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준비된 인재 (3)
#준비된 인재 (3)
“뭡니까?”
도욱과 친구들은 학교에서 잘나가는 부류이긴 했어도 일진 무리는 아니었다. 때문에 종종 일진들이 찾아와 시비를 거는 경우가 있었다. 윤진성이 또 귀찮은 일이 벌어졌다는 듯 짜증을 섞어 대답했다.
그러나 도욱은 순간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내면에 자리한 김보명이 가진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위에서 잠깐 보지?”
움찔한 것도 잠시, 도욱은 선배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김보명이 서강준을 이렇게 곧장 쏘아 봤다면? 당장에 손이 날아왔을 것이다. 그러나 도욱의 무심한 눈길에 선배는 오히려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도욱은 짧게 한숨을 뱉은 뒤 답했다.
“지금 여기서 보죠.”
***
찾아온 선배는 별게 아니었다.
“너··· 혹시 이지혜한테 관심 있냐?”
“누구요?”
도욱은 한 발 늦게 자신에게 음료수를 건넸던 같은 반 여자아이를 떠올렸다. 도욱의 반응에 선배가 민망해하며 말을 이었다.
“아니다. 없음 됐고.”
윤진성은 단번에 선배가 이지혜를 좋아해 도욱을 찾아왔다는 것을 눈치챘다. 뭐 대단한 시비라도 걸 것처럼 굴더니 결국 여자 문제였다. 윤진성은 그가 한심한 선배라는 생각과 함께 여기 저기 인기인인 이지혜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강도욱이 신기했다.
“내일? 뭐라고? 오디션?”
“어. 나 사실 내일 오디션이 있어.”
도욱은 윤진성에게 오디션에 관해 털어놓았다.
“연예인 하고 싶어 하는 줄은 몰랐네. 요즘 그것 때문에 정신 나가 있었냐?”
윤진성은 조금 섭섭해 하다가 이내 오디션 잘 보라고 도욱을 응원해 주었다.
오늘이 오디션 당일이었다. 도욱은 오디션을 위해 길을 나섰다.
어제까지만 해도 조금 긴장을 했었던 도욱이지만, 오늘은 오히려 마음이 편안했다. 강도욱이 된 이상 일진 선배가 찾아와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아서일 수도, 친구의 응원 덕분일 수도 있었다.
HIT 엔터테인먼트의 사옥은 도욱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강남의 중심부에서는 약간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이후에는 사세를 확장해 조금 더 크고 좋은 건물로 회사를 이전하게 되지만, 현재로서는 오래된 6층짜리 빌딩 중 하나가 사옥이었다. 사옥의 3층까지가 사무실이었고, 4층부터는 각종 연습실과 녹음실 등이었다.
사옥 앞에는 몬스터의 사생팬들로 보이는 여학생들이 삼삼오오 무리지어 있었다. 팬들은 어떻게든 연습실을 오가는 몬스터의 멤버들을 보려 모여 있는 것이다. 큐 엔터에 출퇴근을 할 때도 자주 보았던 광경이었다. 주말이라 평소보다 더 많은 팬들이 몰려와 진을 치고 있었다.
강서현이 따라오겠다는 걸 말리느라 도욱은 애를 먹었다. 강서현의 의도가 너무 뻔했다. 괜히 같이 왔다가 몬스터 멤버들이라도 보게 돼 강서현이 난리를 부리면 오디션에 더 방해가 될 것 같았다.
도욱은 연습생이 되면 몬스터의 사인부터 받아다주기로 강서현과 약속하고 혼자 오디션장을 찾을 수 있었다.
오디션은 4층의 대연습실에서 이루어졌다. 대기실 대신 간이의자들이 대연습실 앞 복도에 줄지어 놓였다. 복도에서 대기하는 인원은 스무 명 정도였다.
AM 10:45
도욱은 15분 단위로 끊어지는 오늘 오디션의 오전 타임에 배정되었다. 한 번에 들어가는 인원은 다섯 명. 한 명당 심사위원들이 할애하는 시간은 3분 남짓이라는 이야기였다.
“다음 팀 들어오세요~!”
도욱을 포함한 다섯 명의 참가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대연습실을 향했다.
뻥 뚫린 20평 남짓의 공간은 사방이 거울이었다. 기다란 테이블을 두고 총 세 명의 심사위원이 문으로 들어오는 오디션 참가자들을 바라보았다.
심사위원은 힛 엔터의 신인개발팀이었다. 오른쪽부터 신인개발팀의 매니저, 대리, 팀장이었다. 신인개발팀에서는 몬스터 후속 남자 아이돌 그룹을 준비하는 가운데 현재 연습생들이 성에 차지 않아 정기 오디션 외에 추가 오디션을 열게 되었다.
“그럼 55번 학생부터 나와 보세요.”
신인개발팀 대리가 오디션을 이끌었다.
도욱의 옆에 선 55번이 한 발짝 앞으로 나갔다. 도욱은 55번의 뒷모습을 한 번, 또 옆에 선 세 명의 남학생들을 한 번 훑었다.
이전의 강도욱처럼 연예인이나 한번 해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온 이도 있을 것이다. 또 정말 간절하게 가수가 되고 싶은 참가자도 있을 것이다. 어떤 마음으로 왔든지 저렇게 세 명의 성인이 잡아먹을 듯 노려보고 있다면, 긴장감이 감돌 수밖에 없었다.
55번이 노래를 시작하려 호흡을 가다듬는 도중, 도욱도 괜히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켰다.
55번이 준비해온 노래를 세 소절 정도 부르자 대리가 노래를 끊었다. 다음은 카메라테스트였다.
이 자리에 서 있는 다섯 명 모두 붙을 수도 있고, 모두 떨어질 수도 있다. 도욱은 바로 앞으로 다가온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다만 확실한 건, 자신은 붙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강도욱은 합격한다! 노래를 전혀 못 부르던 시절에도 합격했었다. 무언가 꼬이지만 않는다면···. 아니야. 여태 영혼이 바뀌었다고 해서 꼬인 일은 없었으니까, 합격하겠지.’
보명은 주먹을 꽉 쥐었다.
‘김보명으로 살면서는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확신이다.’
확신이 있기 때문에 긴장감도 훨씬 덜했다.
김보명도 조금 더 자신에게 자신감을 가졌다면, 좋았을 것이다. 자신감을 가져보기도 전에 짓밟혔으니 별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다음, 56번.”
“예.”
55번이 뒤로 들어오고 도욱이 앞으로 나갔다. 심사위원석을 마주보는 정중앙, 테이프로 자리를 표시해둔 곳에 섰다.
진짜 자기 자신이 아니기 때문일까? 도욱이 된 보명은 오히려 객관적으로 도욱에게 쏟아지는 시선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심사위원들의 눈이 한차례 빛나는 게 보였다. 특히 신인개발팀 팀장이라는 여자의 눈이 번뜩였다. 팀장은 도욱이 입장하던 순간부터 도욱의 잘생긴 마스크에 내심 감탄하고 있었다. 진행은 주로 대리가 했는데, 팀장이 입을 열어 직접 물었다.
“춤? 노래?”
“노래 부르겠습니다.”
“그래. 준비해온 거 해봐요.”
도욱이 오디션 곡으로 준비한 노래는 김병수의 ‘보고 싶다’였다.
원래 도욱이 하려던 노래는 보컬 스승이 된 김우연의 곡이었다. 그러나 김우연은 단칼에 도욱의 의견을 잘랐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유명하지 않아 심사위원들이 모를 가능성이 커 오디션 곡으로 좋지 않다는 것. 둘째는 세밀한 기교가 많이 필요한 곡이어서 보명이 소화하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이었다.
김병수의 ‘보고 싶다’는 기교보다는 감정이 우선시되는 곡이었다. 애절한 음색과 감정 표현으로 승부를 볼 수 있는 곡이라는 뜻이었다.
물론 김병수의 미친 가창력이 더해져 국민가요가 될 수 있었던 것이지만 말이다. 그 정도 실력은 어차피 아이돌 연습생을 뽑는 오디션에서 요구하는 게 아니었다. 뛰어난 점 하나만 있어도 승산이 있는 오디션이었다. 그렇다면 강도욱의 장점만 두드러지면 그만이라는 게 김우연의 생각이었다.
‘보고 싶다’를 선택해 어느 정도 음정과 박자만 맞춰 주면 강도욱의 장점인 편안하면서도 매력 있는 음색이 드러날 것이다.
“보- 고- 싶다- 보- 고- 싶- 다--”
김우연의 생각은 반 정도 맞아 떨어졌다.
“이런 내-가 미워질- 만크-음-”
한 달간의 맹훈련으로 도욱은 음정과 박자를 완벽에 가깝게 맞출 수 있게 되었다. 능숙한 느낌만 아닐 뿐 좋은 노래라는 느낌이었다.
김우연의 예상대로 심사위원들은 귀를 기울여 도욱의 낮은 목소리에 빨려 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도욱의 음색 때문만은 아니었다. 얼굴에서 발하는 진지한 눈빛. 마치 이 자리에서 도욱을 뽑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인상 깊은 눈빛이 그들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잘 봤어요. 이번엔 카메라.”
노래를 마치자 간단한 카메라 테스트가 이어졌다.
카메라가 도욱을 비추었다. 앞모습과 옆모습을 각각 촬영했다. 일반인의 경우 모니터로 얼굴을 보면, 실제로 보는 것보다 밋밋해 보이기 마련이었다.
“앞머리! 앞머리 들어볼래요?”
모니터를 뚫어져라 보던 대리가 약간 상기된 어투로 도욱의 앞머리를 가리켰다. 도욱이 손을 들어 이마를 덮고 있던 앞머리를 올렸다.
스윽-, 앞머리를 올리자 단번에 인상이 달라졌다. 모니터 속 도욱은 밋밋해 보이긴커녕 모니터를 뚫고 나올 듯 강렬했다.
‘붙었다!’
심사위원들, 도욱뿐 아니라 다른 참가자들까지. 대연습실 내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예감한 강도욱의 합격이었다.
***
최종 오디션은 바로 다음 월요일에 진행됐다. 신인개발팀뿐 아니라 제작이사들이 둘 추가된 오디션이었다. 몇 가지 신상에 관련된 질문과 마음가짐에 대해 물은 후, 인터뷰는 종료되었다. 98:1의 경쟁률. 총 합격자는 단 3명.
도욱은 그 세 명 중 한 명이 됐다.
“도욱아! 강도욱! 하나뿐인 내 사촌동생!”
“한 명 더 있잖아.”
“마음이, 마음으로는 하나뿐이야. 그래서 몬스터 봤어? 한 명이라도?”
오디션 합격을 제일 좋아한 건 물론 사촌 누나인 강서현이었다. 도욱의 부모님보다도 더 기뻐했다. 서현은 축하의 의미로 밥을 사준다며 도욱을 패밀리레스토랑으로 데리고 왔다. 바라는 게 있는 호의라 그렇게 기쁘지만은 않았지만, 어쨌든 함께 기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어떻게 봐. 아직 못 봤어.”
“이제 맨날 가? 연습 언제부터래.”
“내일부터.”
강도욱이 스테이크를 썰다 말고 자신의 가방에서 주섬주섬 노트를 꺼냈다.
“자, 여기.”
“이게 뭐야?”
“첫 미션은 가볍게. 여기에 다음 주까지 멤버 전원 사인 받아와. TO. 서현, 알지?”
“뭐? 내가 왜···.”
“아니면 뱉어!”
지금까지 먹은 걸 뱉으라는 듯 서현이 손바닥을 내밀었다. 도욱은 철없는 사촌 누나에 고개를 저었다. 밥 한 번 사주고 많은 걸 원한다 싶으면서도, 다른 걱정 없이 아이돌 좋아하는 게 인생의 낙인 사촌이 싫은 것도 아니었다.
김보명의 인생과는 다른, 밝고 긍정적이면서 남에게 해를 끼치지도 않는 인생들이 잔뜩 있었다. 강도욱으로 살다 보니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부러웠고, 동시에 자신까지도 그런 인생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할 수 있으면 할게.”
스테이크를 입안으로 집어넣으며 도욱이 답했다. 무덤덤한 얼굴로 있었지만, 도욱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여기까진 모든 게 순조로웠다. 문제는 지금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