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상태창 2개-32화 (32/240)

<내 상태창 2개 - 32화>

31. 정령 요새(1)

정령 요새.

불의 성소를 개방하자 확실히 엘프들이 강해진 게 느껴졌다.

희생은 컸지만, 목표를 이뤘으니 성공이라고 자축하며 우리는 모두 요새 귀환길에 올랐다.

귀환하는 동안은 리치나 언데드의 방해가 없어서 아주 평화로웠다.

“불의 기운과 정수를 깨달아야 하는 건가요.”

[그렇다. 하이 엘프.]

삐약이는 어느새 디아나 곁에 착 달라붙어선 불과 관련해서 이런저런 조언을 하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머릿속에 든 건 많단 말이야.

물론 주인은 내팽개치고 저러는 걸 보니 괘씸하긴 했지만, 불사조가 가르칠 동안은 분노의 정령 생각은 안 할 테니 다행이지.

일행이 많아 알피드랑 달릴 때에 비하면 귀환길이 길었지만, 다행히 가는 도중 땅의 성소도 개방된 것 같았다. 엘프들이 땅의 정령의 힘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세 정령이 개방되자 엘프들도 본격적으로 힘을 냈다.

물의 정령으로 체력을 회복하고, 불의 정령으로 폭발적인 스피드를 내며, 땅의 정령으로 지구력을 확보한다.

세 정령이 시너지를 내니 언데드에게 고전하던 맥없는 엘프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일행이 늘었음에도 열흘 만에 요새에 귀환할 수 있었다.

열흘이 지나자 귀환 메시지가 떴지만, 이번에는 패스했다. 일단 레벨 50까지는 계속 있어 봐야지.

[특별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화염 전차 소환 스킬이 2레벨로 강화합니다.]

오오오.

섬뜩한 순간도 있었지만 그래도 쉬운 퀘스트였어.

[트레인 요새를 정령 요새로 다시 탈바꿈하십시오. 그렇게 된다면 디아나가 태양신의 사도가 될 준비가 끝날 것입니다. 그 후 50일 동안 그녀가 분노의 정령을 소환하지 못하도록 막으십시오.]

[연계 퀘스트.]

[난이도 어려움.]

[트레인 요새를 정령 요새로 업그레이드하고, 50일 동안 디아나의 분노의 정령 소환을 저지하라.]

[퀘스트 완료 보상.]

화염 전차 소환 스킬 강화.

불사조 강화.

태양신의 축복.

와! 막 퍼 주네. 무조건 해야겠다.

정령 요새가 되고 나면 방어도 쉬울 텐데 50일을 못 버틸까 싶다만 난이도가 어려움이네.

요새 업그레이드 이후에도 분노의 정령을 부를 상황은 요새가 위기에 처했을 때 같은데.

적 본대가 강하긴 강한가 보다. 어쨌든 실패해도 페널티는 없으니 일단 수락하자.

퀘스트를 수락한 후, 마중 나온 오하임 백작을 따라 작전 회의실로 갔다.

“오셨습니까. 여신의 사도이시여.”

“엘프 레인저를 구하시고 하이 엘프 디아나 님도 무사히 모셔 오시다니…… 정말 여신의 사도님께서는 저희의 희망이십니다.”

“마침 드워프 로드 암브로시안도 땅의 성소를 개방했으니, 이제 바람의 성소만 열면 트레인 요새를 정령 요새화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그것만 열면 이제 한숨 돌리는 건가?

요새의 어떤 장치는 가동 가능하고 어떤 건 바람의 성소를 열어야 한다며 이야기가 분주했다.

물론 나는 무슨 소린지 몰라 그냥 가만히 멍 때리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작전 회의실로 인간 병사가 급히 뛰어왔다.

“급보입니다. 흑룡 군단이 진군 속도를 올렸다 합니다. 지금의 속도라면 이십 일이 채 걸리기도 전에 성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성소 개방으로 들떴던 분위기가 마치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저번처럼 선봉대가 아니라 본대겠지? 그럼 쉽지 않겠어.

“너무 빠르군요…….”

“바람의 성소를 아직 못 열었건만.”

“성소를 모두 열어야 완전한 정령의 힘을 다룰 수 있습니다. 어떻게든 바람의 성소를 열어야 합니다.”

“바람의 성소를 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 질문에 디아나가 대답했다.

“실피드의 숨결이 봉인된 구슬을 가지고 바람의 성소에서 터뜨리기만 하면 열립니다.”

“굳이 여러 일행이 갈 필요는 없겠군요?”

“네. 굳이 정령을 다루는 엘프나 드워프가 갈 필요가 없어 인간 기사단장 레니스터 님이 가셨지요.”

흠. 그럼 나 혼자 가도 되겠지만…… 디아나가 또 분노의 정령을 부를 수도 있으니 길 안내 겸 같이 가자고 해야겠다. 갑자기 눈이 획 돌아갈까 봐 걱정이야.

“디아나 님. 그럼 많은 일행이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만…… 디아나 님과 저, 이렇게 둘이서 빨리 갔다 오죠.”

“아. 둘이서요?”

“네. 저 혼자 가도 될 것 같지만, 길을 몰라서요.”

살짝 당황하던 디아나.

하지만 곧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동의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일이 시급하니 오늘 출발하도록 하죠.”

“네. 그럼 제가 잠시 준비할 물건이 있으니, 한 시간 뒤에 출발해요.”

“알겠습니다.”

디아나가 황급히 회의실을 빠져나간다. 준비할 게 많나?

나와 디아나의 대화를 지켜보던 오하임 백작이 말문을 열었다.

“디아나 님을 잘 부탁드립니다. 평소와는 다르게 너무 처져 있으십니다. 가족 같은 호위대를 대부분 잃으셨다고 들었는데…… 다른 분들에게 듣기로 분노의 정령을 소환할 뻔했다는데 사실인지요.”

“예. 그렇습니다.”

“아아. 정말로 큰일이 날 뻔했군요. 엘프의 희망이 사라질 뻔했습니다.”

아니 뭐 희망까지야…….

“근데 분노의 정령을 소환하면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지는 건가요?”

“질서의 영역에서 벗어난 금지된 정령을 소환하게 된다면 하이 엘프의 신성이 박탈당합니다. 거기에 분노의 정령은 금지된 정령 중 최상위 정령이라 단숨에 타락한 엘프로 격하되지요. 하이 엘프는 세계수를 키우고 보호할 자격을 가지고 있는데, 그녀가 타락하게 된다면 이번 시대의 세계수가 성장하지 못하고 쇠락하게 될 것입니다.”

“아니 하이 엘프가 하나밖에 없어요? 한 명 빠졌다고 쇠락하나요?”

“현시대에는 하이 엘프가 총 다섯이 있습니다. 하지만 디아나 님을 빼고는 다들 나이가 너무 많으셔서…… 디아나 님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하이 엘프도 숫자가 그래도 백 명은 있을 줄 알았는데 다섯이라…….

진짜 왕족급 맞는구나.

오하임 백작은 입이 근질거렸는지 계속해서 이야기를 했다.

하이 엘프의 위치가 어떻고 디아나가 어떻고 현시대의 인간 왕국이 어떻고 등등.

내가 여기서 평생 살 거면 주의 깊게 들었겠지만, 어차피 부서진 세계 복원하면 바이바이인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래서 디아나 님의 신성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왜 위험하게 불의 성소를 가동하러 갔나요?”

“그건…….”

“요새 전력이 부족했으니까요.”

회의실을 다시 들어온 디아나.

그녀는 작은 가죽 배낭을 오른쪽 어깨에 메고 있었다.

“요새가 무너지면 어차피 저도 죽었을 겁니다. 불의 성소로 가는 건 필연적이었죠. 다만 제 불찰로 세상을 떠난 자매들께 미안할 뿐입니다.”

또 우울한 소리 할까 봐 얼른 말을 꺼냈다.

“준비는 다 하셨습니까?”

“네. 이제 출발하도록 하죠. 제가 길을 안내하겠습니다.”

그녀의 안내를 받아 성을 나섰다.

“그럼 일이 급하니 최대한 빨리 가도록 하겠습니다. 힘들면 말씀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갑옷을 입은 그녀가 흡 하고 숨을 삼키더니 쏜살같이 몸을 날렸다.

엄청 빠른데?

나도 경쟁심이 붙어 온 힘을 다해 뛰기 시작했다.

한 발, 한 발 뛸 때마다 발자국이 찍히고 몸이 앞으로 쉭쉭 지나간다.

하지만 알피드 때와는 달리 좁혀지기는커녕 조금씩 멀어지는 거리.

숲으로 들어서자 거리를 좁히기가 더 힘들었다.

나는 나무를 부수면서 가는데도, 나무를 요리조리 피하면서 가는 디아나가 이제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화염 전차를 쓰지그래?]

나를 따라 같이 날아다니던 불사조가 그리 충고했다.

그래. 여기서는 자존심을 부릴 때가 아닌 거 같다.

화염 전차도 내 능력인데 속도가 달리면 써 줘야지.

“화염 전차 소환.”

숲에 불이 나지 않게 최대한 화력을 억제하며 화염 전차를 소환했다.

스킬 레벨이 올라서 그런가 말이 3마리였고, 말과 전차의 규모가 모두 다 커져 있었다.

거기에 마나 소모가 확연히 줄어들었는데, 이젠 진짜 이동용으로 써도 되겠다 싶었다.

난 화염 전차에 올라타 영체화를 시전했다.

“가자!”

히히히힝.

불의 말 3마리가 일제히 앞다리를 들더니 미친 듯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내가 뛸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

주변의 풍경이 휙휙 지나간다.

화력 조절도 스킬 레벨 상승 덕에 더 정교해져서 숲인데도 불구하고 불이 나지 않았다.

“삐약…… 아니 불사조, 넌 빠르다?”

[더 빨리 갈 수 있는데 적당히 속도 맞춰 주는 거다.]

“드디어 신수 같네.”

[이 조그만 몸으로 신수는 무슨. 빨리 강해져라. 좀 더 성장한다면 주인을 태우고 하늘을 날 수도 있으니까.]

오오오.

불사조 타고 날아다니는 거 괜찮은데? 화염 전차랑 좀 중복 같긴 하지만.

불사조랑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며 달리다 보니 어느새 숲 지역을 지나 있었다.

그리고 눈에 띄는 작은 호수 지대.

거기에 디아나가 나를 기다리듯이 서 있었다.

“화염 전차가 더 강해졌군요.”

“마력 강화의 효과를 보았습니다.”

“화염 전차 속도를 보아하니 제가 전력으로 뛰어도 될 것 같습니다. 일단 제가 발로 뛰고 사도님은 화염 전차로 가시는 걸로 하죠.”

“굳이 그럴 필요 있을까요? 저번처럼 같이 타시죠.”

혼자 열심히 달리는데 나만 편하게 가는 것 같아 권유해 보았다.

하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전 사도님처럼 영체화를 못해서 아마 나무에 걸릴 겁니다.”

“숲이 끝이 아닌가요?”

“네. 한참 남았습니다. 여기는 단순히 트레인 숲 한편의 호수 지대에 불과하고요.”

“하늘 위로 달리면…….”

“그럼 마나 소모가 많아지지 않을까요? 전 걱정하지 마세요. 숲을 달리는 걸 아주 좋아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대로 가죠.”

“네. 그럼 가기 전에 잠시 여기서 쉬었으면 합니다. 드릴 것이 있어서.”

오. 드릴 것?

설마 선물…… 잠재력 그건가?

또 이런 건 사양 안 하죠. 내가.

바로 화염 전차를 소환 해제한 후 그녀에게 다가갔다.

“잠재력을 잃으셨다고 하셨을 때 정말 죄송했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했습니다만…….”

그녀가 자리에 앉아 배낭을 열었다.

그리고 손을 집어넣어 물건을 꺼내기 시작했다.

처음에 새하얀 천을 바닥에 깔더니 가방 속 물건을 하나하나 꺼내기 시작했다.

녹색 빛이 은은하게 나는 나뭇잎부터 꺼내더니 나무껍질, 뿌리, 가지, 황금색으로 빛나는 과일까지. 나무와 관련된 모든 물건이 총출동했다.

그녀는 물건을 차례차례 정리하더니 나에게 질문했다.

“사도님. 원래 종족이 인간 맞으신가요?”

“네. 맞습니다.”

“인간의 경우는 세계수의 나뭇잎부터 효과를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사도님같이 강한 경우는 효과를 보지 못합니다만…… 잠재력을 모두 쓰셨다고 하시니 혹시 몰라 가져와 봤습니다.”

세계수의 나뭇잎?

내 상반신만 한 크기의 깻잎같이 생긴 나뭇잎.

은은히 녹빛을 스스로 발하는 게 좀 신성해 보였다.

“한번 드셔 보세요.”

“그냥 이대로 먹으면 되나요?”

“네.”

난 커다란 잎을 그대로 입으로 가져갔다.

우물우물.

생각보다 맛있는데?

입안을 톡 쏘는 청량감에 은은한 단맛까지. 깻잎 생각했는데 훨씬 먹을 만했다.

커다란 나뭇잎을 어떻게든 입안으로 쑤셔 넣어서 모두 먹자 시스템 창에서 메시지가 떴다.

[세계수의 나뭇잎을 섭취했습니다.]

[사용자 김지호의 신체 능력 잠재력이 영구적으로 상승합니다.]

[질서 진영의 힘 능력치 상한선이 오릅니다.]

[질서 진영의 민첩 능력치 상한선이 오릅니다.]

[중립 진영의 신체 능력치 상한선이 오릅니다.]

[중립 진영의 신체 능력치가 이제 B로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오오오!!

B로 올릴 수 있다니!

C급이 안 돼도 한계가 오르는구나!

“올랐어요! 잠재력이 올랐어요!”

기뻐 날뛰는 나를 디아나는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아니, 겨우 나뭇잎 가지고 오르다니…… 정말 잠재력을 한 톨도 남김없이 모두 사용하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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