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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데뷔, 전격 교체 (2)
#본격 데뷔, 전격 교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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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HIT 엔터테인먼트 신인개발팀 팀장, 임성안.
그녀는 팀장임에도 언제나 신입사원보다도 먼저 출근하기로 유명한 워커홀릭이었다. 몬스터와 밀키웨이의 주요 멤버를 발굴한 주요 인사이기도 했다. 그 능력을 인정받아 입사한 지 삼 년 만에 팀장이 됐다.
성안은 오늘도 신입개발팀 사무실에 가장 먼저 도착해 책상에 자리를 잡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녀는 컴퓨터를 전원을 켜고, 책상 위에 있는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개별 포장된 포춘쿠키들이 잔뜩 들어있었다.
“음. 오늘은······.”
월요일 아침마다 포춘쿠키를 쪼개 종이에 적힌 글귀로 마음을 다잡고, 한 주를 점치는 것은 임성안이 신입사원일 때부터 해오던 일이었다. 포춘쿠키의 글귀를 맹신하는 것까진 아니었지만, 꽤 잘 맞아서 의사결정에 영향을 받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가장 가운데 있는 포춘쿠키를 집어 들고 포장을 뜯었다.
[새로운 인연이 찾아옵니다.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지고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하세요!]
임성안은 종이에 써진 문구를 곱씹었다.
‘헤어진 애인 얘기를 하는 건가? 헤어진 지 일 년도 더 됐는데 그건 아니겠지.’
어차피 날이 지나봐야 이 문구의 의미를 알 수 있을 터였다. 성안은 문구를 잘 펼쳐 책상 위에 올려놓고 쿠키는 입안에 넣었다.
***
오후 다섯 시부터 힛 엔터 연습생들의 댄스 평가가 시작됐다.
연습생 생활을 하면 정상적인 학교생활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도욱도 학교에 공문을 내고 학교 측의 협조를 받아 수업일수를 채울 만한 정규 수업 외의 수업들은 모두 빠지고 있는 상태였다.
세 시쯤 학교를 나서는 도욱을 윤진성은 무척이나 부러워했다. 도욱이 연예인이 될 거라는 것보다도 당장 학교 수업을 안 듣는 게 더 부러운 것 같았다.
‘단순한 자식.’
처음의 어색함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윤진성과 친구로 지내는 데 어떤 어색함도 느끼지 않았다. 가끔 윤진성이 도욱에게 늙은이같이 굴지 말라고 할 때가 있긴 했다. 몸은 열여덟이나 서른셋의 정신을 가졌으니 늙은이 소릴 들을 만도 했다.
‘최대한 말을 아껴서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하긴 하지만···.’
거기까지 생각하던 도욱은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평가를 받을 연습생들이 전원 참석해 있었다.
조정민은 박태형의 곁에서 괜히 기지개를 켜며 옆에 선 박태형을 칠 듯이 몸을 움직였다. 박태형은 조정민의 기세에 눌려 고개를 숙인 채였다.
‘하는 짓이 볼수록 가관이군.’
도욱이 인상을 찌푸리며 다가서자 조정민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조정민이 도욱의 도발에 넘어갔든 넘어가지 않았든, 모두가 있는 곳에서 나온 말이었다. 조정민과 박태형의 개인 점수는 본인들의 점수 외에 가장 뜨거운 관심사가 되어 있었다.
연습실에 마련된 소파에 평가를 할 세 사람이 앉았다. 오디션과 비슷한 기류가 형성되었다.
오늘 평가는 A부터 E조까지 총 다섯 개의 조가 역순으로 평가를 받게 된다. 데뷔 멤버를 구성하려 평가하는 시간인 만큼, 평가는 댄스 수업 선생뿐 아니라 신인개발팀 대리와 팀장에 의해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최종적인 데뷔 멤버 확정이야 제작이사가 나설 테지만, 우선 가장 중요한 건 신인개발팀 팀장의 눈에 띄는 일이었다. 회사 내에서 임성안의 입지는 누구보다 탄탄했다. 데뷔를 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꼭 잡아야 할 지푸라기였다.
댄스 선생이 외쳤다.
“E조부터 나와 보자!”
평가용 커버곡은 몬스터의 ‘TOP’와 ‘WILD FACE’였다. ‘TOP’는 흐름과 유연한 움직임이 중요한 곡이었고, ‘WILD FACE’는 빠른 박자의 곡으로 박력과 야성미를 잘 표현해야 하는 곡이었다.
어느 한 곡을 뛰어나게 잘하는 것도 좋지만, 두 곡 모두를 평균 이상으로 소화하는 것도 중요했다. 그래야 계속 변화를 추구하는 아이돌 시장에서 어떤 곡과 컨셉이든 소화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음악이 흘러나오고, E조가 열을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엉망이군.’
습득한 안무 순서만 겨우겨우 흉내를 내고 있었다. 도욱이 보기에도 엉망이었으니 평가자들이 보기에는 더 엉망이었다. 그렇지만 별 기대가 없어서인지 평가자 세 사람은 평온한 얼굴로 E조 한 사람, 한 사람의 평가지에 점수를 매겼다.
A조를 제외한 인원들은 당장의 데뷔 전력은 어차피 아니었다. 시간을 들여 키울 인재들이었다.
‘현재 A조는 전부 7명. 케이케이의 멤버 수는 6명. 아마 여기서 박태형이 제외되는 스토리가 과거의 스토리였겠지.’
도욱은 여전히 바닥만 보고 있는 박태형 쪽을 보았다.
‘평소대로만 해도 개인점수는 박태형이 훨씬 높을 거야. 조정민도 춤을 잘 추는 편이지만, 박태형에 비할 바는 아니야. 박태형은 타고난 데다 노력도 많이 한 게 분명하니까.’
그럼에도 걱정이 되는 건 박태형이 조정민이 무서워 춤을 망칠까 하는 부분이었다.
‘이 정도 두려움은 스스로 극복해야 데뷔도 하고, 데뷔 이후에도 잘 견딜 수 있다.’
걱정 속에 A조의 차례가 됐다. 각각 대열을 갖추고 섰다. 센터 자리에는 끼가 많은 안형서가 서고, 그 뒤로 양옆에 조정민과 박태형이 섰다.
“박태형. 같이 데뷔하자.”
박태형의 뒤에 선 도욱이 음악이 시작되기 직전, 박태형에게 조용히 말을 건넸다. 박태형에게선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춤이 시작되자 심사를 보던 이들의 눈이 커졌다. 모두 뒷통수라도 맞은 듯 깜짝 놀란 상태였다.
“쟤 뭐야?”
“어, 얼마 전에 오디션에서 뽑은 박태형 군입니다, 팀장님.”
“아! 기억나네. 근데 쟤가 저렇게···!”
대리의 답을 듣고서도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임성안 팀장은 중얼거렸다.
“쟤가 저렇게까지 잘했었나?”
박태형을 바라보는 임성안 팀장의 눈이 번뜩였다.
***
월말 댄스평가 채점표
A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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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욱 81
조정민 87
박태형 94
.
.
댄스 평가 몇 시간 후, 채점표가 붙기 무섭게 연습생들이 벽에 달라붙어 자신들의 점수를 확인했다.
도욱의 걱정과 달리 박태형은 평소처럼 열정을 다해 춤을 추었다. 아니, 평소보다 더 놀라운 집중력을 보이며 몸을 움직였다. 그간 연습을 했다지만, 오디션 때 도욱의 눈을 사로잡았던 것 이상의 춤이었다.
마음을 굳게 먹은 것일 수도 있었고, 위축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노래가 나오고 춤을 추기 시작하자 몸이 먼저 반응해 움직인 것일 수도 있었다.
박태형은 댄스 평가 최고점을 받았다. 오히려 조정민의 점수가 90점 아래로 떨어져 있었다. 여전히 높은 점수였지만, 춤이 주요 무기인 조정민에겐 낮은 점수였다.
“씨X!”
자신의 점수를 확인한 조정민이 욕을 지껄였다. 연습생들이 그를 힐끔거렸다. 괜히 불똥이 튈까 다들 함부로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졌네요. 형이 무시하던 그, 박태형한테.”
도욱의 말에 분위기가 더욱 험악해졌다.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아랑곳 않고 도욱은 연습실을 나왔다.
와장창-!
연습실 안에서 조정민의 욕지거리와 함께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제 화를 이기지 못한 조정민이 들고 있던 휴대폰을 집어 던지는 소리였다.
이제 춤을 시작한 것치고는 도욱의 점수도 높은 편이었지만, 도욱은 자신의 점수에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보컬과 작곡 연습은 따로 또 연습까지 하고 있지만, 춤은 기획사에서 짜준 연습만 하다 보니 부족한 느낌이었다.
‘데뷔까지 시간이 더 있으면 좋을 텐데······.’
생각에 잠긴 채 걷는 도욱의 뒤를 박태형이 따라 나왔다.
“도, 도욱아.”
박태형은 조정민이 무섭기도 했지만, 스스로의 춤으로 조정민을 이겨 내심 기쁘기도 한 상태였다. 본격적인 대결까진 아니었지만, 어쨌든 조정민을 이기고 나니 조정민에 대한 두려움과 압박이 덜어졌다. 어차피 이곳은 실력이 중요한 곳이었다.
“댄스 평가······. 수고했어.”
“점수 보니까 수고는 네가 했던데.”
도욱의 말에 박태형이 쑥스러운 듯 웃었다. 맨날 고개를 숙이고 다녀서 그렇지 수줍은 얼굴이 꽤 귀여운 편이었다. 여자들에게 모성애를 불러일으킬 캐릭터였다.
***
임성안을 비롯한 신인개발팀 인원들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회의를 진행했다. 야심차게 기획한 새 신인 남자 아이돌 그룹 케이케이. 전체적인 틀은 모두 기획된 상태였다. 이제 멤버를 확정 짓고 멤버들의 개성을 살려 디테일적인 부분들에 심혈을 기울일 때였다.
물론 멤버 구성도 대충은 정해 놓은 그림이 있었다. 다만 비주얼 멤버가 마땅치 않아 오디션을 열었고, 정확하게 그들이 원한 그림 같은 얼굴도 들어와 주었다.
‘완벽은 아니지만, 완벽에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시름에 잠겨 임성안은 깊게 한숨을 쉬었다. 다 됐다고 생각했는데, 내정된 멤버 중 한 명인 조정민이 마음에 걸렸다.
마지막 점검 겸 이루어진 댄스평가에서 조정민은 84점을 받았다. 1등은 아니었지만, 데뷔하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또 박태형이라는 인재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 나름 의미 있는 평가 시간이었다.
그런데 춤에 자부심을 갖고 있던 조정민이 댄스 평가 이후 자존심을 다치기라도 했는지 말썽이었다. 걸핏하면 다른 연습생들과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했고, 연습생 하나를 괴롭힌다는 얘기까지 들려왔다. 어지간하면 사내애들이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가주겠지만, 안 좋은 얘기가 계속해서 올라오자 과연 데뷔를 시켜도 좋을지 확정을 내리기 힘들었다.
와중에 조정민은 연습 시간에도 지각을 하거나 불량한 태도를 보이기 일쑤였다.
“조정민이랑 얘긴 해봤어요? 걔 데뷔 안 하고 싶대? 아님 벌써 데뷔 확정인 줄 알아?”
임성안이 목소리를 높였다. 연습생들을 일대일로 관리하고 있는 개발팀 막내 직원이 우물쭈물했다.
“그게, 말은 해 봤는데······.”
“원래도 가끔 보면 껄렁해서 걱정이긴 했어요.”
틈을 놓치지 않고 대리가 끼어들었다. 사실 대리는 인성적인 면에서 조정민을 탐탁치않게 여기고 있었다. 다만 크게 문제도 일으키지 않고 조정민보다 뛰어나게 춤을 추는 연습생이 들어오지 않아 조정민을 안고 가던 중이었다.
그러나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또 현재는 조정민보다 춤을 잘 추는 연습생이 존재했다.
이 회의는 사실 박태형이라는 대체자원까지 나타났기 때문에 열린 회의나 다를 바 없었다. 대체자가 없었다면 조정민의 태도를 어떻게든 고쳐보려 하고, 제대로 교육을 해 데뷔시키려는 방향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임성안은 팀원들을 살폈다.
“앞으로 우리 회사 최소 5년은 이끌고 가줘야 할 그룹입니다. 신중하게 결정해야 해요. 조정민 데뷔, 이대로 괜찮겠어요?”
중대한 문제였다. 섣불리 나서지 못하고 모두 입을 다물었다.
“박태형······.”
결국 임성안의 입에서 박태형의 이름이 나왔다. 대리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