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114화 (114/225)

# 114

1막 1장 (1)

“제대로 사과를 받고 싶네요.”

도욱의 차가운 말투에 운전을 하던 구철민이 백미러로 힐끔거리며 도욱을 쳐다봤다. 처음 들어보는 말투였다.

전화를 끊은 도욱에게 구철민이 물었다.

“······누구데 그렇게 받아?”

“기자요.”

“기자?”

“네. 최성준 기자요. 그 인터뷰 내보냈던······.”

“뭐? 아니 그 자식은 왜 또! 너한테 직접 연락을 해왔다고?”

구철민이 열을 냈다. 매니저를 통하지 않고 직접 연락을 해온 기자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매니저로서 기분 나쁜 일이었는데, 심지어 그 기자가 ‘최성준 기자’라고 하니 구철민으로서는 열이 뻗치는 게 당연했다.

오백호 실장 아래에서 일하며 친근하고 착한 이미지의 구철민이었지만, 화를 내니 제법 사나웠다.

“뭐래 그놈이?”

“사과한다더라고요.”

“뭐? 그냥 뭐 사과하고 입 싹 닦으면 되는 건가.”

구철민이 씩씩댔다. 도욱은 구철민을 진정시켰다.

“그래서 저도 제대로 사과 받고 싶다고 했어요.”

“잘했어! 근데······ 어떻게?”

“만나보려고요.”

“뭐? 만났다가 괜히······.”

구철민이 도욱을 힐끔거리며 염려스러운 마음을 전했다.

‘안 그래도 저도 뵙고 더 정식으로 사과드리고 싶었어요. 하고 싶은 말도 있고······.’

만나자는 말에 최성준 기자는 그렇게 답했었다.

‘하고 싶은 말이라······.’

도욱은 최성준 기자를 만나 이번 일에 대한 사과를 확실히 받아낼 생각이었다. 그리고 서강준을 무너뜨리는 데에도 그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걱정 마세요. 이번엔 백호 형도 함께 갈 거니까?”

“아, 오 실장님? 그럼 걱정 없지만······. 아무튼 그 자식 괜히 네 기사 악의적으로 쓴 거 생각하면······.”

씩씩거리는 구철민이 운전하는 차가 어느덧 시청앞 광장에 다다라 있었다.

오늘 행사에 서는 가수는 다섯 팀 정도였다. 도욱은 엔딩 무대를 장식하며 두 개의 곡을 부를 예정이었다.

“오늘도 네 팬들 많이 왔네······.”

“그러게요.”

차를 대고, 간이대기실로 지어진 천막 안으로 들어서며 도욱은 바깥쪽 상황을 살폈다. 키링 응원도구를 든 팬들이 잔뜩 와 있었다. 평소 행사보다 더 많은 팬들이 자리를 메웠다.

인터뷰로 인터넷에서 논란이 된 후 있는 첫 행사였다. 팬들은 괜한 논란으로 도욱이 혹시라도 기운이 없을까봐 걱정했다.

다행이 오늘 뜬 기사로 논란은 사라지고, 오히려 도욱의 훌륭한 인성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는 게 팬들의 마음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꼭 가서 큰소리로 응원한다!’라는 마음가짐으로 한두 명씩 모이다 보니 평소 인원보다 많아진 것이었다.

“어······.”

천막으로 들어서던 도욱은 내부에서 인사를 나누는 이들을 보며 멈춰 섰다.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잔뜩 있었고, 주변이 무척이나 분주했다.

도욱이 멈춰 서자 무슨 일인지 보던 구철민이 말했다.

“저기 잘생긴 연예인은 오늘 MC 보는 서준인 것 같은데······. 옆엔 누구지 뭐 높으신 분 같은데?”

오늘 행사의 MC가 서준이라는 말에 조금 놀랐던 도욱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해와 달의 연인> 이후 개인 활동을 통해서는 가수보다는 배우의 이미지에 더 집중하고 있는 서강준이었다.

가끔가다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도 교양 프로그램 위주로 출연했고, 항상 깔끔하고 단정한 모습을 유지하며,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만들어 나갔다.

서강준의 팬들은 서강준을 ‘자비로운 황제님’이라고 부르며 그를 따랐다.

현재 드라마 차기작도 확정된 상태라 맨투맨이 비록 케이케이에게는 밀리고 있었지만, 서강준 자체로는 계속해서 잘나간다는 느낌이었다.

도욱은 서강준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오······. 서울 시장인가 보네······.”

서울시에서 주최하는 행사이다 보니 시장이 직접 나서 주요 출연진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모양이었다.

본래 이런 시간은 예정되어 있지 않았지만, 행사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서울 시장이 갑작스럽게 대기실에서 출연진들을 만나고 싶다고 해 생겨난 시간이었다.

정치인들이 연예인들에 갖는 감정은 두 가지였다.

자신보다 한참 아래라고 생각하며 무시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동시에 정치인도 대중의 인기가 누구보다 목마른 사람들이었다. 그런 점에서 인기 있는 연예인들과 친하게 지내려는 이들도 많았다.

그리고 연예인들을 친목을 유지해두는 것은 권력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괜히 술자리에 연예인들을 불러내 술친구인 척 술시중을 시키는 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정치인과 연예인들이 스폰서 등으로 엮여서 더러운 짓을 일삼는다는 것을 잘 아는 도욱이었다.

김보명 시절 다니던 큐 엔터에서 직접적으로 이루어진 일은 아니었지만, 다른 중소규모 기획 출신 여자 연예인들이 불려나갔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도욱은 연예인과 친해지려는 정치인을 보면 좋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거기에 고경훈 시장이 아라 엔터의 서중원 본부장과 대학 동기이며, 같은 골프 멤버였기 때문에 도욱으로서는 도저히 고 시장을 좋은 눈으로 봐줄 수 없는 것이었다.

‘서중원 본부장의 손이··· 도대체 어디까지 닿아있는지······.’

도욱은 서강준과 인사를 마치고 자신 쪽으로 다가오는 서울 시장을 무감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허허, 고경훈이요.”

“안녕하십니까.”

도욱은 무감한 눈길을 거두곤 예의 바르게 고경훈 시장에게 인사했다.

“출연해줘서 고맙습니다. 오늘 무대 잘 부탁드리죠.”

“네.”

악수를 나눈 고경훈 시장이 도욱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감싸며 잘 부탁한다는 말을 다시금했다.

그렇게 악수를 나누는 데 뒤쪽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보는 것 같네.”

“그러네요, 선배님.”

서강준이 MC 의상으로 입고 온 수트를 단정히 하며 도욱의 옆에 자연스럽게 섰다.

고경훈 시장과 그를 보좌하는 양복 군단이 천막 밖으로 나가자 천막 안이 훨씬 넓어졌다. 서강준은 다른 이들이 자신과 도욱 쪽을 힐끔거리고 있는 사실을 인식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요즘 잘나간다며.”

웃으며 빈정대는 말에 도욱은 어이없다는 눈으로 서강준을 보았다.

이제 서강준과는 악의를 감추지 않는 상태였다. 도욱에게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지만, 서강준이 도욱에게 악의를 느끼는 이유는 단 하나라고 해도 무방했다.

자신보다 잘났고, 자신에게 감히 까부는 것. 그러한 이유만으로도 인격적으로 미성숙한 인간인 서강준은 악의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도욱이 별다른 답을 하지 않자 서강준이 픽 웃으며 도욱을 도발했다.

“언제까지 잘나갈 것 같아?”

“그러게요.”

“뭐?”

“선배님, 언제까지 잘나가실 것 같은지 되물어 본 겁니다.”

도욱의 말에 서강준이 눈썹을 올리며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러다가도 이내 주변을 의식하며 표정을 풀었다.

도욱은 서강준의 가식적인 모습이 우습기까지 했다.

“그럼 전 잘나가느라 바빠서.”

도욱은 자신의 이름이 써진 테이블 앞, 구철민이 자리를 마련해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서강준은 그런 도욱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저 새끼가······.”

서강준은 입술 사이로 낮게 욕을 뱉어 내며 솟구쳐 오르는 화를 눌렀다. 서강준 입장에서 도욱은 정말로 눈엣 가시 같은 존재였다.

도욱만 아니었다면, 서강준은 아이돌 출신 연기자 중 단연 돋보이는 연기력과 인기를 가진 하나뿐인 인재였을 것이다.

맨투맨이 케이케이에게 밀린 것도 어이가 없는 시점에서, 연기자로서의 관심까지 도욱과 나눠야 한다는 것이 서강준은 참기 힘들었다.

아버지인 서중원 본부장 역시 도욱을 못마땅해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번이 저 새끼 이미지를 망칠 좋은 기회였는데······. 미꾸라지 새끼처럼 빠져 나가선······.’

서강준은 아랫입술을 꾹 깨물며 천막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뉴스패치는 아라 엔터와 좋은 공생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라 엔터 소속 연예인들의 파파라치 샷들을 기사화하지 않는 대신 아라 엔터의 주요 소식들을 뉴스패치에 먼저 풀어주는 형태였다.

물론 뒷돈도 심심찮게 오갔다. 아라 엔터가 주로 뉴스패치에게 입막음용으로 돈을 주는 것이었다.

서중원 본부장은 뉴스패치 국장과의 술자리에서 슬쩍 케이케이와 강도욱에 대한 자신의 부정적인 심경을 흘렸다.

두 그룹의 라이벌 관계를 익히 알고 있던 뉴스패치 국장이었다.

또 최근 아라 엔터가 맨투맨이 생각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해 애가 닳아있는 것도 알고 있었다.

“채 국장님이 신경만 써주면 난 너무 감사하겠는데 말이죠.”

“아하······. 저희라고 없는 말 만들어낼 수는 없죠. 요즘 같이 강도욱 인기가 많은데 등 돌려서 좋을 것도 없고.”

“스타가 강도욱 하나입니까? 힛 엔터 같은 구멍가게 무서워서 그래요? 채 국장님 그렇게 안 봤는데 생각보다 통이 작으시네.”

“마트 가서 사면 저한테 뭐라도 떨어집니까?”

“하루 이틀 일하는 거 아니면서 왜 그래?”

“뭐···. 간간이 기회는 봐보지요.”

어차피 기사 하나 ‘어그로’ 범벅으로 낸다고 해서 크게 문제될 건 없었다.

오히려 많은 클릭수를 유도해서 광고 수익도 많아질 거였고, 대충 사과나 하면 힛 엔터같이 작은 곳에서는 별다른 대응도 하지 못할 게 뻔했다.

***

며칠 후, 최성준 기자는 약속 장소에서 도욱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과도 하겠지만, 해명해야 할 부분들이 있었다. 사실 최성준이 내려던 기사는 그러한 내용이 아니었다.

정정 보도로 나간 기사가 본래 최성준이 썼던 내용이었다.

자신이 아이돌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때문에 아이돌이라는 카테고리에 속해 있다는 것만으로 삐딱한 태도로 인터뷰를 진행한 것도 사실이었지만, 기사까지 그렇게 내보낼 생각은 없었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최성준은 인정하기 싫었어도 도욱을 다시 봐야만 했다.

어떤 식으로 삐뚤게 질문해도 되돌아오는 답들은 하나같이 올곧았다. 아이돌에 대한 선입견도 ‘진짜’ 앞에서는 별수 없이 스러졌다.

최성준의 기사를 난도질한 건 부장이었다.

“이래 가지고 클릭 수 유도하겠어? 최 기자. 강도욱 빠돌이야?”

부장에게 기사 검토를 넘겼다가 돌려받은 최성준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내면······.”

“뭐! 최 기자가 사회부 기자하다가 와서 잘 모르나본데, 이래야 팔려. 이래야.”

부장의 말 그대로였다.

부장이 편집한 대로 기사가 나가자 기사는 엄청난 클릭수를 기록했다. 동시에 강도욱의 인성에 대한 논란이 빠르게 확산됐다.

정정 기사를 낼 수 있어서 최성준으로서는 오히려 다행이라는 심정이었다.

그렇지만 최성준은 그런 식의 질문으로 인터뷰를 진행한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제대로 사죄하고 싶었다.

도욱의 기억대로 그는 서강준에게 학교 폭력 피해를 당한 피해자의 형이었다.

최성준의 동생은 서강준에게 교묘한 수법으로 학교 내에서 폭력을 당하며 신체와 정신이 피폐해져 갔다.

안 그래도 유약했던 최성준의 동생은 서강준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했다.

자살은 다행이 미수에 그쳤지만, 정상적인 사회 활동은 불가능했다. 학교를 자퇴한 후 동생은 방에만 틀어박힌 채 살고 있었다.

그러한 막내를 지켜보다 최성준을 비롯한 가족들들은 충격과 실의 속에 빠져 살아야만 했다.

그러나 서강준이 워낙에 교묘하게 괴롭혀온 탓에 고소를 진행할 수도 없었다. 질 게 뻔한 싸움이었다.

그런 와중에 서강준이 아이돌로서 데뷔를 한 것이었다.

사회부 기자로 취직해 일하던 최성준은 동생이 자살 시도를 했을 때만큼이나 충격을 받았다. 동생의 삶을 짓밟아 놓은 놈이 방긋 방긋 웃으며 텔레비전에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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