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16화 (16/225)

# 16

Sonata : 울려 퍼지다 (3)

#Sonata : 울려 퍼지다 (3)

용수철의 곡은 물론 좋았다. 다른 사람들 듣기엔 완벽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러나 도욱이 듣기엔 좀 더 후에 발표할 곡을 미리 받아서인지 완성형은 아닌 듯한 느낌이 약간 있었다.

더해서 미래까지 살다 과거로 돌아온 사람으로서 도욱에겐 욕심이 생겼다. 시대와 세대를 불문하고 잘될 수밖에 없는 노래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었다.

‘클래식이 괜히 클래식(Classic)이 아니니까.’

도입부에 멜로디를 잘 변주해서 넣기만 하면 곧바로 빠른 비트로 시작되는 것보다는 더 많은 청중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란 게 도욱의 계산이었다.

실제로도 케이케이가 데뷔하던 시기에 클래식 곡 샘플링을 통해 많은 인기를 끈 곡들이 있었다. 덕분에 이후에도 일 년에 두어 곡은 클래식 곡 샘플링을 통해 나온 곡들이 있었고 꾸준히 인기를 끌었다.

그중 가장 폭발적인 인기를 끈 곡이 용수철과 유사한 비트 방식을 쓰면서 연주곡 샘플링을 도입부에 깔아 놓은 곡이었다. 그 곡은 ‘Sorry but I love you’보다도 많은 인기를 끌며 어마어마한 히트곡이 되었다.

단순 반복적이라는 용수철식 비트가 가지는 단점까지 보완해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도욱은 소나타 곡 벨소리를 듣자마자 용수철의 곡을 떠올렸다.

‘곡에 기승전결을 주어 확실히 완성도를 높일 수 있을 거다. 들어보면 용수철도 바로 알 수 있겠지. 자신의 곡을 보완해줄 방법이란 걸.’

잠시간 골몰하던 용수철이 자리에서 일어서 장비 앞으로 다가갔다.

버튼을 조작하자 곧 가장 베이스가 되는 비트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비트들 위에 다양하게 멜로디가 쌓여 지금의 ‘Sorry(가제)’가 된 것이었다.

비트만 틀었는데도 절로 고개가 까닥거려졌다. 용수철은 또 몇 번 버튼을 조작해 옆에 놓인 키보드의 음을 기본 피아노 소리로 설정했다.

용수철이 가볍게 손가락을 놀렸다.

“원래 음은 이거고······.”

“네. 그 부분 멜로디를 썼으면 좋겠습니다.”

원곡 그대로의 멜로디를 연주했을 뿐인데 ‘어?’ 하는 느낌을 용수철은 받았다. 용수철은 잠시 손가락을 멈추었다가 다시 연주했다.

이번에는 BPM 60 정도에서 80으로, 점점 더 빠르게 연주해 보았다.

빠르기에 변화만 주었을 뿐인데도 무언가 만들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용수철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편곡 방식이었고, 도욱의 말을 듣고 나서도 무슨 소리인가 싶기도 했었는데 연주해 보자 바로 감이 왔다.

‘도욱의 말대로 조금 더 변주해서 도입을 피아노 음으로 시작하고······ 점점 비트와 다음 음이 나오는 식으로 곡을 구성한다면······ 끝내주겠어!’

용수철은 편곡 작업에 빠져들었다. 조금씩 음에 변화를 주어 뒷부분의 멜로디와 합을 맞추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면······, 음. 어떤가요?”

“좋습니다!”

도욱은 외쳤다. 도욱의 외침에 용수철은 더 흥이 났다.

혼자서만 곡 작업만을 하다 보니 자신의 곡에 대해 누군가와 의견을 나눈다는 게 용수철로선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즐거운 마음이 들었다.

***

용수철은 편곡 작업이 절반 정도 완성되는 대로 심준 팀장에게 연락을 할 계획이었다. 편곡은 두 가지 버전으로 할 예정이었다.

도입부에 도욱이 낸 의견을 반영한 버전과 아닌 버전. 두 가지 버전을 모두 보내면 더 확실히 비교가 가능할 것이었다.

그러한 이야기를 용수철과 나눈 후, 도욱은 연습실로 돌아왔다.

연습실에선 마침 저녁을 시켜 먹던 중이었다.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멤버들이 둘러 앉아 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사무실 옆 김밥만국에서 배달시킨 김치볶음밥과 제육덮밥이었다.

“도욱이 넌 뭐가 그렇게 바빠? 얼른 와 무라~!”

정윤기가 외쳤다. 도욱도 음식 냄새를 맡자 그제야 허기가 졌다.

모여있는 멤버들 사이에 가려는데, 벽 기둥 쪽에 혼자 등을 보이고 앉아있는 안형서가 보였다. 도욱이 안형서 쪽을 보고 서 있자 박태형이 도욱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형서는··· 밥 안 먹는데······.”

“왜?”

“모르겠어. 아까부터 기운이 없네······.”

박태형이 걱정스럽게 중얼거렸다. 다른 멤버들도 쭈그려앉은 안형서를 신경 쓰고 있었다. 도욱은 미간을 찌푸렸다.

“하······.”

안형서가 한숨을 내쉬는 게 보였다.

지금도 나이가 많은 편이 아닌 안형서가 연습생을 시작했을 때는 갓 중학교를 입학했을 무렵이었다. 어린 나이부터 연습생이 된 데에는 안형서 어머니의 입김이 작용했다. 안형서의 어머니는 연예계에 흔히 존재하는 전형적으로 극성 맞은 부모 중 하나였다.

그녀는 자신의 외동 아들의 적성을 알아차리곤 그날로 기획사로 찾아가 오디션을 보게 했다.

유치원 재롱잔치 때부터 노래와 춤에 재능을 보인 타고난 끼돌이였던 안형서는 오디션에도 무난하게 붙을 수 있었다.

안형서 본인도 관심이 있는 분야였고, 욕심이 있었다 주위의 잘한다는 칭찬이 더욱 안형서의 욕심을 키웠다. 나쁜 욕심이 아니었다. 더 노래를 잘하고 싶었고, 아이돌로 데뷔해 최고가 되고 싶은 긍정적인 욕심이었다.

그렇게 너무 어린 시절부터 데뷔 하나만을 바라온 것이 문제였을까? 열여섯에 이전 기획사에서 데뷔가 무산되었을 때는 약간의 우울증도 앓았다.

그리고 힛 엔터에서 다시 얻은 기회였다. 안형서는 자신이 그룹 내에서 노래로 최고가 되지 못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닥치자 극도로 불안감을 느꼈다.

분위기 메이커를 자처하던 여유도 사라졌다. 도욱이 견제의 대상으로 보였고, 조금은 분하기도 했다.

‘연습 기간이 너무나도 차이 난다··· 게다가 나보다 한 살 어려. 난 도대체 여태까지 뭘한 거지.’

이전에 데뷔가 무산됐던 건 그저 기획사 탓이었지만, 한 번 무너진 적 있었던 안형서의 멘탈은 쉽게 흔들렸다.

‘이제 몇 개월 연습한 도욱이에게도 밀린다면··· 나는 가요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긴 한 건가?······.’

그런 자기파괴적인 생각들이 안형서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기둥 옆에서 검은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듯했다. 갑작스럽게 저기압이 된 안형서에 다른 멤버들은 밥을 먹으면서도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것 같았다.

다른 팀이었다면 멤버의 튀는 행동에 누군가 화라도 낼 법했지만, 케이케이에 그런 멤버는 없었다. 모두가 걱정스러워할 뿐이었다.

다들 안형서가 저기압인 이유를 대충 예상하고 있기도 했다.

“제가 이따 얘기해 볼게요.”

모두가 눈치를 보고 있자 무뚝뚝해서 입을 잘 열지 않는 석지훈이 말했다. 석지훈은 팀의 막내였지만, 안형서의 입장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아역 출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석지훈의 어머니는 안형서의 어머니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입학도 하기 전부터 방송가를 돌아다니며 석지훈은 일찍 사회를 경험하고 말았다. 때문에 석지훈은 타의적으로 조숙한 아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어린 나이부터 이쪽만 바라본 사람은 마치 경주마처럼 다른 것은 보지도 않고, 결승선만을 바라보고 달리기만 할 뿐. 이 길이 아니면 어른이 되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두려움이 항상 존재한다.’

괜한 말을 입 밖으로 내봤자 도움 될 일 없다는 걸 일찍이 터득한 석지훈은 늘 말을 하기보다는 머릿속에 담아두었다.

막내지만 정신적으로 무척 성숙한 석지훈이 말을 해 본다니 다행이란 생각으로 정윤기는 남은 멤버들을 챙겼다.

“아, 그나저나 크리스마스이브에 연습실에서 이게 뭐냐!”

분위기를 띄우려는 정윤기에 김원이 답했다.

“크리스마스으으··· 캐나다에선 늘 눈 엄청 많이 와서 재밌었는데. 화이트~ 크리스마스~!”

“한국도 재밌으려면 재밌지. 연습실에만 있으니까 재미없는 거지.”

“그럼 연습실 밖으로 나갈까? 내가 운전할게. 나 운전할 수 있어! 렛츠 고고! 고고~ 고!”

김원이 당장이라도 일어설 듯 손을 높이 들고 ‘렛츠 고’를 노래처럼 외쳤다.

“차는 어디 있는데?”

“어··· 렌트?”

“돈은 어디 있는데?”

“와우, 윤기 브라더 주머니 안?”

“밥이나 먹어라.”

“콜드 블러드······.”

그렇게 연습생의 우울한 크리스마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며 멤버들은 밥그릇을 모두 비웠다. 그릇을 정리해두고 잠시 소화를 시킨 뒤, 저녁 연습이 다시 시작되었다.

저녁 연습이 시작되기 직전 석지훈이 안형서와 함께 잠시 건물 옥상에 올라가 대화를 하고 왔다.

두 사람의 얼굴이 겨울바람에 얼어 있었다. 석지훈이 잘 얘기했을 것이 분명한 데도 여전히 안형서의 표정을 밝지 못했다.

평소 안형서가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실전 무대 연습 시간에도 안형서는 몇 번이나 레슨 선생에게 지적을 받았다.

“형서 형, 기운 내요. 이런다고 좋아질 게 뭐가 있어요.”

얼핏 차갑지만 진심 어린 석지훈의 조언이었다. 안형서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크리스마스도 별다를 것 없이 지나갔다. 당일에 정식 연습은 없었지만 대부분의 멤버들이 자발적으로 연습실에 나가 몸을 푸는 정도의 개인 연습을 진행했다.

김원 정도가 친척집에 다녀왔고, 정윤기는 숙소에서 피로를 풀었다.

번잡한 연말 분위기 속에서도 케이케이 멤버들은 다행스럽게도 딴생각은 하지 않고 데뷔 준비에만 매진했다.

물론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데에는 매니저 오백호의 역할도 컸다. 오백호는 눈에 불을 켜고 혹시나 멤버들이 술자리에 나가진 않는지 감시했다.

문제라면 역시 안형서였다. 한 번 땅을 파고 들어간 안형서는 도무지 땅 위로 올라올 생각을 않고 있었다.

오백호는 아직 멤버들의 면면을 다 파악하진 못한 상태였다. 섣부르게 나섰다간 괜히 일을 키울 게 뻔했다.

“형서··· 저대로 둘 순 없지 않겠어?”

그래서 부른 게 리더격인 정윤기였다. 아마도 얼마 후면 확실히 리더로 지명받을 터였다. 정윤기도 동감하는 바였다.

“평소엔 밝아도 형서가 워낙 예민한 애라서요······.”

정윤기라고 딱히 답이 있는 건 아니었다. 옆에서 요즘 계속 자신감을 북돋아주고는 있었지만, 이건 안형서 자신의 문제였다.

그렇다고 도욱에게 네가 노래를 못 불러야 형서가 그룹 리드보컬로 자리를 잡고 안정이 될 테니 못 부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오백호가 따로 연습실 밖으로 정윤기를 불러 얘기를 하는 모습을 도욱은 목격했다.

“···안형서······.”

도욱도 안형서를 지켜만 보고 있던 차였다.

“아무래도 안 되겠군.”

한숨을 한 번 내쉰 도욱은 안형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