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13화 (13/225)

# 13

케이케이의 시작 (4)

#케이케이의 시작 (4)

“안 그래도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DJ? 무슨 DJ?”

상황을 모르는 김숨이 물었다.

“제가 선생님께 DJ를 찾아달라고 부탁했거든요. 선생님께서 찾아 주셨는데. 덕분에 잘 만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는 전화로도 귀 따갑게 들었잖아. 만났다고? 설마 나이트 들어간 건 아니지?”

“아닙니다! 나이트 가 본 적도 없습니다.”

“당연히 가 본 적도 없어야지~!”

김우연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지만, 실제로 도욱의 정신 나이 서른셋이었다. 서른셋이 되도록 나이트 한 번 가 본 적 없다는 사실은 그 시절엔 숙맥 같단 이야기만 듣는 핀잔거리였다.

“그, 제가 만났다는 게 아니라. 저희 사촌 누나가 만났습니다. 사촌 누나가 용수철 씨 디제잉을 듣고 반했는데, 도무지 어디에서 일하는지 알 수가 없다고 해서······. 싸삼월드만 겨우 찾고······.”

사촌 누나에 대한 약간의 죄책감으로 말끝이 흐려졌다. 김우연이 이유를 듣곤 씩씩댔다.

“뭐? 그런 허무한 이유 때문에 내 인맥을 이용했다고? 진지하게 부탁하길래 난 또 뭐 특별한 사연이라도 있는 줄 알았네!”

김우연이 무어라 할 걸 알았지만, 별수 없었다. 차라리 이런 허무맹랑한 이유가 ‘진짜 이유’보단 덜 허무맹랑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어이없는 이유를 대야 김우연이 오히려 빨리 의아함을 지우고 관심을 끌 것 같았다.

“하! 내가 기가 막혀서. 너 다음 레슨 시간에 고음 못 올리면 끝이야, 끝!”

예상대로 김우연은 으름장을 놓고는 어이없어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김숨도 가볍게 웃으며 이야기를 넘겼다.

“도욱 학생 의외네요. 다리도 놓을 줄 알고.”

“아··· 아닙니다.”

“그럼 연습실 들어가 볼까? 지난번에 내준 과제는 해왔죠?”

“네, 물론입니다.”

도욱이 김숨과 함께 연습실로 들어가려던 때였다. 주머니에 넣어 놓은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발신인을 확인한 도욱은 얼른 문자를 확인했다. 안영미로부터 온 문자였다.

[내일 오전 10시, 회의실. 긴급회의 소집! 멤버 전원 참여! 절대 늦지 말고 오자!]

***

HIT 엔터테인먼트의 점심시간.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고 돌아오면서 회사 1층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사 먹고 옥상에 올라가 담배를 피우는 것이 하나의 코스였다. 그러나 심준 팀장은 요 며칠째 점심을 마치기 무섭게 제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케이케이 타이틀 곡 선정 회의 이후, 앨범제작팀 팀장으로서 제대로 된 곡을 컨택하지 못했다는 것이 심준 팀장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커피와 담배 타임도 반납하고 매일같이 곡 섭외에 열을 올렸다.

[새 메일 2]

컴퓨터 앞에 앉아 메일함을 연 심 팀장은 새로 온 메일을 발견했다. 새 메일은 총 두 통이었다.

한 통은 심준 팀장이 어제 오전에 연락한 Kei로부터 온 메일이었다. 얼른 Kei 메일을 클릭한 심 팀장의 표정이 밝아졌다.

Kei는 일본에서 활동하는 재일 동포 여성 작곡가로 심 팀장이 여러 채널을 돌아다니다 찾아낸 작곡가였다. Kei의 음악을 듣자마자 심 팀장은 Kei에게 문의 메일을 넣었다. 생각보다 빨리 답이 돌아와 다행이었다.

Kei_you.mp3

심 팀장이 부탁한 곡 분위기에 맞는 곡이 마침 한 곡 있어 샘플 파일을 보낸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좋아, 좋았어······!”

막막했던 기분이 조금 해소되는 것 같았다. 심 팀장은 첨부파일을 다운받으며 아직 열지 않은 다른 메일을 확인했다.

[보내는 이 | 용감한외동]

[제목 | 곡 공모합니다...]

제목을 봐서는 작곡가인 것 같은데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용감한 외동? 그게 대체 누구지?’

곡 공모를 올리며 써놓은 메일 주소는 앨범제작팀 공용메일 주소였다. 확인중인 메일은 심 팀장 개인 메일이었다.

도욱이 용수철의 집 앞에 붙인 전단이 홈페이지 내용과 다른 점이 하나 더 있다면 메일 주소였다. 도욱은 심준 팀장이 반드시 용수철의 곡을 들을 수 있도록 심 팀장의 업무용 개인 메일 주소를 적어두었다.

심 팀장은 자신의 개인 메일로 메일이 온 것 자체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워낙 명함을 뿌리고 다녀서 업계 사람들에겐 비밀일 것도 없는 메일 주소였다. 종종 지인들에게 심 팀장의 메일 주소를 알아낸 신인 작곡가들이 곡을 보내오기도 했다.

‘다만 이름이 너무 생소해···. 생소 수준이 아니라 웃긴데?’

심 팀장은 실소하며 ‘용감한외동’이 보내온 메일을 클릭했다.

Sorry(가제)_sample.mp3

첨부파일만 달랑 하나 있을 뿐 내용은 하얗게 비어있었다.

장난인가 싶기도 했지만 어쨌든 들어봐서 나쁠 것 같지 않았다. 심 팀장은 바이러스 검사 후 해당 파일을 다운로드했다. 플레이리스트에 두 개의 곡이 나란히 올려졌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플레이 버튼을 누른 심 팀장은 곧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책상에 세워 두었던 파일철이 쓰러지며 소리를 냈다. 마침 사무실로 들어오던 앨범제작팀 직원들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심준 팀장을 바라보았다.

“당장, 당장 회의 소집해야겠어! 더 기다릴 것도 없어!”

심준 팀장의 외침에 직원들이 한발 늦게 상황을 알아차리곤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각자의 메일함에는 심준이 포워딩한 두 작곡가의 곡이 도착해있었다. 심 팀장은 수화기를 들어 신인개발팀 임성안에게 연락했다.

임 팀장과의 연락을 통해 바로 다음 날 오전으로 타이틀곡 후보 회의가 잡히게 됐다.

***

그렇게 갑작스럽게 열리게 된 2차 회의였다. 생각보다 빠르게 다음 회의가 열리게 되어 다행스러운 마음을 모두 감추지 못했다. 팀장들은 팀장들대로 회사 전체 플랜이 어그러질까 걱정이었고, 멤버들은 멤버들대로 데뷔가 연기되는 것이 걱정스러웠으니 모두가 고대하던 회의였다.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심준 팀장이 곡을 플레이했다.

지난번 회의와는 현저히 다른 분위기로 회의는 진행됐다. 지난번엔 두 곡 모두 별로여서 문제였다면, 이번에는 두 곡 모두 너무 괜찮아서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러나 모두 확실한 1번을 갖고 있었다. 듣자마자 모두 머릿속에 느낌표라도 뜬 듯 느낌이 왔다. 모두의 표정을 살펴 본 심준 팀장은 예상한 반응에 흡족해했다.

“굉장하네! 굉장해······. 듣자마자 이건 될 수밖에 없다는 느낌이 오네요.”

임성안이 홀린 듯 중얼거렸다. 어깨가 저절로 들썩거릴 만큼 경쾌하고 빠른 비트에 귀에 확 들어오는 멜로디. 들어본 적 있는 건가 싶을 만큼 귀에 단번에 익지만,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신선함이 또 있었다.

이 곡은 무조건 된다. 신인이어서 대박을 못 치더라도 중박 이상은 분명히 된다는 게 앨범제작팀 전원의 의견이었다.

멤버들도 자신들이 이런 좋은 곡을 부르게 될 거라는 사실에 모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작곡가 누굽니까? 어디서 이런 곡을 찾았어요, 심 팀장.”

“신인인 것 같은데 메일로 자기가 곡을 보내왔더라고요. 이런 걸 보면··· 케이케이, 정말 될 팀이죠.”

심 팀장이 신나서 말했다. 도욱은 들뜬 회의실 분위기를 느끼며 엷게 미소 지었다.

“그런데 Kei라는 작곡가 곡도 너무 좋아서······.”

Kei가 보내온 You라는 곡은 미디엄 템포의 곡으로 물 흐르는 듯한 멜로디가 압권이었다. 일본에서 활동해서 그런지 한국과는 다른 감각이 살아 있었다. 얼마 전 데뷔한 맨투맨의 ‘너는 너무 예뻐’만큼이나 세련된 곡이었다.

안성안의 중얼거림에 심 팀장이 의견을 내놓았다.

“You를 커플링곡으로 써도 괜찮을 것 같단 생각입니다. 팀장님. 두 곡이 신선함에 있어선 전혀 동떨어져 있지도 않고, 케이케이의 컨셉에 맞춰 두 곡의 가사를 쓰면 앨범 완성도도 있을 거고요.”

“커플링곡이라··· 좋네요. 사실 타이틀감이라 아깝기도 한데. 반응 좋아서 활동 길어지면 You를 후속곡 정도로 써도 될 것 같고.”

“예, 그거죠. 타이틀 감인 두 곡 모두를 인서트해 놓으면 신인 그룹 앨범으로선 아주 명반급이 될 겁니다.”

심 팀장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좋습니다. 저야 당연히 심 팀장님 의견에 다 따르겠습니다.”

“네. 그럼 이사님께 보고드리고 더 빠르게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빨리빨리 움직입시다!”

좋은 곡을 만나자 심 팀장은 좋은 앨범을 만들겠다는 의지로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대박을 향한 심 팀장의 감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예, 알겠습니다!”

제작팀원들이 입을 모아 답했다.

회의실을 나오며, 멤버들은 방금 들었던 용감한외동의 곡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랩 얹으면 기깔날 것 같단 말이지?”

“맞아, 완전 Perfect!”

랩을 담당하는 정윤기와 김원도 신나 보였다.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도욱은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이었다. 용수철이 시기에 맞게 딱 도욱이 생각한 대로의 곡을 보내주어 다행이었다.

분명 ‘Sorry but I love you’는 훌륭한 곡이었다. 이 시대에서는 임성안 팀장 말대로 대박이 날 수밖에 없는 곡이었다.

그러나 도욱이 ‘Sorry but I love you’가 발매되고도 이미 더 몇 년을 살아서일까? 이후에 유행하는 많은 곡들을 도욱은 섭렵하고 있었다. 때문에 다른 이들처럼 정말 좋다는 감각이 아주 조금이지만 반감되어 있었다.

‘조금 더, 조금 더··· 좋아질 수 있을 것 같은데!’

도욱은 자리에 멈춰 섰다. 멤버들이 갑자기 멈춘 도욱을 쳐다보았으나 도욱은 시선을 느끼지도 못할 만큼 생각에 빠져들어 있었다.

‘아! 그거다!’

8마디의 멜로디가 도욱의 머릿속에서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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