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33화 (33/225)

# 33

한 번 더 Ok?! (3)

#한 번 더 Ok?! (3)

“루카스 형? 의상 준비 끝나서 잠깐 커피 마시러 나갔다 온 댔는데······.”

안형서가 어리둥절해 하며 대답했다.

도욱은 주변을 살폈다. 오백호가 한쪽 구석에서 다른 멤버들에게 촬영 시 주의사항을 전달하고 있었다. 백호 형, 하고 도욱이 오백호를 부르자 말을 하고 있던 오백호가 도욱을 쳐다봤다.

“일단 형서 형, 이 옷 입고 출연하면 안 되니까······. 잠깐만요.”

“이 옷?”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안형서가 자신의 옷을 내려다보았다.

안형서의 샛노란 색 티셔츠는 화려한 그래픽이 그려진 셔츠였다. 힙합풍의 스트리트 패션이 으레 그렇듯 이런 저런 기하학적인 패턴과 함께 다양한 심볼들이 그 위에 정신없이 새겨져 있었다.

“무슨 일들이야?”

도욱의 부름에 안형서와 도욱 쪽으로 온 오백호가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도욱의 표정이 심각했기 때문에 오백호 역시 덩달아 심각한 얼굴이 된 것이다.

“백호 형, 아무래도 이 옷 입고는 방송 출연······. 힘들 것 같은데요.”

도욱이 가리킨 건 티셔츠에 새겨진 심볼들 중 하나였다.

붉은색 원이 가운데 있고 옆으로 붉은색 직선이 여러 갈래로 퍼져 있는 형태였다. 얼핏 보아서는 알 수 없었지만, 자세히 보면 형태가 일제 전범기를 나타내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게다가 티셔츠 소매 부분에도 비슷한 문양이 여럿 있었다. 단순히 패턴이라고 보기엔 어려운 수준이었다. 입은 사람은 알아차리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 위치이기도 했다.

‘이런 부분들을 놓쳤다가 이미지가 실추된 연예인들이 한둘이 아니다. 범죄를 저지른 수준은 아니겠지만 한번 개념 없는 연예인으로 낙인찍히면, 앞으로의 활동에 제약을 많이 받게 된다.’

티셔츠를 살피는 오백호를 보며 도욱은 생각했다.

그냥 욕설이 있는 셔츠도 아니고, 일본의 전범기. 도욱으로서도 누군가 이런 옷을 의도를 가지고 입는다면 용서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게다가 이건 국민 예능. 이곳에서의 이미지는 낙인이 되기 충분하다. 방송에 나가지 않느니만 못할 수 있다.’

도욱이 이렇게 작은 문양까지 대번에 발견할 수 있었던 건 이전에도 이 브랜드의 옷을 입은 연예인이 일명 ‘욱일기 논란’으로 제대로 홍역을 치룬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큐 엔터 소속 연예인도 입은 적이 있다. 홍보팀에서 일할 때 사과문을 쓰느라 힘들었었지.’

외국 디자이너가 디자인 한 브랜드의 옷을 많이들 직수입해서 들여오고, 입다 보니 생긴 문제들이었다.

“설마 이거······.”

“네. 전범기 문양 같아요.”

“하! 큰일 날 뻔했네, 이거.”

안형서가 괜히 큰 뭇매를 맞을 뻔했다.

오백호가 얼른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루카스의 연락처를 찾아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전범기라는 말에 놀란 표정으로 안형서가 자신이 입은 티셔츠를 다시 한 번 보았다. 울상을 지으며 안형서가 물었다.

“이거 일본 그거 맞지?”

“······네.”

“으, 너무 싫다! 알고 나니까 찝찝해서 못 입고 있겠어. 원래 입고 있던 옷으로 갈아입을까봐.”

그렇게 말한 안형서는 정말로 다시 옷을 갈아입으러 향했다.

녹화가 시작되기 한 시간 전이었다. 대기실에서 촬영을 하기로 했기 때문에 대기실 내에는 유한도전 스태프들이 도착해 촬영 장비 설치가 한창인 상황이었다.

곧 오백호의 연락을 받은 루카스가 돌아왔다.

루카스는 깡마른 체형으로 커다란 검은색 페도라 모자와 검은색 망토를 두르고 온통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흰 피부에 늘 한 마리의 화려한 까마귀 같은 차림새로 다녀서 그를 스치듯 본 사람은 유령이라도 본 듯한 인상을 받곤 했다.

“옷에 문제가 있다고······.”

루카스는 5살 때부터 북유럽 지역인 노르웨이에서 학교를 다니다 성인이 된 후 뉴욕에서 패션 디자인을 공부한 인물이었다.

한국말도 부모님과 대화할 때나 뉴욕에서 만난 한인 친구들과 가끔 쓰는 것 외엔 전혀 쓸 일이 없었기 때문에 서툰 편이었다. 어물어물하게 묻는 루카스에 오백호는 얼굴을 굳혔다.

“여기, 이 셔츠에 쓰여선 안 될 문양이 사용되어 있습니다.”

오백호가 정확히 전범기 문양을 짚었지만, 루카스는 잠시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게 그러니까!”

당연히 곧바로 이해할 줄 알았던 오백호는 순간 루카스의 표정을 보곤 현기증이 나는 듯했다. 옆에 서 있던 도욱이 설명했다.

“나치 로고 같은 거예요. 한국에선 절대 써서 안 되는, 더 심각한 문제가 있는 로고예요.”

“나치······?!”

나치라는 말에 루카스도 놀란 듯 되물었다. 조금 전의 맥 빠져 있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상황의 심각성을 조금 이해한 듯했다.

서양에서는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일본 브랜드들의 디자인에 자주 사용되기 때문에 그저 감각적인 문양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게 보통이었다. 때문에 루카스도 별 생각이 없었던 것이었다.

그 사이 오백호가 김원을 불러와 루카스에게 영어로 상황을 설명하게 했다.

평소 장난스럽게 감탄사로서만 영어를 사용하던 김원이 유창한 영어로 진지하게 왜 이 문양이 문제가 되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김원도 유학파인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워낙 부모님께 철저하게 역사 교육을 받았었다. 김원 자체의 성향 또한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섭렵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세계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도 많은 책을 읽고 이해하고 있었다.

옆에 서 있던 백호나 멤버들은 ‘워 크리미널’이라는 단어 정도만 겨우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조금 흥분한 김원이 빠르게 말을 이어갔다.

“부끄럽네요······. 죄송합니다.”

김원의 설명을 들은 루카스가 침울하게 중얼거렸다.

“도욱이가 발견 안 했으면 큰일 날 뻔했지만, 미리 발견했으니 괜찮습니다. 다른 의상 있나요?”

“있어요. 도욱아······. 고맙다.”

인사하는 루카스에게 도욱이 고개를 흔들었다.

“형서야 다른 옷 줄게······.”

루카스를 따라 안형서가 의상을 갈아입으러 갔다.

갈아입고 온 의상은 귀여운 강아지 얼굴이 그려진 평범한 분홍색 티셔츠였다.

“이게 더 나은데? 잘됐다.”

오백호가 말했고, 안형서나 다른 멤버들, 그리고 루카스까지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 어떻게 잘못될지 모르는 곳이 연예계였다.

‘정상 가까이에 있을수록 아마 더 심해지겠지.’

도욱은 어느 순간에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주의에 주의를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었다.

***

대기실에 설치된 조명이 켜지고, 수십 여 명의 스태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케이케이가 출연하는 유한도전 촬영이 시작됐다.

지난 방송에서 유한도전 멤버들의 ‘You’가 워낙 화제를 끌었기 때문에 원곡자인 케이케이의 대기실을 찾아 그 소감을 묻는 짤막한 인터뷰를 갖는 정도의 촬영이었다.

케이케이 멤버들을 찾아온 유한도전 멤버들이 멋있다는 둥, 역시 떠오르는 신예라는 둥 케이케이를 띄워주며 떠들썩한 분위기를 먼저 만들었다. 이후에는 나재석의 진행을 따라 멤버들이 각자 자신의 이름과 맡은 바 역할을 설명했다.

김원이 유한도전의 팬이었다며 유한도전의 에피소드들을 줄줄 말해 눈길을 끌었다.

이후, 나재석이 리더인 정윤기를 향해 물었다.

“자, 그래서 우리 케이케이 멤버들은 저희들의 무대! 어떻게 보셨나요?!”

“잘 봤겠지 뭐~! 죽여 줬으니까~!”

정윤기가 답하기도 전에 하명훈이 끼어들어 허세를 부려서 소소하게 웃음이 터졌다.

“네. 잘 봤습니다. 마, 너무 인상 깊어서 제가 무대를 저렇게 했던가··· 약간의 자괴감이···.”

정윤기의 대답에 유한도전 멤버들이 일부러 기분 나빠하는 표정을 지으며 자괴감이라고요? 하고 되물었다.

“그런데 리더 정윤기 씨는 사투리를 쓰시네요?”

“네, 아직 사투리를 다 못 고쳐갖고.”

“그렇군요. 그러면 시청자분들께 사투리로 인사 한번 부탁드려도 될까요?”

사전에 인터뷰 내용에 대한 준비를 해둔 상태였기 때문에 큰 문제없이 촬영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하명훈이 돌발적으로 튀어나오면서 도욱을 향했다.

“뭡니까? 명훈 씨!”

“아놔, 이거 입어 보면 안 돼요? 너무 멋있어. 아까부터 너무 눈에 들어와.”

패션에 관심이 많은 하명훈이 입어보겠다고 한 의상은 도욱이 입고 있던 청재킷이었다. 하명훈은 케이케이의 등장과 소개 때부터 도욱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잘생긴 외모에 패션 스타일까지 완전히 자신의 이상향이었기 때문이었다.

나재석과 다른 유한도전 멤버들이 하명훈에게 민폐라고 핀잔을 주었지만 하명훈의 의지는 대단했다.

“여기 있습니다.”

도욱이 예의 바른 태도로 하명훈에게 자신이 입고 있던 청재킷을 건넸다. 재킷을 벗자 드러나는 단단한 상체에 유한도전 멤버들이 감탄했다.

그러는 동안 하명훈은 요즘 한창 살이 찐 자신에게는 작은 것이 분명한 청재킷을 입어 보겠다고 낑낑대고 있었다.

부욱―

그때 청재킷의 어깨와 팔을 잇는 부분이 부욱 소리를 내며 찢어졌다.

일시 정지를 누른 것처럼 촬영장의 모든 이들이 황당함에 행동을 멈췄다. 짜이지 않은 실제 상황이었다. 하명훈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동시에 다른 이들의 얼굴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오, 옷이 뭐 이래!”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며 하명훈이 외쳤다. 나재석이 나서서 대신 사과했다.

“이거 정말 어떡하죠? 미, 미안합니다.”

“아··· 이런.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정말이에요.”

도욱이 부드러운 말투로 괜찮다고 반복했다. 하명훈이 더는 민망하지 않게 청재킷도 자신이 들어 팔에 걸쳐 수습했다. 나재석과 다른 유한도전 멤버들이 그런 도욱을 향해 얼굴처럼 성격도 잘생겼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역시 상남자~! 살아있네~!”

“어차피 회사에서 사 준 옷입니다. 제 옷 아니에요.”

“아······! 그래서 괜찮다는 것이었군요~!”

도욱의 센스 있는 대처에 나재석의 표정이 밝아졌다.

예기치 않은 사고가 있었으나,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촬영이 마무리됐다. 촬영이 끝나고 하명훈과 유한도전 제작진이 옷은 미안하다며 변상을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

유한도전 방송이 나간 후, 도욱의 인기는 십 대뿐 아니라 이십 대 여성들 사이에서 치솟았다.

남성들도 많이 보는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남성들 사이에서도 ‘도욱이라는 애는 남자가 봐도 잘생겼더라.’ 하는 반응들이 나왔다.

다른 멤버들 또한 각자의 매력을 조금씩은 보여주었기 때문에 인기가 상승했다.

그 사이 입소문을 제대로 탄 ‘You’는 음원 1위를 유지하고 있었고, 덩달아 ‘Sorry but I Love You’의 음원 순위도 2, 3위를 오갔다. 활동 마지막 주인 3주 차에 케이케이는 ‘You’로 인생가요 1위 후보에 올라 있었다.

인생가요 스케줄을 가는 차 안.

도욱은 이어폰을 끼고 최근 용감한외동과 작업 중인 곡의 초안을 듣고 있었다. 동시엔 휴대폰으로 습관처럼 연예 기사를 검색했다.

메인 화면에 맨투맨의 기사가 떠 있었다.

<맨투맨 컴백임박! 서준, 케이케이와 라이벌 구도 자신 있어······>

도욱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맨투맨 정규 1집 앨범이 나오는구나······! 서강준, 자신 있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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