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69화 (69/225)

# 69

포뮬러(formula) (3)

대기실에는 순번대로 30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었다.

도욱은 차례가 되어 대기실로 들어섰다. 대기실 안은 그야말로 시장판이었다. 소리 내어 각자 준비해온 것들을 정신없이 연습하고 있었다.

“꺄아아악! 놔! 놓으라고! 이 미친 여자! 나는 당신의 남편과 바람피우지 않았어!”

한쪽 구석에서 머리를 잡아 뜯으며 귀를 찢을 듯한 비명과 함께 준비해온 대사를 외치는 여자가 도욱의 시선을 끌었다.

모두 집중해서 정신없는 와중이었으므로 특별한 경우도 아니었다.

‘그런데 저 사람은······. 맞구나, 박고운!’

다른 배우들처럼 이목구비가 뚜렷하거나 단번에 예쁘다는 생각이 드는 얼굴은 아니었다. 그러나 청순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고, 오히려 다른 이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었다.

도욱이 몇 년 후에나 데뷔할 박고운을 단번에 알아본 것도 그 때문이었다.

‘언젠가 박고운과도 함께 연기를 하게 될 날이 온다면 좋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도욱은 목을 풀고, 시험 전 연습에 무섭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대한예술종합학교의 시험은 1차 시험과 2차 시험이 있었다.

1차 시험 때는 즉석에서 나눠 준 단문의 대사를 외워서 연기하고, 준비해온 노래나 자유연기를 선보인다. 이후에 간단한 질답 시간을 가진다.

기초 연기력과 기본적인 끼를 보는 시험으로 15분 정도면 당락이 결정된다.

본격적인 시험은 역시 2차 시험이었다.

1차 시험 합격자들이 보는 2차 시험에는 작문 시험과 함께 지정 희곡의 한 장면을 스스로 재구성 및 재해석해 와 연기하는 시험이 있었다.

오늘 1차 시험에서 도욱이 준비한 건 노래였다.

“가수라는 게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인데 노래를 하는 게······. 괜찮을까요?”

노래를 준비하자는 이강연 선생의 말에 도욱이 물었었다.

이강연 선생이 답했다.

“준비를 하면서 생각했어요. 자랑은 아니지만 제가 입시 준비 학생도 여럿 가르치고, 합격시켰잖아요.”

자화자찬처럼 느껴졌는지 이강연 선생이 조금 쑥스럽게 웃었다. 그러나 이강연은 지금 자기 자랑을 하는 게 아니라 선생으로서 자신의 감이 얼마나 정확한지 설명하는 중이었다. 도욱은 진지하게 경청했다.

“도욱 군처럼 짧은 순간에도 곧바로 감정도 잡을 수 있고, 발성도 뛰어난 학생은 드물어요. 정말로. 어떤 종류의 지문이 나오더라도 단문 연기 시험 때 도욱 군 실력이 드러날 거예요.”

“그런가요.”

이번엔 도욱이 조금 쑥스러워졌다. 이강연 선생은 수업 때마다 도욱을 칭찬해왔다.

시간을 들여 배운 것이 아니라서 몸 연기를 할 때 가끔 어색할 때가 있었지만, 도욱의 지문 이해 능력과 감정 이입 능력만은 언제나 흔들림 없이 발군이었다.

“연기를 기본적으로 다 잘한다 치면, 다음에는 다른 끼나 능력을 보게 되는 거죠. 도욱 군은 노래를 잘하니까 그런 특기를 굳이 숨길 필요가 없어요. 가수라는 게 오히려 장점이라는 걸 보여주는 거예요.”

설명한 이강연이 덧붙였다.

“따지자면 노래도 연기니까요.”

도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강연 선생의 말에 설득력이 충분하기도 했고, 설득력이 없더라도 도욱은 이강연 선생을 믿고 따를 작정이었다.

연기는 자신이 모르는, 미지의 분야였다. 자신의 분야가 아닌 곳에서 괜히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거나 할 생각이 도욱에겐 전혀 없었다.

시험장 문 밖. 다섯 명의 대기자가 줄을 섰다. 조교가 학생들에게 연기해야 할 단문 지문을 나눠주었다.

연습 시간은 십 분으로 바깥에 들릴 수도 있기 때문에 소리를 내서 연습해서는 안 됐다.

십 분 후, 문이 열리며 시험장 안에 있던 참가자와 교차하며 대기자들이 안으로 들어섰다.

시험관으로는 세 명의 대한예술종합학교 교수진들이 들어와 있었다. 종일 진행되는 시험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최민석······. 최민석이 이 학교 교수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직접 면접까지 보다니.’

시험관 중 한 명으로 이미 국민배우로서 입지를 다진 최민석이 앉아 있었다. 그는 도욱과 눈이 마주치자 턱에 난 수염을 쓸며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도욱은 다섯 명 중 두 번째로 시험을 보게 됐다.

힛 엔터테인먼트 오디션을 보던 날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먼저 시험을 보기 시작한 이도 노래를 준비한 듯했다. 남자였음에도 뮤지컬 ‘레베카’의 곡을 부르는 것이 무척 인상 깊었다.

“레베카―! 나의, 레베카――! 어서 돌아와 여기 맨덜리로오오― 전부 그녀의 것!”

광기 어린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던 남자는 노래가 끝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어리숙한 표정을 했다.

‘정말 다양하고, 신기하다······.’

대기실에서부터 시험을 준비하는 천차만별의 사람들을 보며 도욱이 계속해서 한 생각이었다.

연기를 준비하면서도, 또 연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도욱은 진심으로 ‘연기’에 대한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연기란 무엇이기에 순식간에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인격으로 탈바꿈하는 것인지 무척이나 신기했기 때문이었다.

“다음, 강도욱 학생.”

“네.”

도욱의 차례였다.

도욱이 세 명의 교수진 앞에 어깨를 펴고 섰다. 반듯하게 서자 커다란 키와 훌륭한 몸이 돋보였다.

“아주 이력이 독특한 학생이구만~ 우리 학교에는 잘 지원하지 않는 이력인데 말이지~!”

역시 도욱이 서자마자 머리가 희끗한 뿔테안경의 남자 교수가 도욱이 가수인 점을 짚으며 말했다.

색다르다는 듯, 가벼운 어투였다. 드러내놓고 마음에 안 든다는 어투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 안의 속내까지 알기는 힘들었다.

“내신은 괜찮은 편이에요? 바빠서 공부하기 힘들었을 것 같은데.”

옆에 앉아있던 여교수가 물었다. 대한예술종합학교는 수능을 안 보는 대신 내신 점수를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었다.

“틈틈이 공부했고, 성적은 중상위권입니다.”

“오, 그래요?”

여교수가 조금 놀랍다는 듯 도욱의 지원서를 꼼꼼하게 살피며 다시 한 번 물었다.

“왜 연기를 하고 싶죠?”

“모르겠습니다.”

도욱의 답에 시험장에 잠시 적막이 돌았다. 여교수가 눈살을 찌푸려는 찰나, 도욱이 답을 이었다.

“처음에는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로요. 내가 아닌 타인으로.”

“도망을······ 치고 싶었다? 본인을 부정하고 싶었다는 건가요?”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하지만 연기를 하면서 깨달았습니다. 나와는 다른 사람, 비슷하거나 아주 다르거나. 누군가를 연기하면 할수록 오히려 제가 누구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도욱은 한 명, 한 명 교수들과 눈을 맞췄다.

“그래서 이제는 저를 찾기 위해서 하고 싶습니다. 연기를요.”

너무 잘 준비해온 대사 같기도 했다. 그러나 도욱은 진심이었다. 그리고 교수들도 그 진심을 눈치챘다.

여교수는 다시금 도욱의 나이를 확인했다.

작년에 데뷔한 케이케이는 큰 어려움 없이 승승장구해왔다고 알고 있었다. 지원자 중 아이돌 멤버가 있다는 얘기에 교수진들 내부에서는 꽤 이야기가 많았었다. 때문에 알아본 내용이었다.

그런 아이돌 멤버인 도욱에게서 이 정도 진정성을 발견할 거라고는 예상치 못한 교수들이었다.

나이나 외부에 드러난 상황만으로는 그 사람의 내면을 짐작할 수 없음을 여교수는 다시금 깨달았다.

“지문 연기 한번 해보세요.”

묵직한 저음이 도욱에게 지시했다. 최민석이었다.

부리부리한 최민석의 눈이 도욱을 해체할 듯 훑고 있었다. 도욱은 침을 한 번 삼켜낸 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받았던 지문을 연기하기 시작했다.

대한예술종합학교는 그 학교만의 연기 스타일이 있었다. 감정 과잉을 가장 싫어한다고 했다. 무엇이든 실제처럼 연기하기를 원하는 학교였다.

도욱은 표정을 일그러뜨리면서도

“······결말은 어차피 다 똑같은데 왜 그런 고통을 견뎌야 하는 걸까? 아무도 수색을 피할 수도, 자백을 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일단 사상범으로 낙인찍히면 정해진 날짜에 죽는다. 그런데 왜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미래에 공포가 단단히 박혀 있어야만 하는 걸까?!”

“······.”

“······.”

“······.”

짧은 연기가 끝난 후, 교수들은 말없이 연기에 대한 각자의 점수를 적었다.

“방금 연기한 거 어디에 나온 지문인지 알아요?”

“네. 1942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여교수의 질문에 도욱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노교수가 뿔테 안경을 고쳐 썼다.

점수를 다 적은 최민석이 다음 준비해온 것을 해보라 지시했다.

도욱이 준비한 노래는 김우연의 ‘꿈이었으면’이었다.

어느 때보다 절절하게 도욱은 ‘꿈이었으면’을 연기했다. 시험장 안에 도욱의 노래 소리가 높게 울려 퍼졌다.

***

시험을 보고 난 후. 아직 결과를 알 수 없었지만, 도욱은 합격에 대비해 2차 시험을 준비했다.

그런 와중에 일본 정규 1집 앨범 녹음 일정이 있었다.

케이케이 멤버들은 녹음실에 모여서 녹음을 준비했다. 파트가 많은 안형서부터 부스에 들어가 녹음 중이었다.

“아···. 이거 발음이 너무 어렵네.”

“키읔 아니고 기억에 가깝게 읽는 게 더 원어에 가까운 것 같아요.”

일본어에 약한 정윤기를 석지훈이 도왔다. 석지훈도 일본어는 문외한이었지만, 얼마 전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몇 달이었어도 공부를 했다고 지난번 녹음 때와는 달리 자신감을 보이는 석지훈이었다.

“역시 어려서 뇌가 빨리 돌아가나.”

큰 차이도 안 나면서 정윤기가 한탄했다.

석지훈이 마찬가지로 가사를 보며 녹음 준비를 하는 도욱을 보며 막내 답지 않게 어른 같은 한숨을 쉬었다.

“도욱이 형, 2차 시험도 준비 중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응. 그렇지.”

“내가 형이었으면 벌써 뇌 과부하 돼서 꺼졌을 것 같아요.”

도욱이 희미하게 웃었다.

“희곡은 뭐 준비했어요?”

숙소에서도 늘 방에 틀어박혀 시험 준비를 하는 도욱이었다. 너무 바빠 보여 말 걸기가 쉽지 않았다.

녹음을 준비하며 대기하는 이 시간이 오히려 도욱에게는 가장 한가한 시간이었다.

전부터 물어보고 싶었던 터라 석지훈이 기회를 노려 물었다.

“아··· 회사원의 죽음. 그거 조금 각색했어.”

“오오! 회사원의 죽음!”

“그게 뭔데? 석지후이~ 니도 읽어 봤나?”

“읽, 읽어보진 않았어요. 그냥 들어만 봤죠.”

“근데 뭐 ‘오오!’ 하고 있어.”

정윤기가 낄낄대며 석지훈을 놀렸다. 석지훈이 꾹 입을 다물었다.

그때 녹음 기사가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휴식 시간을 갖자고 했다. 안형서가 부스 안에서 나오고, 정윤기가 안형서와 이야기를 나누느라 자리를 뜨자 석지훈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저 형을 리더로 믿고 따라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석지훈이 밉지 않게 정윤기 쪽을 흘겼다.

“각색 어떻게 했어요? 형 희곡 연기 보고 싶은데 보여주시면 안 될까요?”

“어? 그냥······. 여기서?”

“여기서도 할 수 있어야 시험장 가서 안 떨죠. 백 명 앞에두고 하는 단체 시험이라면서요.”

석지훈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도욱은 각자 흩어져 쉬고 있는 멤버들을 보고는 준비한 대사를 외기 시작했다.

“이 직장, 저 직장 옮겨 다녔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어. 빌어먹을! 서른네 살이나 처먹었으면 나두 자리를 잡을 때가 됐어!······ 그런데 다 엉망이 됐어. 결혼을 했어야 할지도 모르지. 그것도 번듯한 직장이 있어야 하는 거라. 그렇지 않은 게 잘못이야. 난 꼭 어린애 같거든. 결혼두 안 하구, 직업두 없구, 결국 난 어린애라니까. 그래 넌 만족스러우냐? 성공했어? 흡족하냐 말야?”

도욱의 목소리에 멤버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도욱은 평범하다못해 못났던 김보명의 삶을 떠올렸다.

그 순간, 석지훈이 본 건 케이케이 멤버 강도욱이 아닌, 결혼도 못 하고, 직장도 없는 비루한 성인 남자였다.

***

일본 정규 앨범 발표를 위해 도쿄행 비행기에 몸을 싣던 도욱은 합격 소식을 전해 들었다.

곧바로 도욱의 대한예술종합학교 합격 소식이 세간에 알려졌다.

‘주원대학교 실용음악과에 지원했으나 불합격 했다. 이후 강도욱은 ······ 큰 꿈을 안고 지원하게 됐다.’

도욱이 도쿄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관련 기사가 줄줄이 나온 상태였다. 기사 아래에는 심심찮게 물음표 가득한 댓글들이 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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