이미 오케이 사인이 났음에도 도욱은 다시 한 번 동일한 파트를 불렀다. 최상의 목소리를 끌어내고 싶었다.

“You’ve been―.”

마지막 음을 길게 끌며 도욱이 노래를 마쳤다.

댄 윌슨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중저음의 보이스가 LIL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매력적이었다.

‘어떤 노래에도 잘 어울릴 완벽한 음색이다. 완벽해.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동시에 발전가능성이 엄청나다.’

댄 윌슨은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LIL의 스페셜 앨범에 수록될 케이케이와의 곡 ‘Call you the love’의 녹음이 끝나 있었다.

‘이 곡은 폭풍 같은 반응을 일으키진 못해도······ 꽤 많은 사람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을 순 있을 것 같군.’

댄 윌슨은 수고한 도욱에게 악수를 청했다. 도욱은 세계적인 프로듀서 댄 윌슨의 손을 꼭 마주 잡았다.

***

얼마 후, LIL의 스페셜 앨범 이 미국과 전세계에서 정식 발매되었다.

에는 총 여덟 곡이 수록되어 있었다. 그중 타이틀은 앨범명과 같은 ‘Waterfall’로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래퍼 중 하나인 Ray와 콜라보한 것이었다.

묵직한 사운드와 함께 LIL의 폭포와도 같이 시원한 보컬이 일품이었다. 거기에 Ray의 ‘스킬 만렙’의 랩이 더해지면서 완성도를 높였다.

‘Waterfall’은 미국 내 1위 음원 사이트인 제이튠즈 차트에서 당당히 1위에 랭크되며 LIL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케이케이의 곡인 ‘Call you the love’는 타이틀 바로 두 번째 뒤 트랙인 5번 트랙에 담겨 있었는데, 숱한 스타들과 콜라보한 곡들이 많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앨범 중 세 번째로 높은 순위인 14위에 랭크되었다.

처음에는 그리 높지 않았던 순위가 점점 높아지면서 14위에 이어 그다음 주에는 10위까지 진입했다.

미국 현지 언론들은 LIL의 앨범 중 새로운 매력을 알 수 있는 곡으로 ‘Call you the love’를 추천했다.

거기에 미국의 십대들 사이에서 ‘Call you the love’가 사랑을 속삭이는 곡으로 각광 받으면서 각종 SNS 채널에 공유되었다. 그러면서 순위가 올라간 것이었다.

‘Call you the love’에 빠진 이들은 K.K가 누구인지 궁금해했다. 미국인들에게는 일면식 없이 생소하기만 한 가수인 K.K의 이름이 점점 알려지고 있었다.

거기에 한국에서의 반응은 이루 말할 것이 없었다.

팝송임에도 불구하고 전체 음원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이다.

도욱은 음원 차트에 당당히 올라 있는 ‘Call you the love’를 보며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도욱과 멤버들은 한국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며 다음 앨범 작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도욱은 책상 옆에 올려두었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아버지’.

통화 목록에서 아버지를 찾은 도욱이 전화를 걸었다.

-그래, 도욱아.

전화기 너머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때는 그에게 아버지라 부르는 것이 무척이나 어색했지만, 이제는 익숙해져 있었다.

“지금 전화 괜찮으세요?”

-그 일 때문에 전화한 거구나.

“네. 제가 부탁드린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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