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1화
101. 검을 길들이겠습니다(1)
슈아아악.
파란빛을 내뿜으며 도착한 대장간 안.
“스승님! 저 왔어요!”
아직도 대장간 안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숨을 내쉬면 폐까지 태워 버릴 만큼 뜨거운 열기가.
“아직도 만들고 계세요?”
“오호, 왔구나? 거의 다 만들었으니 잠시 밖에 나가 있어라. 불이 조금씩 커지고 있거든. 잘못하면 다칠 수도 있어.”
“넵!”
스승님의 말에 곧장 대장간에서 나왔다. 육안으로 봐도 대장간 주변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으니까.
‘어떤 검이 나올까…….’
망치를 두드리는 모습에 잔뜩 기대감에 부풀었다.
다크서클이 가득한 얼굴을 보아하니 며칠 밤을 새웠을 것이다.
‘얼마나 대단한 게 나올까나…….’
삶을 갈아서 만든다는 검. 그것도 드워프가 만든 검이니 들뜨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다.
깡! 깡!
화르르륵!
“거의 끝났나?”
조금씩 불의 화력이 강해지고, 망치 소리가 커진다.
완성되어 가고 있다는 징조.
“우, 우와…….”
화르르륵!
대장간 전부를 달구는 화력에 멍하게 넋을 놓고 있었다.
‘이런 걸 다루다니.’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저 불 앞에서 서 있기만 해도 녹아 버릴 것 같았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론은 굳건하게 망치를 두드렸다.
깡!! 깡!!
화르르륵!!
처음보다 몇 배나 더 강해진 망치질과 화력. 그 화력이 지반을 울릴 정도로 심해지더니…….
“머, 멈췄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갑작스레 침묵으로 만들었다.
뜨거움조차 느껴지지 않았을 때.
“스승님!”
“아, 아이고!!”
대장간 안으로 들어갔다.
숨을 크게 내쉬고 뱉기를 반복하는 클론. 그의 몸은 까맣게 탔고, 손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괜찮으세요? 죽으신 건 아니죠?”
“좀 힘들긴 하지만, 버틸 만 하구나. 죽지는 않으니 너무 걱정하지는 말고. 내가 누군데?”
당연히도 그는 죽지 않는다.
몇만 년 동안 불과 망치를 들고 무기를 만들었으니, 죽는 건 말도 안 된다.
“이거나 받거라. 선물이다.”
“와, 와…….”
차가운 물에 손을 넣어 열기를 식히던 클론이 검 하나를 건네주었다.
겉으로만 봐도 뛰어나 보이는 명검. 하지만 진가는 지금부터 시작된다.
“아악! 누가 내 몸을 더러운 손으로 만지는 거야?!”
“……지, 지금 말하는 거예요?”
“그럼, 말하지?! 토끼하냐?”
“…….”
검이 말을 한다. 싸가지가 좀 없긴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스승님? 검이 원래 말을 하나요?”
“오호, 검이 말을 한다고? 정말인가?”
클론도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그리 놀란 눈치는 아니다.
“오랜만에 에고 소드를 하나 만든 것 같구나.”
“……에고 소드요? 말하는 장비?”
오랜만에 만든 검이 에고 소드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지성을 갖춘 장비란 소리다.
“사, 상태창.”
얼마나 강한지 확인을 위해 상태창을 열어 보려 했지만…….
“퉤!! 어딜 손대는 거야?”
“…….”
“이놈 성격 하나는 정말 더럽구나.”
상태창을 보여 줄 리 없었다.
에고 소드를 가지고 싶다면 힘을 증명해야 한다.
“너 같이 약해 빠진 놈이랑 내가 왜 계약을 맺어야 하지?”
“……아놔.”
눈물이 차오를 지경이다.
약한 건 아닌데……. 그래도 검에 무시당하니 상처는 평소보다 배가 되었다.
“복종하게 못 하죠?”
“뭐, 다시 만들면 되긴 하는데…….”
검쯤이야 다시 만들면 되는 일이다. 희귀 광물들은 이곳에 넘쳐나니까.
“그럴래? 난 크게 상관없단다.”
“흠…….”
잠시 생각에 빠졌다.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다시 만들면 된다. 오래 걸리는 일도 아니고. 클론 스승님이라면 일주일 안에 만들어 주실 테니까.
하지만…….
“괜찮아요. 이 녀석이랑 씨름 한번 해 보죠.”
“그래! 이래야 내 제자지!”
노력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 이깟 검쯤은 충분히 길들일 수 있다. 강아지와 고양이 길들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겠지만.
“이런 검쯤이야 금방 길들일 수 있습니다!”
“흐흐. 그래, 기대하도록 하지.”
의미심장한 미소.
조금 걱정됐지만, 자신이 결정한 일이다.
“이제 저는 가 볼게요! 내일 또 새로운 스승님을 뵈어야 해서.”
“그래! 잘 가거라!”
작별 인사와 함께 차원 이동을 사용하여 그곳을 빠져나왔다.
* * *
“이거 놔라! 약골.”
“…….”
이 녀석이랑 같이 있는 시간이 대략 10시간째. 그럼에도 어쩐지 길들여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냥 좋게 좋게 가자. 그러다 내가 엄청 강해지면 후회한다?”
“흥! 클론이란 드워프가 더 낫더구나. 그 드워프에게 데려다줘라!”
“…….”
애초에 말조차 듣지 않는데 어떻게 길들이냐.
잔뜩 한숨을 내쉬며 검을 내려놓았다.
“밥부터 먹고 해야겠네.”
이놈 때문에 아침부터 밥도 먹지 못하고 대화를 나누었다. 밥부터 먹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검을 들고 내려갔다.
“나를 들고 어디를 가는 것이냐?”
“밥 먹으러.”
“밥? 인간들은 정말 쓸데없는 것에 시간을 낭비하는구나.”
“…….”
친하게 지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의 말을 애써 무시하며 식당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그것이 강수호의 최대 실수였다.
“하등 종족 같으니.”
“……왜 또?”
“품위 없이 먹는 게 한심할 따름이다.”
“…….”
밥 먹는 데도 품위를 따지다니. 지금 당장 한강 깊숙이 내다 버리고 싶었다.
‘내가 참아야지. 내가.’
애써 마음을 다독이며 스테이크를 입 안 가득 넣었다.
부드럽게 들어가는 스테이크. 육즙이 춤을 추고…….
쨍그랑!
“아악! 뭐 하는 짓이야!”
그런 행복을 에고 소드가 방해했다.
지성을 갖춘 만큼 어느 정도 움직임이 가능한 건지 접시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 때문에 잔뜩 뿔난 강수호.
“하등 종족 주제에 말이 많구나. 어디서 이 나에게…….”
“안 되겠네.”
“뭐가 안 된다는 거지?”
아까부터 저 말이 거슬렸다.
하등 종족 주제에? 누구는 검에 갇혀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면서.
“넌 오늘 한강행이다.”
“한강행?! 풉! 흐하하! 그 ‘행’ 하나는 재밌겠군!”
진지한 대답에도 비웃기만 바쁜 에고 소드. 더 이상 봐줄 필요는 없다.
“후회하지나 마라.”
“후회는 너나 하는 거고~”
식당에서 떠나는 강수호.
그런 그를 본 패왕 길드원들은.
“이거 마스터한테 알려야 하는 거 아니야?”
“이, 일단 부 마스터한테만 말해 놓자고. 정신병에 걸린 것 같다고.”
강수호가 정신병에 걸렸다고 생각했다.
검이 말하는 게 다른 사람들에겐 들리지 않았으니까.
* * *
“공기 좋네!!”
“오호! 이것이 강이구나. 좀 더 가까이 보여주거라!”
어느새 도착한 한강. 편의점 벤치 앞에 앉은 강수호가 슬며시 검을 꺼냈다.
‘검 하나는 정말 좋단 말이야.’
누가 봐도 아름답고 명검. 하지만 그 안에 든 지성은 자존심만 부리는 하찮은 검이었다.
‘고통받을 준비나 해라.’
한강 근처에 도달한 강수호.
검을 한강 앞으로 내밀었다.
“오호! 이 강 정말 아름다운걸? 내 처음 보는 강이 이토록 아름답다……. 꾸르르륵?!”
말이 끝나기 전에 검을 강에 던져 넣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 점점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주변 가득 물만 보인다.
“좀 있다가 나와. 어차피 익사로 안 죽잖아?”
“지, 지금 나한테 무슨 짓을 하는 것이냐!”
상황 파악하는 데에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강수호가 한강 바로 위에서 말을 걸어왔으니까.
“평생 여기서 잘살아 봐.”
“흥! 그 정도도 못 할 줄 알고?! 이 정도는 버틸 수 있단 말이다!”
“뭘, 버텨. 평생 있어야 할 텐데.”
그 말과 함께 강수호의 인기척이 사라진다. 마침 길드에 던전이 생겼다는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어, 언젠가는 복수해 주마.”
그 모습에 화가 잔뜩 난 에고 소드.
하지만 그는 모르고 있었다. 자기 자신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을 저질렀는지.
아침에는 햇빛이 조금이라도 들어왔지만, 밤은 아니었다.
어두컴컴한 물 안.
찰랑.
물 흐르는 소리만 들릴 뿐, 사람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밖에 사람이 많긴 하였으나…….
‘너무 깊게 들어와 버렸군.’
발버둥 치느라 너무 깊게 들어왔기 때문이다.
“여기서 더 움직여봤자 더 깊게 빠질 게 뻔하겠어.”
이 이상의 움직이지 않기로 했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멍청한 짓이었으니까.
“하! 희대의 명검이 이 정도도 못 버틸 줄 알고?”
아직은 나름 자신감을 표출하고 있었다.
깊은 동굴에서 자라난 지 오래. 이 정도쯤이야 쉽게 견딜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조, 조금 지겹군.”
그 생각은 하루가 지나자 처참히 부서졌다.
약간의 햇빛만 드는 어두운 물속. 정신이 나가 버릴 것 같았다. 동굴에는 그래도 친구들 몇 명이 있었는데 말이다.
“아니야, 버틸 수 있어. 이 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단 말이다!”
마음을 다잡고 정신을 차렸다. 이 정도쯤이야 껌이라 생각하고.
* * *
그렇게 하루, 이틀, 삼 일이 지나고.
“무, 무서워.”
검 끝을 떨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어둠. 그 속에서 생을 연명하고 있다는 것은 어떤 일보다 괴로운 일이다.
‘물고기라도 주변에 돌아다녔으면 좋았을 것을.’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심심하고 무서워서 미칠 것 같았다.
에고 소드에 장인이 만든 명검이라지만, 누군가의 손길이 없다면 태어나지 못했을 검. 누군가의 손길이 아니면 사용하지 못하는 검.
“젠장! 젠장!”
육성으로 외쳤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이 이상 견딘다면 정신병에 걸려 죽어 버릴 것 같았다.
사실상 정말 죽지는 않겠지만.
“나, 나오거라! 거기 숨어 있는 거 다 아니까 나오거라 말이다!”
자신이 졌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강수호의 목소리는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았다.
찰랑.
“으아아악!”
오로지 강물이 지나가는 소리만 들려올 뿐.
그 소리에 더욱 미쳐 버릴 것 같았다.
아무도 없는 무저갱과 같은 곳. 검은색이 있어야 흰색이 있지만, 이곳에는 검은색만 존재했다. 흰색도 존재하지 않았다.
점점 미쳐가기 시작했다.
일 분이 한 시간이 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어둠 속에서 아침이 되는지 모른 채 있다가.
“아무도 없나~?”
“……!!”
“정말 아무도 없나 보네. 그냥 가 봐야겠다.”
아주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에 저절로 입꼬리에 미소가 지어졌다.
가려는 그를 붙잡으려 미친 듯이 소리쳤다.
“내가 있다고!! 너의 부하, 에고 소드 말이다!”
“…….”
하지만 들려오는 답변은 없었다.
“나 여기 있다고!!”
살기 위해 미친 듯이 소리쳤다.
다행히도 얼마 지나지 않아 강수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마음 좀 고쳐먹었냐?”
“그, 그렇다! 그러니 어서…….”
“아닌 것 같네.”
“뭐, 뭐라고?!”
물론 풀어주지 않았다. 아직 에고 소드의 목소리에 생기가 가득했으니까.
“존대를 안 붙이는 것 보니 아직 살 만한가 봐?”
“그, 그것이 아니라…….”
“또 봐. 나중에 다시 올게~”
“자, 잠시만 기다려! 제발!! 안 돼!!”
하루 이틀 했다고 마음이 변하는 놈은 없다.
적어도 한 달. 강수호는 한 달 안에 그를 길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