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
이슈메이커 (3)
일단 용수철 피디는 케이케이 멤버와의 듀엣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용수철 피디가 도욱과의 작업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것이 ‘화제성’인 지점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만했다.
그러나 도욱이 추천한 멤버를 듣고는 고개부터 갸웃했다. 맘에 들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태형 군이라······.”
“네.”
“태형 군은 더 어린 이미지이지 않나요? 숫기도 별로 없고. 모성애를 불러일으키는······. 그런 쪽이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요. 실제 제가 봤던 태형 군 이미지도 그렇고.”
“아무래도 그렇긴 하죠.”
“그런데 왜······.”
용수철 피디가 미간을 모았다. 고심하는 표정이 무척이나 험악했다.
박태형이라는 말에 호감 어린 시선을 보내던 현지는 이내 용수철 피디의 눈치를 보며 표정 관리를 하는 중이었다.
“태형이의 그런 이미지와 합해지면 시너지 효과가 날 수도 있을 것 같고······.”
용수철 피디가 더 말해보라는 표정을 지었다.
“거기에 태형이 무대 위에서는 달라지는 거. 아시잖습니까?”
녹음실에서나 회사 복도 등, 스치듯 만나면 박태형은 늘 쭈뼛거리며 인사를 해 왔었다. 크게 의견을 내는 법도 없는 멤버였다.
그렇지만 무대 위에 올라가면 누구보다 컨셉을 잘 소화해내며 달라진 눈빛으로 춤을 추던 박태형을 용수철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음. 그렇긴 하죠.”
“그리고 혼자서 이런 식의 컨셉을 소화하면 너무······.”
“너무?”
도욱은 말을 골랐다. 자리에 함께 있는 현지를 깎아 내리는 말이 되어서는 안 됐다.
실제로 도욱은 현지의 능력치는 높게 생각하고 있었다.
예쁘장한 외모에 노래 실력이 조금 부족하긴 했지만, 춤 실력 하나만큼은 단번에 사람들을 사로잡을 정도로 뛰어났다.
웬만한 남자 가수만큼 파워풀한 무대를 선보이는 현지였다. 무대 장악력도 뛰어났다.
그런 현지였기 때문에 헐벗은 듯한 무대의상을 입혀 ‘섹시’한 이미지만 부각시키는 것도 아쉬운 일이었다.
물론 섹시한 이미지만 부각되는 데에는 용수철 피디 및 원미닛 회사의 기획 문제도 있었지만, 현지가 풍기는 분위기가 워낙 그런 쪽인 것도 이유였다.
현지 본인의 분위기를 바꾸라고 할 순 없어도, 기획이 그 이미지를 잘 다듬어줄 필요는 있었다. 그게 회사나 프로듀서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섹시한 이미지로만 현지 씨의 이미지가 고정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내가 원하는 이미지가 바로 섹시함이에요.”
역시 용수철 피디는 예상대로 확고한 자신만의 입장이 있었다.
“거기에 더해서,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요. 단순한 섹시가 아니라···.”
용수철 피디가 까칠하게 돋아난 턱수염을 문지르며 도욱이 하는 말들에 대해 생각했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현지가 나섰다.
“그 멤버분이 춤 정말 잘 추시죠?”
도욱이 끄덕였다.
“네. 저희 태형이랑 현지 씨가 함께 무대에 서면 완성도 높은 무대가 될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전히 풀리지 않은 표정으로 용수철 피디가 말했다.
“얼마 전 도욱 군이 펼쳤던 무대 같은 느낌이 되는 거군요?”
“조금 더 파워풀한 느낌일 것 같아요. 아무래도 춤이 부각되고 할 테니.”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군요.”
도욱은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억지로 용수철 피디를 설득할 생각은 도욱도 없었다.
도욱이 그리는 그림이 그러한 무대라는 것만 용수철에게 전할 생각이었다. 선택은 용수철의 몫이었다.
“그냥 제 의견일 뿐이니까요.”
도욱이 한 발 물러서자 용수철이 더욱 고심하는 얼굴이 되었다.
“설사 용 피디님이 괜찮다고 하셔도 회사나 태형이 본인의 이사도 중요한 거고······.”
말을 흐리는 도욱이었지만, 용수철은 케이케이 내에서 도욱의 입지를 이미 알고 있었다.
도욱이 밀어붙인다면, 성사될 가능성이 높은 프로젝트였다. 애초에 도욱도 조건이나 일정이 말이 되지 않으면 꺼내지 않았을 얘기라는 것도 알았다.
“도욱 군 생각엔 현지의 솔로보단 두 사람 듀엣이 정말 나을 것 같나요?”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전 그게 피디님께 위험부담도 훨씬 덜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맞는 말이었다. 용수철 피디는 어느새 도욱의 말에 수긍하고 있었다.
“아, 그리고.”
도욱이 생각났다는 듯 덧붙였다.
“듀엣이란 말은 약간 잘못됐던 것 같습니다. 현지 씨 솔로에 태형이가 피처링을 하는 형태로 가는 게 맞겠죠.”
“피디님~ 전 좋은 것 같아요옹~!”
용수철 피디가 도욱의 말에 수긍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자 현지가 눈치 빠르게 말했다.
애교 섞인 말투였지만, 현지도 가수였기 때문에 욕심이 있었다. 얼핏 들어도 솔로가 아닌 박태형이 들어오게 되면 화제성도 커지고, 퍼포먼스적으로 더 많은 걸 보여줄 기회 같았다.
***
숙소로 돌아온 도욱은 따로 박태형을 거실로 불렀다. 다른 멤버들은 각자의 일로 숙소를 비운 상태이거나, 자신의 방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도욱은 우선 박태형의 의사를 묻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아직 도욱 자신이나 정윤기 등 다른 멤버들에 비해 인지도가 약한 박태형이었다. 현지의 앨범에 참여함으로써 박태형을 제대로 띄워 볼 생각이었다.
‘그런 능력이 박태형에겐 확실히 있어.’
박태형이 자리에 앉으며 의아한 얼굴을 했다.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냥 물어볼 게 있어서. 시상식 무대 하느라 요즘 힘들었지?”
“으응? 아냐······. 무대 서는 거 재밌어.”
도욱이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무대에서 춤을 출 때 가장 빛이 나는 멤버였다.
도욱은 박태형의 대답을 들으며, 어쩌면 답은 정해져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태형이 무대에 설 새로운 기회를 거절할 리 없을 듯했다.
“원미닛 현지 씨 알아?”
“응? 알지. 용 피디님이 만든 그룹······. 맞지.”
“어, 이번에 현지 씨가 앨범을 낸다고 하더라고.”
도욱은 그렇게 박태형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무대의 그림까지. 박태형은 자신이 잘 해낼 수 있을까, 하고 조금 물러서다가도 해보고 싶기도 하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예전 같았으면 물러서기만 했겠지만, 이제 박태형도 어느덧 ‘케이케이’의 박태형으로서 자신감이 차 있는 상태였다.
도욱은 박태형에게 설명 후, 앨범제작팀 심준 팀장과 오백호 실장에게도 이 일에 대해 의논했다.
모두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다만, 솔로 앨범을 기획했던 용수철 피디나 현지가 박태형의 피처링을 반기지만은 않을 거라는 의견도 나왔다.
시선이 분산될 수밖에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부분은 걱정할 것 없었다.
이미 첫 솔로인지라 ‘화제성’에 중점을 둔 용수철 피디였다. 용수철 피디도 어느 정도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또 한 가지 문제점으로 제기된 것이 스캔들 문제였다.
도욱과 이진리 무대를 준비하며 가장 조심했던 부분이기도 했다. 도욱은 오백호 실장의 질문에 웃었다.
이후에 둘을 함께 세워 보면 알겠지만, 두 사람은 스캔들 날 일이 없을 거라는 게 도욱의 확신이었다.
어쨌든 도욱은 일을 빠르게 추진했다. 용수철 피디의 작업실을 오가며 곡 작업에도 열을 올렸다. 현지와 박태형이 작업실에 함께 와 의견을 주고받기도 했다.
두 사람은 무엇보다 무대 위에서의 안무를 준비하는 데 힘썼다. 이 분야로는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이진리의 안무팀까지 용수철 피디가 섭외해 놓은 상태였다.
***
또 한 번 새해가 밝았다.
L 면세점의 새로운 모델로서 케이케이가 한복을 입고 세배를 하는 사진 등이 공개되자 팬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세배를 했으면 세뱃돈을 받아가야지..왜 안 받아가니..내 손에 현금있는데..
-으 한복 입은 거 너무 귀엽다ㅠㅠㅠㅠㅠㅠ
-나만 나이 먹고 애들은 안 먹나???
-케이케이 같은 아들 낫구 싶다..
-남편은 있고?
-남친부터 있고?
-키링들 잔인하네!!!
-교복, 치킨, 면세점이라니,, 케이케이 인기 넘사라능~~~
-도욱이는 한복 입혀 놓으니까 조선시대 선비라고 해도 믿겠어
-최소 사대부 가문 장손
-왕족ㅇㅇ
-도욱이 사극소취ㅠㅠㅠㅠ
동시에 케이케이의 활동을 기다리고 있던 팬들에게는 혼란스러운 소식 하나가 더 도착했다. 원미닛 현지의 솔로앨범 타이틀곡에 박태형의 피처링이 들어간다는 소식이었다.
단순 피처링이 아니라 음악방송 무대까지 활동 기간 동안 함께한다는 소식에 팬들은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른 멤버들에 비해 개인 활동이 워낙 없었던 터라 박태형의 활동을 기다렸던 박태형의 팬들로서는 기쁜 소식이었다.
하지만 다른 것도 아닌 여자 아이돌 그룹의 멤버, 그중에서도 무대 위에서 섹시함이 줄줄 흐르는 현지와의 무대라고 하니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프로듀싱에 도욱이 참여한다는 소식도 함께 알려지면서 팬들은 긍정적으로 두 사람의 무대를 기다렸다. 일단 믿고 보자는 것이었다.
기대와 우려 속에서 두 사람의 무대가 공개되는 첫 방송일이 훌쩍 다가왔다.
대중들로서는 오랜만에 보는 남녀 혼성 무대였기 때문에 기대가 있었다. 또 케이케이 음악에 대한 기대치가 이미 상당한 상태였다.
도욱과 용감한외동이 함께 작업한 대표적인 곡으로는 ‘Very Sorry’가 있다는 기사가 연달아 나갔고, ‘Very Sorry’를 잘 아는 대중으로서는 더욱 현지가 들고 나올 노래를 기다리게 되었다.
***
“오늘 가장 기대되는 무대 중 하나죠! 원미닛 현지 씨와 케이케이 박태형 씨의 만남! 기다리시는 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맞습니다! 지금 현장도 너무나 뜨거운데요!”
“꺄아아아아―!”
“워어어어어! 현지! 사랑해!”
SVS ‘인생가요’ 생방송 현장. 두 사람의 무대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박태형과 현지가 무대 위에서 MC들의 멘트를 들으며 무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현지를 응원하기 위해 모인 원미닛 멤버들과 용수철 피디, 그리고 박태형을 응원하기 위해 대기실을 찾은 도욱과 정윤기, 석지훈이 뚫어져라 대기실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만나보시죠! 더블 퀵(Double-quick)!”
케이케이 무대 때와는 달리 남성들의 환호 소리도 섞여 들었다. 함성과 함께 무대 조명이 켜지며 두 사람의 무대가 시작됐다.
용감한외동과 도욱이 공동 작사, 작곡한 ‘더블 퀵(Double-quick)’은 빠른 템포의 팝 댄스곡이었다.
원래는 남자를 유혹하는 여자를 테마로 용수철 피디가 가사를 쓰려던 것을 도욱이 작업에 참여하고, 박태형의 파트가 생기면서 서로를 유혹하면서도 동시에 누가 더 빠른지, 최고인지를 승부하는 듯한 이중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가사가 되었다.
동시에 용감한외동 피디 특유의 빠르고 반복되는 비트를 도욱이 약간 변형하면서 훨씬 세련되고 고급진 분위기의 댄스곡이 되었다.
빠르게 너에게 다가간다, 더블, 더블 퀵!
너를 내려다 보는 시선―
내가 너를 보는 시선―
두 사람이 대결하듯 무대 위를 휘저으며 파워풀한 댄스를 이어나갔다.
각자의 섹시함은 어필 되면서도 두 사람을 엮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신기한 무대였다. 대결하는 듯한 컨셉이 되어서 그런 미묘할 수 있었던 지점을 피한 듯싶었다.
두 사람 다 노래 실력이 엄청나게 뛰어난 편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AR이 깔린 상태에서 하는 라이브여서 무대를 즐기는 데 전혀 문제되는 부분이 없었다.
현지가 높은 하이힐을 신은 채로 웨이브를 하고, 허리를 튕기는 장면에서 모두 입을 벌렸다.
섹시하면서도 동시에 ‘멋있다’는 말이 나왔다.
막냇동생처럼 순한 인상의 박태형이 순간마다 표정을 바꾸며 현지를 제압하려는 부분에서 케이케이 팬들은 손으로 입을 막으며 감탄할 따름이었다.
특히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현지를 쏘아 보는 눈빛을 했을 때는 모두 박태형에게 저런 면이 있었나 싶었다.
몸을 흔들고 싶어지는 노래였다. 용감한외동과 도욱, 모두 대중성에서는 밀리지 않는 감각을 가지고 있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거기에 강렬한 인상이 남을 수밖에 없는 무대까지.
무대를 마치고 두 사람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장면이 클로즈업 되는 순간, 모두 환호를 내질렀다.
“확실히 무대에만 서면 달라지네.”
보고 있던 용수철 피디가 박태형을 칭찬했다.
“이중인격자 아이가.”
“형도 참!”
정윤기와 석지훈도 같은 멤버인 박태형의 뛰어난 무대에 뿌듯함을 드러냈다.
도욱도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에 기뻤다.
곧 문을 열고, 박태형과 현지가 들어왔다. 두 사람도 성공적인 무대였음을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잘했다, 잘했어!”
“솔로 데뷔 축하해에에에~!!!”
케이케이 멤버들돠 원미닛 멤버들의 축하 인사가 이어졌다.
원미닛 멤버들은 꽃다발까지 준비해온 모양인지 현지에게 꽃다발을 건넸다. 그중 한 멤버가 박태형에게도 꽃을 건넸다.
박태형을 데리고 고기를 먹으러 갈 생각에 다른 건 준비해오지 않은 케이케이 멤버들은 조금 민망해하며 그저 박태형의 어깨를 두드리거나, 포옹했다.
박태형은 꽃다발을 든 채로 활짝 웃었다.
“이따 방송 끝나면 형이 쏜다!”
정윤기의 말에 박태형이 고맙다고 인사를 전했다.
도욱도 한마디 하려던 때였다. 오백호 실장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다른 연락도 워낙 많이 오는 터라 회사 사람들에게서 오는 메시지들에만 알림을 따로 설정해 놓은 도욱이었다.
[도욱아 너 뉴욕가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