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
바다를 건너 (1)
“형 주무시고 계셨던 거 아니죠?”
-어, 나 방금 들어왔는데.
오백호 실장은 숙소 바로 근처에 작은 집을 구해 구철민과 투숙 중이었다.
“알아봐 주실 일이 있어서요. 지금은 무리고······. 내일 아침 일찍 와주시겠어요?”
도욱은 미안한 말투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실 내일은 케이케이 멤버들을 비롯, 오랜만에 전 스태프들에게 휴가가 주어진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날까지 오백호 실장에게 도움을 받으려니 도욱은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무슨 일이야?
오백호 실장이 걱정된다는 듯 물었다.
“아······. 인터넷에 글이 올라왔는데 제가 지금 링크 보내드릴게요. 확인 해봐야 할 것 같아서요.”
-알았어. 보고 내일 아침 일찍 갈게.
“네. 그럼 쉬세요. 감사합니다.”
오백호 실장과 도욱이 전화를 마치자 안형서와 박태형이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두 사람도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확인한 상태였다.
“이거 우리도 본 선물이잖아. 왜 여기 이렇게 버려져 있지? 이해가 안 되네.”
“그니까요······. 철민 형이······ 챙기기로······.”
사진 속 선물과 편지는 시상식에 점심 도시락 서포트와 함께 도착한 것이었다. 멤버들이 리허설을 하며 모두 확인한 것이었고, 대기실에 둘 수 없으니 벤으로 옮겨두기로 했었다.
오백호 실장이 구철민에게 지시하는 것을 듣기도 한 박태형이었기 때문에 더 의아한 점이었다.
도욱이 그런 두 사람을 돌아보며 말했다.
“일단 내일 알아보면 되겠지.”
안형서가 끄덕이면서도 댓글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악플 장난 아니네. 우리 대상탄 거 축하 반 저주 반인 것 같아.”
도욱도 좋은 기분은 아니었지만, 영 예상을 못했던 일은 아니었다. 물론 단순히 케이케이의 대상 자격에 대한 논란일 거라고 생각했지 이렇게 구체적인 사건이 터질 줄은 몰랐다.
논란 글 뒤로 연달아 케이케이의 방송 중 표정이나 인터뷰들을 악의적으로 짜깁기해 상황을 교묘하게 몰아가는 글들이 올라왔다.
저렇게 모두가 볼 수 있는 곳에 선물을 버리는 바보 같은 기획사가 어디 있냐고 케이케이를 옹호하는 댓글들도 물론 많았다.
그러나 계속해서 상황을 안 좋은 쪽으로 모는 무리가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아마 케이케이가 대상을 탄 게 가장 못마땅한 사람들이겠지······.’
도욱은 생각했다.
안 좋은 댓글을 단 이들의 아이디를 타고 이전에 썼던 글을 보면 어렵지 않게 어떤 무리인지 알아낼 수 있었다. 대부분 다른 아이돌의 팬들이었다.
‘속상한 마음은 알겠지만······.’
사실 그냥 팬들 간의 싸움이라고 생각하고 넘겨버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팬들 내부에 동요가 생길 일은 만들어서는 안 됐다. 케이케이가 여기까지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큰 이유 중 하나가 팬들이었다.
다양한 콘텐츠로 팬들에게 다가가서 친근한 이미지를 심어주고, 케이케이가 팬들을 아낀다는 것을 계속해서 어필함으로써 팬들은 다른 가수들보다 더욱 마치 자신들의 일처럼 케이케이를 응원할 수 있었다.
중소기획사였음에도 팬들의 전폭적인 지지로 최고의 음반판매량을 올린 케이케이였다.
케이케이와 팬들 간의 신뢰가 깨지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됐다. 도욱은 이번 일을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
다음 날, 오백호 실장은 도욱, 정윤기와 이야기를 나눈 후 구철민에게 호통을 내질렀다.
“너는 그거 관리를 잘 했어야 할 거 아냐!”
“죄송합니다.”
구철민은 고개를 숙인 채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최성준 기자가 도욱의 인터뷰 기사를 악의적으로 냈을 때는 사실 구철민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고, 매니저 일을 배워가는 중에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오백호 실장도 크게 분노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 일은 구철민의 잘못이 명백한 것이었다.
대기실로 도착한 것이었기 때문에 서포트 물품은 많지 않았다. 도시락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편지나 대기실에서 쓸 수 있을 만한 손난로 등 잡다한 용품들이었다.
그렇다 보니 구철민도 별로 크게 생각하지 않은 채 자신이 벤으로 옮기기로 했던 것들을 팬-마케팅팀 인턴에게 맡겼던 것이다.
대기실에 있던 팬-마케팅팀 인턴이 사무실에 들렀다 올 일이 있다고 하자 구철민은 옳다구나 대충 손가락으로 물품들을 가리키며 저쪽 물건들도 같이 옮겨달라고 부탁했다.
“아, 제가 헷갈려서 그러는데 나중에 다시 말씀해주시겠어요? 지금 챙길 게 많아서.”
“예예, 그럼요.”
그렇게 말한 구철민은 케이케이 멤버들이 리허설을 하는 동안 리허설을 보느라 대기실에 남아 있지 않았다.
사무실에 갈 시간이 된 인턴은 짐을 챙겨 가다가 문득 구철민의 부탁이 생각났지만 자리에 구철민이 없었기 때문에 챙기지 못한 채 사무실로 향하게 됐다.
그사이 비어있던 대기실에서 편지와 선물들이 어떻게 길바닥으로 향하게 되었는지는 알기 힘들었다.
인턴의 잘못이라고 보기에도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확실히 책임자는 구철민이었다.
“나중에 없어졌으면 확인을 해봤어야지!!!”
“죄송합니다. 드릴 말씀 없습니다.”
오백호 실장의 목소리가 회의실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구철민은 고개 숙인 채 다시 한 번 사죄했다. 대기실에서 선물들이 없어진 걸 알았지만, 맘 편하게 인턴이 가져갔다고만 생각했던 구철민이었다. 정신이 없다 보니 확인할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사실 다른 기획사였다면, 이 정도 일은 한소리 듣고 끝났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도욱과 마찬가지로 기획사는 팬들을 무척이나 중요하게 생각했다.
단순히 팬들을 세간에서 말하는 ‘빠순이, 빠돌이’가 아닌 ‘고객’이라는 이념이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어떻게 해결할 거야.”
“그게······.”
탁―!
긴장으로 우물쭈물거리는 구철민에 오백호 실장이 인상을 쓰며 책상 바닥을 내리쳤다.
“니가 어린 애야? 말을 할 거면 똑바로 해야지!”
“아······. 그게 대기실 CCTV 확인 했습니다······.”
오백호 실장의 눈썹이 한쪽으로 올라갔다. 잘못을 저지른 것도 구철민이긴 했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빠르게 구철민이 움직였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웬 여자애들이 들어와서 가지고 나가더라고요.”
“뭐?”
구철민이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오백호 실장에게 동영상 하나를 보냈다.
공연장 보안실 쪽에서 받아 온 CCTV 편집본이었다.
영상 속에는 모자에 마스크까지 착용한 이들이 대기실에 들어가 물품을 들고 나오는 게 보였다.
얼마 후 복도에서 그들을 발견한 경호원이 어떻게 들어왔냐고 하자 스태프증을 내미는 것 또한 보였다. 공연 진행을 위해 TBN 쪽에서 젊은 여성 스태프도 많이 뽑아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얼핏 보기에는 스태프와 다를 바 없어 보이긴 했다. 실제로 스태프일 가능성도 있었다.
조금 갸웃하던 경호원이 대기실 쪽에서는 나가라는 듯 손을 휘저었다. 그들은 선물 더미를 든 채 인사를 하고는 유유히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
“뭐야, 이게······.”
오백호 실장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도라희 대리와 오백호 실장, 케이케이 멤버들이 회의실에 모였다. 케이케이 멤버들은 이번 일만큼은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지금도 실시간으로 케이케이 멤버들의 진심을 알고 싶다는 글이 올라오고 있었다. 물론 멤버들을 믿는다는 글도 많았지만, 약간의 오해도 남기지 않고 싶었다. 오해를 꼭 풀고 싶었다.
기쁜 날, 기쁨을 함께해 준 팬들이었다.
도욱의 말에 도라희 대리가 답했다.
“이게 누군지 알지도 못하고, 누군지 알자고 얼굴을 공개하기도 힘들어서요. 괜히 일이 커질 수가 있어서······.”
도라희 대리의 말에 오백호 실장이 끄덕였다. 인터넷에 당장 글을 올리는 건 일을 더 키우는 게 될 수도 있었다.
가져가는 것만 나와 있지 선물을 훼손하는 장면이 담긴 것도 아니었다. 사진 속 가로등 아래 CCTV를 확인하기는 힘들었다.
“어떻게 글을 올리느냐에 따라서 반응이 오히려 안 좋아질 수도 있고······. 우리 쪽에서 관리가 부실했던 것도 사실이니······.”
“그렇다고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순 없잖아요! 너무 억울해.”
안형서가 외쳤다.
“시간 지나면 마, 나아질라나.”
정윤기가 안형서를 진성시키며 관자놀이 부근을 긁적이며 말했다. 도라희 대리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회사 차원에서의 손을 대기가 여간 껄끄러운 게 아니었다.
“일단 저희 직원이 함부로 처분한 게 아닌 건 확실한 거잖아요.”
“그렇죠.”
도욱의 말에 도라희 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관리부실보단 절도에 초점을 맞춰서 글을 올리면 상황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요?”
“절도?”
‘절도’라는 단어 자체에 부정적인 기운이 잔뜩 있었다. 그쪽에 초점을 맞추면 확실히 누가 절도를 해갔느냐에 관심이 집중될 게 뻔했다.
그러나 동시에 인터넷상의 싸움으로 더 난장판이 될 가능성이 컸다. 범인이 확실히 밝혀지지 않는 이상 말이다.
“CCTV 확인 결과 도난을 당한 게 확실하고, 절도를 해 간 이의 신상을 이미 파악하고 있다는 식으로 흘리면 좋을 것 같아요.”
도라희 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욱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했다.
사실 신상을 파악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만은 않았다.
시일은 걸리겠지만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면 그만이었다. 혹은 팬들 사이에 영상 캡쳐본을 뿌리면 알음알음 범인이 잡힐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관심도가 떨어져 이미 케이케이의 이미지만 상해 있을 수 있었다.
거기에 나이 어린 범인들이 난도질당한 후 끝날 일이었다. 그런 일에 기획사가 앞장선다는 게 도라희 대리는 궁극적으로는 케이케이의 이미지에 좋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었다. 물론 이 일을 뒤집을 방법이 없다면 결국에는 선택했었어야 할 방법이었겠지만.
“우리 쪽에서 고소를 할 생각이 있고, 사과를 올리면 선처해주겠다고 해야겠군요.”
“네.”
물론 그 사과문을 올린다고 하더라도 인터넷상에서 난도질당하는 건 마찬가지이겠지만, 그 정도 벌은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저희의 진심이 담긴 사과문이랄까······. 그런 걸 올리면 좋겠어요.”
도라희 대리가 무슨 말이냐는 듯 되물었다.
“사과문? 멤버들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어쨌든 저희가 받았던 선물이니까요. 사죄까진 아니더라도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요.”
도욱의 말에 정윤기를 비롯한 다른 멤버들이 끄덕였다.
이미 멤버들과는 이야기가 된 상황이었다.
한때 누군가의 팬이기도 했던 도라희 대리는 가슴 깊이 감탄했다. 자신이 도욱이나 케이케이의 팬이었다면,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때보다 더 열정적으로 응원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왜 케이케이의 팬들이 케이케이를 응원하는지 다시금 깨달았다.
***
기획사에서 공지글을 올리고, 케이케이 멤버들이 미안한 마음을 담은 진심 어린 글을 올린 지 하루도 안 돼 팬-마케팅팀에는 메일이 한 통 도착했다.
메일의 제목은 ‘죄송합니다.’였다.
바로 그 사건을 일으킨 여자 중 하나가 분명한 이의 메일이었다. 반성하고 있으며, 고소는 하지 말아달라는 내용이었다.
메일 주소를 추적한 도라희 대리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게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