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손전등을 켜니 철물점 내부가 시야에 들어왔다. 겉으로 본 철물점은 다른 철물점과 별다른 점은 없었다. 하지만 그중에도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들이 많았기에 물품 하나하나 기억하며 재빠르게 일기장에 적어두었다.
문을 잠가놓고 필요할 때마다 가지고 오면 될 것이다. 그러나 노인은 무언가 실망한 얼굴로 눈매를 축 늘어트렸다. 상상했던 모습이 아니라서 그런 걸까? 하지만 털보는 그 실망이 다소 이르다고 말하듯 조심히 우릴 향해 손짓했다.
우리는 그 손짓에 홀린 듯 털보가 이끄는 방향을 향해 걸어갔다.
털보 앞에는 문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털보는 거침없이 그 문을 열었고 문 뒤에는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 존재했다. 역시 이곳이 전부가 아니었다. 왠지 비밀 아지트로 향하는 기분에 심장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노인도 역시나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내 등을 열심히 밀었다.
계단을 타고 한참을 내려갔다. 아니 한참을 내려갔다고 느낀 걸까? 우리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계단 앞을 손전등으로 열심히 밝히며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계단 끝에 도달 하자 조금 투박해 보이는 나무문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털보는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더니 능숙하게 잠금을 풀었다. 그리고 재빠르게 문을 열어 우리를 안내했다. 손전등을 비춘 지하실은 무언가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특이하게 휘발유 냄새가 코끝을 찌르고 있었다.
어디서 나는 거지?
우리가 갑자기 나는 휘발유 냄새의 원인을 찾으려 정신없이 손전등을 비추고 있는데 저 멀리 털보가 한쪽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세를 낮추고 한쪽에 쭈그리고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당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큰 시동소리와 함께 덜덜 거리는 소음이 고막을 강하게 때렸다. 우린 깜짝 놀라며 그곳을 바라봤고 순간 지하실이 환하게 밝아져왔다. 우리는 갑작스런 불빛에 깜짝 놀라 눈을 가렸지만 이내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오는 그 빛을 멍하니 바라봤다.
전등이다.
근 한 달 만에 영접한 전기 앞에 우리는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털보가 사정없이 당기던 그것은 무엇 이였을까? 밝아진 내부 때문에 지하실 환하게 보였고 난 소리의 주범을 찾아 시선을 옮겼다.
옆에 놓여있는 휘발유통과 익히 보았던 상표. 달달달 큰 소리를 내는 그것은 휘발유로 작동하는 산업용 발전기였다. 이것을 반가워해야 할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이 들었다. 사실 그토록 찾던 발전기긴 했지만 소음이 굉장히 심했다. 아마 지하실이 아니었으면 발전기를 틀 엄두도 나지 않았을 것이다.
난 불이 들어오는 필라멘트를 멍하니 바라보며 작은 감상에 빠졌다. 일상에서 쉽게 보던 물건을 지금 다시 보니 씁쓸한 감정과 그리움이 물밀듯 밀려왔다. 노인과 두식이도 마찬가지인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 상념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바로 노인의 감탄사와 함께 털보의 설명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지하실벽에는 기본적인 공구부터 시작해서 전문적인 도구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우리의 눈길을 끈 것은 바로 또 다른 크로스 보우였다.
마치 보란 듯이 진열되어 있는 크로스 보우는 우리가 들고 있는 것을 제외하고도 두 개나 더 존재했다. 하나는 기존 크로스 보우보다 작은 것이었는데 아쉽게도 컴파운드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무를 사포질해 만든 매끈한 몸체는 저절로 침을 넘어가게 만들었다.
그리고 또 다른 크로스 보우는 3개중에 가장 큰 것이었다. 큰 몸집만큼 위력도 상당한지라 웬만한 철판 정도는 가뿐하게 뚫는다고 털보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특수 제작한 볼트를 필요로 해서 몇 발 사용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털보가 자신 있게 말한 이유가 있었다. 이정도 무기면……. 혹시 방심하고 있는 그 녀석과는 할 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가장 큰 크로스 보우를 들어올렸다. 굉장히 묵직한 무게, 그리고 위협적인 볼트는 마음을 든든하게 만들었다.
노인과 한참을 구경하고 있는데 구석에서 상자를 뒤적이던 털보가 우리 둘을 불렀다. 딸그랑 거리는 소리와 함께 손안가득 무언가를 잡은 털보는 우리를 향해 걸어왔다. 그리고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손바닥을 내밀었다.
그곳에는 화살촉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아니 화살촉? 화살촉보단 조금 길고 두꺼웠으며 무거워보였다. 그리고 무언가 특수한 장치가 되어있는지 촉 아랫부분은 전기 테이프로 둘둘 감겨 있었다.
노인은 그 촉을 만지며 물었다.
‘이게 뭔가?’
그러자 털보는 장갑을 낀 손으로 촉을 들어 올리더니 윗부분을 살짝 눌렀다. 그러자 촉은 핑 소리와 함께 4갈래로 나눠졌다. 자세히 보니 날은 톱처럼 생겼으며 모양은 낫처럼 굽어져 있었다. 보기만 해도 살벌한 그것은.
‘덫입니다.’
그렇게 말한 털보는 덫을 들고 조심히 작업대로 향했다. 그리고 준비한 선반위에 그 덫을 꽂아두고 도구를 이용해 고정을 시키더니 조용히 우리를 불렀다. 우리는 호기심 가득한 아이들 마냥 그 덫을 둘러싸고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리고 털보는 경건한 손짓으로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스티로폼 덩어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 덫 위에 올리고 체중을 이용해 꾹 눌렀다. 날카로운 촉은 스티로폼을 가볍게 뚫었고 이내 날카로운 촉은 스티로폼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털보가 조심히 스티로폼을 들어 올리는 순간 아까 들었던 핑!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털보는 그걸 기다렸다는 듯 다시 들어 올렸지만 스티로폼은 무언가에 걸린 듯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힘을 이용해 강제로 뜯어냈고 털보는 보란 듯이 스티로폼 바닥을 들어 우리에게 보여줬다. 노인과 나는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스티로폼이 반쯤 뜯겨나가 있었는데, 그 자국은 저절로 침이 삼켜질 정도로 살벌한 모습이었다.
‘만약 이게 발이나 손이였으면……, 어찌됐겠습니까?’
‘지랄 났겠지.’
노인이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좀 저속한 말이긴 했지만 내가 하고 싶은 대답이기도 했다. 말 그대로 밟거나 만지는 놈은 살과 근육이 찢겨 나갈 것이다. 내가 스티로폼 조각들을 만지며 감탄하는 사이에 털보는 또 어딘가에서 락카 스프레이를 들고 오더니 덫 옆에 올려두었다.
‘검정색 락카입니다. 덫에다 뿌려두면 밤에 안보여요.’
이거다!
난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정말 비인간적인 무기였다. 이 덫은 마치 발목지뢰처럼 상대를 무력하게 만들어 버린다. 덫을 밟는 순간 고통은 물론이고 빼내기 위해서는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다. 또 강제로 빼냈다간 근육이 통째로 뜯겨 나갈 것이다.
물론 그놈들에게도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그놈들이 고통을 느끼는 건 아니지만 잠시 움직임을 멈출 수 있다는 것에 의미가 있었다. 살과 근육이 칼날과 엉키면 빠져 나오는 것에 시간이 걸릴 것이 분명했다.
그녀석도 예외는 아니다.
그 녀석은 민첩하고 재빠르다. 그렇기에 크로스 보우를 맞추는 것은 쉽지 않을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털보가 만든 이 덫이 그 걱정을 단숨에 쫓아내 버렸다.
그 녀석이 이 덫을 밟고 움직임을 멈추는 순간을 기다린다.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는 그놈은 멈춰있는 과녁과 같았고 우리는 손쉽게 그 녀석을 맞출 수 있을 것이다. 크로스 보우의 위력은 익히 알고 있는바, 용기와 결단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녀석을 사냥할 수 있다.
난 전율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크로스 보우와 덫이 주는 엄청난 시너지, 마치 누군가가 그 녀석을 사냥하라고 계시를 보내는 것만 같았다. 집요하고 악마 같은놈! 난 그녀석의 눈빛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털보는 참 뚝딱뚝딱 무기도 잘 만들었다. 근데 왜 이런 무기를 가지고 힘도 좋아 보이는 사람이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었을까? 그리고 이 무기는 언제 다 만든 것일까? 난 조심히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혹시 이것들 써보셨습니까?’
그러자 털보는 조용히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씁쓸한 눈으로 크로스 보우를 만지며 독백하듯 읊조렸다.
‘……처음에 아들놈이랑 소식 끊기고……. 정말 저 괴물 놈들이 죽도록 싫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틀어박혀 저놈들을 죽일 무기를 하루 종일 만들기 시작했죠…….’
그렇게 말한 털보는 가방에 도구들을 하나씩 챙기며 크로스 보우들을 우리에게 넘겼다. 나와 노인 그리고 두식이는 얼떨결에 그것들을 받아들고 털보가 하는 독백에 귀를 기울였다.
‘근데 웃긴 게 뭔지 압니까? 무기를 만들어서 당장이라도 아들을 구해야지 하던 내가 문을 여는 순간 겁이 나지 뭡니까.’
털보는 큭큭 거리며 자조가 섞인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자기 얼굴을 쓸어내리며 깊은 한숨을 훅 내뱉었다.
‘자식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마당에……. 겁을 내고 있던 겁니다, 저는…….’
지독한 딜레마였다. 이 자리에서 털보를 비난하고 욕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노인은 그저 털보 옆으로 다가가 조용히 어깨를 다독여줬고 두식이는 슬픈 눈으로 고개를 숙이며 얌전히 앉아 있었다.
난 크로스 보우를 들어올렸다.
이것은 과연 비겁한 무기일까? 아니면 자식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이 담긴 무기일까? 난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결국 눈을 꾹 감아버렸다.
털보는 눈물을 닦으며 우리를 향해 외쳤다.
‘열심히 만들겠습니다! 대신! 대신……. 싹다 죽여주십쇼…….’
발전기가 꺼지자 필라멘트는 빛을 잃었다. 이 어둠은 썩어 문드러진 아버지의 가슴과 같았다.
* * * * * * *
기력이 약해진 털보는 잠시 마트에서 쉬게 했다. 하지만 마트에 도착한 털보는 언제 울었냐는 듯 아이들과 신나게 놀기 시작했고 그를 제외한 모든 인원이 다시 한 번 밖으로 나왔다.
해가 지기 전까지 앞으로 두 시간, 애매하게 남은 시간이지만 꼭 필요한 게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왔다. 인원을 이렇게 많이 데려온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마트에 도착하자마자 덫을 옥상에 설치하려고 했었다. 그녀석이 침투할 공간으로 유력한 장소가 바로 옥상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비장한 마음을 안고 옥상으로 향했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변수가 마주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옥상에는 덫을 박아 넣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지하실에 있었을 때는 무리 없이 덫을 설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작업대가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고 장비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옥상 난간은 콘크리트로 만들어져 있었고 장비를 이용해 구멍을 뚫기에는 소음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 결국 한참을 고민하다 생각해낸 것은 바로 시멘트였다.
난간에 높이를 더하듯 지지대를 만들고 그곳에 덫을 설치한다. 그리고 시멘트를 발라 덫이 충분한 강도를 가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우리들의 목표였다. 이 생각을 해낸 용팔이는 오랜만에 칭찬을 받고 더욱 깝죽거리기 시작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과연 시멘트를 어디서 구해야 하냐는 것인데 그 문제 또한 빠르게 해결했다. 시멘트를 가장 구하기 쉬운 장소는 어디일까? 가장먼저 생각난 곳은 바로 공사 현장이었고 공사 현장하니 생각난 것은 바로 그곳이었다.
이혜인 남매와 처음으로 만났던 편의점. 그리고 나와 이혜인 남매가 밤을 지새웠던 컨테이너 박스가 있는 그곳이 우리가 시멘트를 구할 장소였다.
이곳에서 그 일을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나 혼자 씁쓸한 입맛을 다시며 다시는 생각하기 싫었던 과거를 들춰내야 했다. 일행들은 일이 쉽게 풀려 기분이 좋아 보였지만 나는 차마 따라 웃지 못했다.
공사현장은 멀지 않았다. 우리는 일단 무거운 크로스 보우를 마트에 내려놓고 탄창을 뺀 빈총과 대검만을 챙겼다. 그리고 혹시 모를 상황을 위한 탄창은 노인 가방 속에 넣고 공사현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나, 용팔이, 두식이, 노인. 우리는 이렇게 일렬로 서서 마치 소풍을 떠나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공사현장에 도착했다. 매번 이곳을 지나갈 때마다 느끼는 점은 이 동네 골목길은 잘만 이용한다면 그놈들과 마주치지 않고 지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가능한건 이 길을 많이 다녀본 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존경합니다 형님, 대단하십니다 형님! 그놈들과 싸우지 않아서 행복해진 용팔이는 연신 나에게 칭찬을 하며 아부를 떨었다. 하지만 노인에게 한 대 얻어맞고 곧 조용해졌다.
해가 지기 전에 마트에 도착해야 했다. 우리는 공사현장 입구에서 열심히 주변을 살피고 재빠르게 안으로 들어갔다. 공사현장은 내가 이혜인 남매를 데리고 왔을 때랑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더욱 괴롭고 힘들었다.
익숙한 컨테이너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자 공사현장 한곳에 쌓여있는 자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철근부터 시작해서 지지대와 벽돌까지. 공사 초기인 듯 쓰이지 않는 것들이 한 가득이었다. 마음 같아선 다 가져가고 싶었지만 과유불급,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
시멘트 3자루를 챙겼다. 두 자루는 두식이가 들고 나머지 한 자루는 내가 들었다. 노인은……. 들라하기 미안했고 용팔이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빠른 걸음으로 공사현장을 나가려했다.
하지만 그 순간 용팔이가 헉 소리를 내며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형님.’
용팔이가 평소에 까불거리긴 하지만 그렇다고 상황을 구분하지 못하는 바보는 아니었다. 난 들고 있던 시멘트 자루를 내려놓고 재빠르게 총을 들었다. 일행도 나와 마찬가지로 전투태세를 갖추며 주위를 경계했다.
내가 용팔이를 바라보자 용팔이는 침을 꿀꺽 삼키고 컨테이너 뒤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사람 발 아닙니까?’
용케 저걸 발견했다. 용팔이가 발견하지 못했으면 그냥 신경도 쓰지 못하고 지나갔으리라. 용팔이가 가리킨 곳은 컨테이너 뒤쪽 이였는데 그곳에는 사람발이 배꼼 삐져나와 있었다. 한쪽은 신발이 벗겨져 있었고 다른 한쪽은 운동화가 신겨져 있었다.
시체인가? 하고 생각해봤지만 발을 덜덜 떨고 있는 게 분명히 움직임이 있었다. 그리고 그놈들과 다르게 피부도 정상이고 우리를 향한 반응도 없었다. 나는 대검을 앞으로 내밀고 천천히 그쪽으로 접근했다.
그리고 점점 그곳으로 접근할 때마다 중얼거리는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사람이다. 사람이 맞다! 하지만 우린 경계를 풀지 않았다. 그리고 달달 떨리는 발을 바라보며 침착하게 컨테이너 뒤편으로 향했고 그곳에는 가방을 끌어안고 떨고 있는 한 여성이 있었다.
익숙한 얼굴이다.
용팔이와 마트에서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웠던 그 여자.
에덴 탐색조 무리 중에 생존자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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