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
1막 1장 (2)
***
최성준 기자가 있던 문이 열리며 도욱과 오백호 실장이 들어왔다. 세 사람의 약속 장소는 힛 엔터테인먼트 사옥 옆 건물의 사무실이었다.
아직 이사가 완벽하게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회사 재무팀 및 경영지원팀이 쓰게 될 사무실이었다.
얼마 전 힛 엔터테인먼트는 케이케이의 성공과 중국 쪽에서 투자금을 유치하게 되면서 바로 옆 건물에 사무실을 하나 더 전세로 구했다.
현재 있는 작업실과 연습실을 확장 리모델링해 케이케이나 소속 연예인들에게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자 하는 사측의 노력이었다.
어쨌든 괜히 외부에서 최성준 기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도, 힛 엔터테인먼트 사옥에 최성준 기자가 들어가는 모습도 보이고 싶지도 않았던 도욱은 약속 장소를 이곳으로 정했다.
오백호 실장과 도욱을 보자 최 기자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셨군요.”
여전히 최성준 기자의 인상은 차가웠다.
그러나 비슷한 듯한 말투에서도 최성준 기자가 이전과는 달리 저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최성준 기자의 얼굴을 처음 보는 오백호 실장은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인상부터 찌푸렸다.
“이렇게 자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세 사람이 자리에 앉자마자 최성준 기자가 고개를 숙였다. 오백호 실장이 못마땅한 얼굴로 대꾸했다.
“제대로 사과를 할 생각은 한 거 보니 영 기레……, 흠흠, 는 아닌 것 같군요.”
오백호 실장이 잠시 격해진 마음을 추슬렀다.
도욱을 워낙 아끼는 오백호 실장이었다. 여태까지 큰 잡음 없이 케이케이가 올 수 있었던 데에는 도욱의 영향력이 지대했다.
그런 도욱에게 흠집을 내려고 했으니 아무리 일에 있어서는 냉철한 오백호 실장이라고 하더라도 욱하게 됐다.
“또 그런 기사를 쓰려고 찾아온 건 아니겠죠?”
“물론 아닙니다. 우선은 사과를 드리고 싶습니다.”
최성준 기자가 말을 이었다.
“그날은 제가 무례했던 것 같아요.”
서강준과 자주 비교되곤 하던 도욱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평소 가지고 있던 아이돌에 대한 반감이 더욱 심했다. 계속해서 곤란한 질문으로 도욱을 몰아붙였던 건 그래서였다.
실제로 서강준도 아닌 아이돌에게 피해를 줄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그런 것들 모두 변명에 불과했다.
“같은 게 아니라 무례했습니다. 최 기자님.”
도욱이 표정 없이 답했다.
최성준 기자는 순순히 인정했다. 인터뷰 때도 느꼈지만 강도욱은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본래의 성격인지 스물두 살이라고 하기엔 무척이나 생각이 깊고, 날카로웠다.
“죄송합니다. 도욱 씨.”
도욱은 낮은 한숨을 흘리자 최성준 기자가 조금 다급하게 말했다.
“하지만 정말로 도욱 씨에게 피해가 가게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기사를 날조하거나 작위적으로 편집할 생각은…….”
최성준 기자도 아직 일개 기자에 불과했다. 부장의 만행이었음을 도욱과 오백호 실장에게까지 밝히기는 아무래도 힘들었다.
도욱은 최성준 기자의 말을 듣고는 대충 상황을 파악했다.
‘자신이 편집한 게 아니라면……. 윗선이란 건가?’
오백호 실장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정확하게 짚을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었지만, 대충 최성준 기자가 전하고자 하는 바는 이해한 상태였다.
“저한테 피해를 주실 생각도 아니었다면…… 그날은 왜 그러신 겁니까?”
도욱이 묻자 최성준은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최성준이 직접 만나서 해명하고, 사과까지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다름 아닌 도욱이 기부를 하고 있다는 기사 때문이었다.
특히 학교 폭력에 관심을 갖고 있고, 그러한 단체에 많은 기부를 한다는 기사를 보고 나자 그런 도욱이라면 자신의 마음을 일정 부분 이해해주지 않을까 싶어졌다.
“제가 사실 아이돌에 안 좋은 편견이 있었습니다. 도욱 씨도 그런 아이돌들과 다를 바 없다고 섣불리 판단해버린 탓입니다. 다 제 잘못입니다.”
겨우 그런 이유로 무례하게 굴었다니. 오백호 실장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어차피 연예계에서 연예인이나 관계자, 기자까지도……. 천차만별, 가지각색의 인간 종류가 모여 있는 곳이었다. 더 어이없는 인간들이 수두룩 빽빽이었다.
기가 차하는 오백호 실장에 최성준이 덧붙였다.
“제 동생이 어떤 아이돌 멤버에게 폭력을 당해왔기 때문입니다.”
그 말에는 오백호 실장도 조금 놀라고 말았다. 물론 오백호 실장이 더 놀란 건 이어지는 도욱의 물음 때문이었다.
“혹시 그 아이돌이 서준입니까?”
“네?!”
도욱의 직구에 최성준 기자가 깜짝 놀랐다.
기자의 앞에서 특정 연예인을 집어 안 좋게 말한다.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오백호 실장이 도욱의 말을 수습하려 입을 뗄 때였다.
“……맞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최성준이 홀린 듯 답했다. 오백호 실장도 도욱에게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도욱은 최성준 기자를 가만히 응시했다.
***
“……그래서 고민 끝에 사회부 기자를 관두고 연예부로 오게 된 겁니다.”
도욱은 자신의 친구 중 하나가 서강준에게 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는 말로 최성준 기자에게 상황을 흘렸다.
그러자 최성준 기자는 주먹을 쥐었다. 서강준이 건드린 다른 피해자가 있다는 사실에 더 분노하는 모양이었다.
이후 도욱은 자신의 얘기를 마치 친구인 척 서술해나가기 시작했다.
담담하게 말하면서도 도욱은 어느덧 자신이 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상처가 완벽히 치유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보기 싫게 남았던 흉터가 이전보다 흐릿해진 것만은 사실이었다.
도욱의 이야기를 들으며 최성준은 분개했다. 오백호 실장도 어지간히 놀란 모양이었다. 도욱의 서강준에 대한 견제 같은 것들을 단순히 라이벌 관계에서 일어나는 견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기자에게 이런 일을 털어놓아도 되는지에 대한 걱정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최성준은 누구보다 분개하며 이를 악물고는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아니, 자신의 동생의 이야기였다. 지금도 방 안에 틀어박힌 채 천장만 보며 누워있을 자신의 동생.
최성준 동생의 이야기를 들은 오백호 실장이 혀를 찼다.
“뭐라 말할 수가 없군요.”
도욱은 최성준 동생의 아픔이 자신에게까지 전해지는 듯해 잠시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그나마 도욱은 어떻게든 이겨낼 수 있었다. 성격적으로 위축되었지만 나름대로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사실 ‘김보명’은 강했던 것이다. 그걸 도욱은 도욱이 되고서 많이 느꼈다.
그렇다고 최성준의 동생이 나약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모든 문제는 학교 폭력을 행한 가해자에게 있었다.
“복수를…… 하기 위해서입니까?”
연예부 기자가 되었다는 최성준에게 도욱이 물었다.
도욱과 최성준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휑했던 사무실의 공기가 어쩐지 텁텁해질 만큼 공기가 달아올라 있었다.
최성준이 잠시 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욱은 단단한 최성준의 의지를 엿보았다.
‘그래. 이 사람은 복수를 한다. 서강준을 학교 폭력 가해자로 지목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기사도 났었으니까. 그 기사를 낸 이가 최성준이었고…….’
그러나 최성준 기자의 복수는 결과적으로 실패였다. 오히려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한 채 폭력 사실도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다.
제대로 된 증거가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 이미 대중의 사랑을 받기 시작한 서강준은 공고했다.
거기에 아라 엔터라는 뒷배가 있으니 흠집을 내려고 해도 언론사에서 나서서 그를 흠집내는 일은 없었다.
‘그러니 이번에는 꼭 성공해야지.’
도욱은 눈을 빛내며 최성준 기자를 향해 말했다. 잠시 오백호 실장도 보았다. 이제 오백호 실장에게도 말해둘 필요가 있다고 도욱은 느꼈다.
전면에 나설 수 없는 도욱의 입장상 조력자가 반드시 필요했다.
“저도.”
“네?”
“……도욱아?”
도욱의 말에 최성준 기자와 오백호 실장이 무슨 말이냐는 듯 되물었다.
“저도. 복수를 하려고 합니다.”
도욱의 목소리가 사무실 안을 무겁게 울려 퍼졌다.
***
“우선은 대학 비리부터 파헤치죠. 알아보면 분명히 나올 겁니다. 더러운 것들이…….”
도욱의 말에 그런 게 있는 줄은 몰랐던 두 사람이 놀랐다.
어차피 학교 폭력 건은 서강준이 교묘하게 숨겨 증거를 찾아내기 힘들 터였다. 이전에 최성준 기자의 복수가 실패한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그러니 더 확실한 것부터 시작해 서강준을 끌어내려야 했다.
최성준 기자로서는 오히려 자신에게 조력자가 생긴 기분이었다. 그것도 연예계의 중심에 있는 스타가 조력자였다. 그리고 그의 매니저인 연예계 관계자. 서강준의 소식을 캐내기 이보다 좋은 조력자들은 없었다.
도욱은 최성준 기자에게 대학 비리를 파헤칠 능력이 있길 바라며 자신의 학교로 향하는 중이었다.
‘의지만은 누구보다 강력할 테니……. 일단은 믿고 기다려봐야겠지.’
결과론적으로 주원대학교에는 떨어진 것이 도욱에게는 여러모로 도움이 됐다.
대한예술종합학교에 입학을 결심한 것도 그 덕분이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오백호 실장은 도욱에게 그러한 생각이 있었다는 것에 놀랐다며 복수는 위험하다 생각해 만류하려 했지만 도욱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사실 오백호 실장도 나름의 정의감이 있는 인물이었다.
덩치가 있고, 힘도 있는 만큼 오 실장도 학창 시절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그는 그 힘을 가지고 폭력을 휘두르는 대신 태권도와 합기도 등의 무술을 배웠다.
“나도 친한 친구가 그런 일을 당했다면…… 참을 수 없을 것 같긴 한데.”
오백호 실장의 말에 도욱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조금 웃었다.
“제가 위험해지지 않게 형이 도와주실 거라 믿어요.”
도욱의 말에 오백호 실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욱이 케이케이까지 위험해질 만한 일은 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도 있었다.
도욱은 대한예술학교 교수실 문 앞에 섰다.
오늘 학교에 온 건 강의 때문이 아니었다. ‘특수과제’ 수업 교수의 부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교수실 문을 노크하며 도욱은 교수의 답이 들려오길 기다렸다.
“들어오세요.”
교수의 답에 문을 열고 들어가자 도욱을 부른 정 교수가 어서 들어오라며 손을 흔들었다.
교수실 내부의 모습은 여느 대학의 교수실 모습과 비슷했다. 책들이 잔뜩 쌓여 있었고, 너저분하게 쌓인 책들 사이로 서류들이 흩어져 있었다.
거기에 책꽂이에는 이제는 잘 보지 않는 비디오테이프가 잔뜩 꽂혀 있었다.
그리고 커다란 오디오에서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익숙한 노래였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거기 의자에 앉아요. 바쁜데 오라 가라 해서 미안해.”
“아닙니다. 그런데…….”
“아! 요즘 이 노래 계속 듣는다니까. 조용하면서도 감정이 잘 실려 있어서 아주 듣기 좋아요.”
정 교수가 듣고 있던 노래는 도욱의 솔로곡인 ‘제발 가지 마’였다.
아련하게 울려 퍼지는 노래 속에 도욱이 정 교수의 맞은편에 앉았다.
“뭐 차라도?”
“아닙니다. 방금 전에 커피를 마시고 와서요.”
“그래. 내가 자네를 부른 건 따로 부탁할 게 있어선데.”
“네.”
그때 교수실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또 한 번 울렸다.
“마침 왔나 보네. 들어오세요!”
교수실 문을 열고 또 한명의 손님이 들어왔다. 보라색 박스티에 청바지를 입은 가벼운 차림의 여자였다.
여자가 도욱을 보고는 활짝 웃었다. 도욱도 여자를 알고 있었다. 너무 다른 표정이라 못 알아볼 뻔했다.
도욱의 표정을 보고 자신을 알아챘다는 것을 눈치챈 여자가 반갑게 인사했다.
“여기서 이렇게 보니 새롭죠? 그땐 정말 고마웠어요. 또 한 번 고마운 일이 있으면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