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0화
100. 낚시(5)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당신이 왜…….”
“일단 지혈부터 해 주게나. 머리가 어지러워 죽을 것 같군.”
피를 뚝뚝 흘리며 마일런에게 다가가는 협회장.
하지만 마일런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협회장이 저런 말 해서는 안 됐으니까.
“당신 누구야?”
“누구냐니? 나는 당연히 이곳의 협회장이지 않나? 그게 무슨 멍청한 질문이지?”
겉으로만 보면 협회장 이용욱이었다. 하지만 마일런이 보는 협회장은 달라 보였다.
“누구냐.”
정체를 묻는 질문과 함께 다시 한번 검이 휘둘러진다.
가까스로 검을 피한 협회장. 하지만 그의 얼굴에서는 당황함이 지워진 상태였다.
“어떻게 알았지?”
“뭘 어떻게 알아? 너 그 사람의 재능도 모르지? 마기도 섞이지 않은 공격 따위에 팔이 잘릴 리가 없잖아?”
“…….”
어떻게 알았냐는 말. 그 말은 이미 팔이 사라졌을 때부터 하면 안 되었다. 더군다나 마기의 흔적도 없는 공격이었으니까.
“그 자식 능력이 초재생이거든. 팔이 잘려도 금방 재생된단 말이야? 그런데 아직도 팔이 재생이 안 돼?”
“……오호. 내 정보력이 부족했나 보군. 워낙 능력이 티가 나지 않아서 말이지.”
머리만 있으면 어떤 신체 부위도 재생하는 초재생. 팔을 잘려 출혈이 일어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아쉽게 됐어. 너는 확실하게 죽일 수 있었는데.”
“확실하게 죽여? 하! 그깟 마기를 믿고?”
“그깟 마기라…….”
그에게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퍼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본 마기보다 몇 배는 짙은 농도의 마기.
“너 누구야?”
그 마기 농도에 두 눈을 튀어나올 것처럼 떴다.
이 마기를 한 번 느껴봤기에 알고 있었다.
“……설마?”
마나와 힘을 온몸에 쏟아부었다. 그의 생각이 맞다면 전력을 다해야 할 테니까.
“오랜만이군. 마일런.”
“……당신인가?”
생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신이 깎은 듯한 반듯한 외모. 고풍스러운 향기가 뿜어지는 듯한 힘까지.
“천마.”
“내 연기는 완벽했는데, 딱 한 가지가 부족했던 것 같군.”
“한 가지? 아니, 잘린 팔을 보여 주지 않아도 나는 바로 알 수 있었다.”
그 모습에 압도되었으나 이내 정신을 차렸다.
그의 앞에 선 인물은 괴물 그 이상. 상대해 봤기에 그의 힘을 더욱 자세히 알고 있었다.
“왜 왔냐고 물어볼 필요도 없겠군. 협회장은 어디 있지?”
“소중한 것을 잃어 보았나?”
“그게 무슨…….”
어딨냐는 질문에도 뜬금없는 물음을 던졌다.
뭔가 말하기 전에 이곳을 빠져나가려 했지만.
“나는 많은 것들을 잃어 보았지. 가족부터 시작해서 내 모든 것까지.”
악당이 저런 말을 하니 뭔가 어색했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 많은 것들을 잃고 나야 생각이 나더군.”
말을 잠시 멈춘 그가 입고 있던 검은 로브를 풀어헤쳤다.
“잃을 수 있는 건 너무 많더군. 그래서 더는 만들지 않기로 했다.”
“그게 무슨…….”
뭔가 대답하기도 전에 그의 손은 이미 마일런의 목을 잡았다.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강한 악력.
“이런 미친……. 크윽!”
“지금 죽이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주먹을 쥐어 마일런의 얼굴을 후리기 무섭게.
“죽어…….”
띠리링.
띠리링.
휴대폰 벨 소리에 악력을 풀었다.
그리고 곧장 전화를 받자.
-그 자식만은 죽이지 마라. 명령이다.
“예.”
익숙한 목소리에 묻지도 않고 대답했다. 굳이 물을 이유조차 없었으니까.
“지금 가겠습니다.”
간단한 대답과 함께 휴대폰을 넣었다.
“아쉽군. 네 피 맛은 어떨지 궁금했었는데.”
그 말과 동시에 그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허무하게 털썩 쓰러지는 마일런.
“미친…….”
단순하게 놀라서 넘어진 것이 아니었다.
천마에게 죽을 뻔했으니까.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요즘 들어 별일이 다 일어나는군.”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도 쉽게 버틸 수 없는 위험한 일. 그런 일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니 돌아 버릴 것 같았다.
“아, 헌터 협회 회장.”
일단 생각은 접어 두기로 했다.
가짜 헌터 협회 회장은 떠났으니 진짜를 찾기 위해 옥상으로 올라갔다.
‘제발 살아만 있어라…….’
머리만 있다면 그는 충분히 살아 있을 수 있었다. 목만이라도 남아 있으리라 생각하고 협회 회장실에 도착했을 때.
“…….”
A급 이상의 요원들이 한 합에 죽어 있는 걸 포착할 수 있었다.
그 모습에 더욱 몸을 빠르게 움직였다.
‘그놈은 안 된다.’
달려가 문을 열자.
“…….”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팔 하나가 잘린 협회 회장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선 한 노인.
“오랜만에 힘을 써서 힘들군.”
“이석현!”
“허허, 오랜만이네.”
* * *
“흠, 자네가 계획한 계획은 아쉽게도 실패하였군.”
“죄송합니다.”
“아니. 오히려 좋은 결과다. 그 무식한 재생 능력자의 팔을 뽑았으니. 꽤나 골칫덩어리였는데 말이야.”
“감사합니다.”
계획은 실패했지만, 오히려 지금 이 상황이 좋았다.
모든 헌터 업계들이 그들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큰 계획을 실행하기도 전에.
“의외의 소득이었어. 그것보다…….”
할 이야기가 다 끝났으니 그다음 중요한 문제를 해결할 차례다.
“자네 아들이?”
“예, 면목 없습니다.”
“아니야, 크게 도움 되는 것도 아니고. 있으면 자네가 죽어도 후계자로 삼기는 좋은데…….”
버리기는 아깝고, 그렇다고 남 주기 싫은 양유혁은 그런 포지션을 가지고 있었다.
“아들 일은 알아서 하지. 일단 지금은 마인부터 어떻게든 늘려야 하니까.”
“예, 알겠습니다. 저는 이만 가 보도록 하죠.”
“그래.”
그 말과 함께 천마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 *
‘도착이다!’
급히 뉴욕 비행기를 잡고 인천 공항에 도착한 이들.
“잠시 통제하겠습니다! 마인이……. 시, 신하림 님?”
“비켜.”
공항도 헌터 협회와 다를 바 없었다.
헌터들이 공항 주변을 다니며 수색을 펼치고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여자.
“비켜. 지금 급하니까.”
“아무리 신하림 님이라도 절차가 있…….”
“빨리 꺼져. 바쁘니까.”
“절대 감각 마스크!!”
“마커스야!”
그녀로도 비켜주지 않자 마커스가 그녀의 앞에 끼어들었다.
“죄송합니다! 헌터분들을 몰라뵈었습니다!”
“지금 당장 헌터 협회로 이동할 테니까 비켜.”
“예!”
공항을 빠져나와 바로 택시를 잡았다. 지금 가도 한참이나 늦은 시간.
“헌터 협회로 가주세요! 얼마든 드릴 테니까 지금 당장!”
“알겠습니다. 뭐, 사태도 끝났다고 하니까.”
액셀에 발을 올린 택시는 30분도 안 돼서 헌터 협회 건물에 도착했고.
“어메, 끔찍하구먼.”
“…….”
그들은 헌터 협회의 모습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피와 살점으로 가득한 헌터 협회 건물.
그 모습에 망설임 없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마일런!! 마일런!!”
이 정도까지 강한 괴물이라면 마일런까지 죽을 위험이 있었다.
마커스는 피와 살점이 질척이는 복도를 달려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피곤해 죽겠군.”
“마일런!!”
“응? 마커스?”
깨끗한 소파에 누워 있는 마일런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상처라고는 하나 없는.
“안 다쳤냐?”
“그럼, 내가 누군데?”
별거 아닌 듯 말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좀 위험하긴 했지만.”
“어휴, 내가 돌겠네. 그 안을 혼자 들어갈 생각을 했냐?”
“간부는 광대 새끼밖에 없어서 괜찮았어.”
“그럼, 협회 회장은? 이용욱은 어디 갔어?”
그다음으로 중요한 건 이용욱의 생존이었다. 그들의 목표는 바로 협회 회장이었으니까.
“나는 살아 있네.”
“허허, 위험할 뻔했어. 잘못하면 죽을 뻔했지. 초재생이란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석현?”
엘리베이터에서 나타난 두 명의 남자.
한 남자는 헌터라면 누구나 아는 이석현이었고.
“이용욱? 당신!”
“허허, 팔 하나 가지고 왜 이리 호들갑인가?”
왼쪽 팔 하나가 잘린 이용욱을 마주칠 수 있었다.
“자네 재능이 초재생 아니었나? 그것도 S급 스킬?”
“맞네, 그런데 그 자식의 공격은 초재생도 쉽게 통하지 않았어.”
“그게 무슨…….”
어떤 마인들도 그의 팔을 저 지경으로 만들 수 없었다. 괴물이 아닌 이상 불가능한 일.
하지만 그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유일한 사람이 있었다.
“천마가 이곳으로 왔나?”
“그래, 그 광대 녀석이랑 함께 왔더군.”
“…….”
주변이 침묵으로 물들었다.
천마라는 자. 여기서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정말 그자가 왔다고? 평소에는 움직이지도 않는 그 괴물이?”
“그때 이후로 처음이잖아. 이런 젠장…….”
그 대답에 신하림과 마커스가 동시에 인상을 찌푸렸다.
천마가 직접 움직였다는 건 이번 일을 정확히 성공시키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당신은 멀쩡하게 살아 있지?”
하지만 의문점이 하나 있었다.
아무리 이용욱이라도 팔 하나 잘리는 거로 천마를 쫓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마일런도 상대하기 벅찬 괴물이었으니까.
“마일런과 이석현 헌터 덕분이지.”
“……그렇군.”
이석현 덕분에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의 신체 초월 재능.
‘또 다른 괴물을 보는 것 같았어.’
그것이 이석현에 대한 이용욱의 평이었다.
던전이 나타나자마자 헌터가 된 이용욱. 신체 초월 능력을 사용하는 것만으로 그의 전성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었다.
“너무 걱정은 하지 마. 죽지는 않았으니까.”
“호위를 더욱 강화해야겠군.”
피와 살점으로 범벅된 내부.
인상을 찌푸린 헌터들이 다양한 방안을 내놓았다.
그사이 강수호가 양유혁을 쳐다보며 물었다.
“알고 있는 거 없어?”
“……나야 모르지. 관심도 없으니까.”
“도움이 안 되냐.”
“뭐?”
“아니야.”
양유혁도 알고 있는 건 없었다.
샬런 스승님도 그들을 상대할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겠고.
‘1층 시련도 하고, 보물도 모아야 하는데…….’
할 일을 방해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특히 저 마인들.
“일단 너희는 길드 기숙사에 들어가 있어. 이건 우리가 해결하고 있을게.”
“아, 넵.”
신하림의 말에 곧장 길드로 향했다. 지금 여기 있어 봤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테니까.
더욱 강해지려면 훈련도 해야 하고.
“아, 피곤해.”
비행기에서 긴장되어 잠도 못 잤다.
“오늘은 푹 자야겠네.”
방에 가서 푹 잘 생각에 먼저 택시를 잡으러 나가자.
“수호야! 같이 가!”
“음? 그래.”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그의 품에 안기는 그녀.
양유혁이 아니꼽게 봤지만, 상관없었다. 지금 그녀의 손이 떨리는 것이 중요하니까.
“너는 안 무서웠어?”
헌터라도 사람이 죽은 광경에 놀라지 않은 이들은 없었다. 하지만 양유혁과 강수호는 반응이 없었다.
‘아, 그거에 놀란 거구나.’
충분히 그럴 만했다.
양유혁은 아빠가 천마라 매일 봐 오던 거겠고.
‘나도 그런데.’
저런 잔인한 것보다 더 무서운 것들을 봐 왔다.
스승님 중에 정상적인 스승님들보다 이상한 스승님들이 많았으니까.
‘이것보다 놀라게 하는 게 무섭지.’
환각을 이용해 폐가가 된 병원에 일주일 동안 가둔 적도 있었다. 그러니 이 정도쯤이야 껌이다.
“내 스승님이 워낙 무섭잖아. 그렇게 무서웠어?”
힘껏 안아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떨림이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