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96화 (96/225)

# 96

이슈메이커 (2)

의외의 대답에 심준 팀장이 조금 놀란 눈을 했다.

물론 심준 팀장은 도욱의 의견에 전적으로 따를 생각이었다. 이건 도욱 개인에게 들어온 프로듀싱 제안이었다.

도욱이 용수철 피디를 도와 이름을 날린다면, 그건 그거대로 좋겠지만 사실 회사로서는 굳이 도욱이 다른 회사 그룹의 프로듀싱을 돕는 것보단 어차피 다른 가수의 곡을 한다면 몬스터나 밀키웨이에게 곡을 주는 게 나았다.

그럼에도 심준 팀장은 도욱이라면 용수철 피디와의 인연을 생각해서라도 함께 작업해보고 싶다고 할 줄 알았다.

“그래?”

“네. 그냥 조금 더 생각할 시간을 주셨으면 좋겠는데······.”

도욱의 말에 심준 팀장이 끄덕였다.

“그래, 용 피디한테는 그렇게 전하마.”

“감사합니다.”

“근데 뭐가 마음에 걸려서 그래? 케이케이 앨범 준비 바로 들어가야 해서?”

도욱은 고개를 저었다.

케이케이의 다음 앨범은 내년 봄 정도로 계획되어 있었다.

공백기가 길어진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었지만, 도욱은 다음 앨범을 다시 한 번 케이케이의 위치를 다르게 할 지점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때문에 시간을 두고 여러 지점을 고민하려고 했다.

힛 엔터테인먼트에서도 이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멤버들 개개인을 조금 더 활용할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기도 잘 맞아 떨어졌다.

아무튼 다음 앨범 준비로 인한 시간 부족은 이유가 아니었다.

“아뇨, 그냥. 어떤 작업이 될진 모르겠지만 다시금 작업하는 거니까. 심사숙고하는 쪽이 좋을 것 같아서요.”

“그래. 알겠다.”

“네. 잘 말씀해주세요.”

도욱은 말하고는 앨범제작팀 회의실을 나섰다.

도욱이 거절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한 이유는 하나였다.

‘용수철 피디는 지금 한껏 어깨가 올라가 있는 상태다.’

게다가 용수철 피디와 함께 작업했을 당시에는 도욱이 미성년자였던 데다가 처음 작곡한 곡을 세상에 내놓던 때라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도욱이 용수철 피디에게 좋은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도 했지만, 작업을 하는 과정에 있어 기술적인 부분 등에서는 도욱이 용수철 피디의 도움을 더 많이 받았다.

명백하게 김우연과의 관계처럼 스승과 제자까지는 아니었지만 그 비슷한 관계였다고 볼 수 있었다.

‘다시 작업하게 된다고 해도 용수철 피디 위주로 돌아가게 될 확률이 크다.’

도욱의 의견을 아예 받아들이지 않을 거란 얘기가 아니었다.

용수철 피디가 주가 되고, 도욱이 부가 될 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나올 결과물이 무엇인지 도욱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성공은 거두지만, 좋은 앨범이었냐고 물으면······ 대답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전에 용수철 피디가 원미닛의 멤버로 솔로 앨범을 냈을 때를 기억하며 도욱은 생각했다. 당시 원미닛 멤버는 솔로 앨범으로 이진리를 이을 섹시 스타로서의 면모를 굳혔다.

그러나 너무 과하게 섹시한 컨셉이었다.

섹시하면서도 대중에게 인정받은 이진리와는 다른 길을 가게 될 수밖에 없었다.

‘과한 점을 조금 눌러줄 필요가 있다. 그렇게만 돼도 인기도 얻으면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거다.’

도욱은 생각했다.

때문에 미안한 일이지만 어느 정도 주도권을 잡은 채 작업에 참여하고자 도욱은 용수철에게 생각해 본다는 식으로 입장을 전하고자 한 것이다.

용수철 피디의 제안 자체는 도욱에게도 좋은 기회였다.

‘케이케이가 아닌 다른 그룹을 프로듀서 해 볼 수 있는 기회······. 그러면서도 용수철 피디와 함께이기 때문에 리스크도 적다. 내 실력이나 앞으로의 갈 길에 대해서 생각해볼 좋은 기회가 될 거다.’

***

심준 팀장의 이야기를 전달받은 용수철은 며칠 후, 도욱을 자신의 작업실 근처 식당으로 불렀다.

밥 한번 먹자는 식의 점심 약속이었지만, 약속 장소가 용수철의 작업실 근처였다. 의도는 명백하다고 볼 수 있었다.

식사 와중에 용수철은 도욱에게 자신과의 작업이 부담스럽냐는 식으로 물어왔다.

용수철은 생각을 해보겠다는 도욱의 말이 돌려 말한 거절인지, 아니면 진심으로 생각이 필요한 문제인지 알고 싶은 듯했다.

“제가 다른 가수 프로듀싱을 한다는 게 좀······.”

“도욱 군 실력이면 문제없을 거요. 너무 과한 걱정인 것 같아요.”

“케이케이와는 다른 작업이다 보니 컨셉 같은 부분에서도 피디님과 의견이 다를 수도 있고요.”

도욱이 슬쩍 말을 흘리자 용수철 피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잘 얘기를 해나가면 충분히 해결 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용수철의 말에 도욱은 애매한 표정으로 답했다.

용수철 피디는 도욱이 현재 가지고 있는 고민을 이해했다.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도욱을 설득하고자 했다.

원미닛 솔로 앨범을 기획하며 용수철은 ‘화제성’ 부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최대한 원미닛 멤버의 섹시한 모습을 부각할 계획이기도 했고, 동시에 도욱이라는 현재 최고로 핫한 스타를 공동 프로듀서로 영입해 도욱의 유명세에 업혀 갈 생각이기도 했다.

그 가운데 과연 도욱이 섹시한 음악도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용수철 피디에게는 있었다.

그러나 도욱과 이진리와의 무대를 보며 도욱이 충분히 그러한 컨셉에도 이해도가 높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때문에 그길로 힛 엔터테인먼트에 제안을 하러 간 것이기도 했다.

역시나 식사를 마친 후, 용수철은 도욱에게 작업실을 보여주겠다며 도욱을 작업실로 초대했다.

용수철은 자연스럽게 작업실로 불러들여 도욱에게 곡을 들려주고, 원미닛 멤버도 보여줄 작정이었다.

자신이 작업 중인 비트를 들으면 도욱도 분명히 성공 가능성을 알아보고 참여하게 될 거라는 용수철의 계산이 깔려 있었다.

그만큼 현재 자신의 음악에 자신만만하기도 했다.

“와··· 피디님.”

도욱은 작업실에 들어서며 진심으로 감탄했다.

용수철 피디가 새로이 마련한 작업실에 방문한 건 도욱도 처음이었다.

소문은 들었지만, 실제로 보니 더 어마어마했다. 단순히 작업실이 아니라 커다란 전시장 같은 느낌이었다.

용수철 피디는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들의 레코드판과 CD 등을 한쪽 진열장에 진열해 놓았다. 또 그러한 가수들의 신발, 재킷 같은 애장품들을 박물관처럼 유리관 안에 넣어 놓았다.

도욱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작업실을 구경했다.

검은색 벽지가 칠해진 게 딱 용수철 피디답기도 했다.

“작업실이 굉장하네요.”

“처음으로 갖는 제대로 된 ‘내’ 작업실이니까 신경 좀 쓴 거요.”

용수철 피디의 입꼬리가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화려하게 꾸며놓은 작업실은 용수철 피디의 자부심이기도 했다.

나이트 DJ 출신이었으나 이제는 당당히 전 케이케이의 프로듀서, 현 원미닛의 기획자이자 프로듀서였다. 그가 이 자리에까지 올라온 자부심은 다른 이들은 상상하지 못할 것이었다.

도욱은 이후에 용수철 피디가 자신의 곡들을 자가복제하며 대중들에게 외면 받을 시기가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머지않은 미래였다.

때문에 도욱은 작업실에 감탄하면서도 그때에 가면 지금의 높아진 자존심에 많이 금이 갈 것이 걱정되었다.

그렇다고 미리 얘기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말해봤자 용수철과 괜한 의만 상할 일이었다.

‘지나가듯 말만 해볼 수 있겠지······.’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는 말이 있었다. 어차피 용수철 피디가 조금 외면을 받게 되더라도 그전에 세상에 내놓은 많은 곡들이 사랑을 받은 후였다.

어마어마한 부와 꾸준한 음원 수입 등이 보장된 이후였기 때문에 도욱은 그저 그 시기를 용수철이 잘 이겨내길 바랄 뿐이었다.

이전에 일단 현재 용수철이 기획하고 있는 솔로 앨범을 조금 더 좋은 방향으로 함께할 수 있게 되길 바랐다.

“도욱 군도 언젠가 이런 작업실 마련하면 좋을 텐데요.”

“하하, 저는 뭐······.”

“회사에서 정산은 잘 해주고 있나요?”

힛 엔터테인먼트에서 벗어난 곳이어서 그런지 용수철 피디가 조금 더 자유롭게 도욱에게 물었다.

도욱이 답했다.

“아직 그룹에서 정산은 못 받았는데. 저는 음원 수입이 있으니까요.”

“그렇군요······.”

“네. 아마 내년 쯤 돼야 제대로 정산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획사 쪽에서도 연습생 때부터 또 그 이후로도 투자한 금액이 있기 때문에 일 년만에 그룹 멤버들에게 제대로 수익 정산을 해주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때문에 도욱의 계산대로라면 내년부터 제대로 정산금이 나오고, 멤버들에게도 이렇다 할 수익이 생길 예정이었다.

“제대로 따져서 받아야 합니다. 워낙 제대로 안 하는 기획사들이 많아서. 나와 보니까 그렇더군요.”

용수철의 말에 도욱이 끄덕였다.

그런 회사가 많다는 것을 도욱도 잘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해체하게 된 아이돌도 몇 보았으니까······.’

그러나 도욱은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힛 엔터테인먼트는 큰 기획사는 아니였지만, 정산을 미루거나 해주지 않는 기획사는 아니었다.

‘이후에 대표가 되는 조애니 부장이 그 부분에 있어서 확고하다는 얘기가 많았지.’

케이케이에 속하게 된 도욱으로서는 확실히 행운이었다.

‘아니었다면 또 여러 가지 수를 써서 싸워야 했을 테니······.’

그러한 생각을 할 때, 작업실 문이 열리며 검은색 긴 생머리의 여성이 들어왔다.

원미닛 멤버 이현지였다.

“안녕하세요, 피디님. 안녕하세요.”

이현지가 용수철 피디와 도욱에게 돌아가며 인사했다.

“그래 현지왔구나. 도욱 군, 여기 현지. 원미닛 멤번데 혹시 본 적 있으려나 모르겠네.”

“아, 안녕하세요. 음악방송에서 한 번 뵌 적 있어요.”

“기억해주시는구나~ 그때 인사드렸었죠~!”

“네. 이렇게 또 뵙네요.”

무대 화장을 지우고 은은한 화장만을 한 현지는 도욱과 동갑인 딱 스물한 살로 보였다.

물론 보통의 스물한 살은 입기 힘든 검은색 가죽 핫팬츠에 그물로 된 망사 스타킹을 신고 있기는 했다. 거기에 풍만한 가슴이 다 드러날 만큼 딱 붙은 데다 배꼽이 들어날 것 같은 티셔츠까지···.

누군가에게 어필을 하기 위한 복장이 아닌, 단순히 현지 본인의 취향인 옷 같았으나 도욱은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단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번에 솔로 앨범 기획하고 있다는 멤버가 이 친구야. 현지.”

“도욱 씨가 정말로 피디님이랑 같이 작업 해주시는 건가용?”

“아직 확정은 아니다, 현지야.”

용수철 피디가 그렇게 말하며 흐뭇한 얼굴로 현지를 보았다. 애교 넘치는 성격에 섹시한 모습까지. 남자들이라면 좋아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기는 했다.

용수철 피디가 이때다 싶었는지 도욱에게 준비 중인 비트를 들려주었다.

도욱은 딱 붙어오는 현지와 조금 거리를 둔 채, 진지한 모습으로 용수철이 들려주는 비트를 들었다.

역시 한창 물이 오른 용수철 피디였다. 단번에 고개를 흔들어 지고 싶을 정도로 좋은 비트였다. 여기에 어떤 멜로디가 추가 되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용수철이 하고자 하는 음악의 색깔도 분명했다.

“대충 이런 식인데······. 어떨 것 같아?”

“좋은데요? 역시 용 피디님이네요.”

도욱이 그렇게 말하자 용수철 피디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문득 도욱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생각이 있었다.

‘그래 그렇게 하면······!’

섹시 컨셉이 과해지는 것을 막으면서, 동시에 케이케이에게도 도움이 될 만한 방법인 듯했다.

“그런데 피디님.”

도욱의 말에 용수철이 의아한 눈을 했다. 현지도 눈을 깜박거리며 도욱의 말에 집중했다.

“이런 컨셉의 곡이라면, 솔로보다는 듀엣이 좋을 것 같습니다.”

“듀엣?”

“네.”

“누구랑 말이요?”

현지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자신 혼자 집중을 받을 수 있는 기회였는데, 그것을 다른 멤버와 나누는 건 별로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도욱의 대답에 현지의 조금 찌푸려졌던 얼굴이 다시 펴졌다. 그러나 오히려 용수철 피디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 친구가······ 어울리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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