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
Sonata : 울려 퍼지다 (5)
#Sonata : 울려 퍼지다 (5)
“······?!”
그리고 비트가 덧입혀져 있었다.
멤버들의 얼굴에 물음표와 느낌표가 동시에 떠올랐다. 이내 감탄과 함께 입이 벌어졌다. 아이디어를 낸 장본인이면서도 도욱 역시 용수철의 센스에 감탄했다.
-Sorry but I love you~ 사랑해~ sorry~ 정말로~ but love you~
보컬 선생 중 한 명이 가녹음한 후렴구가 반복적으로 흘러나오자 아직 데뷔도 하지 않은 멤버들이었지만,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건 된다!’ 소리치고 싶을 정도였다.
“너··· 너무··· 좋은데요?”
끝까지 노래를 들은 정윤기가 약간 더듬기까지 하며 감상을 말했다.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팀장들과 이사 등에게서도 이미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한 번 더 들어도 좋은 게 칭찬이었다. 용수철은 어깨를 으쓱하며 본론을 꺼냈다.
“비트만 깔린 부분은 랩이 들어갈 거고, 랩은 거기 두 사람이 녹음 전까지 직접 가사를 써 오면 되겠어요.”
“엇, 네넵!”
“옙~!”
정윤기와 김원 쪽을 보며 용수철이 말하자 두 사람은 바짝 군기가 들어 답했다.
용수철은 정확히 누가 어떤 부분의 랩을 써와야 하는지 설명해주었다. 두 사람은 휴대폰을 꺼내 정신없이 메모했다. 1절과 2절의 앞부분은 정윤기, 후렴구 뒷부분은 김원이 맡게 되었다. 중요한 인트로를 정윤기가 맡게 된 셈이었다.
“보컬 시작 부분 벌스 원은 지훈 군이, 벌스 투는 태형 군이 하세요.”
문제는 가장 중요한 후렴 부분이었다.
“후렴은······.”
도욱은 자신의 옆에 앉은 안형서를 힐긋 쳐다보았다. 안형서의 표정은 평범해 보였다. 약간의 긴장 상태일 뿐 극도로 우울해하거나 하진 않았다. 확실히 요즘 다시 예전의 안형서로 돌아와 있긴 했다.
‘예상대로 마음을 잘 추스른 것 같아 다행이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라지만, 안형서는 천성이 착한 편이었다. 조금만 응원해 줘도 남에 대한 시기나 질투로 일을 그르칠 인간은 아니라고 도욱은 판단했다. 또 과거에 데뷔가 무산돼서 우울증을 앓았다지만, 다시 잘 일어선 걸 보면 성정이 나약하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한 번 일어선 적 있는 사람은 힘들지만 두 번, 세 번도 일어날 수 있다.’
예전에 자신이 그랬듯이 말이다.
도욱이 본 게 맞았다. 안형서는 나름대로 평온한 상태였다. 조금 흥분해 있긴 했다. 자신과 자신의 그룹이 부르게 될 곡이 너무나도 좋았으니까. 자신에게 주어지는 파트를 최선을 다해 부를 생각이었다. 그게 4마디든 16마디든 말이다.
“1절 후렴구는 형서 군이, 직후는 도욱 군이 하도록 하세요.”
“······네, 네?”
당연히 후렴은 도욱에게로 돌아갈 거라 생각했던 안형서였다. 답을 하려던 안형서가 버벅거렸다.
“2절 후렴은 도욱 군이 하고 여기 뒤에 코드 올려서 음 높인 부분을 형서 군이 하면 되겠군요.”
안형서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용수철을 보았다. 그리고 도욱을 보았다. 도욱은 아무렇지 않은 듯 자신의 파트를 체크하고 있었다.
물론 도욱도 2절 후렴구를 부른다. 분배된 시간 자체도 그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렇게 파트를 나누면 확실히 안형서가 리드 보컬이었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안형서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케이케이 멤버가 구성될 때만 해도 리드보컬 자리는 자신이라고, 자신을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케이케이의 리드 보컬은 강도욱이 되는 게 맞았다. 용수철에 대한 두려움을 무릅쓰고 안형서가 앞으로 나섰다.
“저······ 피디님.”
“뭔가요?”
“저보다는 도욱이가······!”
“아, 의견을 내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하라고 충고하고 싶군요. 파트 배분은 피디의 권한 중 하나고 나름대로 심사숙고해서 배분한 거니까요.”
“죄, 죄송합니다.”
“그래서 할 말이······?”
“아닙니다.”
안형서는 고개를 저었다. 용수철의 말대로 프로듀서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자신이 함부로 왈가왈부할 부분이 아니었다.
다만, 도욱이 리드보컬이 아니란 점이 계속해서 안형서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도욱을 인정하고 난 후라 더욱 그랬다. 도욱은 정말로 훌륭한 보컬이었고, 멤버였다.
각자 연습을 해오기로 하고, 멤버들은 작업실을 나섰다.
첫 녹음은 일주일 뒤로 잡혔다. 가사를 써야 하는 멤버들 때문에 넉넉하게 잡은 일정이었다.
작업실을 나와 반보 정도 도욱의 뒤에서 걷던 안형서가 도욱의 옆에 섰다. 무언가 말을 하고 싶어 망설이는 듯한 모습이었다. 도욱에게 무언가 말을 하고는 싶지만 막상 할 말은 없었다. 그런 안형서의 마음을 읽은 도욱이 먼저 입을 열었다.
“형이 하이라이트 부를 거 생각하니까 벌써 기대되네요.”
“아냐, 기대는 무슨.”
안형서가 볼을 긁적거렸다.
사실 어제 용수철과 도욱은 따로 만남을 가졌다. 도입부 아이디어를 준 도욱에게 용수철이 연락을 해 온 것이었다. 편곡에 큰 도움을 줬으니 편곡자에 이름을 올려야 하지 않겠냐는 물음을 받았으나 도욱은 단번에 거절했다.
아이디어를 준 건 사실이지만 실질적인 작업은 모두 용수철이 했다. 음과 빠르기에 변화를 주어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낸 것도 용수철이었다.
“이 정도로 이름을 올릴 순 없습니다. 나중에······.”
“나중에?”
“나중에 제대로 같이 작업을 하게 되면 그때 옆에 이름 올려주세요.”
도욱의 말에 용수철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도욱의 작곡에 대한 욕심이 엿보이는 순간이었다. 용수철은 기대하겠다는 말과 함께 추가로 도욱에게 파트 분배에 대해서 가볍게 물었다.
도욱은 아무래도 안형서의 독특한 음색이 이번 노래에는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답했다. 안형서에게 자리를 양보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이번 곡은 정말로 안형서에게 더 잘 어울리는 곡이었다. 용수철은 리드 보컬 자리를 도욱과 안형서 중 누구에게 주는가로 조금 고민하던 차였다.
‘역시 그런가?’
도욱의 대답을 듣고 나자 용수철은 프로듀서로서 확신이 서게 되었다.
“이번 노래에는 형의 목소리가 딱입니다.”
“응?”
“그러니까 괜한 생각하지 마시라고요.”
“아······ 고맙다.”
안형서는 도욱의 사려 깊음에 다시 한 번 깊은 인상을 받았다. 도욱이 말하는 ‘딱’이라는 말도 무슨 뜻인지 대충을 알 것 같았다. 용감한외동 프로듀서가 자신을 리드보컬로 택한 이유도.
“내가 잘할게! 최선을 다해서!”
안형서가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
각자 연습실에 틀어박혀 연습하는 나날이 계속 되었다. 멤버들의 외양이 점점 ‘몰골’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중 가장 심각한 상태인 사람은 랩메이킹을 직접 해야 하는 데다, 김원보다도 많은 분량을 책임져야 하는 정윤기였다.
도욱이 새벽 운동을 나가는 시간까지 정윤기는 거실에서 불을 켜놓고 랩 가사를 적고 있었다. 준비를 하고 나온 도욱이 안 자냐고 묻자 그제야 정윤기가 좀비처럼 퀭한 상태로 반응했다.
“아······ 스트레스.”
“많이 안 써져요?”
“어. 한 줄도.”
“네?”
정윤기가 잔뜩 줄이 그어져, 제대로 남아 있는 문장은 한 문장도 없는 지저분한 노트 한 면을 도욱의 앞으로 들이밀었다.
녹음까지는 삼 일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도욱은 우선은 자야 하지 않겠냐고 정윤기를 방 안으로 들여보냈다. 첫 데뷔 타이틀곡 작사 참여에 대한 부담감이 큰 듯했다. 방법을 강구해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도욱은 운동을 나섰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게 이런 것이었을까? 그날 아침, 매니저인 오백호가 정윤기를 급하게 찾았다.
***
점심시간. 케이케이 멤버들은 숙소 근처 식당에서 불고기를 시켜 먹고 있었다. 아침부터 정신이 없었던지라 다들 허겁지겁 입안에 밥을 밀어 넣었다.
다른 멤버들과 매니저인 오백호까지 있었지만, 그 자리에 정윤기는 없었다.
“윤기 형 밥은 먹고 있나 모르겠네.”
밥 한 공기를 다 비우기 직전, 마지막 한 숟가락을 남겨 두고서야 정윤기가 생각난 안형서가 걱정스럽게 중얼거렸다.
“잘 챙겨먹었을 거다.”
걱정 말라는 듯 오백호가 안형서에게 답했다.
이른 아침부터 오백호가 전한 소식은 <학생 래퍼> 스페셜 방송에 관한 것이었다.
<학생 래퍼>는 시즌2 예선을 앞두고 화제성을 위해 예선장에서의 공연을 기획했다. 예선장 공연은 시즌1 출연진 중 TOP 3에 든 출연진과 심사위원으로 나왔던 래퍼의 공연이 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3위였던 출연자가 급성 맹장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된 것이다. 최소의 출연진으로 한 시간여의 공연을 진행하려던 터라 빈자리가 너무 컸다.
당연한 수순으로 섭외 요청이 들어온 게 4위였던 정윤기였다. 공연은 바로 이틀 후였다. 무리한 일정이 분명했다. 그러나 회사 측으로서는 데뷔를 앞둔 정윤기의 방송 노출이 한 번 더 가능한 놓치기 싫은 스케줄이기도 했다. 정윤기가 유명해질수록 좋은 게 힛 엔터의 입장이었다.
힛 엔터 쪽에서는 케이케이 멤버 중 한둘을 정윤기를 응원하러 온 공연 관람객으로 내보내고, 그 멤버도 방송에 노출시켜 주는 조건으로 정윤기의 방송 출연을 수락했다.
어렵지 않은 조건이었고, 방송사 측에서는 급하게 더 좋은 누군가를 섭외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으므로 힛 엔터의 제안을 곧장 받아들였다. 그렇게 정윤기는 방송에서 불렀던 단체곡 한 곡과 자유곡 한 곡, 총 두 곡을 준비하게 됐다.
갑작스러운 스케줄에 정신이 없는 건 정윤기였다. 잠도 두 시간밖에 못 잔 채로 정윤기는 허겁지겁 준비해 <학생 래퍼> 공연을 준비 중인 출연진들의 연습실로 향했다.
오백호는 막 정윤기를 데려다 주고 돌아와 멤버들과 함께 점심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관리만 해도 될 실장직의 오백호가 로드매니저 역할도 겸하고 있는 건 멤버들을 더 가까이서 관찰하고, 친밀해져야 앞으로 업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한동안은 로드의 역할도 계속할 생각이었다.
“윤기 형이 가사를 아직 다 못 쓴 것 같던데······ 그 부분은 괜찮습니까?”
도욱이 시급한 문제를 물었다. 오백호는 도욱을 보았다. 케이케이의 매니저로 발령이 난 후, 신인개발팀 안영미가 멤버들에 대해 간단한 브리핑을 해주었었다. 도욱에 대해서는 ‘다 잘한다.’ 이 한 줄이었다. 추가된 설명이 ‘걱정할 것 없다.’였다.
그 말 그대로였다.
지켜본 결과 너무나도 믿음직스러웠고, 정말로 다 잘했다. 게다가 자기 혼자서만 잘하는 게 아니라 옆에 있는 멤버들까지 잘할 수 있도록 진심으로 돕고 있었다.
매니저 생활을 나름대로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연습생은 또 처음이었다. 데뷔하고 온갖 고생을 한 5년 차 아이돌도 갖기 힘든 실력과 인성이었다.
“안 그래도 그 공연 때문에 너희 녹음 미뤄질 것 같아. 삼 일 정도?”
오백호의 대답에 다른 멤버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멤버들 입장에선 삼 일의 시간을 번 셈이었다. 과연 정윤기에게 고작 삼 일 미뤄진 게 큰 의미가 있을지는 모를 일이었다.
도욱은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골몰했다.
‘흠······ 정윤기는 가사를 한번 쓰기 시작하면 단번에 끝을 보는 인물이다. 작업 속도가 느린 편은 결코 아니지만 문제는 정신적인 슬럼프······. 공연까지 해가면서 그 슬럼프를 이겨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