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9화 (9/225)

# 9

본격 데뷔, 전격 교체 (3)

#본격 데뷔, 전격 교체 (3)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지만, 춤은 조정민 못지않은 것 같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 잘하죠. 정말 빼어난 춤꾼이랄까. 애도 성실하고, 착하고. 나이도 어려서 발전가능성도 더 있고요.”

“가능성? 중요하지 하지만 데뷔는 프로가 하는 거야.”

다시 정적이 일었다. 확실히 바로 데뷔를 하기에 춤 외에 부분에서 박태형은 아직 미흡한 부분들이 있었다. 능숙함으로 따지자면 조정민이 우세였다. 그러나 또 박태형에겐 조정민으로부터는 찾아볼 수 없는 천연의 느낌이 있었다.

‘확실히 시선을 끄는 신선함이 있다. 하지만 데뷔를 앞두고 이제 와서 내정 멤버를 바꾸는 건, 성급한 결정은 아닐까?’

임성안의 고민이 깊어졌다. 강도욱의 경우처럼 자리가 비어있어서 데려오는 것이라면 모를까, 몇 년이나 연습해온 연습생을 대신해서 초짜 연습생을 데뷔 멤버로 넣는 것은 확실히 모험이었다.

임성안은 책상을 손가락으로 여러 번 두드렸다.

십여 분의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조정민으로 계속 갈지, 박태형이라는 새로운 인물로 대체할지에 대한 고민이 팀원들의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졌다.

그러한 팀원들의 표정을 둘러본 임성안의 생각이 기울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정민으로 가자고 하는 우리 팀 팀원들이 이렇게 없다는 것도 문제다. 팀원들도 사람인데, 조정민이 4년이란 시간 동안에도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는 거겠지.’

지난 몇 년간 쌓아온 조정민의 실력과 인성이 여기까지라는 거였다.

“박태형으로 가면 어떨 것 같아요. 멤버들 구성이나, 조화, 여러 면에서.”

“태형이가 들어가면 조금 더 영한 팀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강도욱이랑 동갑이니까 동갑 페어를 미는 것도 괜찮을 것 같고요.”

직원의 말에 대리가 의견을 보탰다. 임성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문득 임성안의 머릿속에 월요일에 읽은 포춘쿠키 속 문구가 섬광처럼 떠올랐다.

‘새로운 인연···! 그래, 너무 익숙한 길보다 새로운 길로 승부수를 걸어보는 거다.’

***

HIT 엔터테인먼트 건물 내부, 연습실이 위치한 4층의 복도 게시판에 새로운 알림글이 게재되었다. 연습생들이 종종 갖는 면담 스케줄이었다. 특이하게도 이번 면담은 일대일 면담이 아닌 다대일 면담이었다. 게다가 담당자는 무려 신인개발팀 임성안 팀장과 제작이사 권흥조.

담당자 이름만 보아도 바보가 아닌 이상 알 수 있었다. 면담 스케줄 명단에 오른 이들이 데뷔조라는 것을.

벽 앞에서 연습생들이 모여 술렁였다. 명단 6명의 이름 중에는 박태형과 강도욱의 이름이 있었다.

***

마지막 면담을 통해 임성안 팀장과 제작이사 권흥조는 데뷔 멤버를 확정했다. 임성안 팀장이 앞에 앉은 여섯 명을 향해 말했다.

“여러분들은 다음 해 데뷔를 목표로 한 그룹을 준비하게 될 겁니다. 그룹명은 케이케이고요.”

“케이케이···.”

“오, 데뷔!”

임성안 팀장의 말에 앉아있던 이들이 술렁였다. 상기된 표정으로 모두들 데뷔를 떠올리며 감탄사와 같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예상은 어느 정도 했다지만 확정이 되자 기쁜 마음을 감추기 힘들었다. ‘케이케이’라는 그룹명을 듣자 당장 데뷔가 내일인 듯 선명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특히 박태형은 그중에서도 가장 얼떨떨한 모습이었다. 반면 강도욱은 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다만 눈빛이 조금 더 짙어졌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

진지하게 눈을 빛내는 강도욱과 임성안 팀장의 눈이 마주쳤다. 임성안은 강도욱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역시 물건이다. 열여덟답지 않은 진중한 아우라가 있어.’

그런 느낌을 받은 건 임성안뿐이 아니었다. 최종 오디션에서도 강도욱을 본 적 있던 권흥조 이사 또한 힛 엔터의 미래가 될 이들을 살피다 강도욱을 보면서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강도욱이 힛 엔터의 얼굴이 되기에 아주 적합한 인물이었다.

“케이케이를 성공적으로 데뷔시키기 위해서 회사는 최선을 다할 겁니다. 지금까지도 열심히 했으니 데뷔 멤버가 된 거겠지만, 앞으로의 경쟁자는 다른 연습생들이 아닌 이미 데뷔한 프로들입니다. 지금보다 백 배, 천 배 더 힘든 일이 많을 거고요. 다들 할 수 있겠습니까?”

권흥조 이사가 다짐을 물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도욱이 흔들리지 않고 답했다. 잘 부탁드린다는 어른스러운 인사까지 더해졌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저도···!”

연이어 다른 연습생들도 스스로 다짐하듯 외쳤다. 임성안과 권흥조의 얼굴에 뿌듯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대략적인 데뷔 일정을 전달받은 후 여섯 명의 연습생들은 허리를 숙여 인사하며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연습생들과 권흥조 이사까지 자리를 더난 회의실, 임성안 신인개발팀 팀장의 페이퍼에는 다음과 같은 메모가 적혀 있었다.

안형서(19) - 보컬 파트, 음색 독특, 끼가 많음..예능?

정윤기(21) - 랩 파트, 오디션 <학생 래퍼> 출신...

김원(20) - 랩/댄스 파트, 캐나다 유학파, IQ138의 수재! 언론 홍보용..?

석지훈(17) 보컬 파트, 어린이 드라마 아역 경험, 연기지망...

강도욱(18) - 보컬 파트, 간판 멤버로 내세울 것.

박태형(18) - 보컬/댄스 파트, 이미지 활용, 더 지켜보며 체크.

***

멤버가 확정되고 일주일도 되지 않아 여섯 명의 멤버들은 숙소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도욱도 부모님께 말씀드린 후 짐을 싸 집을 나왔다. 학교도 숙소에서 등하교하기로 되었다. 본래 다니던 학교가 숙소에서 먼 경우에는 근처 예술고등학교로 전학 처리될 예정이었다.

숙소는 회사 근처의 방 2개짜리 18평 신축 빌라였다.

여섯 명의 남자들이 생활하기엔 비좁았지만, 어차피 대부분의 생활은 회사 연습실에서 이루어져서 숙소는 밤에 돌아와 잠깐 쉬거나 잠만 자는 용이었다. 또 선배 그룹인 몬스터나 밀키웨이가 데뷔 전에 썼던 허름한 숙소에 비하면 신축 빌라는 발전한 형태에 가까웠다.

“1집만 성공하면 대표님이 바로 더 좋은 데로 이사 보내주신대···”

멤버들이 짐을 가지고 들어오던 날, 개발팀 막내 직원 안영미가 말했다. 작은 숙소에 멤버들이 실망할까 싶어서 한 말이었다. 그러나 멤버들은 집을 나와 자기들끼리 숙소 생활을 하게 됐다는 사실에 신이 나 실망은커녕 신나서 좁은 숙소를 구경하기 바빴다.

“누나도 참, 내 살던 고시원에 비하면 천국이이라고요.”

지방에서 올라와 혼자 고시원 생활을 하며 고생하던 정윤기가 안영미에게 외쳤다.

짐을 다 옮긴 후 여섯 명은 거실에 둘러앉아 안영미와 함께 방 배정을 했다.

방 두 개에는 2층 침대와 싱글 침대가 각각 있었다. 침대 자리를 두고 설전을 펼칠까 했던 안영미의 우려와 달리 방과 침대 배정은 순조롭게 착착 이루어졌다.

가장 불편할 게 분명한 2층 침대의 윗자리에 안형서가 자신의 로망이 2층 침대 위에서 자는 것이었다며 자원한 덕이었다. 강도욱도 아무 자리나 상관없다며 멤버들에게 선택권을 양보했다.

이후에는 어린 멤버들이 형들에게 싱글 침대를 양보하면서 자연스럽게 방 구성이 이루어졌다. 별것 아닌 일이었지만, 시작이 좋았다. 가장 가까이서 연습생들을 지켜봐온 안영미였다. 실력도 좋았지만, 인성도 모자란 것 없는 이들만 잘 모인 것 같아 안영미는 흡족해졌다.

한편으로 조정민이 빠지게 된 것에 안도하게 되었다. 미안한 말이지만 조정민이 있었다면, 이런 훈훈한 분위기는 연출되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럼 짐 정리 잘들하구··· 일주일에 한 번씩 이모님 오셔서 청소해주시고 밥도 해주시긴 할 건데··· 너네들끼리 당번 정해서 너무 밀리지 않게 청소도 하고 그래···.”

“네!”

“윤기 네가 제일 형이니까···”

“예, 예! 잘 알겠습니다~!”

나이가 제일 많기도 하면서 가장 생활력 있기도 한 정윤기의 주도 하에 여섯 명은 집안일 담당 또한 나누었다.

“함 잘해 보자, 우리.”

담당을 나누고 거실에서 흩어지기 전, 정윤기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말투는 장난스러웠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심은 모두 알고 있었다.

도욱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팀’으로 묶였다는 이유만으로도 여섯 명 사이에는 어떤 동지애가 생겨나는 것만 같았다. 신기한 일이었다.

“그리고 박태형···!”

정윤기가 갑작스럽게 박태형을 지목하자 모두 놀랐다. 여전히 숫기가 별로 없어 종일 별말 없이 따르던 박태형이 가장 놀라 정윤기를 보았다.

“늦었지만 미안하다. 정민이 그느마가, 그럴 때 나라도 말렸어야 했는데. 보기만 해서.”

정윤기는 조정민의 무리는 아니었지만, 괜찮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박태형을 괴롭히는 일에 동조하진 않았지만, 나서서 말리지도 않았다. 때문에 늘 찝찝한 마음이 있었고, 박태형에게 미안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던 때에 강도욱이 나서 조정민에게 일침을 가한 것이다. 그리고 박태형이 조정민을 실력으로 이겨 버렸다.

데뷔 멤버가 확정되고 정윤기는 성인인 자신보다 나은 행동을 한 강도욱을 찾았다. 박태형을 볼 낯이 없다는 정윤기의 말에 강도욱은 말했다.

“사과하세요. 미안한다는 한 마디면, 그 한 마디면 될 겁니다. 박태형에게는요.”

정말 그거면 될까 싶었으나 강도욱은 확고했다. 그리고 기회를 보다 정윤기는 오늘 사과를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정윤기가 말하자 이어 다른 멤버들도 역시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 방관도 절대 옳은 일은 아니었으니까. 강도욱은 묵묵히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괘, 괘, 괜찮아요. 정말로.”

박태형의 얼굴이 당황스러움에 젖어들었다 이내 울먹이는 얼굴이 됐다. 멤버들 중엔 한 번도 직접적으로 자신을 괴롭힌 사람들이 없었는데도 사과를 해오니 당황스럽기도 했고 고맙기도 했다. 조정민에게 당했던 일들에 대한 서러움까지 씻겨 나가는 기분이었다.

숙소 생활의 첫 날이 그렇게 저물어 가고 있었다.

각자의 방으로 흩어지던 가운데 안형서가 도욱에게 다가와 조용히 물었다.

“도욱아, 너. 정민이 형 얘기 들었어?”

기획사를 나간 조정민이 어디로 가게 되었는지, 안형서는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

12월은 연예계에선 시상식으로 분주한 철이었다.

연습을 마치고 돌아온 케이케이 멤버들은 숙소에 모여 케이블 채널에서 진행하는 가요 시상식 무대를 보고 있었다.

“와 우린 언제 저런 데 나가려나.”

안형서가 입을 벌리고 밀키웨이의 무대를 지켜보았다. 안형서는 사실 밀키웨이의 팬이기도 했다. 도욱도 원래대로라면 입을 벌리고 밀키웨이를 보고 있어야 했지만, 도욱은 다른 생각에 잠겨 있었다.

‘오늘인가······!’

아라 엔터는 걸출한 스타를 여럿 배출한 대형 기획사였다.

덕분에 서강준이 속한 그룹 맨투맨은 데뷔 무대부터 남다른 스케일이었다. 연말 시상식, 아라 엔터의 소속 가수 무대 직후 데뷔 무대를 가진 것이다.

다른 기성 그룹도 나가기 힘든 무대에서 ‘쌩’신인이 데뷔 무대를 가졌으니 반향은 엄청났다. 시상식에서 무대를 가지지 못했거나, 무대를 가졌더라도 1절밖에 부르지 못한 중소그룹의 팬들은 대형 기획사의 횡포라며 들고 일어났다.

데뷔와 동시에 안티가 생긴 수준이었다. 그러나 폭발적인 관심을 끈 긍정적인 효과에 비하면 일부의 부정적인 목소리는 안고 갈 만한 수준이었다. 데뷔일부터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하며 맨투맨은 어마어마한 스타로 자리 잡기 시작했으니까.

그리고 그 엄청난 데뷔 무대가 오늘 있을 예정이었다.

무대 하나가 끝나자 시상식 엠씨를 맡게 된 여배우가 어깨가 훤히 드러나는 붉은색 드레스를 입고 나와 마이크를 잡았다. 이 여배우 역시 아라 엔터 소속이었다.

“현장의 열기가 정말 뜨거운데요! 이 열기를 이어갈, 핫한 신인들이 다음 무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맨, 투, 맨!”

여배우의 외침에 무대가 다시 어두워지며, 인트로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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