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4화
174. 린하우(1)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기실에서 대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참가 표 확인과 동시에 대기실을 알려주었다.
대기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자 익숙한 사람들이 보인다.
“린하우?”
“강수호 헌터.”
중국에서 봤던 세계 랭킹 3위 헌터, 린하우부터 시작해서.
“진짜 많네. 안 온 사람도 몇몇 있긴 하지만.”
대기실에 유명한 얼굴들이 가득 있었다.
반갑게 인사해 주는 헌터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깜짝이야.”
“비켜.”
헌터들 대부분이 그들을 경계하고 있었다.
저번 주보다 더 심각했다.
“무시해라. 워낙 유명해져서 질투하는 것이니.”
“린하우.”
“오랜만이군. 경매장에서 본 이후로 처음 보는 건가?”
“그렇죠. 워낙 일이 바빠서요.”
“뉴스로 들었네. 이렇게 보니…….”
린하우가 가까이 다가와 인사하며 몸을 훑었다.
전 세계 언론 매체를 통해 강수호의 활약을 봤을 터. 얼마나 강해졌는지 대강 훑더니.
“…….”
“린하우 님?”
“괴물이군.”
조용히 한마디 뱉었다.
힘뿐만 아니라, 능력 또한 괴물처럼 성장해 있었다.
“아, 예?”
“대단하다고 칭찬한 것뿐이다. 많이 성장했군.”
“감사합니다. 워낙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겪어서.”
간단한 인사와 함께 거대한 대기실을 둘러보며 물었다.
최소 몇만 명이 되는 헌터들. 하지만 유명한 이는 수에 비해 그리 많지 않았다.
“자세히 보면 유명한 이가 수에 비해 적지 않나?”
“그런 것 같습니다.”
“당연하지. 세계 랭킹은 몇 년에 한 번으로 정해진다. 참가자도 많고 탈락자도 많은 법.”
자격을 가진 참가자들도 있고 탈락자도 있으니까, 모르는 사람이 더욱 많은 경우는 당연했다.
더군다나 더욱 신기한 점은 1대1 토너먼트 방식.
“처음으로 나와 붙으면 어떤 기분일 것 같으냐?”
“바로 처음으로요?”
“그래. 경기를 시작하자마자 처음으로.”
그럼에도 빨리 경기가 끝나는 이유는 헌터들 사이의 격차 때문이다.
힘의 격차가 적은 헌터는 모래밭의 보석만큼 적다. 둘 중 누군가 더 강하거나, 더 약할 뿐이다.
질문에 조금 고민하더니 가볍게 미소 지어 대답했다.
“좋을 것 같아요.”
“좋다?”
“예, 세계 랭커 3위잖아요.”
“오호…….”
그를 상대하는 것만으로 자신이 어느 정도 힘을 지녔는지 알아낼 수 있을 터.
린하우는 나나호의 힘과는 완전히 다른 무공 계열을 가지고 있기에.
‘바로 싸우고 싶어.’
오히려 반가웠다.
지금 당장에라도 힘을 주고받고 싶을 정도로.
“나도 그러고 싶지만, 그건 안 될 것 같군.”
모든 바람이 소설처럼 이루어지진 않는다.
사람이 모인 대기실 위 거대한 TV에 드디어 랜덤 뽑기가 시작되었다.
-랜덤 뽑기가 시작됩니다!
뽑히면 곧장 나가 승자를 가리는 1대1 토너먼트 형식.
소란스러웠던 대기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지며, 모두가 침을 삼키는 소리만 들렸다.
-띠리리리링!
물레방아처럼 생긴 것이 한참이나 돌아가다 구슬 하나가 나왔다.
참가자 이름이 적혀 있는 모양이다.
툭.
-과연 누구일까요…….
‘&’으로 적힌 구슬.
랭킹이 없다는 뜻.
이름을 확인하기 위해 돌리자.
[강수호]
“벌써 나?”
TV 화면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이는 이름. 바로 강수호였다.
‘왜 나냐.’
의외도 너무 의외였다.
많고 많은 사람 중에서 자신이 처음으로 뽑히다니.
‘이런 행운이 다 있나.’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나나호와 최서현으로는 힘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았다. 오크 대장의 기회 덕에 얼마나 강해졌는지 명확히 알고 싶었다.
그렇다고 몸 풀 상대방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적어도 10위 권 안의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는데.’
제대로, 목숨을 걸고 싸울 만큼의 강자를 원했다.
-상대를 고르겠습니다!
다시 한번 진행자가 거대한 물레방아를 돌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돌리더니 닭이 알을 낳듯 나오는 작은 황금 구슬.
‘음? 저 숫자…….’
‘&’ 표시가 적혀 있지 않았다. 정확히 보이는 3이라는 숫자.
진행자가 떨리는 손으로 구슬을 돌려 이름을 외쳤다.
-세계 랭커 3위! 린하우입니다!
-우와와와와!!!!
진행자의 대답에 관중들이 환호했다.
토너먼트 첫날부터 린하우의 경기를 볼 수 있다니.
이런 행운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더군다나 상대가 평범한 참가자도 아니고, 요즘 주목받고 있는 괴물 신입이라면 더욱.
“이런 우연이 다 있군.”
“그러게 말입니다.”
순식간에 린하우와 강수호에게 시선이 집중된다.
첫 토너먼트부터 강한 상대방끼리 판을 열었다.
‘기대되는군.’
‘강수호? 얼마나 강한지 궁금하군. 저 괴물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모두가 기대했다.
참가자 대부분은 린하우가 이길 거라 단정 지었지만.
‘궁금하네요. 과연 누가 이길지.’
강수호와 몇 번 대결해 봤던 나나호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겉으로 보면 그리 재능이 뛰어나지 않아 보인다. 정말 난 놈은 싸울 때마다 성장하는 괴물이니까.
하지만 아무리 난 놈도 2주 만에 한계를 뛰어넘지는 못한다.
그렇기에 나나호는 궁금했다. 과연 둘이 싸우면 누가 이길지.
최서현이 걱정되는 투로 강수호에게 괜찮냐 물어보는데.
벌컥.
“강수호 헌터, 린하우 헌터. 경기장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직원이 대기실 안으로 들어와 강수호와 린하우를 데려갔다.
* * *
‘아카데미 때와는 비교도 안 되네.’
축구장 4배 크기의 경기장 앞 벤치에 앉았다.
-요즘 핫한 루키죠? 마인들을 다수 잡아내며, 일본에서도 활약하는 강수호 헌터가 경기장으로 이동합니다!
사회자의 말이 끝나고 곧장 경기장으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사람들의 환호가 들려온다.
“이길 수 있다!!”
“기죽지 마! 여기서 끝이 아니야!”
“…….”
강수호가 이길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많아 봤자 100명에 두 사람 정도.
‘인식이란 게 그렇지.’
린하우도 공을 많이 세웠으나, 강수호만큼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이름이 잊힐 때쯤 공을 세운다.
그것이 반복되다 보니 두꺼운 철판 같은 인식이 생긴 거다. 세계 랭킹이 3위인 것도 있고.
-그다음 선수는 중국의 자랑! 린하우 선수입니다!
원형 경기장 앞에 서자 사회자의 말과 함께 나오는 린하우. 경기장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자 환호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후우! 중국의 자랑 린하우!”
“저런 루키는 그냥 짓밟아 버려! 중국의 자랑!”
“린하우! 린하우!”
“나…… 인기 별로구나.”
강수호를 대할 때와는 다른 관중의 태도.
인기가 별로인 게 아니라, 여긴 베이징이다. 린하우 팬이 많을 수밖에.
-자, 그러면 경기 시작하기에 앞서…….
사회자가 경기 시작 전에 여러 가지를 설명해 주었다.
어차피 알고 있는 부분이기에 남은 3분 동안 린하우와 대화를 나누었다.
“긴장되나?”
먼저 서문을 연 건 린하우.
그 물음에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기쁩니다.”
“허, 기쁘다? 바로 나에게 지고 탈락할 수 있는데?”
“그것도 나쁘지 않죠. 제가 약한 거니까.”
오히려 기뻤다. 승패와 달리 정말 해맑게 웃을 수 있을 것이다.
나나호와 싸울 때도 큰 격차가 났다.
‘망설임이 사라지니 모든 게 보여.’
그녀보다 몇 배는 강한 린하우는 어떻겠나?
긴장보다는 기대가 되었다. 과연 얼마나 성장했는지.
-설명이 다 끝났으니 대련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긴 사회자 설명이 끝나자 곧장 대련이 시작되었다.
1대1 토너먼트 방식.
누구 한 명이 움직이지 못할 정도의 부상을 얻으면 경기는 끝.
쿵!!
사회자의 말에 먼저 달려간 건 린하우였다.
‘볼까.’
린하우 발에 힘을 주자 바닥이 움푹 파였다.
거대한 싱크홀이 생긴 것처럼 움푹 파인 바닥.
그만큼 린하우는 강수호의 힘이 궁금했다.
‘건틀릿을 볼 때도 눈이 특별했지.’
얼마나 성장했는지. 긴장하지 않고 왜 기뻐하고 기대했는지.
“영사권(靈蛇拳).”
두 팔이 휘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권법. 마치 뱀이 강수호를 향해 달려드는 기분이었다.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교묘하게 움직여댔지만.
‘음속의 발걸음.’
보인다. 강수호의 눈에는 어디를 공격할지 정확히 보이고 있었다.
음속의 발걸음을 이용하여 재빨리 공격에서 벗어나고.
“흡!!”
코코를 잡은 손을 꽉 쥐었다.
숨을 들이마시며 자세를 낮춰 잡고 검을 고쳐 잡고 조용히 말했다.
“발검.”
‘미친.’
그 검격에 린하우가 재빨리 권법을 거두었다.
경기장 전체를 둘러싼 보호막을 부숴 버릴 것 같은 검격.
콰콰콰쾅!!
“말도 안 되게 강해졌어.”
고농도의 베리어가 아슬아슬하게 버텨주었다.
경기장 바닥에 착지한 그가 식은땀이 흘렀다.
‘도대체 뭐지.’
마일런도 이 정도까지 강하진 않았다. 아니, 이 정도로 위압감을 느껴보진 못했다.
‘이제 1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런 성장세라…….’
절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건 범 새끼도 아니다. 모든 세계를 짊어지는 남자와 싸우는 기분이다.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겠군.’
생각을 마치자 어느새 강수호가 린하우 정면으로 달려왔다. 거짓을 섞지 않고 정직하게 앞으로.
‘금광불괴(金剛不壞)로도 몸이 버텨낼 수 없다.’
빠르게 생각을 마쳤다.
저 검에 베이면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것이다.
‘피한다.’
처음에는 정면으로 막아낼 생각을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죽지 않기 위해서 피해야 한다.
‘기공.’
그전에 몸 전체를 기로 덮어씌웠다. 피하지 못했을 때 최소한의 방비.
‘부신약영.’
그림자가 생길 틈도 없이 빠르게 움직였다.
휘익!
휘익!
자신의 움직임을 따라 정확히 휘둘러진다.
그것도 한 끗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실수 한 번으로 패배와 승리가 결정될 것이다.
‘틈이 없다.’
스킬은 분명히 한 개만 사용하고 있는데 들어갈 틈이 없다.
억지로라도 틈을 만들고 이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
상대방은 전혀 지치지 않는 눈치니까.
‘사자후.’
“크왕!!”
피하는 것과 동시에 사자후를 뱉었다.
그에 달려들던 강수호의 몸이 잠깐 경직이 되었다. 그 덕분에 틈이 생겼다.
‘은형술.’
재빠르게 은신으로 몸을 감추었다.
강수호라면 금방 은신을 풀어낼 수 있겠지만, 작은 틈만 만들면 된다.
‘이형환위.’
몸을 강수호 뒤로 이동시켜 어깨를 뒤로 크게 뻗었다.
‘철사장.’
사람의 손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단단해진 주먹으로 뒷통수를 가격하기 위해 휘둘렀다.
깡!
“……!!”
“무공은 한 번도 상대해 본 적이 없어서 놀랐네요.”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코코로 막아내었다.
린하우는 빠르게 뒤로 물러나면서 은신을 풀었다.
‘평범한 방법으로는 안 되나.’
몸을 푸는 단계라고는 하나, 이 정도로 밀릴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처음부터 최대로 상대해야 할 것 같다.
“긴장하는 게 좋을 거야.”
“그건 린하우 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대로 상대해 주지. 방심 따윈 없을 거다.”
더 뒤로 물러나며 내공과 외공을 모두 끌어 올렸다. 외공을 몸에 두껍게 쌓아놓고 무공을 사용했다.
‘천안통, 천이통, 천인합일, 천청대법.’
시각, 청각을 극도로 발달시키고 대자연의 기를 동기화 시켰다.
관중들이 음식을 먹는 소리, 달의 표면이 보이는 경지.
“제대로 시작하지.”
“…….”
전과는 완전히 다를 거다.
오만한 행동이 아니었다.
몇 분 전과 다르게 그에게서 거대한 기운이 뿜어지고 있었다.
‘며칠 요양할 수도 있겠네.’
조금은 걱정하며 자세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