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29화 (29/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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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헤드 캐스팅 (2)

#오버헤드 캐스팅 (2)

케이케이 데뷔 앨범 타이틀곡 ‘Sorry but I Love You’.

후속곡은 ‘You’. 원래대로라면 타이틀곡이 됐었어야 할 곡이었다. 때문에 지금은 후속곡으로 쓰이지만 ‘You’도 충분히 좋은 곡이었다.

신인이 이미 발표된 후속곡으로 1위를 한다거나, 큰 이슈를 끄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면이 있는 게 사실이었다. 때문에 타이틀보다 힘이 덜 들어간 채로 준비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케이케이의 후속곡 활동의 경우 타이틀곡이 기대 이상의 좋은 반응을 내면서 급하게 내려진 결정이기도 했다.

그저 곡이 워낙 좋으니 최대한 성적을 낼 수 있으면 내보자는 게 회사의 입장이었다.

“역시 좋은데요?”

안무 영상을 다 본 정윤기가 말했다. ‘You’의 분위기와 잘 맞는 안무였다.

힛 엔터의 댄스 레슨을 담당하고 있는 안무가 노윤태도 국내에서는 이름 있는 안무가였다. 그런 그였기 때문에 큰 무리 없이 짧은 시간 내에 괜찮은 안무를 완성할 수 있었다.

빠듯한 일정을 고려해 타이틀곡의 안무보단 조금 난이도를 낮춘 상태이기도 했다.

‘이 정도면 무난하게 좋은 건 사실이다······. 어차피 안무가 주가 되는 노래도 아니고. 하지만 너무 약한 것 같기도 한데······.’

전체적으로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왔지만, 사실 극찬이 나올 만한 안무는 아니었다.

도욱은 고민에 빠졌다.

현실적인 문제가 있는데 퀄리티를 끌어올리자는 의견을 무작정 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현재의 일정, 상황 등을 고려하면 이 정도 퀄리티로만 무대를 서도 훌륭한 편이었다.

심준 팀장이나 오백호 실장도 그 부분을 고려해서 괜찮다는 평을 내렸다.

조애나 팀장은 다른 코멘트를 하지 않았다. 이 부분은 팬-마케팅 팀장인 조애나가 터치할 부분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영상으로 안무 숙지해두세요. 적어도 이번 주말부터는 연습 들어갈 겁니다.”

심준 팀장의 말에 멤버들이 기합을 넣어 “네!” 하고 답했다.

이어서 심 팀장이 노윤태를 향해 말했다.

“노 선생님, 일정 짜서 오 실장님께 드리면 될 것 같아요.”

“예. 오 실장님, 그럼 내일 안으로 연습 스케줄 보내드리겠습니다.”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후속곡 무대 준비가 빠르게 이어졌다.

***

팬-마케팅팀 사무실 내부의 소회의실.

커다란 테이블 한편에 도욱이 앉아 있었다. 조 팀장은 회의실에 두고 쓰는 개인 전용 미니냉장고에서 비타민 음료를 꺼냈다. 자신의 것을 꺼내곤 뒤를 돌아 자리에 앉아 있는 도욱에게 물었다.

“마실래?”

“괜찮습니다.”

정중하게 거절한 뒤 도욱은 자세를 바로 했다. 조애나 팀장이 도욱의 맞은편에 앉았다.

“열아홉이라고 했나?”

“네.”

“기 좀 죽어보라고 세게 나갔는데도 안 죽더라?”

도욱은 대답하지 않고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조 팀장은 아쉬울 게 없는 사람이었다. 일도 자신이 원하니까 하는 것이지 언제든 손 떼고 놀고먹으며 살아도 좋을 만큼의 배경을 타고난 사람. 도욱은 그런 사람이 다른 직원들과 비슷할 거란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고 있었다.

“좋아, 그 깡. 난 내 담당 가수가 어디 가서 기 죽어 다니는 건 못 보겠더라. 그러고 다니진 않을 것 같네.”

“······감사합니다.”

칭찬이라기엔 애매한 말이었다. 오히려 기분 나쁠 수 있을 말에 감사 인사를 하는 도욱을 보며 조애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확실히 소문대로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조애나 팀장은 마인드부터 팀장이라기보단 대표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기획사와 소속 연예인. 데뷔 전에야 기획사가 갑이고, 연습생이 을이다. 한창 활동을 시작했을 때는 함께 성공을 바라고 달리는 공생 관계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는 관계가 뒤집힐 수 있었다.

때문에 기획사와 소속 연예인의 기 싸움은 연예인이 잘나가게 될수록 심해지기 마련이었다.

방송 모니터링이야 했지만, 직접 만난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럼에도 대번에 조 팀장은 도욱의 그릇 크기를 가늠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제법, 곧게 시선을 마주해오는 도욱이 맘에 들었지만, 조애나 팀장은 도욱을 다 받아주지만은 않을 작정이었다.

게다가 도욱은 데뷔한 지 얼마 안 돼 1위를 한 신인 아이돌 그룹의 중심 멤버였다. 자만하기 딱 좋은 위치였다.

“팬과 소통할 다른 창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나?”

“예, 그렇습니다.”

“생각해 본 건 있고?”

“말씀드렸다시피 방송만으로는 보여줄 수 있는 것들에 한계가 있으니까요. 멤버들이 직접 찍은 사진도 좋고, 영상으로······ 숙소나 대기실 모습 같은 것들을 올리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팬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서······.”

“팬 카페 말고 다른 곳들에?”

“네. 팬 카페의 경우엔 팬들만 찾아오니까요. 최근에 생긴 그 영상 사이트에 같은 곳에 영상을 편집해 올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이투브?”

“그런 곳이요.”

조애나 팀장은 비타민 음료를 한 모금 마시곤 병을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팬-마케팅 팀에서 최근 케이케이의 마케팅을 위해 생각하고 있었던 방향과 일치하는 이야기였다.

조 팀장도 기존 팬덤의 관심을 이어받아올 수 있는 대형기획사가 아닌 이상, 케이케이는 신비주의 컨셉보단 친근함을 내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주 보고, 접할수록 마음도 가까워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도욱이 덧붙였다. 도욱의 말이 맞았다.

‘여러 방송에 푸시해 노출할 순 없으니, 아예 인터넷을 통해 채널을 만든다? 크레이티브한 건 물론이고, 콘텐츠 내용 제시까지 퍼펙트!’

조애나가 눈을 빛냈다. 소속 연예인을 관리하는 방식은 방식이고, 일에 대한 건 또 다른 문제였다.

다 받아주지 않으려고 해도, 도욱의 이야기는 받아줄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팬-마케팅팀에 아예 스카우트를 해오고 싶을 정도였다. 물론 직원으로 부리기엔 스타성이 너무 대단한 인물이었지만 말이다.

“강도욱?”

“네.”

“자네 의견, 쓸모 있어.”

조애나 팀장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도욱도 따라 일어서며 조애나 팀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바쁜 시간 내서 얘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

도욱의 예의 바른 인사에 조애나 팀장은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이제는 정말 기분이 상했을 법도 한데 도욱은 끝까지 꿋꿋했다.

그런 도욱의 태도에 조애나 팀장은 도리어 자신이 민망해졌다.

어쩌면 도욱은 단순히 기 싸움을 할 대상이 아니라, 정말로 끝까지 엔터 업계에서 함께해야 할 인물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조애나 팀장의 머릿속에 스쳤다.

그러나 눈앞의 인물은 이제 겨우 열아홉이었다. 성급한 판단을 내리기 전, 더 지켜볼 필요가 있었다.

“감사 인사는 내 쪽에서 해야지, 안 그래?”

“아닙니다, 팀장님.”

“그럼 이만. 곧 또 보죠.”

조애나 팀장이 구두 굽 소리를 울리며 회의실 밖으로 먼저 나갔다. 여전히 거만한 태도였지만, 미묘하게 달라진 어투를 도욱은 느꼈다.

***

연습실에선 멤버들이 두 부류로 나뉘어 있었다.

정윤기와 김원, 안형서는 내일 있을 ‘Sorry but I Love You’의 무대를 맞춰보며 점검하고 있었고, 박태형과 석지훈은 노트북으로 영상을 보며 ‘You’의 안무를 확인하고 있었다.

본격적인 안무 연습에 들어가기 전, 춤을 잘 추는 멤버들이 먼저 안무를 숙지하는 게 아무래도 큰 도움이 됐다. 그렇게 하면 미숙한 멤버들을 이끌기가 더 편하기 때문이었다.

타이틀곡 무대는 이제 꽤 익숙해져서 멤버들 모두 여유를 부릴 수도 있게 되었다. 끼가 많은 안형서는 중간중간 애드리브로 포즈를 취해 보이기도 했다.

“도욱아, 혼났어?”

안형서가 도욱을 발견하곤 달려와 물었다.

“아니에요, 형. 제 의견 잘 들어주셨고 반영도 해주신다고 했습니다.”

“진짜? 다행이다.”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티는 잘 내지 않지만, 도욱을 가장 걱정하며 마음 졸이고 있었던 박태형도 크게 안도했다.

도욱이 한숨 돌리며, 물을 마시기 위해 정수기 쪽으로 향했을 때였다.

박태형이 도욱의 곁으로 와 섰다.

“······저, 도욱아.”

“어, 태형아. 왜?”

무대에 선 박태형과 무대 아래의 박태형의 갭은 아직까지도 상당했다.

도욱은 박태형을 볼 때면 노래의 힘에 대해 직접적으로 실감하곤 했다. 이제 무대 위에서 노래가 나올 때의 박태형은 카리스마마저 느껴졌다.

그러나 평상시의 박태형은 여전히 소심하고, 여린 인물이었다. 박태형이 잠시 뜸을 들이다가 도욱에게 말했다.

“저······ 사실 부탁하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부탁?”

박태형의 ‘부탁’이라니.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아까 You 안무를 거의 다 익혔는데······.”

“벌써?”

도욱이 조애나 팀장에게 다녀오느라 연습실을 비운 건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이었다. 박태형은 놀랍게도 한 시간여 만에 안무를 전부 외워버렸다. 난이도가 높은 안무가 아니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놀라운 속도였다.

‘재능이란 역시 놀랍구나.’

감탄한 얼굴로 바라보자 박태형이 부끄러운지 머리를 긁적였다.

말하는 것에 뜸을 들이는 박태형을 도욱은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었다.

“약간 허전한 것 같아서.”

“역시 너도 그렇게 느꼈구나.”

“앗, 너도?”

도욱의 말에 박태형이 놀라며 되물었다. 도욱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노윤태가 만든 안무도 나쁘진 않았지만, 아쉬운 부분이 있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후렴에 ‘그래, 좋아, 네가, 난-’ 이 부분 말이야.”

“어, 거기.”

“······바꿀 수 있을까?”

사실 원래의 박태형이라면 댄스 레슨 선생님이자 해당 곡의 안무가가 만든 안무를 바꾼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박태형은 조애나 팀장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전혀 기죽지 않고 전달하는 도욱을 직전에 본 상태였다. 알게 모르게 그 모습이 박태형의 가슴속에 남아 있었다.

도욱은 언제나 팀에 필요한 게 있으면 그때그때 자신의 의견을 가감 없이 매니저인 백호든, 작곡가든, 팀장에게든 전하곤 했다. 팀을 위한 행동이었고, 도욱이 낸 의견들 덕분에 잘된 것들이 많았다.

춤에 관해서는 본능에 가까운 식견을 가진 박태형이었다. 안무를 보면 볼수록, 이대로는 너무 평범하다는 생각이 박태형의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도욱이 조애나 팀장을 만나러 간 사이, 안무 영상을 보며 박태형은 자신도 팀을 위해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떻게 바꿔보고 싶어?”

“아······, 그······.”

도욱의 물음에 박태형이 잠시 말을 멈췄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바꿀 생각을 해도 되는가부터도 박태형에게는 큰 모험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박태형을 보며 도욱이 최대한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만약 너한테 더 좋은 안무가 있으면 그걸 넣어보자고 선생님께 말하면 돼.”

“그, 그럴까?”

“물론이지.”

“어······ 짜보면 금방 될 것도 같은데···.”

“천천히 해도 돼. 어차피 본격적인 연습은 주말부터니까.”

박태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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