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
스포트라이트 (1)
“그런데 팀장님.”
“응? 그래, 말해.”
“같이 무대하고 하는 사항들 말이에요. 혹시 무대 전에 기사부터 나갈 건가요?”
“어? 나야 아직 얘기 안 해봤지만 그렇게 되지 않겠어? TBN 쪽이나 이진리 기획사 쪽이나 사실 우리도 홍보 기사 빵빵하게 낼수록 좋은 거니까.”
“아······.”
쉽게 생각하면 심준 팀장의 말이 맞았다.
아이돌 그룹에게 민감한 문제 중 하나가 스캔들 문제였다. 때문에 케이케이 멤버들 또한 여자 연예인과의 불필요한 접촉은 최대한 꺼리고 있었다.
도욱도 ‘준비하라 1999’ 촬영 당시 다른 배우들과는 거리낌 없이 지내고 친분도 많이 쌓았지만 상대 여자 배우들과는 아무래도 대화를 나눌 때도 조심했었다.
이진리는 도욱과 열 살 정도 나이 차이가 났다.
이진리에 비하면 도욱이 너무 어리고 까마득한 후배이기 때문에 염문설에 대한 걱정은 별달리 없는 듯했다.
‘하지만 대중들은 생각보다 호기심이 많고, 상상력이 풍부하다.’
도욱은 어떠한 부분에서건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금만 떡밥을 던져줘도 남과 여가 모였다고 하면 일단 엮고 보는 언론들을 생각했을 때도 그게 좋았다.
게다가 아직 지금의 시간에서는 일어난 적 없었지만 이진리는 띠동갑이 넘는 어린 아이돌 그룹 멤버와도 스캔들이 난 적 있었다.
이진리의 이미지가 워낙 섹시하고, 매력있는 이미지이다 보니 그런 일이 실제로 가능했다.
‘그리고······.’
아무래도 괜히 이러쿵저러쿵 떠들 얘기를 먼저 주는 것보단 시상식 당일 공개하는 게 임팩트도 훨씬 클 거라는 게 도욱의 예상이었다.
“왜. 뭐 마음에 걸리는 거라도 있어?”
“다른 게 아니라.”
도욱은 당일 공개가 나을 것 같다는 입장을 심준 팀장에게 말했다.
“그건 사실 내 쪽 일이 아니라서. 팬-마케팅팀 팀장이랑 얘기해보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내일 무대 얘기 나오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쪽이랑도 얘기하게 될 거라서.”
“네, 이후에 말씀드릴게요.”
도욱은 끄덕였다. 우선 방송사나 이진리 쪽과의 협의도 중요한 문제였다.
“그래. 이번에 새로 온 팀장 인상 아주 좋더라고.”
심준 팀장이 이대형 팀장에 대해 언급했다. 도욱은 그런가요, 하고 애매하게 답했다. 아직까지 이대형 팀장에 대한 도욱의 입장은 보수적이었다.
“무슨 연예인해도 되겠던데.”
“잘생기셨더라고요.”
“어. 물론 너만큼은 아니지만. 나 정도는 된달까? 하하.”
심준 팀장의 농담에 도욱이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팀장님도, 참.”
***
다음 날, 도욱은 오백호 실장과 앨범제작팀 권우찬 대리와 함께 이진리의 소속사를 찾았다.
권우찬 대리는 앨범제작팀 내에서 공연을 담당하고 있는 직원이었다.
케이케이 콘서트의 경우에는 전문 공연팀에 외주를 주고 있지만, 힛 엔터 내부의 입장을 외부와 연결하는 일도 하고 있었다.
이후에 힛 엔터테인먼트의 규모가 커지면 공연기획팀을 앨범제작팀 내부에서 따로 뺄 생각이 회사 내부에 있었고, 그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권우찬 대리도 팀장이 될 터였다.
어쨌든 권우찬 대리는 콘서트를 기획할 때 케이케이 멤버들과 회의를 한 적 있었고 도욱과도 이미 일면식이 있는 상태였다.
이진리의 기획사인 더블비 엔터테인먼트는 이진리가 그룹 루비를 나와 솔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세워진 기획사로 대표는 이진리가 아니었지만, 이진리 하나로 돌아가는 회사라고 할 만큼 이진리의 영향력이 지대한 회사였다.
‘한 회사를 먹여 살릴 만큼 대단하다는 거겠지.’
도욱은 생각하며 이진리와 만나기로 한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미리 나와 있던 더블비 엔터의 사원이 도욱과 두 사람을 안내했다.
사무실 문을 열자 먼저 와있던 이진리와 그녀의 소속사 직원, TBN 가요 시상식 담당자가 도욱에게 인사했다.
“오, 왔네요?!”
“아. 안녕하십니까.”
도욱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이진리가 그런 도욱의 모습을 보고는 입꼬리를 올려 환하게 웃었다.
“아유, 듣던 대로 잘생겼네! 들어오니까 사무실이 환해졌어, 막.”
소문대로 털털한 성격의 이진리가 과장된 어투로 도욱을 반겼다.
“준호야, 선글라스 좀 가져와 봐라~!”
자신의 매니저를 부르며 너스레를 떠는 이진리에 사무실에 있던 이들이 모두 웃을 수밖에 없었다. 도욱은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드는 이진리의 모습에 사람들이 왜 이진리를 좋아하는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요즘 제일 바쁜 사람을 직접 불러서 미안해요. 내가 갔어야 하는데.”
“아닙니다. 불러주셔서 영광입니다.”
“아직도 군기가 바짝 들었네? 그쪽 실장님 빡세다는 얘긴 들었는데. 애 너무 잡는 거 아니에요?”
이진리의 말에 오백호 실장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원래 저희 도욱이가 예의가 발라요.”
오백호 실장의 말에 이진리가 뭐 어떻게 믿겠냐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자리를 정리하고, TBN 가요 시상식 담당자가 무대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가장 핫한 스타들의 콜라보레이션 특별 무대로 3분 정도의 무대 시간을 따로 뺄 것이라는 설명에 도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진리는 상세하게 무대 컨셉이나 내용을 상의하기 전, 도욱에게 질문부터 던졌다.
“아직까진 내가 섹시 여가수 타이틀을 버릴 때는 아닌 것 같은데, 도욱 씨 생각은 어때요?”
“네? 물론입니다. 선배님.”
“입에 발린 말 말고요.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좋겠어요. 같이 무대도 할 건데. 서로 잘 돼야죠.”
도욱은 잠시 생각한 뒤, 진지한 얼굴로 답했다.
“진심입니다. 물론 요즘 아이돌 그룹들이 하는 ‘섹시’랑은 조금 다르겠지만요.”
“···달라요?”
이진리가 되물었다. 기분이 나쁘다기보다 순수하게 어떤 점이 다른지 궁금해서 되묻는 듯했다.
“선배님은 선배님만 낼 수 있는 분위기가 있으시니까요. 성숙함 같은······.”
“이 친구 뭘 좀 아는데? 그거예요, 제가 하려는 게.”
이진리가 웃으며 말했다.
“도욱 씨같이 어린 친구랑 무대를 하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거든요. 남녀 간의 긴장감은 어느 정도 주고 싶은데, 또 싼티 난다는 말은 듣기 싫으니까.”
“아······.”
“고급스럽게 섹시한 컨셉을 어필하려다 보니까 성숙한 느낌을 더 살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일부러 도욱 씨 같이 반듯한 이미지를 가진 사람을 찾은 거죠.”
이진리의 의도를 파악한 도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동시에 남자로서의 매력 또한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미 이진리에게는 강력한 아우라가 있었다. 그러한 이진리의 아우라에 밀리기만 해서는 도욱에게 도움이 되지도 않을 뿐더러, 이진리가 하고자 하는 긴장감 넘치는 무대가 만들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노래는 팝송으로 하다가 마지막 20초 정도만 제 신곡이랑 리믹스 하려고 하는데······.”
이진리가 도욱과 관계자들의 반응을 살피며 말했다.
“저는 좋습니다.”
단호하게 답하는 도욱에 이진리가 맘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쪽은 무조건 맞춰간다는 입장입니다. 무리한 것만 없으면요.”
“무리한 거는 우리도 싫어요~!”
권우찬 대리의 말에 이진리가 답했다.
사실 두 가수 간에 어느 정도 기싸움을 예상했던 TBN 가요 시상식 담당자는 이야기가 매끄럽게 흘러가자 안도하고 있었다.
이진리야 톱 중의 톱스타였으므로 제 의견을 피력할 게 당연했다.
그렇지만 케이케이는 현재 가장 핫한 아이돌 그룹이었다. 모양새로는 후배인 케이케이가 지고 들어가는 게 좋아 보이지만, 사실 어느 정도 인기만 얻어도 눈이 멀어 자신이 뭐라도 되는 양 뻗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다행이 도욱이나 힛 엔터 쪽은 그런 식으로 나올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아, 그런데 저······, 제안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물 흐르듯 흘러가는 대화 속에서 도욱이 꺼낸 말에 TBN 가요 시상식 담당자의 눈썹이 미묘하게 올라갔다.
방송국 담당자로서는 역시인가, 하는 생각 느낌이었다. 도욱이 무슨 말을 할지 입이 바싹 말라왔다.
지금이야 이진리도 쾌활한 분위기를 유지하며 웃고만 있었지만, 사실 이진리의 성격이 만만찮은 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진리의 심기를 거슬러 도욱과 이진리의 콜라보 무대가 불발이라도 된다면, 가장 머리가 아파지는 건 TBN 담당자였다.
자신이 기획한 특별 무대였다. 처음부터 다시 섭외 과정을 밟을 생각하면 아찔해졌다.
“뭔데요? 편하게 말해 봐요.”
이진리가 흔쾌히 말했다.
이미 이곳에 오기 전 도욱은 권우찬 대리, 이대형 팀장과 함께 상의를 마친 상태였다.
“시상식 전까지 이 무대를 비밀에 붙였으면 해서요.”
“음?”
“미리 홍보하면 도움이 될 텐데······. 문제가 있나요?”
이진리는 물론이고 TBN 담당자도 의아하다는 반응들이었다.
***
“도욱아, 너 이진리 만나고 온 거야?”
“씁, 이진리라니. 이진리 선배님이지.”
“그래, 선배님 뵙고 온 거니?”
도욱이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멤버들이 도욱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특히 안형서와 정윤기가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멤버들은 대만으로 출국하기 위해 짐을 싸고 있던 차였다.
오늘 저녁 비행기로 대만에 출국 후, 내일 저녁 콘서트를 치르고 다음 날 바로 홍콩으로 가는 일정이 케이케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네.”
방안으로 들어가 곧장 짐을 싸려고 했던 도욱이었지만, 멤버들에게 가로막혀 거실에 멈춰 섰다. 이진리가 워낙 톱스타인데다 이성이라는 점까지 더해지면서 멤버들에게 최고의 화젯거리가 된 게 사실이었다.
“어땠어······. 도욱아?”
여자 연예인에는 전혀 관심 없어 보였던 박태형조차도 도욱에게 물었다.
“어때, 진짜 글래머야? 우리도 시상식 날 볼 수 있겠지.”
“시상식 전에도 볼 수 있을 거예요.”
안형서의 질문에 도욱이 답하자 다른 멤버들 모두의 눈이 커졌다.
“전에? 전에 어떻게 봐?”
“그······. 저희 연습실로 오시기로 했어요. 같이 연습하러.”
“대박.”
나이가 약간 시기를 빗나가는지라 이진리가 가장 인기 있을 때를 잘 모르는 석지훈조차 대박이라며 입을 벌렸다.
“입 다물어라, 벌레 들어가겠다.”
도욱의 뒤를 따라 들어온 오백호 실장이 멤버들에게 핀잔을 주었다.
“얼른 짐이나 마저 싸. 곧 공항 출발할 시간이다.”
“하아, 이진리 선배님이라니······.”
오백호 실장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멤버들은 얼이 빠진 채 중얼거렸다.
“아 그리고! 너희도 이 무대하는 거 어디에 흘리면 안 된다?”
“네?”
“이거 철저하게 시상식 당일까지 비밀에 붙여질 거야.”
멤버들이 눈을 꿈벅였다.
조금 전 미팅에서 도욱은 이진리와 TBN 쪽에 비밀유지를 제안했다.
권우찬 대리가 이유를 설명했다. 그래야 당일에 공개됐을 때 더 파격적일 거라는 얘기와 함께, 도욱 또한 아이돌인데 괜한 리스크를 미리 떠안고 싶지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가만히 생각해보던 이진리는 이내 알겠다는 대답을 도욱에게 건넸다.
“좋아요. 비밀유지가 가능할진 모르겠지만, 되는 대로 해봅시다.”
한때 아이돌이었던 이진리였으므로 도욱의 입장이 이해가 가기도 했고, 도욱 쪽의 말대로 당일에 공개되는 것이 임팩트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 그다음에 도욱이 제안한 퍼포먼스의 내용이 무척이나 맘에 든 것도 이유였다.
흩어져 짐을 싸고 있던 멤버들 가운데, 오백호 실장이 휴대폰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들었다.
“여어, 도욱아.”
“네?”
방문을 열고 캐리어를 끌고 나오던 도욱이 답했다.
“후보 발표 났네.”
“네?”
“연기 대상 신인상 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