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5화
175. 린하우(2)
린하우의 눈에는 세상 전체가 달라 보였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가 어디로 가는지 알게 되었고, 강수호가 휘두르는 곳이 어디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오른쪽 가슴을 향해 날아오는군.’
생각을 끝마치자 정확히 오른쪽 가슴으로 향해 날아오는 검격.
감각이 몇천 배나 강화되었기에 피하지만은 않았다.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
물 흐르듯 검을 흘렸다. 그와 동시에 강수호를 향해 다시 날렸다.
콰직!
강수호는 날아오는 검격을 다시 검으로 베어냈다.
주먹으로 내려친 듯한 소리가 울리며 검을 더 날카롭게 세웠다.
‘강타.’
강수호가 검기를 검에 덧씌우고 린하우의 약점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검을 막 휘두르며 약점의 위치를 찾아내려 했지만.
‘몸 전체가 붉다.’
찾긴 찾았다. 한데, 몸 전체가 약점.
‘뚫어내기만 하면 이기는데, 뚫어내지를 못한다는 건가.’
문제는 몸에 검이 닿을 수 없다는 거였다.
중간중간 검을 휘두르는 데 빈틈이 보이지만.
‘함정이다.’
저 빈틈을 파고 들어간다면 사방이 갇힐 것이고, 그때부터는 린하우가 주권을 잡고 날뛸 거다.
그래서는 안 된다.
‘강타.’
검에 지금까지 사용한 검기보다 다른 검기를 사용했다.
튕겨내고 흘러내는 것을 반복하던 그가.
쾅!!
“……이건 좀 위험했어.”
모두 흘러내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던졌다.
잘못하면 팔이 통째로 베일 뻔했다.
“도대체 이건 뭐지? 아까부터 거슬리는군.”
린하우가 뒤로 물러나는 것과 동시에 물었다.
중간중간에 버틸 수 없을 정도의 힘이 갑작스레 튀어나온다.
감각이 몇천 배로 발달한 상태에서도 견디기 힘들 정도다.
‘유물의 힘인가.’
내공과 외공을 갈무리하면서 생각했다.
저 검은 유물이 아니지만, 유물의 힘이 느껴지고 있었다. 유물 특유의 근본적인 힘이.
‘유물의 힘을 습득했나?’
예측이 아니다.
확실한 생각.
유물의 힘을 습득한 것이 분명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와 동급, 혹은 그 이상이다.’
강수호는 몇 번이나 한계를 뛰어넘었다.
원래라면 토너먼트에서 동급을 만나기는 힘들다. 특히 높은 등급일수록 더욱.
‘이기더라도 후유증이 크겠군.’
세계 랭킹 1위와 상대한다 해도 이런 긴장감은 들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제대로 된 적수에 웃음꽃이 피었다.
“정권.”
무공을 배운 사람이라면 가장 기본이 되는 기술.
자세를 잡고 코코라는 검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 사람의 수준에 따라 기초는 기초가 아니게 될 수 있다.
쿵!!
바닥이 가뭄이라도 난 듯 갈라지고 허공이 갈라졌다.
“재밌네요.”
강수호도 그와 마찬가지로 검을 거두고 정권 자세를 취했다.
아무리 강수호라도 똑같이 따라 할 수 없는 자세라 생각했지만…….
“정권.”
“……!!”
린하우가 사용했던 정권과는 완전히 다른 자세이지만, 그보다 정갈했고, 위력 또한 뛰어났다.
콰콰콰쾅!!
경기장 안이 점점 아수라장이 되었다.
보통 다섯 합 안에서 결과가 나오는데.
‘누가 이길지 모르겠어.’
사회자 또한 멍하니 경기를 관람하고 있을 뿐이었다.
도저히 누가 이길지 예측할 수 없었다. 강수호 헌터가 저리 강한지는 아무도 몰랐으니까.
“누가 이길 것 같아?”
“난 린하우. 그때랑 비교하면 더 강하지. 린하우가 무조건 이겨. 안 그러냐?”
“그런가? 난 강수호 헌터한테 걸래.”
“왜?! 너도 원래 린하우 헌터한테 걸기로 했잖아!”
몇몇 관중의 마음도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두 합도 견디지 못할 것 같은 강수호 헌터가 이제는 린하우를 압박하고 있었다.
그와 함께 주먹을 맞대며.
-우, 우열을 가리기 정말 힘든 싸움이군요! 과연 누가 승리자가 될지…….
멍하니 보고 있던 사회자도 정신을 차렸다. 이런 좋은 경기를 보는 건 좋으나, 그의 업무는 조잘대는 것.
“흡인신공.”
린하우는 조각난 경기장 바닥의 돌들을 끌어와 방패 삼았다.
콰직!
물론 방패로 삼기에는 방어력이 한참이나 부족했다. 하지만 린하우는 그것을 방패로 명하지 않았다.
휘익!
강수호는 코코를 이용해 뒤에서 제 목을 향해 날아오는 얇은 바늘을 막는 데 성공했다.
‘거짓인가.’
방패는 린하우, 자신을 가리기 위한 수단. 그 이상의 용도는 되지 않았다.
‘메테오.’
그렇다면 주변을 모두 부숴 버리면 되는 법이다.
마나를 끌어 올려 마법을 발현했다.
그에 하늘에서 거대한 운석이 떨어져 내린다.
“같이 죽자는 건가?”
“목숨을 거십시오.”
그도 강력한 무공을 품었다. 스승님의 티끌 정도 되는 힘.
자세를 완전히 낮게 잡았다.
경기장보다 2배 작은 운석이 하늘로 떨어지는 순간.
“발검.”
“파멸의 검(破滅之劍).”
강수호는 검을 꺼냈고 린하우는 거대한 검을 만들어 내었다. 운석 하나는 가뿐하게 베어낼 수 있을 정도의.
쿠콰콰콰콰쾅!
-엄청난 힘입니다!!
경기장 전체가 흙먼지로 뒤덮였다.
누가 이겼는지 아무도 모른다.
사회자조차, 그저 대단하다고밖에 소리칠 수 없었다.
“그래도 린하우가 이기지 않을까?”
“그건 모르지. 보니까 운석이 베어진 것 같은데.”
“누가 이겼으려나…….”
관중 모두가 궁금해했다.
‘오오!!’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있던 이사벨라조차.
조금씩 흙먼지가 걷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기장 정 반대편에 선 두 사내가 보인다.
-과연 승자는 누구일까요?!
영화의 한 편처럼 둘 중 누군가 쓰러지길 원했다.
누가 이기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승부에서.
스걱!
“쿨럭!”
린하우가 먼저 피를 토해냈다.
내공과 외공을 너무 무리하게 사용하여 오는 반발력. 그뿐만 아니라, 강수호의 공격이 내공과 외공을 뚫었다.
툭.
파멸의 검을 쥐고 있던 오른손이 떨어졌다.
털썩.
“…….”
린하우가 쓰러지면서 결국에는 승자가 결정되었다.
-스, 승자는 강수호 헌터입니다! 생각지도 못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회자조차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전체 중 80%가 강수호 헌터가 지리라 예상했으니까.
하지만 강수호도 피해를 받지 않은 건 아니었다.
“뭐 이리 과격해.”
건틀릿을 주 무기로 사용하여 검은 사용하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린하우는 제 예상과는 다르게 파멸의 검이라는 괴물 같은 검을 만들어 냈다.
과격한 힘을 반 이상 흘려내지 못했더라면 강수호가 패배했을 것이다.
“아프네…….”
그 증거로 상체에 대각선으로 긴 상처가 생겼다.
피범벅인 몸.
“여기 누우십시오!”
“힐러들 빨리 와라! 중상이다!”
쓰러지려 하자 의료진이 그를 받쳐준다.
예전이라면 더럽게 아프다며 쌍욕을 내뱉었겠지만.
“이, 이 헌터 왜 웃는 겁니까?”
“빨리 힐이나 하십시오! 위급합니다!”
“아, 예!”
입가 근처에 미소가 머물러 있었다.
* * *
“와, 뭐지. 진짜 신기한 녀석이잖아?”
관객석 제일 끝에서 이사벨라가 미소를 지었다.
얼굴을 홍당무보다 붉게 물들인 채로 강수호를 쳐다봤다.
“언제 봐도 탐나는 녀석이야…….”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그녀에게 흥미밖에 없었다.
마법, 신체 연구에 대한 흥미.
그것의 거름이 될 남자가 바로 앞에 있었다.
‘재능이 뛰어나지 않아. 그래도 엄청 강해. 다재다능한 괴물인 것 같을 정도로.’
재능을 가진 괴물들은 흥미를 가진 그녀로서는 매일 봐왔다. 그조차도 영재라 불리는 이였으니까.
하지만 강수호는 달랐다. 재능은 뛰어나지 않지만, 왜인지 계속 강해진다. 어떤 괴물보다 더 빠르게.
“연구하고 싶다.”
붉은 입술을 핥았다.
자신의 두 손으로 저 남자를 알아보고 연구하고 싶었다. 스승님이란 자가 누군지도 알고 싶고.
-시련을 찾아내고 마음대로 해도 된다. 그 전에는 절대로 건드리지 마라.
“하아, 정말. 너무하시단 말이야. 바로 앞에 치킨이 있는데 먹질 못하다니.”
하지만 마음대로 건드릴 수는 없었다.
대장, 천마가 강수호를 원하고 있었으니까. 시련 때문이기도 하고.
‘이 반지 때문이겠지.’
이사벨라의 손가락에 낀 반지. 이 반지에 비밀이 있는 게 분명했다.
‘일단 일을 해야겠지.’
물론 그 전에 천마가 전해 준 일부터 해결해야겠지만.
당분간 움직이지 못할 것 같으니 그동안 쉴 생각으로 머무는 호텔을 향해 텔레포트를 사용했다.
부하들도 보고 있으니 놓치는 일은 없을 거다.
* * *
“쓰라리네.”
상처의 흉터가 없어진 상체를 쓰다듬었다.
힐러 덕분에 상처는 없어졌지만, 고통은 여전하다.
“린하우 님은 어떻게 됐나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상처가 깊긴 한데, 중국 최정상 힐러들이 붙어 치료하고 있습니다.”
린하우가 걱정되었는데, 걱정할 필요는 없는 듯하다.
중국에서 거의 신으로 군림하는 그이기에.
‘잘 치료하겠지.’
최정상의 힐러들이 붙었으니 문제 될 건 없었다.
그것보다 문제가 되는 건…….
“강수호 헌터님.”
“예?”
“죄송하지만, 이번 세계 랭킹 결정전은 종료될 듯합니다.”
“예, 예?”
귀가 잘못되었나 싶어 귀를 후볐다.
몇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경기가 취소되다니.
뭔가 싶어 묻자.
“방벽이 갈라졌거든요. 어쩔 수 없습니다.”
“아하…….”
그 이유를 금방 알 수 있었다.
관중들을 막는 거대한 베리어가 부서졌다.
그만한 공격을 했으니 부서지지 않으면 더 이상할 거다.
“쉬다가 가셔도 됩니…….”
“강수호!”
힐러의 말이 이어지고 있을 때 들려오는 목소리에 흠칫했다.
최서현의 목소리에는 걱정보다 분노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걸 왜 부숴 이놈아!”
“어, 어어! 보호자분! 때리시면 상처 덧나요!”
“아악!”
난생 첫 세계 랭킹 경기. 고작 한 경기도 하지 못하고 끝나 버렸으니까.
“미안하다고!!”
날뛰는 최서현을 진정시켰다.
마나의 근육에 짓눌리게 생겼다.
시간이 좀 지나자 어느 정도 진정된 그녀.
“어쩔 수 없었잖아. 그래도 이겼으니 다행이지.”
“그냥 지면 안 됐었냐. 나도 하고 싶었는데…….”
아쉬움 티가 가득한 그녀.
어쩔 수 없었다. 쓰러진 사람이 린하우가 아니고, 자신일 뻔했으니까.
“바로 한국으로 가야겠네.”
“그러게요. 바로 한국으로 가야 할 것 같네요.”
두 여자가 잔뜩 한숨을 내쉬었다.
본 일은 보디가드이긴 하나, 세계 랭킹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하루도 안 돼서 끝나다니.
아쉬움을 남긴 채 비행기 표를 끊으려 했으나.
“우리 안 갈 거야.”
“……네? 안 갈 거라고요?”
강수호가 한국에 돌아가지 않겠다 했다. 이대로 한국에 가기는 아까워서가 아니다.
“재밌는 곳에 가야 하거든. 도움도 필요하고.”
재밌는 곳에 갈 예정이다.
그 말에 최서현과 나나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음표를 띄웠지만.
‘엘프한테 가면 되겠네.’
회복되는 즉시, 오늘 엘프들의 던전에 들어갈 생각이다.
아무도 몰래, 조용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