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68화 (68/225)

# 68

포뮬러(formula) (2)

아라 엔터테인먼트는 소속 가수가 여럿 있었기 때문에 각 프로젝트의 일정에 혼선이 없도록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까지의 프로젝트 스케줄을 미리 고정해두는 편이었다.

심지어 맨투맨은 아라 엔터테인먼트에서 사방신화의 인기를 잇기 위해 야심차게 내놓은 그룹이었다.

맨투맨의 방향성과 컨셉은 이미 데뷔 전부터 확고하게 잡아 놓은 상태였고, 이번 앨범까지도 그 연장선상이었다.

아라 엔터테인먼트로서는 케이케이라는 복병의 등장으로 맨투맨이 신인상을 놓친 것이 안타까울 것이다.

‘탄탄한 팬덤으로 신인상을 받고, 그다음에 낸 이 앨범으로 히트를 치려고 했을 테니까······.’

케이케이만 없었어도 ‘너는 너무 예뻐’는 최고의 신인이 될 만한 곡이긴 했다.

사실 아라 엔터는 더 대중성 있고, 좋은 곡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일부러 맨투맨을 ‘너는 너무 예뻐’라는 세련미가 넘쳐서 오히려 일반 대중들에게는 생소할 수도 있는 실험적인 곡으로 맨투맨을 데뷔시켰다.

맨투맨에게 전에 없었던 트렌디한 이미지를 부여해 특별한 그룹이라는 인식을 주려고 한 것이다.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정말 세고, 대중적인 곡은 어느 정도 인기를 얻었을 때 터뜨려야 제대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는 계산이었다.

처음부터 세게 나오면 그다음, 또 그다음은 더 세게 나와야 했기 때문에 그러한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전략이기도 했다.

‘그런 맨투맨의 전략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케이케이는 데뷔곡부터 대중적인 곡들을 선택해왔다.’

도욱도 데뷔곡에 이어 바로 ‘Very Sorry’를 내면서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것보다 더 좋은 곡이 나올 수 있을까?’

자만이 아니라 염려였다. 그러나 도욱은 현재 최선을 다한 곡을 내놓기로 했다. 점점 더 공격적으로 나올 맨투맨을 잡으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기도 했다.

도욱은 티저에서 반복적으로 흘러나오는 가사를 들으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맨투맨의 이번 앨범은 아라 엔터테인먼트에서 ‘진짜’로 준비한 맨투맨의 앨범이었다. 이 앨범으로 맨투맨은 사방신화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아라 엔터의 가수로 성장한다.

그다음 해부터 맨투맨은 가요계 톱의 자리에 당당히 이름을 새긴다.

“오, 까리하네.”

엄청난 제작비가 들었을 티저 영상을 뒤에서 함께 지켜 본 정윤기가 평했다.

영화 같은 영상이나 우주를 표현한 CG까지 아라 엔터테인먼트의 자본력이 느껴졌다.

힛 엔터테인먼트에도 실용적인데다 도전적이기까지 한 뛰어난 실무진과 경영진이 있었다. 덕분에 케이케이가 기획되고 도욱의 의견들도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기본적인 자본력에서는 아무래도 뒤쳐졌다.

정말이지 불가항력에 가까운 부분이었다.

케이케이가 커다란 성공을 거두면, 그다음 그룹은 몬스터보다 케이케이가 나았듯, 케이케이보다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이 갈았나 보다.”

오백호 실장이 조금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이를 갈았다’는 표현은 정확한 표현이었다.

원래 준비하고 있던 앨범이었겠지만, 맨투맨이 신인상을 놓치면서 더욱 더 준비를 많이 했을 터였다.

“무대 나오면 난리 나겠는데요?”

“그러게.”

정윤기의 말에 오백호가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케이케이의 ‘친구에게’는 단 한 번의 음악방송 활동 없이 음원 순위 1위를 계속해서 차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방송 출연 섭외가 밀려 들어왔지만, 힛 엔터 쪽에서는 방송 활동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확실히 했다.

‘친구에게’ 음원 자체가 서태준과의 인연으로 갑작스럽게 나온 것이었다.

공연 자체도 예정에 없던 공연이라 휴식 기간이 없었는데, ‘친구에게’ 활동까지 한다면 케이케이 멤버들이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회사의 판단이었다.

게다가 음원만으로도 인기가 상당했다. 라디오나 길거리 어디서든 ‘친구에게’가 흘러나왔다. 굳이 무리할 필요가 없었다.

당장 다음 달에 있을 일본에서의 ‘Very Sorry’ 정규 앨범 발매와 공연 준비만으로도 케이케이의 일정은 빠듯했다.

“팬들 다 맨투맨으로 가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정윤기가 솔직한 불안감을 혼잣말처럼 뱉어냈다.

멤버들도 맨투맨에게 어느 정도 라이벌 의식이 있는 건 사실이었지만, 그건 정말 위치상 별수 없이 생겨난 일반적인 수준이었다.

그나마 안형서의 다리가 다쳤던 일로 불편한 마음이 추가된 정도였다.

‘신인상 때 아라 엔터 쪽에서 손을 쓰려고 했단 걸 알면······.’

별 악의는 없어 보이는 정윤기를 보며 오백호 실장은 혼자 그런 생각을 하다 이내 머릿속 잡념을 지웠다.

오백호 실장도 이제 맨투맨이나 아라 엔터 쪽을 생각하면 인상부터 찌푸려지는데 다른 케이케이 멤버들이 알면 얼마나 난리가 날지 모를 일이었다.

‘흠. 게다가 앞으로는 방송국에서 마주칠 일이 더 많겠지. 별일 없어야 할 텐데.’

오 실장은 더 본격화될 게 분명한 맨투맨과 케이케이의 라이벌 관계에 대해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대형 기획사 중 가장 악랄하기도 한 아라 엔터와의 싸움에서 케이케이 멤버들이 별일 없기만을 바랄 뿐, 지금으로썬 별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기도 했다.

“너희도 더 열심히 해야지.”

“백호 형! 여기서 더 어떻게······.”

앓는 소리를 하려던 정윤기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오백호가 인상을 굳혔기 때문이었다. 네, 네, 알겠습니다. 정윤기가 일부러 더 깍듯하게 답했다.

뒤이어 정윤기가 걱정스럽게 중얼댔다.

“그나저나 그건 어떡하나.”

“형, 무슨 일 있어요?”

도욱이 물었다.

현재 숙소에는 오 실장과 정윤기, 도욱. 세 사람뿐이었다. 나머지 멤버들은 개인 볼일을 보러 나간 상태였다.

박태형과 석지훈은 연습실에 갔고, 안형서는 헤어 케어를 받으러 샵에 갔다.

김원은 오랜만에 외국에서 친구가 와 구경을 시켜준다고 경복궁을 관광 중이었다. 팬 카페에 속속들이 김원 목격담이 뜨고 있었다.

“아. 얼마 전에 방송국 갔던 거 말이다. 우짜나 싶다.”

“섭외 들어온 거예요? 무슨 프로인데요?”

관심을 보이는 도욱에게 정윤기가 설명을 하려던 차였다.

안 그래도 멤버들에게도 의견을 물으려던 정윤기였다. 그러나 급한 결정도 아니었고, 바쁜 와중이라 미뤄두고 있었던 내용이었다.

오백호가 정윤기의 말을 가로챘다.

“도욱아, 너 곧 시험인데 일단은 시험에 집중해. 윤기 일은 네 시험 끝나고 의논해도 안 늦어.”

팀원들이 각자의 몫을 못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도욱이 너무 큰 짐을 지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가끔은 오백호 자신의 몫까지 도욱이 해내고 있는 듯했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그럴 때면 고맙고 미안한 오백호였다.

그런 도욱에게 시험을 앞두고 또 다른 고민거리를 주고 싶지 않았다.

오백호의 설명에 정윤기도 아차 싶었다는 듯 나섰다.

“그러게, 마! 실기 코앞이라 안 했나.”

“아···. 괜찮은데.”

“자신 있다 이거냐? 형이 뭐 도와줄 건 없어? 상대해줄까?”

팔을 걷어붙이며 의욕을 보이는 정윤기에 도욱은 웃어버렸다.

곧 있을 대한예술종합학교 실기를 앞두고 연기 연습에 가장 큰 도움을 주고 있는 건 역시 석지훈이었다.

석지훈은 늘 도욱이 이강연 선생에게 받아오는 연습용 대본의 상대가 되어주었다.

“지훈이 오면 같이 할게요.”

“와, 인마가 내 무시하나?”

“서울 사람 역할이라서요.”

깔끔하게 답하며 도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욱이 자신의 사투리를 놀렸다는 사실에 정윤기가 씩씩댔다.

“그러게. 방송 더 많이 하려면 평소에 사투리 고쳐둬야 한다니까.”

오백호도 괜히 정윤기에게 핀잔을 주며 실실 웃으며 자리를 떴다.

“내 억울해서 못 살겠네! 이게 내 매력 포인트라니까? 다들!”

정윤기는 도욱이 앉았던 자리에 앉아 팬카페 주소를 치고 들어갔다.

검색어에 ‘정윤기’, ‘사투리’를 함께 넣고 쳤다.

-정윤기님 사투리 쓰는 거 너무 좋은 사람 손ㅠㅠㅠㅠㅠㅠㅠ

-11112223334444

-사투리 안 고치고 계속 쓰면 좋겠..ㅠㅠ

-넘 섹시해..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근데 가끔 오빠 사투리랑 서울말이랑 섞이면 웃김ㅋㅋ

-저 갱\/상도 사\람/ 아닌/데\요~!

-정윤기가 아랍어를 해도 좋을 사람 손!!!

-외계어를 해도 정윤기라면 품는다..

-외계어로 랩하게 되는 부분?

-그래도 좋아할 부분ㅇㅇ

자신을 좋아하는 팬들의 댓글을 보며 마음의 안정을 찾는 정윤기였다.

***

예상대로 맨투맨의 컴백은 성공적이었다.

타이틀곡 ‘엑셀레이터’는 도로 위를 질주하듯 사랑하는 여자를 향해 내달리는 남자의 마음을 표현한 댄스곡이었다.

호화로운 영상으로 팬들의 눈을 사로잡은 맨투맨은 역시나 다수의 백댄서들이 동원되는 화려한 무대로 대중들의 시선까지 사로잡았다.

케이케이의 ‘Very Sorry’와 같이 중독적인 후렴구가 거리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고, 서강준이 윙크를 날리며 끝나는 마지막 엔딩 장면까지도 유명세를 탔다.

커뮤니티마다 서강준이 윙크를 하는 모습이 캡처되어 올라왔다.

도욱의 눈물 한 줄기와 서강준의 윙크, 두 사람을 비교하고 누구를 더 ‘남친’ 삼고 싶은지 묻는 글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게시되었다.

본격적으로 케이케이의 얼굴인 도욱과 맨투맨의 얼굴인 서강준의 대결 구도가 시작된 것이다.

“너 서준 아이돌캠프에 나온 거 봤어? 진짜 잘생겼다. 꽃미모라는 게 그런 건가.”

“근데 서준은 너무 마른 것 같아. 강도욱처럼 근육이 있는 게······.”

“강도욱한테 근육이 있어?”

“몰랐어? 이거 봐봐! 이런 게 춤추면서 발달한 생활 근육인 건가.”

오백호가 운전해 온 차에서 내려 대한예술종합학교에 홀로 들어선 도욱은 제 앞에서 인터넷에서처럼 자신과 서준을 비교하는 여학생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듣고 싶지 않아도 들려왔다.

오늘이 바로 도욱이 짧은 시간, 최선을 다해 준비해온 실기 시험 날이었다.

도욱은 조금 붙은 흰 셔츠에 청바지 차림이었다. 실기를 보러 온 대부분의 학생이 규정에 맞춰 같은 차림을 하고 있었다.

앞의 여학생들은 재학중인 학생들인 듯했다. 두꺼운 교재들을 한 손에 들고서, 잘도 휴대폰으로 서로에게 서준과 도욱의 사진을 내밀고 있었다.

“이렇게 근육이 있다고? 몸 좋네~ 얼굴만 좋은 줄 알았더니~!”

“그치? 강도욱이 짱이야! 난 서준은 그냥, 좀 그래. 내 취향은 아냐.”

“칫, 난 둘 다 좋던데.”

바로 뒤에 도욱이 있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한 채 신나게 이야기를 하며 멀어져 가는 두 여학생을 도욱은 잠시 쳐다보았다.

맨투맨의 성공이 도욱도 불안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불안하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어차피 처음부터 예상했던 일이었고, 예전과 달리 케이케이와 맨투맨의 인기는 비등비등한 수준이었다. 아니, 정확한 수치는 아니었지만, 케이케이의 인기가 조금 더 높았다.

반대의 상황이었다. 맨투맨이 케이케이의 인기를 잡아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잡혀줄 생각은 전혀 없다.’

오히려 더 도망갈 생각이었다. 따라잡을 수 없다는 생각에 조급증이 일 만큼 더 멀리.

그렇게 조급증이 인 맨투맨 쪽에서 어떠한 선택을 할지 도욱은 지켜볼 심산이었다.

어차피 도욱의 복수는 서강준이 어느 정도 위치에 있을 때, 그 위에서 떨어져 내릴 때 의미가 있는 법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연기자로서의 성공도 꼭 필요해. 서강준의 개인적인 성공을 무너뜨리려면.’

대한예술종합학교는 그 기반이 되어줄 것이다. 도욱은 어느 때보다 긴장되는 마음을 다잡았다.

초록 잎이 울창한 정원을 지나자 연기과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시간보다 이십 분 정도 일직 도착했음에도 건물에는 이미 시험을 보러 온 학생들이 다수 모여 있었다.

“어?! 강도욱······?”

입구에 선 도욱을 발견한 한 학생이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머릿속 생각을 뱉었다.

동시에 도욱 쪽으로 시선이 쏠렸다.

좋은 의미의 시선이 아니었다. 모두 탐탁찮은 시선이었다. 평소 때라면 도욱을 좋아했을 법한 여학생들의 눈빛조차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도욱은 실기시험번호를 확인한 후 제 자리에 가 앉았다.

학생들이 자신들끼리 수군대는 소리가 도욱의 귀로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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