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12화 (12/225)

# 12

케이케이의 시작 (3)

#케이케이의 시작 (3)

***

며칠 후, HIT 엔터테인먼트 사옥 3층에 위치한 대회의실.

대회의실에는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대회의실에 둘러앉아 있었다. 모두 케이케이 데뷔 앨범 준비를 위한 사람들이었다.

앨범제작팀에서는 가장 노련한 심준 팀장과 팀원 둘을 케이케이 프로젝트에 참여시켰다. 그 셋과 신인개발팀 주요 인물들이 회의에 참여했다.

그리고 이번 회의에는 케이케이 멤버 여섯 명도 참여하게 되었다. 데뷔 앨범 타이틀 후보곡들을 들어 보는 날이었다. 멤버들이 부르고 무대를 해야 할 노래이므로 멤버들도 앨범에 많이 참여할수록 좋다는 게 회사 내부의 지침이었다.

도욱은 예상보다 빠르게 잡힌 타이틀곡 결정일에 조금 당황한 상태였다.

‘용수철에게 며칠 안 남았단 식으로 말하긴 했지만, 벌써 보냈을까? 곡을 정리해서 보내기엔 너무 이르다.’

복잡한 머릿속과 달리 도욱은 차분한 상태로 회의실 한편에 앉아 있었다.

‘후···. 조금 더 빨리 움직일걸 그랬나? 아냐, 지금 정도가 가장 적당했다.’

도욱의 상황은 아무도 알지 못한 채, 케이케이의 기획 의도를 다시 한 번 더 설명하며 임성안 팀장이 회의를 시작했다.

“지난번에도 설명드렸다시피 케이케이는 이후의 대중가요 트렌드를 주도할 보이 힙합 댄스 그룹입니다. 다른 아이돌과는 차별화된 멤버 개인의 뛰어난 실력들을 부각시킬 예정이고요. 그 점, 고려하면서 같이 데뷔 앨범 준비 부탁드립니다.”

“데뷔 앨범은 미니 앨범이 될 거고, 타이틀을 정하면 그 컨셉에 맞게 앨범 전체를 디벨롭할 예정입니다.”

직원들에겐 익숙한 상황이었지만, 멤버들은 처음 접하는 형태였다. 수동적으로 회사에서 짜준 연습을 하다 이렇게 앨범에 대해 직접적으로 관여하게 될 상황이 오니 정말로 ‘자신들의’ 앨범이 나오는 듯해 조금 더 의지가 타올랐다.

임 팀장은 멤버들의 표정을 살피곤, 곧 맞은편에 앉은 심준 팀장을 향해 고갯짓을 했다.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타이틀 후보곡은 일단은 두 곡입니다.”

심준 팀장이 작은 리모컨을 조작했다. 대회의실에는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스피커가 구비되어 있는 상태였다.

“우선 1번. 유명 프로듀서한테 컨택해서 받아온 노래입니다.”

1번 노래가 흘러나왔다. 처음 들어도 곧 편안하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정도로 멜로디가 귀에 쉽게 익는 곡이었다.

“다음은 2번. 요즘 외국에서 뜨고 있는 신인 작곡가 곡입니다.”

1번에 비해 비트가 훨씬 빠르고 경쾌했다. 외국 작곡가 곡이기 때문인지 조금은 낯설었다. 낯설다는 게 꼭 나쁜 건 아니었다. 다시 말하면 신선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두 곡이 모두 끝나자 잠시 대회의실에 정적이 돌았다.

역시나 두 곡 중 용수철의 곡은 없었다.

‘아무리 봐도 두 곡 모두 타이틀이 되기 어렵겠군······.’

퍼뜩 떠오른 생각과 함께 도욱은 의문에 휩싸여 있었다.

‘그런데 1번과 2번, 둘 다 케이케이의 예전 데뷔곡이었던 You도 아닌데?’

아무리 이후에 편곡 작업이 이루어졌다고 해도, 두 곡은 모두 ‘You’의 원형이 아니었다.

‘뭐지···? 내가 바꾸기 전에, 이미 뭔가가 바뀐 건가?’

어쨌든 도욱은 용수철과 용수철이 보내올 곡을 믿기로 했다. 조금 더 시간을 벌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두 곡 모두 도욱의 기준으로 케이케이의 앨범에 실리기엔 기준 미달의 곡들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시간 벌기였다. 이 두 곡에 비하면 You는 정말 훌륭한 데뷔곡이었다.

두 곡 모두가 성에 차지 않는 건 임성안도 마찬가지인 게 분명했다. 임성안 팀장의 굳은 표정이 말해주고 있었다.

“이 두 곡이 전부라는 겁니까?”

“······예. 임 팀장님께서도 중간에 후보곡들 들어보셔서 아시겠지만, 이 두 곡도 제작팀에서 고르고 고른 곡입니다.”

케이케이를 꽤 미리 준비해왔음에도 왜 케이케이의 데뷔가 6월에서야 이루어졌는지 알 것 같았다. 생각을 정리해보니 답이 쉬웠다. 용수철의 곡을 기다리기 위해 시간을 따로 벌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You 정도의 곡을 찾다가 미뤄진 거겠지.’

역시 심준 팀장도 백프로 만족 상태는 아니었다. 하지만 컨셉에 맞춰 작곡가에게 의뢰를 해도 이 정도가 최선이었다. 딱 맘에 드는 곡이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나마 건진 게 두 곡.

계속해서 차일피일 미룰 수도 없었다. 심준은 일단 곡을 정해서 편곡과 안무, 뮤직비디오 등에 투자해 곡 퀄리티를 높일 생각이었다.

“뭐가 더 맘에 드는지 한 명씩 말해보죠.”

임성안이 물었다. 다들 머뭇거리던 때에 멤버 중 하나인 정윤기가 입을 열었다.

“저는 1번이 나은 것 같습니다. 멜로디도 익숙하고, 랩 얹기도 좋을 것 같고···.”

이에 옆에 앉아 있던 김원이 나섰다.

“2번이 낫지 않나? 훨씬 트렌디한데?”

같은 래퍼여도 다른 반응이었다. 김원이 외국에서 온 티가 나는 부분이었다. 멤버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두 곡 모두 비슷한 선택을 받았다.

가만히 앉아만 있던 도욱이 입을 열었다.

“1번은 너무 무난합니다. 신인이 하기엔 신선함도 없고, 후속곡이나 마지막 트랙 정도로 적당한 곡입니다. 반면에 2번은 신선하긴 하지만 너무 변주가 잦아서, 한 곡 같지 않고 튀는 부분들이 있어요.”

두 곡의 단점이 도욱에 의해 날카롭게 파헤쳐졌다.

짧은 시간에 정확하게 곡을 이해하고 단점을 캐치해낸 도욱에 두 팀장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동시에 다음과 같이 수긍하고 말았다.

‘이 두 곡으로 갈 순 없겠구나. 시간이 걸리더라도 곡을 더 찾아야겠어!’

이렇게 단시간에 멤버 한 명에게 간파당할 정도라면, 대중들에게 기대하는 정도의 어필은 당연히 힘들다는 판단이었다.

“도욱 군 말이 맞아요. 우리 제작팀에서 조금 더 곡을 찾아보면 좋을 것 같은데···. 수정 요청도 하고요. 임 팀장님, 일정 괜찮겠어요?”

어느 정도 딜레이는 감수해야죠. 곡은 정말로 중요하니까. 일이 주 정도 더 받아보고 결정합시다.

그렇게 타이틀곡을 결정하는 일은 미뤄지게 되었다.

***

타이틀 곡 결정은 연기되었지만, 연습은 계속되어야만 했다.

회사에서는 케이케이 멤버들 각자의 기량을 개발하고, 전체적인 합을 맞추기 위해 댄스 평가 때와 마찬가지로 곡을 선정하고,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연습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여러 곡 합을 맞춰 놓으면 데뷔 후 방송이나 공연을 할 때도 큰 도움이 됐다.

현재 연습 중인 곡은 팝송으로 엠싱크의 곡이었다.

팝송을 할 때는 외국 유학파 출신인 김원이 가장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춤이 메인이라지만, 어느 정도 파트가 있는 박태형도 연습이 마무리되자마자 김원에게 가 영어 발음을 물어보고 있었다.

박태형이 팀 생활에 생각보다 잘 적응하고 있는 것에 도욱의 마음이 놓였다.

‘아이돌에게 팀워크는 미덕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욱도 최대한 팀원들의 관계를 신인개발팀 안영미만큼이나 잘 조율하기 위해 내부에서 주시하고 있었다. 도욱의 시선을 느꼈는지 박태형이 고개를 들었다.

“어··· 도욱이 넌 또 레슨 가는 거야?”

“어.”

“···힘들겠다.”

자신도 연습 시간 후에도 또 연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박태형이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옆에 있던 김원도 특유의 어깨를 으쓱하는 제스처를 표했다.

“독한 자식이네, 마.”

정윤기가 툭, 도욱의 어깨를 기분 나쁘지 않게 치고 지나갔다.

도욱이 개인연습 시간에 따로 또 학원을 끊어 레슨을 다니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모두가 알고 있었다. 연습실을 오고 가는 것만도 힘든데 다른 학원까지 다닌다니 모두 도욱이 독하다며 혀를 차고 있었다.

심지어 도욱은 새벽마다 조깅 등을 하며 체력을 관리했다. 멤버들이 전문 트레이너에게 체크를 받는 시간이면, 도욱은 1분 동안 윗몸 일으키기 50개 같은 미션을 혼자 가뿐히 해냈다.

이런 노력들에는 당연히 눈부신 보상이 따르기 마련이었다.

***

별 아카데미 앞.

이제는 익숙해진 학원의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자, 데스크 앞 테이블에 모여 앉아있는 김우연과 김숨이 보였다. 오늘 도욱의 레슨은 김숨의 작곡 레슨이었다. 김우연은 자신의 타임보다 30분 정도 일찍 와 김숨과 담소를 나누는 중이었다.

사실 김우연은 도욱과 잠시 이야기를 하고 싶어 일찍 온 것이었다. 얼마 전 DJ 용수철을 알아봐 달라고 하더니 정보만 쏙 빼가고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지 않은 도욱이 약간 괘씸하기도 했다.

“도욱 학생 왔어요?!”

김숨이 반갑게 도욱을 맞이했다. 도욱은 두 사람을 향해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레인보우의 연말 공연 일정으로 인해 김숨은 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2주 정도 학원을 비웠었다. 오랜만이라 더욱 반갑다며 인사하던 김숨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못 본 사이에 도욱 학생 뭔가 많이 달라졌는데요?”

“달라지긴 뭐가 달라져.”

김우연이 괜히 더 떨떠름하게 답했다.

“아니, 정말인데······. 아! 키가 컸나?”

김숨의 외침에 도욱이 아, 하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욱의 키는 한 달 만에 거의 5cm가 자라나 있었다. 주에 한 번씩 키와 몸무게를 잴 때마다 키가 커져서 멤버들의 부러움을 한꺼번에 사고 있었다.

키가 가장 작은 안형서는 새벽 운동의 힘인 것 같다고 몇 번 도욱을 따라 조깅을 나선 적도 있었다. 물론 밤늦게까지 게임을 하느라 일어나지 못해 세 번 만에 포기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조금씩 자라고 있었는데 알아차리지 못하다가 오랜만에 보니까 확 눈에 들어온 모양이었다.

“맞네, 맞아! 키가 컸네요. 아니 생긴 것도 더 잘생겨진 거 아니에요?”

김숨이 높은 목소리로 도욱을 칭찬했다. 도욱이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전했을 때도 제 일처럼 좋아했던 김숨이었다. 천성이 착한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도욱은 했다.

반면에 김우연이 딴죽을 걸었다. 용수철에 대해 제대로 답을 해주지 않은 것에 어지간히 불만이 있는 모양이었다.

“키만 크면 뭐 하냐? 노래 실력이 늘어야지!”

“선생님도 참, 도욱 학생 노래 실력 아시면서 그러세요? 저번에 흡족한 미소 얼굴에 띠우시는 거 다 봤어요~!”

“김숨 선생아, 너 꿈꿨냐? 나 따라오려면 멀었어!”

도욱은 두 사람 사이에서 멋쩍게 웃었다. 말은 틱틱거리지만, 김우연이 도욱을 이제는 어엿한 자신의 제자, 아니 수제자로 생각하고 있다는 걸 도욱도 잘 알았다.

노력하는 만큼 발전 속도가 남다른 도욱이었다. 이제는 딱 들어도 ‘노래 잘한다! 목소리 좋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노래 실력이 되었다.

김우연의 ‘나 따라오려면 멀었다’는 말은 다시 들어보면 자신만큼의 실력자로 키워 볼 욕심까지 김우연이 갖게 되었다는 뜻이었다. 김우연은 이제 도욱의 강점인 중저음의 음색을 살리는 걸 넘어 도욱이 고음을 터득할 수 있도록 애쓰고 있었다.

그걸 아는 김숨도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김우연이 자신의 앞자리를 가리켰다. 그 뜻을 알아듣고 도욱이 얼른 자리에 앉았다. 제대로 자리에 앉자마자 김우연의 질문이 쏟아졌다.

“아, 그 DJ는 무슨 일이었는지 설명 안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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