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
스포트라이트 (2)
도욱은 의아했다.
“연기대상이요? TBN에는 시상식 따로 없지 않나요?”
아무래도 케이블 방송사가 공중파 방송사에 비해 이름값이 떨어진다는 평가는 이런 부분에서도 차이가 나기 때문이었다.
케이블 방송사인 TBN은 가요 시상식 무대는 마련되어 있었지만, 아직 연기 시상식이나 예능 등의 시상식을 치룰 만큼의 프로그램 수나 명성을 갖고 있진 못했다.
“그게, 네가 아니라······.”
오백호 실장은 멋쩍어하며 휴대폰 화면을 도욱에게 보여주었다.
화면에는 MVC 연기대상 신인상 후보에 서준의 이름이 올랐다는 기사가 떠 있었다.
“아······.”
쉽게 예상할 수 있던 일이었다.
올해 MVC 드라마 중 가장 흥행한 드라마가 ‘해와 달의 연인’이었다. MVC 연기대상 대부분의 상이 ‘해와 달의 연인’ 출연진에게 돌아갈 것임이 분명했다.
신인상 후보 중 서준의 인기가 가장 많았다. 게다가 연기도 나쁘지 않았으니 신인상 수상은 확정이나 다름없었다.
서준의 소식을 보자마자 오백호 실장이 도욱을 부른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도욱이 서준을 신경 쓰고 있다는 사실은 오백호 실장도 이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오백호 실장 역시 케이케이의 담당자로서 맨투맨은 중요하게 지켜보고 있는 그룹 중 하나였다.
게다가 도욱과 서준은 그룹을 떠나서도 따로 둘을 비교하는 여론이 상당수 존재했다.
오백호 실장은 도욱과 시선을 교환하곤 말했다.
“우리는 내년 봄에 하는 백송 시상식에서 신인상 받으면 되는 거다.”
줄여서 ‘백송’이라고도 부르는 ‘백송예술대상’은 TV와 영화를 포괄해 시상을 하는 시상식으로 대중문화인들의 축제였다.
특히 TV 부문의 경우 자사 방송사 프로그램에게만 주는 각 방송국의 시상식과는 달리 전 채널을 합해 그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프로그램과 배우들에게 상을 주는 시상식이었으므로 어떻게 보면 상에 부여된 권위가 높다고도 볼 수 있었다.
“받을 수 있으면 좋죠.”
“누가 봐도 너야. 서준 신인상 받고 나면 아라 쪽에서 언플 장난 아니게 할 텐데······. 그때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당연하죠.”
도욱의 대답에 오백호 실장이 끄덕였다.
오백호 실장도 도욱이 그런 일로 낙담하거나 하진 않을 걸 알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미리 언질을 주는 것이었다.
맨투맨이 케이케이에게 밀리고 있는 때에 서준이 도욱보다 먼저 신인상을 받게 되면 대놓고 서준이 도욱을 눌렀다는 식의 기사를 낼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놓고는 아니더라도 은근하게 한두 줄씩 덧붙여 기사를 낼 가능성은 충분했다.
“아쉽네. 다음번엔 공중파로 가자! 도욱이~!”
“근데 ‘준비하라 1999’ 인기가 워낙 많았어서 올해는 도욱이의 해였지! 상 안 받아도 다 알지!”
옆에서 듣고 있던 김원과 안형서가 한마디씩 거들었다.
도욱을 격려하는 말이긴 했지만, 괜한 말은 아니었다. 실제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었다.
***
그러한 사실은 도욱 주변인들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이진리가 도욱과 무대를 함께하고 싶다고 한 것부터가 그랬다. 게다가 얼마 후, 도욱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영화제인 <비룡영화제>에 시상자로서 초청받았기 때문이었다.
영화인의 축제인 <비룡영화제>에 아이돌 그룹 멤버이자, 드라마로 갓 데뷔한 신인 연기자인 도욱이 시상자로 선정된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도욱이 어느 분야에서건 인정한 올해의 대세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홍콩에서 케이케이의 콘서트를 마친 도욱은 다른 멤버들보다 빠른 시간대의 비행기를 새로 끊어 일찍 귀국해야 했다.
<비룡영화제>에 참석해 ‘인기상’을 시상하기로 한 날이었다.
“영화제라······.”
영화는 도욱에게 너무나 생소했다.
가요 쪽에는 평소에도 관심이 많았었고, 드라마는 도욱도 집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장르였다. 그러나 영화는 또 느낌이 달랐다.
도욱이 본 영화라고 해봐야 추석이나 설날에 해주는 특선 영화나 큐 엔터 시절 회사에서 단체 관람한 영화가 전부였다.
독립영화에 대한 관심은 전무했고, 아무래도 영화가 드라마보단 장벽이 있는 느낌이었다.
그나마 최근 대한예술종합학교에 진학해 여러 과제들을 수행하면서 영화에 대한 이해를 해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 영화를 배우면 배울수록 심오한 예술의 세계라는 느낌을 져버리기 힘들었다.
특히 영화인 출신 교수들의 연기 세계나 가치관 등은 아직까진 도욱이 범접하긴 힘든 영역이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결국 ‘사람’에 대해 다룬다는 기본 틀은 노래든, 드라마든, 영화든 같다는 것이 도욱의 생각이었다.
샵에서 의상을 체크하고 메이크업을 받은 후, 도욱은 영화제 장소에 도착했다.
오늘 도욱은 그 어느 때보다 차려 입고 있었다. 가수 생활을 하면서도 수트를 꽤 입었지만, 아이돌로서 젊은 느낌을 살려 입은 수트와는 수트의 모양새부터가 달랐다.
머리도 포마드를 발라 앞머리 한 올 남기지 않고 넘긴 상태였다. 훤하게 드러난 이목구비가 더욱 빛을 발하고 있었다.
벤 안에서 바깥을 보자 레드카펫이 깔린 길이 보였다. 그 앞에는 기자진과 레드카펫을 보기 위해 대기하는 팬들이 잔뜩 있었다.
영화배우 중 누군가 레드카펫 위에 서 있는지 쉴새없이 플래시가 터지고 있었다.
도욱은 잠시 후에 차에서 내려 레드카펫에 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레드카펫은 처음이지?”
“네. 화면으로만 보다가 이렇게 보니까 신기하네요.”
“나중엔 네가 수상자로 와야지.”
“그럼 좋죠.”
오백호 실장과 가볍게 대화를 나누고 도욱이 벤 문을 열고 나가자 도욱 쪽으로 플래시가 터지기 시작했다.
취재를 나온 방송사 카메라들도 따라붙었다.
도욱의 등장에 레드카펫에 모여 있던 팬들의 소리가 두 배 정도로 커졌다.
영화배우 팬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도욱을 보기 위해 케이케이 팬들도 상당히 모여 있었다. 거기에 일반 다른 배우들의 팬들도 도욱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배우들이 도착했을 때보다 반응이 클 수밖에 없었다.
“왜 저렇게 잘생겼어?”
“뭐야, 얼굴 완전 대박.”
“누군데?”
“너 모른다고? 강도욱이잖아! 케이케이!”
“헐. 이렇게 보니까 몰라보겠어. 아이돌이라니. 그냥 배우해도 되겠는데?”
“그니까. 저번에 드라마도 대박 났는데 또 작품 안 들어가나?”
도욱이 걸음을 옮기며 레드카펫을 밟아나갈 때마다 가까이에 선 무리들은 입을 벌리고 감탄하기 바빴다.
기자들도 셔터를 누르면서도 웬만한 영화배우 뺨치는 도욱의 외모에 감탄하고 있었다.
도욱을 여러번 봐온 연예 방송관계자나 연예부 기자들도 있었지만, 도욱을 실제로 처음 보는 영화 기자들도 상당수 있었다.
그들 또한 도욱이 연기력만 된다면 충분히 영화로도 진출할 만한 외모라고 생각 중이었다.
“강도욱? 영화 찍은 거 있어?”
영화 전문 잡지 ‘데일리무비’의 카메라 담당이 묻자, 옆에 있던 편집자 겸 기자가 답했다.
“아, 리스트 보니까 시상자에요. 인기상.”
“찍는데 각 죽이네.”
“영화 쪽에서도 콜 가겠어요. 아이돌이라는 장벽 있긴 한데······.”
“한데?”
“근데 대예종 다닌대요. 대예종도 갔는데, 영화 못 할 거 없죠.”
“대예종?”
대한예술종합학교에 재학중이라는 말에 카메라가 놀랄 무렵, 레드카펫 포토월 앞에는 대예종 출신 최고의 명성을 가진 배우 최민석과 도욱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같이 서주세요~!”
“두 분 나란히!”
“여기요!”
“이쪽도 봐주세요! 도욱 씨!”
셔터 소리가 엄청난 속도로 빨라지기 시작했다. 기자들은 지금 찍고 있는 사진이 오늘 레드카펫 사진 중 가장 높은 클릭수를 기록할 것이라 예감했다.
최민석은 인터넷에서 어린 팬들이 많은 건 아니었지만, 그야말로 국민 배우였다. 그리고 도욱은 현재 인터넷 등 젊은층 사이에서 가장 인기 많은 연예인 중 하나였다.
그런 두 사람의 조화는 매우 낯설고도 흥미를 유발하기 충분한 것이었다.
포토월에서 사진을 찍고 나서려던 최민석에게 인사를 건 것은 조금 나중에 도착한 도욱이었다.
도욱은 최민석에게 다가가 반듯하게 인사했다.
처음엔 인사를 해오는 도욱을 낯설게 바라보던 최민석이 이내 표정을 풀고 도욱을 반겨주었다.
순간적으로 누군지 못 알아 본 듯했지만 곧 자신이 면접에서 뽑았으며, 강의중인 수업을 듣는 학생임을 알아본 것이었다.
“자네도 왔나? 영화는 아직 안 해봤다고 하지 않았던가?”
최민석은 무뚝뚝한 표정에 ‘호랑이 선생님’ 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미 그러한 최민석의 표정에 적응한 도욱은 나름대로 최민석이 반가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도욱은 자신감 있게 답했다.
“네. 시상자로 참석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래? 잘됐군.”
최민석이 끄덕이며 포토월을 벗어나려던 때였다. 도욱에게 차례를 넘겨주려던 것뿐이었는데, 기자들이 둘이 같이 서달라고 성화였다.
그렇게 나란히 사진을 찍은 후 두 사람은 다음 배우들을 위해 시상식장으로 향했다.
10분도 채 되지 않아 두 사람의 사진과 도욱의 단독 사진들이 기사로 인터넷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영화제에 참석해 레드카펫에 선 스타들의 사진이 계속해서 업로드 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욱의 사진들은 기자들의 예상대로 높은 클릭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레드카펫 위의 스승과 제자, 국민배우와 아이돌의 만남!>
<영화제도 접수하러 왔습니다! 시상자로 나선 강도욱>
<강도욱 잘생김 이 정도였나?>
거기에 기사 내용도 모두 좋은 내용들이었다.
머리를 모두 넘기고 레드카펫을 걷는 도욱의 모습은 케이케이 팬들에게는 영구 저장해야 하는 사진 중 하나로 손꼽히게 되었다.
팬들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도 도욱은 웬만한 영화배우보다 시선을 더 끌어 잡고 있었다.
-최민석 포스ㄷㄷ 강도욱 인맥도 대단하네
-대예종 출신ㅋㅋ
-강도욱 뭐야 왜 더 잘생겨진 것 같지?
-옷 때문인가?
-머리 다 올렸는데 저 정도..삭발해도 될 듯
-김원빈 후예될 듯
-개오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성기 시절 김원빈 모름?
-김원빈 정도 조각미남은 아니지만 강도욱 정도면 김원빈 자리 노려볼 만하지 않음?
-왜 갑자기 김원빈 소환된 거냐 강도욱 팬들 댓글 그만달아라
-나 남잔데..강도욱 잘생긴 거 사실인 듯
-비교가 아니라 김원빈 정도 잘생기긴 함
-강도욱이 김원빈급은 아니지 않냐?
-누가 김원빈급이랬나 그 정도 잘생겼다는 거지
-잘생긴 거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남편할 수도 없어
-노잼
-최민석..배우님..항상 좋은 연기 감사합니다..
기사 댓글에는 뜬금없이 조각미남으로 이름을 알린 톱배우 ‘김원빈’까지 소환되고 있었다. 의견이 분분했지만, 어쨌든 ‘김원빈’과 정도의 배우 이름이 언급된 것만으로도 사실 나쁘지 않았다.
이후 도욱이 인기상을 시상하는 장면이 방송에 나오면서 도욱은 인기상 수상자와 함께 실시간검색어를 장식했다.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배우만큼이나 많은 관심이 시상자인 도욱에게 쏟아졌다.
영화제에 참석한 감독이나 배우들의 눈에도 도욱의 외모와 분위기는 관심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첫 시상자로서의 하루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
이틀 후, 도욱은 이진리와의 시상식 무대 준비를 위해 연습실로 내려가 몸을 풀고 있었다. 오늘은 이진리가 힛 엔터테인먼트 연습실로 찾아오기로 한 날이었다.
비밀유지를 위해선 팬들이 계속해서 따라다니는 도욱보단 이진리가 움직이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구철민이 연습실에서 혼자 스트레칭을 하고 있던 도욱에게 이진리가 곧 도착한다는 소식을 알렸다.
도욱은 몸 풀던 것을 멈추고 휴대폰을 꺼내 들고 의자에 앉아 이진리를 기다렸다.
휴대폰을 보던 도욱은 가만히 메인사이트를 장식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어제 MVC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서준은 예상대로 신인상을 받았다. 또 오백오 실장의 예상대로 기사에 도욱의 이름이 언급되기도 했다.
그러나 메인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건 서준의 얼굴이 아닌 도욱의 얼굴이었다. ‘시상식 시즌을 더 뜨겁게 할 스타들’이라는 주제로 올라온 칼럼이 인기를 끌면서 메인에까지 걸리게 된 것이었다.
해당 칼럼은 여러 스타들을 언급하고 있었지만, 주인공은 당연하게도 도욱이었다.
그리고 실시간검색어에는 이진리가 올라와 있었다.
도욱은 놀란 눈으로 1위에 올라온 이진리를 클릭했다. 2위에는 다른 맨투맨 그룹 멤버인 유명제가 올라 있었다.
<이진리, 이번에는 띠동갑이다!>
<‘누나라고 불러’ 이진리, 연하 맨투맨 유명제와 연인 사이?>
<이진리의 새로운 그는.. 유명 아이돌 그룹 맨투맨 멤버..!>
이진리의 스캔들 기사가 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