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
Sonata : 울려 퍼지다 (2)
#Sonata : 울려 퍼지다 (2)
“뭐야?”
녹음실 밖, 심 팀장은 저도 모르게 혼잣말처럼 내뱉고 말았다. 귀에 꽂히는 도욱의 정돈된 음색에 일차적으로 놀랐고, 정확한 음감, 박자감에 계속해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심준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뒤에 앉은 멤버들을 살폈다. ‘얘 원래 이렇게 불렀어?’ 같은 의미였다.
당연히 심준은 멤버들의 실력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앨범 제작을 위해서 그 정도는 당연했다. 그리고 파악하기로는 이 팀의 리드보컬은 안형서가 될 참이었다. 실력적으로 안형서가 가장 뛰어났고 그다음으로 강도욱과 석지훈이 비등비등했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강도욱이 치고 올라갈 거라는 게 전체적인 평이었다.
따라서 도욱을 서브보컬 정도로 점지해두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듣고 있는 도욱의 노래는 서브보컬로 쓸 만한 보컬이 아니었다.
“갈수록 사람을 놀라게 하는 친구군요.”
용수철이 중얼거렸다. 심준도 격하게 동의를 표했다. 도욱의 노래는 하이라이트에 다다라 있었다. 심지어 용수철은 조금 미안하기까지도 했다. 얼굴에 대한 선입견으로 노래를 ‘대충만’ 불러줘도 좋겠다고 생각했던 방금 전이 말이다.
멤버들은 도욱의 발전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봐 온 이들이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제대로 도욱이 노래하는 걸 들으니 또 한 번 놀라고 있었다. 그중 가장 놀란 건 안형서였다.
‘도욱이······. 정말 대단하구나······.’
안형서는 평소답지 않게 조금 어깨를 내린 채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들었다. 위기감. 그래, 이건 위기감이었다. 안형서는 도욱에게 리드보컬 자리를 넘겨주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사로잡혔다.
도욱이 부스 밖으로 나왔을 때 녹음실의 분위기는 완전히 고조되어 있었다. 심준 팀장이 따로 도욱에게 잘했다는 말을 하자 도욱은 입꼬리를 조금 올려 보였다.
아직 안형서의 차례가 남아있었고, 파트분배든 무엇이든 어떻게 될지 아직 확실하지 않은데 그 이상으로 칭찬을 했다간 도욱이 괜히 들뜰까 심준 팀장은 일부러 가볍게만 칭찬한 것이었다. 사실 도욱은 팀이 떠야 자신도 뜰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팀만 잘될 수 있는 방향이라면, 누가 리드보컬이 되든 상관 없었다.
그리고 안형서가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안형서는 최선을 다해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곡인 김병수의 ‘보고 싶다’를 불렀다. 도욱의 오디션 참가곡이도 한 곡이었다.
안형서는 ‘보고 싶다’를 통해 쭉쭉 뻗어나가는 시원한 고음을 뽐냈다. 속이 다 후련해지는 고음이었다. 확실히 독특한 음색에 약간의 고음만이 가능하던 연습생 초창기와는 실력이 확 뛴 상태였다.
‘역시 형서의 실력도 만만치 않아. 끼도 많은 녀석이, 노래까지 잘하니······.’
심준 팀장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용수철 역시 멤버들의 뛰어난 기량에 더할 나위 없는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런 팀에게 내 곡을 주는 건가. 보람 있다!’
멤버 전원의 실력 확인이 끝나고 자리는 정리되었다. 오백호가 나서서 자리를 정리하고, 멤버들은 일렬로 서 심 팀장과 용수철에게 허리 굽혀 인사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우렁찬 목소리들에 용수철이 환하게 웃었다. 물론 남들이 보기엔 찡그리는 듯한 웃음이었지만, 용수철은 진심으로 웃고 있었다.
오늘은 피곤할 테니 곡에 관한 이야기는 내일 더 자세히 하기로 하고 심준 팀장까지 녹음실을 벗어나자 용수철은 녹음실에 혼자 남게 되었다. 이야기는 내일 하기로 했지만, 이야기 하기 전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음, 래퍼 둘이 랩 메이킹과 작사를 직접 할 수 있다고 하니 생각했던 가사에 살을 붙이라고 하면 되겠고······. 둘 랩 스타일을 봐선 조금 더 랩 파트를 늘려도 될 것 같아.’
만들어둔 곡을 여러 번 플레이시키며 용수철은 생각을 발전시켜 나갔다.
‘안형서라는 친구가 고음이 시원하니 이 부분에선 음을 더 높여도 될 것 같고···.’
그리고 용수철은 도욱을 떠올렸다. 주어진 재능도 있는 데다, 벽보를 붙이던 날의 모습을 봐선 엄청난 노력파일 게 뻔했다. 나이트 바닥에서 구르다 보니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많이 만나 봤다. 강도욱 같은 인간은 될성부른 나무, 아니 잭과 콩나무의 콩나무 수준이었다.
‘초년은 고생하고, 중년에 운이 좋다더니 이런 건가?’
용수철이 기분 좋은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똑똑, 노크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대답을 해놓고 용수철은 의아해졌다.
‘심준 팀장이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건가?’
그렇게 생각한 용수철이었으나, 문을 열고 들어온 건 심 팀장이 아니었다.
문을 열고 작업실 안으로 들어온 건 도욱이었다.
“엇? 어, 도욱 학생. 무슨 일인가요?”
도욱과 멤버들의 오늘 남은 스케줄은 개인 연습이었다. 연습실에 내려가 각자 몸을 풀고 있을 때, 도욱은 연습실 한편에서 휴대폰으로 업무를 보고 있던 매니저 오백호에게 허락을 구했다. 도욱은 잠시 작업실에 다시 가 용수철을 만나고 와도 되겠냐고 물었다.
어차피 사무실 건물 내부에서의 움직임이었고, 조금 전에 둘 사이의 인연을 들었으므로 도욱이 용수철을 따로 찾아가는 게 이상하지 않았다. 뭔가 더 할 얘기가 있겠거니 싶어 오백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도욱은 작업실을 나간 지 한 시간여 만에 다시 용수철을 찾게 되었다.
녹음실에 들어와 히터를 틀어둔 지 꽤 되어서 온도가 높아져 있었다. 용수철은 입고 있던 라이더 재킷을 벗은 채였다. 니트 위에 두꺼운 금목걸이가 번쩍거렸다.
‘저 취향은 정말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 같네.’
잠시 금목걸이에 눈을 뺏겼던 도욱은 정신을 차리고 용수철에게 물었다.
“저······. 드릴 말씀이 있어서. 실례가 아니라면 잠시 시간 괜찮으실까요?”
하여튼 예의 하나는 끝내주는 인물이라 생각하며 용수철은 소파가 있는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앞에 앉으라는 손짓에 도욱이 가만히 와 앉았다. 도욱과 마주앉아 감탄과 같이 용수철이 중얼댔다.
“아까도 인사는 했지만, 이렇게 또 만나니 신기하네요. 정말이지.”
“저도 그렇습니다. 곡 보내주신 것,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뭘 그렇게 자꾸 감사를 하고 그래요.”
조각같이 잘생겼지만 무덤덤한 표정이라 딱딱해 보이는 도욱과 가만히만 서 있어도 누군가를 위협하는 듯한 용수철의 대화 장면은 대충 봐서는 심각 그 자체였다. 그러나 둘은 나름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조성 중이었다.
“그, 할 말이라는 게 뭐요?”
“다름이 아니라, 제가 이번에 곡을 전체적으로 듣고 나서 생각난 부분이 있습니다.”
“생각난 부분······?”
어떤 작곡가가 안 그러겠냐만, 용수철은 자신의 작업물에 자부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프라이드도 상당했다. 자신이 작업한 곡에 대해 누군가 조언이랍시고 왈가왈부하는 게 싫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작곡을 공부하고 있단 사실을 알리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거기에 용수철이 혼자서만 폐쇄적으로 곡 작업을 한 데에는 여러 콤플렉스도 작용하 게 사실이었다.
용수철도 처음엔 작곡 학원도 다녀보고, 유명 작곡가의 제자로 들어가 보려고도 했었다. 그러나 작곡도 다른 예술 계열처럼 학연 등의 인맥에 의해 여러 가지 상황이 좌지우지되곤 했다.
학력과 보통보다 많은 나이 때문에 무시를 당하고, 밀려나기도 하면서 제대로 된 배움을 얻을 수 없다는 판단이 섰다. 용수철은 디제잉을 배운 것처럼 독학으로 자신의 작곡적 재능을 발전시켜 나가기 시작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사실 곡을 다 듣고 떠오른 아이디어가 하나 있습니다.”
“아이디어요?”
“네.”
도욱은 계속해서 용수철의 기색을 살폈다. 혹시라도 프라이드 강한 용수철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도욱은 말을 여러번 골랐다.
“뭔가요? 아직 편곡 작업을 시작한 건 아니지만 들어나 봅시다.”
“정말 곡을 듣자마자 단순히 떠오른 거니까······. 저보단 작곡가님께서 훨씬 더 잘 아실 테니 들어 보시고 아니다 싶으면 그냥 흘려들어 주세요.”
곡에 대한 아이디어라는 말에 용수철은 잠시 멈칫하는 듯했지만 이내 흔쾌히 아이디어를 듣고자 했다. 도욱 개인에 대한 호감이 워낙 컸고, 들어보지도 않고 의견을 거절할 정도로 폐쇄적인 건 아니었다.
“물론이죠. 제 곡인데 그 정도 결정은 제가 알아서 할 겁니다. 그렇지만······.”
“네?”
“직접 부를 사람의 의견이니 귀담아 듣고 싶군요. 도움이 될 만한 의견이면 좋겠어.”
자신의 곡에 대한 프라이드와 함께 어떻게든 좋은 곡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역시 괜히 유명 작곡가가 된 게 아니다. 뚜렷한 주관과 남의 말을 수용하는 포용력이 있구나.’
도욱은 생각하며 곡을 듣고 떠오른 8마디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타이틀곡 선정을 마치고 회의실에서 나와 복도를 걷고 있던 때였다. 복도를 지나던 직원 한 명의 휴대폰 벨소리가 생각에 빠져있던 도욱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벨소리는 별게 아니었다.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기본 벨소리 중 하나로 곡 이름은 몰라도 음은 전세계 사람들이 아는 클래식 곡 중 하나였다.
“그 소나타 멜로디를 이 곡에······?”
“네. 초반부에 8마디 정도 피아노 샘플링으로 들어가면 어떨까 했습니다. 조금 더 변주를 거쳐서요.”
용수철이 조금 더 의자를 당겼다. 어떤 아이디어인지 가볍게 들어나 보고자 했는데 생각보다 구체적이었다.
“음··· 소나타 멜로디가 듣기 좋은 것과 유명하단 사실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내 곡의 도입부로 어울릴까?”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냐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