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147화 (147/225)

# 147

내일 아닌 오늘 (1)

***

“아이 케이, 유 케이!”

“가자!”

“케이케이!”

여섯 명의 케이케이 멤버들은 손을 모으고 우렁찬 목소리로 구호를 외쳤다.

공연 시작 1분 전이었다.

오사카 쿄세라 돔을 시작으로 삿포로 돔, 나고야 돔, 후쿠오카 야후 재팬돔까지.

네 곳에서의 공연을 마치고 케이케이 멤버들은 마침내 도쿄 돔에 입성하게 되었다.

오사카 쿄세라 돔에 선 순간부터 이미 케이케이 멤버들은 커다란 무대와 무대 아래를 꽉 채운 관객들, 화려한 조명, 심장까지 울릴 듯한 음악 소리에 매료되어 있었다.

모두 케이케이를 보러 온 이들이었다.

한국에서의 큰 무대에서도 벅차오르기 마련이었지만, 타국에서 맞이하는 큰 무대는 또 다른 종류의 감동을 선사했다.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고, 살아온 문화도 다른데 케이케이의 음악을 듣고, 케이케이에게 열광한다. 한국어인 멤버들의 이름을 외치고, 서툰 한국어로 ‘사랑해’를 발음한다.

해외 팬들을 볼 때면 그것이 너무나도 신기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기본 4만 명을 웃도는 팬들이 한데 모여 있으니 벅차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이번 일본 투어의 대미를 장식할 도쿄 돔.

도쿄 돔은 그 상징성만으로도 어마어마했다.

기사 헤드라인에 나온 대로 ‘일본을 정복’했다는 말이 과장된 것만은 아니란 뜻이었다.

일본에서도 도쿄 돔을 매진시킬 수 있는 가수는 열 손가락에 꼽았다. 그 열 손가락 가운데 하나가 한국에서 온 가수, 케이케이가 된 것이었다.

게다가 이번 케이케이의 도쿄 돔 입성이 의미가 있는 것은 케이케이가 ‘한국인’이라는 자신들의 국적을 지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부분 일본에 진출한 가수들은 일본색이 짙은 노래를 따로 일본 앨범에 내는 편이었다.

그러나 케이케이는 언어만 일본어로 바꾸었을 뿐, 한국에서 부른 노래 그대로를 편곡해서 일본 정규 앨범에 실었다.

거기에 예능이나 인터뷰에서도 민감한 질문이 들어올 때면 피하기보단 직구로 대답했다. 한국과 일본을 비교할 때도 절대 무조건 일본이 좋다는 식으로 답하지 않았다.

사실 이런 점 때문에 한국과 한류에 반감을 가진 혐한(嫌韓)들에게 지탄을 받기도 했지만, 케이케이의 입장은 명확했다.

한국의 가수로서 일본의 팬을 얻기 위해 걸어온 길을 멈추거나 뜻을 굽히고 싶진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동시에 일본 팬들의 따뜻한 사랑에 항상 감사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 일본팬들을 아우르기도 했다. 실제로 그것은 진심이었다.

케이케이가 노력하는 모습, 그에 상응하는 실력, 케이케이만의 음악, 진실된 마음.

이 모든 것들이 결국에는 통했고, 케이케이는 도쿄 돔 무대에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

“楽しいですか?”

안형서가 바닥에 준비되어 있는 수건을 들어 땀을 닦아내며 서툰 일본어로 객석을 향해 즐거운지 물었다. 팬들이 한 목소리로 그렇다고 답하자 안형서는 벅차오르는 기분에 활짝 웃었다.

무대 위를 중계하는 스크린에 커다랗게 안형서의 웃는 다람쥐같이 귀여운 얼굴이 떠오르자 팬들이 더욱 환호했다.

막 ‘바람 부는 날’의 무대가 끝난 상황이었다. 푸른빛 조명이 움직이며 멤버들은 하나둘씩 무대에서 사라지고, 무대 위에서는 안형서 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었다.

이어지는 무대는 힙합 유닛인 오케이의 무대였다.

그럼 더 잘 즐겨보자는 안형서의 멘트와 함께 간주가 흘러 나왔다.

안형서는 오케이 1집 앨범인 ‘돌아가지 마’의 후렴구를 선창하기 시작했다.

‘돌아가지 마’는 안형서의 고음이 돋보이는 곡이었다. 안형서의 목소리가 공연 중후반부에 접어들어 무척이나 뜨거운 관객들의 열기를 갈랐다.

안형서는 이번 돔 투어에서 완벽한 라이브를 하기 위해 콘서트 준비 기간 때부터 무척이나 노력했다.

개인 연습 시간마다 보컬 담당 선생과 일대일 레슨을 받으며 아직까지 고치지 못했던 노래를 부를 때의 나쁜 버릇들을 고쳐나갔다.

거기에 목 관리를 하기 위해서 투어 기간 동안에는 최대한 목을 아꼈다.

말하기 좋아하고 까불기 좋아하는 안형서가 목을 아끼느라 일본에 와서는 하루에 열 마디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을 보며 내심 놀란 것은 멤버들이었다.

이번 투어에서 제대로 자신의 실력을 발휘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행동들이었다. 지난 예능에서 일본이라 말로 웃길 수 없으니 케이케이 내에서 자신의 역할이 제대로 없다는 것을 깨닫고 꽤나 고민한 안형서였다.

안형서의 장점은 누가 뭐래도 노래였다. 가수는 노래로 보여주어야 한다고, 안형서는 도욱이 버릇처럼 말하는 ‘음악이 좋으면 된다’는 이야기를 마음속에 새긴 채 다짐했었다.

꾸준히 계속된 연습과 철저한 관리 덕분에 연일 계속된 투어에도 안형서의 목 상태는 최상이었다.

‘돌아가지 마’의 킬링 파트를 부르는 안형서의 목소리가 돔을 뚫을 듯했다.

뒤이어 옷을 갈아입은 김원과 정윤기가 나와 랩을 불렀다.

김원은 센스 있게 랩 가사에 있는 ‘제발 여기로 와, 여기엔 내가 있잖아’ 부분을 ‘제발 도쿄로 와, 도쿄엔 내가 있잖아’와 같은 가사로 가사를 바꿔 불렀다.

스크린에는 일본 정식 음원이 아직 발매되지 않아 익숙하지 않을 일본 팬들을 위해 파트마다 가사가 타이포그래피 되어 나왔다.

감각적인 타이포그래피 영상을 보면 공연을 위해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 썼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곳에 온 관객들은 이미 한국에서 인기를 끈 오케이의 ‘돌아가지 마’를 모두 알고 있었고, 화면을 보며 함께 반복되는 파트를 불렀다.

“모두 손 머리 위로!”

손을 머리 위로 들어 보이며 박수를 유도하는 정윤기에 관객들이 박자에 맞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정윤기는 쿵, 쿵, 돔을 울리는 베이스 소리와 박수 소리를 느끼며 빠르게 랩을 해나갔다.

일본어로 된 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윤기의 딕션은 무척이나 정확했다. 귀에 꽂히는 가사들은 일본의 여느 래퍼 못지않았다.

케이케이의 음악과는 조금 다른, 좀 더 자유로운 분위기의 힙합 무대였다.

관객들은 넓은 무대를 휘젓고 다니는 세 사람을 보며 자신도 자유로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박수를 칠 때마다 몸이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안형서가 핸드 마이크를 고쳐 잡으며 마지막 음을 뱉어냈다.

뜨거운 열기 속에서 오케이의 무대가 마무리 되고 난 다음은 도욱의 솔로 무대였다. 안형서, 김원, 정윤기 세 사람이 무대 뒤편으로 사라지고 화려한 큐빅이 박힌 수트를 입은 도욱이 무대 위로 뛰어 나왔다.

도욱이 나오자 다시금 함성이 커졌다.

한국에서도 그랬지만 사실 일본에서도 케이케이 멤버들 중 인기 순위를 매긴다면 1위는 역시 도욱이었다.

도욱은 일본에서는 잘 찾아볼 수 없는 키가 큰 미남형이었다. 도욱의 외모를 찬양하는 SNS 글이 일본 팬들 사이에서는 한국 팬들보다 더 많이 올라올 때가 있었다.

게다가 ‘바른 생활’을 추구하는 예의바른 느낌이 일본팬들의 마음을 진심으로 사로잡았다. 일본어를 할 때 느껴지는 겸손함도 크게 한몫 한 것이다.

거기에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빠지는 것이 없으니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예능을 통해 연기까지 잘한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원래도 많았던 도욱의 인기는 일본 내에서도 급하게 치솟고 있었다.

일본 내에서는 인기가 많지는 않았지만, ‘준비하라 1999’를 보았던 소수의 한류 드라마 팬들과 ‘푸른 하늘’로 도욱을 알게 된 영화 팬들도 있었다.

“꺄아아아아아―!”

“우키!”

“우키! 우키!”

도욱의 등장에 ‘우키’를 연호하는 팬들의 목소리가 돔을 울렸다. 도욱은 손에 귀를 대는 시늉을 하며 더욱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우키!!!”

“우키 짱!!!”

일본은 한국이나 다른 나라에 비해 관객 반응이 조용하기로 유명했다. 그럼에도 도욱을 부르짖는 일본 팬들의 목소리는 여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았다.

“그럼 가볼게요!”

도욱의 멘트와 함께 도욱의 솔로곡인 ‘Darling’이 시작되었다. 도욱은 간주에 맞춰 화려한 발재간을 보이며 무대를 종횡무진 했다.

마지막 곡은 ‘푸른 하늘’이었다.

확실히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곡이었기 때문에 ‘푸른 하늘’의 전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함성의 데시벨이 달라져 있었다.

눈이 부실 정도로 빛나는 키링 응원봉이 물결쳤다.

멤버들은 최선을 다해 ‘푸른 하늘’의 무대에 임했다. 마지막 곡이다 보니 온몸은 이미 땀에 젖어 있었고, 당장 뒤로 누워 무대 위에라도 눕고 싶을 정도로 지쳐 있었지만 발밑에 남아 있는 에너지까지 끌어 모았다.

숨이 차올랐지만, 그만큼 감동도 차올랐다.

5만여 명의 관객을 앞에 두고 ‘푸른 하늘’을 열창하는 멤버들의 눈가가 어느새 촉촉해져 있었다.

***

[케이케이 여섯 개의 별, 도쿄를 수놓다!]

[도쿄돔 까지 접수 완료! 도쿄 돔 꽉 채운 케이케이]

[(단독) 이제는 미국이다! 케이케이, LIL과의 작업 위해 미국行]

[케이케이 미국행 비행기 오른다! 세계적 팝 스타 LIL과의 만남]

[LIL, 케이케이에 러브콜...강도욱 작곡가로서 또 한 번 성장]

도쿄 돔 공연을 마치고, 멤버들이 한국으로 돌아오는 동안 한국에서는 케이케이에 관한 기사가 연이어 보도되었다.

케이케이의 도쿄 돔 공연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음악시장을 가진 일본에서도 한국 가수가 통했다는 뜻이었고, KVS 9시 뉴스에도 짤막하게 보도될 정도였다.

아이돌이 9시 뉴스에 나오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TV 뉴스에까지 케이케이의 도쿄돔 입성 소식이 보도되자 금세 실시간 검색어는 케이케이로 도배되었다.

가요계나 아이돌에 관심이 전무했던 이들도 국위선양을 했다고 하니 호기심에 찾아보게 되는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LIL과의 콜라보 소식이 다시금 단독 보도 되면서 주춤하며 내려가던 케이케이의 실시간 검색어 순위는 다시금 1위로 올라서게 되었다.

LIL과의 콜라보가 확정되었다는 소식에 커뮤니티 반응은 터져 나가기 직전이었다.

아이돌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올라오는 커뮤니티만이 아니었다. 해외 팝 스타를 좋아하는 이들의 커뮤니티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팝 스타와 한국 아이돌의 만남에 어안이 벙벙한 상태였다.

해외

-LIL이 도대체 왜 한국 같은 듣보 나라의 아이돌과 콜라보 하는 거냐? 케이케이 소속사가 돈이 많냐?

-너도 한국인이거든?ㅋㅋ 넌 한국에서도 듣보;

-케이케이 노래 일단 듣고 와라 데뷔곡부터 엄청 앞서 있음ㅇㅇ

-요즘은 아이돌 노래라고 무시할 게 아니다. 다시 잘 생각해보길.

-LIL도 들어보고 좋으니까 곡 받는다 했겠지ㅋㅋㅋ 가진 돈이 얼만데 돈에 넘어가겠음?ㅋㅋ

-라스트 댄스 좋아서 연락했다던데 라스트 댄스 들어봐라 우리나라 아이돌 중에 이런 퀄리티 곡 뽑아낼 수 있는 능력자가 있었다는 게 놀랍다

-LIL이면 진짜 대박이긴 하네ㅠ 우리 릴형 보고 케이케이 부럽

-LIL이랑 작업한다니까 갑자기 아이돌 빨아주는 것 보소

-가요라면 덮어놓고 까는 게 더 문제-_-;

-우리나라에 이 정도로 웬만한 팝보다 빠르게 트렌드 따라가는 음악이 있다는 게 꿈만 같다. 옛날이라면 상상도 못 했음.

팝 문화에 대한 선망으로 사대주의적인 경향이 있는 커뮤니티에서는 의견이 갈리기도 했지만, 그런 이들조차도 케이케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인터넷이 자신들의 이야기로 뜨거운 그 순간, 케이케이 멤버들은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다시 짐을 싸고 있었다.

LIL과의 녹음 작업을 위해 LIL의 작업실에 직접 찾아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미국에 가서 그곳의 작업 환경을 보며 더 큰 세상을 느껴보라는 게 제작이사인 권흥조의 생각이었다.

LIL에게서 온 답장의 첫 단어는 ‘Sorry’로 시작되어 있었다. 때문에 도욱은 거절을 당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너무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는 내용이었다.

고심 끝에 LIL은 도욱의 의도대로 새로운 시도를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도욱이 보내온 곡 자체가 너무 좋아 놓치기 싫은 마음이 컸다는 게 LIL의 솔직한 답변이었다.

‘LIL의 선택이 틀리지 않게······. 결과까지 성공적이어야 할 텐데······.’

도욱은 걱정 반, 기대 반의 마음으로 캐리어 지퍼를 잠갔다.

캐리어 지퍼가 잠기는 소리가 명쾌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