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
랑데부(Rendez-vous) (3)
권휼의 휴대폰에서 나온 건 도욱이 작곡한 곡, ‘Song for Apollon’이었다.
총 재생 시간은 2분 43초.
보통의 곡보다는 짧은 재생 시간이었지만, 전주나 간주에 삽입될 재즈피아니스트 권휼의 연주를 고려한 편곡이었다.
심장 박동보다 약간 더 빠른 듯한 리듬이 흘러나오자 모두 숨을 죽이고 잠시간 곡에 집중했다.
‘아아아―’ 하는 애드리브 음과 함께 노래가 시작됐다. 노래는 힛 엔터테인먼트의 보컬 트레이너가 가이드 버전으로 녹음한 것이었다.
도욱이 권휼과의 협업을 통해 곡 작업을 하는 과정, 가수로서 녹음을 하는 과정 등 모든 과정을 영상으로 찍어 담아낼 예정이었기 때문에 녹음은 그때 처음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게 유성전자의 입장이었다.
모든 것을 비추는 빛나는 태양의 삶,
물과 불 어느 곳에서도 강하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단 하나의 태양은 영원해―
유성전자의 스마트폰 모델인 아폴론에 대한 내용을 상징적으로 담아내야 했기 때문에 작사는 유성전자 마케팅 팀과 협의를 거쳐 이루어졌다.
도욱은 작사 과정에서 케이케이의 멤버인 김원을 합류시켰다.
프로젝트용 곡임을 고려해 도욱은 후렴구를 제외하곤 랩에 가까운 노래가 들어가도록 파트를 만들어두었다. 많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그 부분의 작사를 김원이 하는 쪽이 좋을 듯했다.
리패키지 활동 직전에 급하게 부탁했음에도 불구하고 김원은 흔쾌히 가사 작업에 참여했다.
“도욱이가 마, 황금알 낳는 오리······ 아닌가?”
“거위요······.”
가사를 쓰느라 머리가 조금 아프겠지만, 김원에게도 저작권료를 벌고, 대형 프로젝트에 참여할 좋은 기회임이 분명했다.
태양의 열정을 닮은 우리, 아폴론― 아폴론― 아폴론―
후렴구의 가사가 반복되며 여운을 남긴 채 곡이 마무리되었다.
나은수가 와우, 하고 작게 소리내 환호했다.
오빈은 여전히 흥에 겨워 리듬을 타고 있었다. 팔을 흔드는 모습에도 웨이브가 있었다. 리듬을 타는 모습마저 이미 하나의 완성된 춤이었다.
“다시 들어도 좋네, 세상에. 이 곡을 배경으로 영상을 만들어야 하다니······ 진짜 간지나게 뽑지 않으면 노래 망쳤다는 얘기나 듣겠어. 으으.”
도욱에게 하는 말인지 혼잣말인지 구분이 되지 않게 나은수가 중얼댔다. 나은수는 벌써부터 영상을 만들 생각에 머리가 아픈 모양이었다.
약간 흥분한 오빈 또한 빨리 춤을 추고 싶다고 난리였다. 그런 나은수와 오빈의 모습을 ‘랑데부 프로젝트’의 카메라가 빠짐없이 담아내는 중이었다.
“하하,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를 전하며 도욱은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앉아 있는 권휼의 기색을 살폈다. 마케팅 담당자 또한 노래를 켠 권휼의 반응을 기다렸다.
권휼은 나은수나 오빈과는 달리 가만히 앉아 있을 때조차 예민한 예술가의 기운을 풍겼다. 먼지 하나 묻지 않은 듯한 안경이나 바싹 깎은 손톱만 봐도 그가 얼마나 자기 관리가 철저한지 알 만했다.
“재즈 피아노 연주가 들어갈 공간이 충분히 확보된 곡이네요.”
역시 권휼은 작곡자인 도욱의 생각을 파악하고 있었다. 도욱은 미소를 지었다.
“작곡을 한 지는 얼마나 됐나요?”
“일 년 정도······.”
도욱의 답에 모두 눈을 크게 떴다.
“진짜 천재는 여기 있었네!”
모두 이십 대 초반의 나이, 각 분야에서 미친 듯이 재능을 발휘하는 이들이었다. 천재나 못해도 영재로 불렸다. 그런 그들이었음에도 도욱의 천재성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천재······. 그렇게 불리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도욱은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남들이 느끼기엔 도욱이 겸손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도욱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작곡을 공부한 것만 따지면 일 년 남짓인 게 사실이었지만, 도욱은 이미 같은 열아홉이라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곡을 들었다. 회사에서 일하며 주워들은 것도 많았다.
또다시 사는 삶이니 만큼 다른 사람들과는 의지부터 달랐다. ‘잠은 죽어서나 자라’는 말을 도욱은 웃으며 들을 수 없었다.
그만큼 시간을 쪼개가며 노력하고 있었다.
“놀라운 건 사실이에요. 곡 완성도도 완벽하다고 할 순 없지만 뛰어난 곡이군요.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곡 구성은 기존의 것보다 한발 앞서 나갔어요. 곡을 듣자마자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아······.”
도욱은 권휼의 분석적인 곡 평가를 듣고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권휼은 곡이 완벽하진 않다고 했지만, 그건 완벽하다는 뜻이나 다름없는 얘기였다. 극찬이었다.
‘열세 살에 이미 재즈피아니스트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권휼이다. 진정한 천재에게 내가 만든 곡이 이런 평가를 받다니······.’
용수철과 공동 작곡한 ‘Very Sorry’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던 때와는 또 다른 희열을 도욱은 느꼈다.
“정말이지 과찬이십니다.”
“어서 이 곡을 바탕으로 연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권휼이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열아홉과 스물하나가 하는 대화라기에는 극도로 예의바른 말들이 오가는 사이 나은수가 딱딱해지려는 분위기를 뚫고 신이 나서 말했다.
“얼른 강도욱 씨가 부른 버전으로도 노래를 듣고 싶네요. 너무 좋을 것 같아~!”
평범한 여대생처럼 친근해 보이는 나은수였지만, 작업을 할 때는 일주일 동안 작업실 밖으로 나오지 않을 때도 있는 사람이었다.
벌써 나은수의 영상 작품 중 하나는 외국 유명 현대미술관에 전시되어 있기도 했다.
네 사람은 자연스럽게 서로의 이력과 전문 분야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각자의 분야가 무척이나 다르다는 사실을 네 사람은 깨달았다. 동시에 각자의 분야에서 서로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열정을 가지고 있는지도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프라이드도 상당했다.
서로에게 영감을 주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도욱 또한 어서 노래를 부르고 싶어졌다.
마케팅 담당자가 자리를 정리했다.
카메라가 꺼지고, 도욱의 매니저로 자리한 오백호를 비롯 맨투맨의 매니저, 그리고 권휼의 매니저까지 다시 자리를 채웠다.
“오늘은 첫 미팅인 만큼 서로 인사하는 자리이고요. 일주일 뒤에 서로의 작업물들 공유하는 시간 가질 거예요.”
네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도 이렇게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되겠지만······ 세트 설치가 돼 있을 거고, 뮤직비디오 감독님도 오셔서 어느 정도 디렉션을 주실 거예요.”
“연기를 해야 한다는 건가요?”
권휼이 조금 날카롭게 물었다. 담당자가 얼른 아니라고 답했다.
“아뇨. 뮤직비디오에 꼭 있어야만 하는 장면들, 그런 장면들에 대한 콘티 정도만 있는 거예요. ‘권휼 씨가 피아노를 치면, 나머지 셋이 옆에 서서 듣는다.’ 이런 정도의 장면 디렉을 말하는 거죠.”
“음······.”
“콘티는 미리 보내드리겠습니다.”
광고용 뮤직비디오 촬영인데 아예 모든 것이 다큐처럼 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권휼이었다. 다만 과한 연기를 시킬까 우려돼 되짚고 넘어간 부분이었다.
“중간에 스케줄 따로 잡아서 개인 VJ 촬영이 있을 겁니다. 준비 과정 짧게만 영상 따는 거니까 협조 부탁드려요.”
담당자가 네 명의 모델들은 물론이고 매니저들까지 바라보며 말했다.
이번엔 매니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은수를 제외한 세 명의 스케줄 조율 문제는 매니저와 하게 될 터였다.
“며칠 후 출시될 아폴론의 신모델을 네 분께 먼저 드릴게요. 개인 촬영 때 자연스럽게 노출 부탁드립니다. VJ가 알아서 할 겁니다.”
담당자가 며칠 전 공장에서 출고된 따끈따끈한 유성전자의 새 스마트폰이 든 케이스를 네 사람에게 내밀었다.
“오······.”
네 사람은 광고 계약 기간 동안 아폴론을 사용해야 했다. 오빈이 감탄하며 케이스를 받아들었다.
“그럼 다음 주에 다시 뵙죠.”
다들 인사를 주고받으며 스튜디오 밖으로 나왔다.
첫 만남부터 예감이 아주 좋은 ‘랑데부 프로젝트’였다.
***
그리고 며칠 후.
아폴론의 새 모델 출시와 함께 대대적인 홍보가 시작됐다.
아폴론의 새 모델에는 케이케이의 ‘바람 부는 날’ 오리지널 버전 음원과 함께 미공개 아카펠라 버전 음원이 들어 있었다.
TV 광고에도 모델인 남자 배우가 아폴론을 가지고 음악 재생 버튼을 누르면 ‘바람 부는 날’의 후렴구가 4초 정도 짧지만 나왔다.
광고 음악으로 쓰인 것이기도 했다.
케이케이의 팬들이 많이 보는 인터넷 광고에서는 대대적으로 케이케이의 ‘바람 부는 날’의 미공개 아카펠라 음원이 들어있다는 것을 어필했다.
-대박! 케이케이 ㅠㅠ 짱이다 자랑스럽다
-듣보 신인 노래가 아폴론에? 케이케이 계탔네
-유성전자가 계탄 거지~ 케이케이로 홍보하는 건데;;
-듣보케이보다 아폴론이 더 유명한 건 반박불가 아님?ㅋ
-힛 엔터 일 잘한다~
-케이케이가 듣보 소리 들을 땐 이미 지났지 안티ㄲㅈ
-잘하고 착하니까 금방 뜨는 거 아닌가 업계에서도 알아보고
아이돌 팬들이 운집해있는 커뮤니티의 댓글 반응은 무척 뜨거웠다.
이번에 휴대폰 새로 바꾸려고 했는데 아폴론으로 정했다는 팬들도 많았지만, 비아냥거리는 댓글들도 많았다. 관심도가 그만큼 높다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했다.
또 논란인 댓글들은 대체로 다른 아이돌 그룹의 팬이 케이케이를 견제하며 작성한 것들이었다.
커뮤니티 외에 포털 사이트 기사 댓글들은 평범했다.
-무슨 노랜가 했더니 요즘 아이돌 노래였군요ㅎㅎㅎ
-케이케이 오빠들b 아폴론 사고 싶다ㅠㅠ
-화면도 선명해지고 커져서 이번 기종 괜찮은 듯 가격이 너무 센 게 흠..
-음악 듣는 용으로 나왔다더니 음질 좋은가?
새 기종 자체에 대한 평가 댓글들일 주를 이루었다.
개중에는 노래가 좋다는 의견도 있었다. 확실히 중장년층에겐 케이케이보다 아폴론이 유명한 게 사실이었다. 때문에 케이케이라는 그룹과 ‘바람 부는 날’ 노래 자체에 대한 홍보효과가 어마어마했다.
도욱만 ‘랑데부 프로젝트’로 받았던 아폴론의 새 모델이 케이케이의 다른 멤버들에게도 도착했다. 멤버들은 켜자마자 음악 앱을 켜 내장되어 있는 ‘바람 부는 날’을 재생시켰다.
연습실에 ‘바람 부는 날’ 아카펠라 버전이 울려 퍼졌다.
“누구 노랜지 좋다아~!”
“오······ 좋네요······.”
안형서가 신나서 노래를 흥얼거렸다. 박태형도 안형서를 따라 화음을 넣었다.
아카펠라 버전을 녹음하던 때 누구보다 고생했던 박태형이었다. 박태형은 다른 멤버들에 비해서나, 자신의 춤 실력에 비하면 아무래도 노래 실력이 조금 부족했다.
녹음을 하기 전까지도 헤매는 박태형을 위해 안형서는 친절하게 자신의 노하우들을 알려주었다.
도욱은 도욱대로 안형서나 석지훈, 박태형과 함께 화음을 쌓는 등의 연습을 하면서 혼자 부르는 노래가 아닌 함께 부르는 노래의 매력을 발견하는 시간이 됐었다.
‘음이 쌓일수록 좋다는 느낌······.’
도욱도 휴대폰에서 흘러나오는 ‘바람 부는 날’ 아카펠라 버전을 멤버들과 함께 감상했다.
그때 도욱의 휴대폰이 울렸다.
‘응? 누구지?’
모르는 번호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메시지에는 파일도 함께 첨부돼 있었다.
[권휼입니다.
연주를 조금 해 봤는데.
들어보시고 연락주세요.]
도욱은 곧장 파일을 다운받았다. 멤버들과 함께 있던 연습실 밖으로 나와 비어 있는 연습실로 향했다.
본격적으로 랑데부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자신의 곡을 권휼이 어떻게 덧붙여 표현해 주었을지 기대가 됐다.
파일을 재생시킨 도욱의 미간이 조금 구겨졌다.
‘권휼의 연주가 원래 이랬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