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19화 (19/225)

# 19

전조 (1)

#전조 (1)

도욱은 정윤기에게 원래 알고 있는 ‘Sorry but I love you’의 가사로 도움을 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곡은 원래와는 살짝 다르게 편곡되어 있었다. 또 그룹 멤버의 구성이 바뀌었고, 도욱으로 인해 다들 새로운 자극을 얻는 등 상황이 조금씩 바뀌었다.

안형서만 해도 도욱이 노력하는 모습에 자극을 받아, 원래보다도 더 노력하고자 하는 열의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건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앞으로도 도욱 자신으로 인해 상황은 점점 달라질 것이다. 도욱이 만들어나갈, 케이케이가 맨투맨을 이기고 동시대 1등 그룹이 되는 미래를 위해서는 멤버들 각자의 발전도 필수적이었다.

‘되도록 정윤기 스스로 이 슬럼프를 이겨내고 더 좋은 래퍼가 되어주면 좋을 텐데······.’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도욱은 머릿속으로 계획을 세웠다.

녹음 스케줄을 설명하던 오백호가 덧붙였다.

“그리고 안무도 2주 정도 후면 나온다는 것 같더라.”

“안무는 저희 춤 담당 해주시던··· 선생님이··· 마, 만드시나요?”

오백호의 말에 마주 앉아 밥을 먹던 박태형이 우물거리며 물었다.

낯가림이 심한 박태형을 대번에 파악한 오백호는 박태형과 친밀감을 쌓기 위해 각별히 노력했다. 박태형에게는 엄한 모습을 보이기보단 되도록 표정을 풀고 다가갔다. 덕분에 박태형은 제법 오백호를 따르게 되었다. 멤버들만큼이나 자유롭게 박태형은 오백호와 대화했다.

“그분이랑 외부 유명 안무가랑 공동 작업한다더군.”

“오 실장님, 스타일리스트는요?”

옆에 있던 석지훈의 질문이었다.

열일곱, 아니 이제 열여덟이 된 석지훈이 ‘오 실장님’이라고 부를 때면 오백호는 흠칫 놀라곤 했다. 더 나이 많은 멤버들도 편하게 오백호를 ‘형’ 등의 호칭으로 부르는데 석지훈만 꼬박꼬박 ‘오 실장님’이라 불렀다.

어려서부터 서열이 엄격한 드라마 판에서 아역 활동을 한 탓이라고 오백호는 생각했다.

물론 방송가에 오래 있었던 덕에 다른 멤버들보다도 꾸미는 것에 관심이 많기도 했다. 패션 쪽도 물론이었다. 지금만 해도 석지훈은 아직 한국에는 들어오지도 않은 미국브랜드의 니트를 어렵게 구해 입고 있었다.

오백호는 전달받은 보고서 내용을 떠올렸다.

“잘나가는 신인 디자이너가 맡는대······. 이름이 뭐더라. 이름이, 세례명 같던데.”

“루카스요?”

“그래, 맞아. 루카스. 알아?”

“알아요. 잡지에서 본 적 있어요. 회사에서 정말 저희 그룹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네요.”

그렇지, 하고 대답해 주면서도 오백호는 석지훈의 애답지 않음에 속으로 혀를 찼다. 애늙은이가 따로 없었다.

‘루카스······.’

도욱도 루카스를 알았다. 원래도 루카스는 촉망받는 신인 디자이너로 케이케이의 데뷔 활동 때 잠시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했다. 이후 자신의 이름을 따 ‘키스, 루카스’라는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런칭할 만큼 대형 디자이너가 된다. 이전에 홍보팀 여직원들이 그 브랜드 옷을 하나쯤 갖고 싶다고 얘기하는 것도 여러 번 들었다.

‘루카스와도 이번 기회에 좀 더 확실한 인연을 만들어야겠다.’

정윤기를 포함한 이런저런 계획들이 도욱의 머릿속에 들어찼다. 아직 갈 길이 멀었으므로 더 열심히 움직여야 했다.

앨범 준비 과정 이야기를 나누며 점심을 마친 멤버들은 다시 연습실로 향했다.

***

정윤기의 <학생 래퍼> 공연 준비는 차질 없이 이루어졌다.

단체곡은 방송 당시 연습을 많이 했던 터라 다른 래퍼들과 약간의 연습만 하면 됐다. 자유곡의 경우 연습생을 하며 준비한 레퍼토리 중 한 곡을 할 예정이었다.

오랜만의 공연과 방송 출연에 약간의 긴장감이 따르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의 출연자로서 경쟁을 해야 했을 때보다는 아니었다.

정윤기는 오히려 당장 몇 시간 후면 있을 공연보다도 써지지 않는 가사를 더 걱정 중이었다.

“요, 브로! 긴장했어?!”

공연장으로 가는 6인승 차량 안, 조금 굳은 듯한 조수석의 정윤기를 보며 김원이 물었다.

오백호가 운전하는 차량에는 정윤기, 김원, 강도욱, 그리고 신인개발팀 안영미가 타고 있었다. 세 사람은 막 헤어숍에 들러 간단히 ‘조금 멋은 낸 것 같으면서도 일반인처럼 자연스러운’ 머리를 한 상태였다.

그러한 안영미의 요구에 숍 직원은 살짝 당황했다가 이내 프로페셔널하게 세 사람의 머리를 만져 주었다. 덕분에 세 멤버는 평소보다 훨씬 더 멀끔한 상태가 되었다. 공연에 서는 정윤기는 현장에서 약간의 메이크업도 받을 예정이었다.

공연에 서는 정윤기뿐 아니라 김원과 강도욱까지 머리 손질을 받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두 사람은 회사 측이 방송사에 요청한 ‘방송 노출’ 조건에 해당하는 멤버들이 되었다.

두 사람은 관객석에서 공연을 관람하는 평범한 관람객으로 나올 예정이었지만, 실제로는 카메라에 잘 보이는 자리가 배정되어 카메라가 관객석을 비출 때마다 수시로 화면에 나올 예정이었다.

인기 프로그램 방청객 등으로 회사 연습생들을 내보내 방송 화면에 몇 번이라도 노출시키는 방법은 이미 방송계에 공공연한 방법 중 하나였다.

도욱은 비주얼적으로 시선을 끌 만했고, 김원은 흥이 넘치니 공연을 즐기는 모습이 보이면 좋겠다는 회사의 계산이 깔려 있었다. 멘탈적으로도 두 사람이 가장 적합한 멤버들이었다.

“긴장? 난 긴장 같은 거 안 해, 인마!”

정윤기의 센 척에 김원이 야유하며 웃었다. 김원의 야유에 정윤기가 형이 말하는데 웃냐고, 까불지 말라는 사인을 보냈다.

두 사람이 투덕대는 것을 보며 도욱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차량은 한강을 건너고 있었다.

‘이 방송으로 케이케이는 더 빨리, 더 많이 유명해지게 될 거다. 내가 그렇게 만들어야 해!’

도욱은 차창에 비친, 이제는 익숙해진 자신의 얼굴을 보며 다짐했다.

***

처음 정윤기가 <학생 래퍼>에 출연한다는 사실만 전달할 때, 오백호는 일부러 멤버들 중 일부가 방송에 노출될 거란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아직 데뷔 전이라고 해도, 아니 아직 데뷔 전이라 확실한 인기 순위가 정해져 있지 않아서 더욱 멤버 간의 인기 순위는 민감한 부분이었다.

이번 출연은 출연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만큼 스치듯 방송을 탈 예정이었지만, 어쨌든 인지도와 인기를 올릴 수 있는 기회이긴 했다. 오백호는 괜히 어떤 출연자가 나갈지 미리 전달해서 출연 전까지 멤버들이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덕분에 도욱도 <학생 래퍼> 당일에서야 자신의 출연 소식을 알게 되었다.

이전에도 케이케이 멤버들이 <학생 래퍼>의 방청객으로 출연을 했지만 그다지 큰 이슈 몰이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도욱도 출연 사실 자체는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준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도욱은 헤어숍에서 머리 손질을 받으며 판을 짰다. 무심한 표정으로 눈을 깜박이고 있을 뿐이었지만, 반듯한 도욱의 모습은 헤어숍 스태프들을 술렁이게 했다.

“못 보던 앤데 누구야?”

헤어숍 원장이 오백호와 인사를 하다 거울에 비친 도욱을 보고 물었다.

청담동 땅 위에 3층짜리 숍 건물을 세운 원장은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여배우들을 줄줄이 담당하고 있었다. 그런 원장이 대번에 도욱을 집어 물은 것이다.

“오 실장, 이번에 제대로 건졌네.”

원장이 감탄하는 소리를 들으며 도욱은 자신의 계획에 다시금 확신을 가졌다.

‘이 얼굴이면 된다! 그리고······ 확실한 하나를 더!’

***

500여 명 정도가 수용 가능한 서울 외곽의 공연장은 어린 학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학생 래퍼> 예선을 보러 온 참가자들이 그라운드석에 이름표를 달고 앉아 있었고, 2~3층 관객석에 그들을 응원하러 관람객이 앉았다.

심사위원들이 워낙 유명한 래퍼들이었기 때문에 심사위원들의 공연과 지난해 우승자 등이 나오는 오늘의 공연을 보고 싶어 하는 이들이 가장 많이 포진해 있었다.

공연 리허설을 마친 후, 관람객이 입장하기 시작하자 도욱과 김원은 대기실에서 나와 <학생 래퍼> 스태프가 지정해준 자리에 앉게 되었다.

2층 맨 앞자리로 카메라가 그라운드석의 예선 참가자들을 비추면, 필연적으로 화면에 나올 수밖에 없는 위치였다.

“와우, 사람 짱 많아~!”

“그러게요.”

“케이케이도 나중에 이런 데서 퍼포먼스를 하겠지?”

많은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뭉쳐서 하나의 웅성거림으로 들렸다. 옆에서 들뜬 채 묻는 김원을 향해 도욱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 주었다.

“여기보다 더 큰 데서도 해야죠.”

“여기보다? 오 마이 가쉬, 잇츠 언 빌리버블 맨!”

김원은 마치 실제로 이곳보다 더 큰 곳에서 공연을 하기라도 한 것처럼 흥분하며 ‘언 빌리버블’을 중얼댔다. 상상만으로 흥분되는 김원의 마음을 도욱도 알았다.

왜냐하면 도욱도 아직까지 실제로 무대에 서 본 적은 없었다. 도욱도 자신이 앞에 놓인 무대, 그리고 그보다 더 큰 무대에 설 날을 생각하자 가슴이 떨려왔다. 심지어 그 미래가 막연한 미래가 아닌, 이미 정해져 있고, 자신이 더 키워 나갈 미래라는 생각이 들자 심장에서 소리가 날 것만 같았다.

‘아주 오래된 꿈이었으니까.’

이룰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도 못한.

도욱은 이내 주먹을 꽉 쥐며 자신을 다잡았다. 차근차근 밟아 올라가는 단계였다. 상상을 많이 한다고 해서 미래가 더 빨리 오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도욱이 김원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예선 공연이 시작되었다.

엠씨가 무대 위로 등장하자 웃음과 함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엠씨는 힙합 듀오로 근근이 활동하다가 점차 예능으로 진출해 요즘에는 예능에서 더 많이 활동하고 있는 ‘MC 허깨’였다.

“안녕하세요, 국내 최고의 래퍼! 가 되고 싶었던 허깨입니다~!”

허깨가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자신에게 박수를 치라는 듯 오버스러운 손짓을 하자 관객석 사이에서 피식거리는 웃음이 터졌다.

관객들이 치는 박수를 한껏 만끽하며 허깨가 인사를 한 후, 바로 오디션 프로그램 <학생 래퍼> 시즌 2에 대해 빠르게 설명했다.

우선 <학생 래퍼>는 모든 참가자가 중고등학생으로 모두 교복을 입고 출연한다. 또 참가자들은 스튜디오에서 이미 오디션을 치르고 심사위원들에 의해서 걸러진 30명의 참가자들이었다.

우승자를 뽑는 시즌 2의 방식은 간단했다. 이번 1차 공개 예선 때부터 30명의 참가자들은 점수에 의해 인원 안에 들어오지 못하면 바로 탈락하게 된다.

점수는 심사위원 점수 70%와 현장, 인터넷 투표 합산 30%를 반영했다. 결승 때만 생방송 문자 투표가 추가 될 예정이었다.

각 라운드의 커트라인 인원은 다음과 같았다.

1차 - 20명

2차 - 15명

3차 - 8명

4차 - 4명

5차 결승 - 우승자 선출

오늘은 총 10명의 탈락자가 발생하는 1차 공개 예선이었다.

공연장 VCR 화면을 통한 방식 설명 후, 허깨는 심사위원 4명을 소개했다.

한 명, 한 명 소개할 때마다 허깨의 등장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함성이 쏟아져 나왔다. 급기야는 굵은 목소리의 남학생이 ‘날 가져요, 둘로 형!’ 하고 래퍼 둘로에게 사랑 고백을 하기도 했다.

공연장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는 놓치지 않고 괴성을 지른 남학생 쪽으로 카메라를 줌인 시켰다. 당장 무릎이라도 꿇고 형님이라고 불러야 될 듯한 남학생의 얼굴이 VCR에 뜨자 관중들이 술렁였다.

“둘로 형! 사랑해요! 날 가져!”

그러나 남학생은 아랑곳 않고 둘로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당황스러워 하는 둘로의 얼굴이 화면에 잡혔다. 둘로의 체격이 왜소한 터라 두 사람의 모습이 더 상반되어 폭소를 자아냈다. 허깨가 남학생을 진정시키며 진행을 이어갔다.

“오늘 공연은 참가자당 30초의 시간이 주어지는 프리스타일 랩 대결입니다! 과연 30초라는 짧은 시간 동안 어떤 래퍼가 더 많이 심사위원분들의, 또 여러분들의 귀를 사로잡게 될지 궁금한데요~! 그리고 오늘 특별 공연이 있다는 것도 잊지 말아주쎄요~!”

무대 조명이 어둡게 바뀌며 첫 번째 참가자에게 올라오라는 멘트가 이어졌다.

핀 조명과 함께 뚜벅뚜벅 올라온 건 밝은 파란색의 교복을 입은 참가자였다. 교복만 봐도 학교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예술 고등학교의 교복이었다.

VCR 화면에 참가자의 얼굴이 뜨자 우선적으로 여학생들의 함성이 터졌다. 이후에는 남학생들도 술렁였다. 첫 번째 참가자부터 이미 랩도 잘하고, 소위 말하는 ‘간지’가 있어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끌며 유명한 참가자였던 것이다.

시작을 알리는 알림음과 함께 비트가, 또 랩이 시작되었다.

“정말 잘하는데? 와우~!”

비트가 잘게 쪼개져 있었는데도 참가자는 정확한 발음으로 테크닉적으로도 성인 래퍼과 견주어도 손색없을 랩을 보여주고 있었다.

김원이 환호하며 리듬에 맞춰 손을 흔들었다. 30초라는 짧은 시간 안에 공연장의 분위기는 정말 오디션다운 분위기로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시즌 1도 좋았지만, 시즌 2가 엄청난 인기를 끈 데에는 이 참가자와 같은 실력자들이 상당히 많았기 때문이지.’

도욱은 생각하며 끝인사를 하고 들어가는 참가자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

‘백호 형에게 부탁한 일은 큰 무리는 없겠지?’

그러한 인기 프로그램에 얼굴 도장을 찍을 확실한 방법을 떠올리며 박수를 치는 도욱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그 장면을 발견한 카메라가 도욱을 향해 줌을 당겼다.

이제 곧, 대단하진 않지만 도욱만이 그릴 수 있는 그림이 펼쳐질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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