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
What is your name (2)
***
“네. 제가 메일을 보낸 건 사실이에요.”
이대형 팀장이 도욱의 질문에 답했다.
일본에서 돌아온 바로 다음 날, 도욱은 팬-마케팅팀 이대형 팀장, 앨범제작팀 심준 팀장과 미팅 자리를 가졌다.
요즘 계속 사무실에만 있다 보니 답답하다는 심준 팀장의 말에 세 사람은 회사 근처의 카페에 온 상태였다.
도욱 혼자 움직이고 다른 멤버들은 숙소에 있는 상황인데다 직원들 사이에 섞여 나온 터라 다행이 사무실 앞 팬들의 눈을 피할 수 있었다.
카페는 사무실 뒤편의 작은 가게로 테이블이 두 개밖에 없어 어차피 팬들이 온다고 해도 들어올 만한 자리가 없었다.
이대형 팀장의 말에 심준 팀장이 기분 좋게 웃으며 이대형 팀장의 어깨를 두르렸다.
“뭐든 시키라구. 내가 음료 쏜다.”
뒤에 서 있던 도욱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법카잖아요······.”
도욱의 말에 심준 팀장이 앓는 소리를 냈다.
“모른 척 좀 해주라! 가난한 월급쟁인데!”
도욱이 웃으며 지갑에서 자신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돈 좀 벌었다 이거구나!”
“그럼요.”
심준 팀장이 밉지 않게 도욱을 흘기며 카페에서 가장 비싼 음료를 시키겠다고 으스댔다. 이대형 팀장도 그럼 잘 먹겠다고 하며 따뜻한 라떼를 시켰다.
도욱은 두 팀장들이 케이케이를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고 있었다. 물론 그것이 그들의 일이었지만, 받는 보수보다 훨씬 열심히, 마치 자신의 일처럼 일 해준다는 것을 도욱도 기획사 직원이었기 때문에 알고 있었다.
가수가 잘되기 위해서는 주위의 스태프들도 무척이나 중요한 요인이었다. 혼자 잘해서는 절대 잘될 수 없는 직업이었다.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에는 몇천 원짜리 음료가 너무 값싼 듯했지만, 이럴 때, 이렇게라도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앨범제작팀의 심준 팀장은 이제 케이케이 외 다른 가수들의 앨범 프로젝트들을 모두 팀원들에게 맡겨둔 상황이었다.
케이케이가 힛 엔터테인먼트 전체를 끌어가는 상황이었다.
물론 밀키웨이와 몬스터, 힛 엔터테인먼트의 기존 가수들도 나름대로 활발한 활동 중이었다. 그러나 연차가 꽤 된 만큼 그룹 활동보다는 이제 개인 활동에 집중하고 있었다.
심준 팀장의 손을 떠났지만, 심준 팀장의 밑에서 성장한 팀원들도 심준 팀장만큼 훌륭하게 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덕분에 밀키웨이 보컬 멤버가 OST 음원으로 활약하고 있었고, 권지형의 솔로 앨범이 좋은 성적을 내고 있었다.
권지형의 경우에는 도욱의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도욱처럼 용감한외동과도 적극적으로 교류하며 곡 작업에 참여했던 만큼 자신의 솔로 앨범에도 기여도가 높았다. 그룹으로서의 전성기는 지났다고 할 수 있지만, 솔로 가수로서의 전성기는 곧 찾아올 듯싶었다.
케이케이의 앨범에 집중하게 되면서 심준 팀장에게는 시간적인 여유가 생겼다.
덕분에 조금 더 깊이 케이케이의 다음 앨범을 준비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고민한 건 도욱과 마찬가지의 고민이었다. 심준 팀장이 생각하기에도 이제 케이케이는 국내 시장이 아닌 해외 시장을 바라보아야 할 때였다.
정상에 오른 건 순간이었다. ‘야호’ 한 번 외치고 되돌아오는 메아리를 들을 쯤에는 다시 내려가야 하는 법이었다.
그러나 다음 산을 목표로 하면 된다. 다음이 없으면 내려가는 길은 말 그래도 ‘내리막길’일 뿐이었다.
앨범제작팀 내에서 케이케이 다음 앨범에 대한 고민은 무척이나 고된 것이었다. 심준 팀장의 이러한 생각과 고민은 우연찮게 이대형 팀장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신년 맞이 팀장급 점심 회식이 있는 날이었다.
힛 엔터테인먼트에서는 사내 방침으로 저녁 회식보다는 점심 회식을 권장했다.
안 그래도 밤낮 없이 일하기로 유명한 엔터 업계였다. 특히 소속 연예인과 가까운 업무일수록 업무시간의 경계는 흐려졌다.
그러니 회식까지 저녁에 잡아 직원들의 퇴근을 막지는 않겠다는 회사 차원의 배려였다.
업무시간 경계가 흐리기로는 물론 바로 옆에 붙어 소속 연예인을 관리하는 매니저를 이길 수 있는 이들은 없었지만, 그다음이라고 하면 앨범제작팀도 못지않았다.
음악 작업이라는 것도 비즈니스이지만 동시에 예술이라 불릴 만한 것이었기 때문에 곡 작업을 하는 일들이 언제 어떻게 연락을 해올지 몰랐다.
가수나 프로듀서, 엔지니어 등 누구 하나 녹음 시간을 밤으로 잡겠다고 하면 밤이 앨범제작팀 사람들의 업무 시간이 됐다.
시도 때도 없이 작곡한 것이나 작사한 것들을 보내오며 컨펌을 요구하는 이들도 많았다.
팬-마케팅팀도 마찬가지로 고됐다.
팬클럽을 직접 관리하고 담당하는 사원들은 평일이고 주말이고 할 것 없이 음악방송이나 녹화 현장에 가 대기하고 팬들과 실랑이를 벌이기 일쑤였다.
내부의 마케팅 담당 사원들도 밤낮 없이 관계자들의 연락을 받았다. 거기에 최근 티저나 음원 공개 시간이 자정이 될 때가 많아 자정까지 대기해야 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관리해야 하는 SNS나 콘텐츠가 많아지면서 주말에도 업로드를 하기도 했다.
두 팀 모두 고되기도 하고, 동시에 서로 협업해야 하는 일이 많기도 했다.
어쨌든 앨범의 컨셉부터 함께 정하는 경우도 많았고, 앨범 제작에 누가 참여하고 어떤 노래가 들어가냐에 따라 마케팅 방향도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이대형 팀장은 팀장급 회식 장소에 가자마자 심준 팀장의 옆자리에 앉았다.
힛 엔터의 중심은 케이케이였다.
케이케이의 앨범을 맡고 있는 심준 팀장과는 각별히 친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이대형 팀장이었다.
이미 일적으로 대화를 나누며 안면이 있었고, 심준 팀장 자체가 모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대형 팀장은 심준 팀장과 쉽게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게다가 이대형 팀장이 직급 차이 없이 모두 팀장인 상황에서 먼저 숟가락과 젓가락을 놓는 등 서글서글하고 예의 바른 모습을 보이면서 심준 팀장에게 점수를 추가로 딴 것도 있었다.
아무튼 이대형 팀장과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누며 심준 팀장은 다음 케이케이 앨범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세계 시장이라는 말에 이대형 팀장은 마케팅적으로도 방법을 모색해보면 좋을 것이라고 답했다.
“옛날처럼 길이 아예 막힌 것도 아니고, 이제는 인터넷이라는 기가 막힌 통로가 있으니까······. 뭘 하든 노래가 좋으면 될 거라는 게 저랑 도욱이의 확고한 의견이긴 하거든요.”
심준 팀장의 말에 이대형 팀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마케팅의 힘이라는 것도 분명히 존재했다. 노래가 아무리 좋아도 안 뜨는 노래가 있는 반면, 그럭저럭 괜찮은 노래였는데 기대 이상으로 잘되는 노래들이 있는 것도 그래서였다.
“계기가 필요하겠네요.”
이대형 팀장의 말에 이번엔 심준 팀장이 끄덕였다.
낮이지만 일단 이름이 ‘회식’인 만큼 맥주 한 잔씩은 하고 들어가자는 이야기가 돌았다. 그런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이대형 팀장은 골똘히 생각했다.
심준 팀장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고, 좋은 앨범을 만드는 것 자체도 좋아하기 때문에 일에 열정이 있는 타입이었다면, 이대형 팀장은 마케팅이라는 일 자체보다는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명성 등에 더 관심이 있는 타입이었다.
그러나 목표가 어디에 있든 결과적으로 열심히 일한다는 것은 동일했다.
이대형 팀장이 생각하기에도 케이케이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었다. 인터넷이라는 좋은 통로가 열려 있는 때에 세계 시장을 노릴 음악을 할 만한 역량도 있는 그룹이었다.
이대형 팀장은 케이케이의 가능성은 곧 자신의 가능성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힛 엔터테인먼트로 이직한 이유이기도 했다. 주도적으로 가능성을 펼칠 기회였다.
‘공을 세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겠군.’
이대형 팀장은 생각했다.
그러나 이대형 팀장이라고 해서 확언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일단은 시도해 보는 것이었다.
“미국 쪽 엔터에서 케이케이에게 관심을 가지면, 뭐라도 기회가 열릴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되면 아시아권 외 해외 시장 진출에 교두보 역할을 할 거라고 생각했죠. 홍보 효과가 엄청날 테니까요. 그래서 메일을 보내게 된 거예요.”
세 사람의 앞에는 각각의 음료가 놓였다.
이대형 팀장이 도욱에게 LIL에게 연락이 올 수 있었던 경위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었기 때문에 세 잔의 음료 모두 처음 놓인 그대로였다.
심준 팀장도 자세한 내용은 오늘 처음 듣는 듯 눈을 반짝였다.
이대형 팀장도 구체적인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매니지먼트사에서 케이케이에 관심을 갖길 바란 것뿐이었다.
곧바로 콜라보 건으로 이어질지는 몰랐기 때문에 이대형 팀장도 조금 놀란 상태였다.
“무슨 메일을 보내신 거예요?”
도욱의 눈이 순수한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이대형 팀장이 사람 좋게 웃으며 답했다.
“케이케이를 영업하는 메일이었죠. 세일즈 메일이랄까······. 하하.”
조금 멋쩍은 웃음이 섞였다. 특별한 메일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케이케이라는 그룹을 소개하고, 마이튜브에서 조회수가 높은 순서대로 케이케이 뮤직비디오 링크를 몇 개 첨부했어요. 일단 들어봐라, 뭐 그거였죠. 들어보고 관심 있으면 연락해라, 우리는 언제나 미국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다. 별다른 내용이 있는 게 아니라서······.”
사실 콜라보보단 일본 시장 진출에 나카모토사가 도움을 주었듯이 어떤 도움을 바란 메일이었다.
“그래도 통한 거 아니겠어요?”
“케이케이의 음악이 통한 거죠.”
심준 팀장이 감탄하며 엄지를 치켜세우는 말에 이대형 팀장이 얼른 답했다. 이대형 팀장의 답변은 심준 팀장과 도욱의 마음을 녹이기 충분했다.
이대형 팀장은 별거 아닌 메일이라고 했지만, 도욱이 생각하기에 이대형 팀장은 큰일을 한 것이었다. 도욱도 김보명이던 시절 홍보팀 직원이었지만, 직접 메일을 보내 이름을 알릴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 같았다.
생각을 했다고 해도 실제로 행동에 옮기기가 힘든 일이었다. 지레 안 될 거라고 생각하고, 관두었을 것이다.
“LIL이 있는 매니지먼트사에 메일을 보내신 거예요?”
도욱의 질문에 이대형 팀장이 답했다.
“그렇죠. 사실 다른 유명 매니지먼트사에도 보냈어요. 다서 군데 정도 더······. 연락 온 곳이 LIL밖에 없긴 하지만요.”
“LIL밖에라니! LIL이 들으면 대성통곡할 소리!”
심준 팀장이 이대형 팀장을 나무랐다. 도욱 또한 고개를 저었다.
세계 시장 진출을 떠나 그저 최고의 보컬이자 아티스트인 LIL과 함께 작업을 한다는 사실만으로 가슴이 부풀어 있는 상태였다. LIL과 함께할 기회를 만들어준 이대형 팀장에게는 그저 고마웠다.
“메일 보내는 건은 이사님하고만 상의했었는데······. 괜히 심 팀장님이나 도욱 씨 실망하시는 거 싫어서.”
“뭐 그런 거까지 신경을 써요!”
“네. 괜찮아요.”
도욱도 이대형 팀장의 의도를 백번 의도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멤버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지 못하고 있는 건 도욱도 마찬가지였다.
“LIL쪽이랑 얘기를 더 나눠봤는데······. 계약 및 수익 배분 등의 문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조애니 부장님까지 컨펌이 난 사항이고요. 다만 원하는 퀄리티가 나오지 않을 시에는 앨범에 실을 수 없다고 하더군요. 그럴 경우에도 작업한 게 있으니 작업비만 지불하겠다고 합니다.”
“오······.”
심준 팀장이 조금 걱정스럽게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세계적인 스타의 요구에 맞추려면 어쩔 수 없나······.”
“제가 잘하면 되는 거군요.”
도욱은 걱정스러운 동시에 좋은 도전 과제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대형 팀장이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한 달 이내에 곡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빠듯할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도욱이 주먹을 불끈 쥐며 답했다.
“할 수 있습니다.”
“하하, 기합이 빡 들어갔네! 좋아, 좋아. 어떤 곡을 원한대요? 거까지 얘기를 나눈 겁니까?”
심준 팀장의 물음에 이대형 팀장이 고개를 저었다.
“그 부분부터는 직접 대화를 나누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네! 좋습니다.”
도욱의 열의가 느껴지는 대답에 두 팀장이 미소를 지었다.
특히 심 팀장은 도욱이 케이케이의 다음 앨범으로 얼마나 고심하고 있었는지 알았기 때문에 앨범이 나오기 전 LIL과의 작업을 통해 도움이 될 만한 많은 것들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문제없이 계약이 진행되면서 도욱은 케이케이 멤버들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게 되었다.
예상대로 멤버들은 뛸 듯이 기뻐했다.
물론 전혀 믿지 못해서 한동안 기뻐도 하지 못한 멤버도 있었다.
그러나 며칠 후, LIL과 K.K의 콜라보를 믿을 수밖에 없는 일정이 생겼다.
멤버들은 떨리는 마음으로 회의실 노트북 앞에 서 있었다. 도욱도 떨리기는 매한가지였다. 너무 설렌 채였기 때문에 다음 닥쳐올 일들은 생각도 하지 못한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