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직 살아있다-12화 (12/313)

[12]

컨테이너 집에 들어가자 꿉꿉한 냄새가 콧속을 파고 들어왔다. 난 손을 휘적휘적 저으며 먼지를 몰아내고 안을 살폈다. 의자 몇 개와 테이블 그리고 비품 보관함은 먼지가 쌓여 있었다. 별다른 흔적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는 안심하며 창날을 천천히 내렸다.

내가 컨테이너 집에 들어가자마자 여자는 순식간에 나를 따라 들어온다. 내가 한숨을 쉬며 바라봤지만, 여자는 내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리며 눈치를 살핀다. 나도 슬슬 지쳐갔다. 그래서 그냥 못 본 척 컨테이너 문을 닫았다.

그리고 문을 잠그고 테이블과 의자를 쌓아 문 앞에 세워 놓았다.

그리고 유일하게 있는 창문은 내 등산 가방으로 막아 두었다. 그러자 컨테이너 내부는 어둠으로 잠긴다. 창문 틈새 사이로 들어오던 주황빛이 서서히 옅어진다. 짧아진 해는 조금 시간이 지나자 완전히 가라앉았다.

긴장이 풀려 깊게 숨을 내쉬고 의자 위에 주저앉듯 앉았다. 내가 앉자 그녀도 부축하고 있던 남학생을 내려놓고 벽에 기대게 한다. 그리고 그 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며 자신도 천천히 앉는다. 그들과 나 사이엔 침묵이 맴돌았다.

남학생은 겨우겨우 따라오다 다시 정신을 잃은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고, 여성은 겁에 잔뜩 질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를 무서워하면서 왜 따라온 거지? 괜한 짜증이 들었지만, 한편으론 그런데도 나를 따라오는 깡다구에 감탄이 나왔다.

여자는 내 눈치를 살피면서도 기절해 있는 남학생의 얼굴과 상처를 살핀다. 소매로 땀까지 닦아 주는 게 아주 지극정성이다. 비록 무임승차한 사람이지만 그녀의 인간적인 모습의 묘한 감정이 들었다. 난 떫은 입맛을 다시면서도 이상하게 가벼운 마음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가방에서 물 한 통을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녀는 주저했지만 이내 ‘감사합니다.’ 하는 말과 함께 물병을 받고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신없이 반쯤 마시더니 화들짝 놀라며 마시는 걸 멈춘다. 그리고 다 마실 뻔한 자신을 자책하는 모습으로 남학생을 깨우듯 살짝 흔들더니 이내 턱을 잡아 입속에 물을 흘려주었다.

처음에는 입 옆으로 흘러서 반도 마시지 못했다. 하지만 입안에 물이 들어오자 곧 정신이 드는지 꿀꺽꿀꺽 맹렬하게 물을 삼키고 있었다. 하지만 물의 양은 적었다. 순식간에 다 마시고 아직 갈증이 사라지지 못한 듯 남학생은 물을 더 원했다.

여자는 안쓰러운 얼굴로 그 남학생을 바라보더니 이내 나를 바라봤다. 난 고개를 흔들었다. 얕은 지식이지만 빠른 급수는 아픈 몸에 좋지 않다. 이따 저녁때 천천히 마시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여자는 내 뜻을 잘못 이해했는지 불안한 얼굴로 빈 물통을 내려놨다.

이제 완전한 어둠이 찾아왔다. 저 멀리서 그놈들의 괴성이 들린다. 사냥감이라도 발견한 걸까. 괜히 불안했지만 난 애써 고개를 흔들어 공포를 지웠다. 여자 쪽을 바라보자 여자는 사정없이 몸을 떨고 있었다. 저 여자도 이 지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중 한 명이다.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입을 열어 그녀에게 이렇게 물었다. ‘이름은?’ 그러자 그녀는 잔뜩 겁에 질린 눈과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혜인이요…….’

‘얘는 이진수……. 제 동생이에요.’

처음에는 나와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꺼리더니 이내 묻지도 않은 내용을 말하기 시작했다. 밤도 어둡고 가만히 있자니 불안한 잡생각만 들었기에 심심풀이 삼아 그녀가 하는 말을 경청했다. 그녀가 말하길 자신은 서울대를 다녔고, 동생은 그 근처 영락 고등학교 2학년이라 했다.

자신은 편의점 알바를 끝내고 집에서 쉬고 있는데 야자를 해야 할 동생이 황급하게 집으로 왔다고 했다. 그리고는 얼굴이 창백해져서는 자신에게 빨리 도망가야 한다고, 당장 나가야 한다며 재촉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은 깜짝 놀라, 무슨 일이냐? 물어봤지만 동생은 대답하지 않았고. 일단 부모님을 기다리자고 했다. 그리고 그 사달이 나고 동생과 자신은 정부에서 지정한 대피소로 도망가게 되었다고 했다.

대피소로 도망가는 중간중간에 잡아먹히는 사람들을 본 그녀는 자신들이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했다. 그 뒤로는 부모님과 연락이 끊겼다며 훌쩍이는데 난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물었다.

‘그 대피소는?’

그러자 그녀의 표정은 어둡게 변했다. 대피소에 있던 처음의 하루는 희망에 가득 차 있었다고 했다. 학교 건물이라 규모도 크고 인원은 점점 커지고 군인들 숫자도 많아졌다. 그리고 모든 게 끝나간다. 안심해라. 라고 말해 주는 군인들 덕분에 자신도 대피소 사람들도 걱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 밤에 그놈들이 대피소를 습격했다고 그녀는 떨면서 말했다. 마침 잠이 들지 않았던 자신은 동생을 포함한 피난민 몇 명이랑 겨우 도망쳐 나왔고, 여기까지 도망 오면서 하나둘 죽기 시작한 일행이 마지막에는 자신을 포함해 3명만이 남았다고 했다. 그리고 결국 도착한 곳이 나랑 만난 편의점이라 말했다.

편의점에 도착하자 일행은 공황상태에 빠져 아무것도 못 하고 밤을 지냈다고 한다. 시간이 점점 지나 희망과 목적지는 사라졌고, 모두 절망에 빠져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일행을 이끌던 대학생 오빠가 갑자기 자신을 보더니 강간을 하려고 했다고 한다.

체구가 작은 진수는 그것을 막다가 이렇게 맞게 된 것이었다. 거기까지 말한 그녀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는 잠시 바닥을 내려다봤고, 결국 울음을 터트렸는데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강간당하려는 극적인 순간에 내가 나타난 모양이었다. 난 씁쓸한 침을 삼키며 고개를 숙였다. 정부와 대피소, 그리고 몰려드는 그놈을 군대도 막지 못했다는 것에 절망과 두려움이 혼란스럽게 교차한다. 난 눈을 질끈 감았고, 막막함을 느끼며 한숨을 내뱉었다.

말을 모두 끝낸 이혜인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고개를 들어 그녀와 눈을 마주치자 그녀가 이번에는 눈을 피하지 않고 나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시는 건가요?’ 난 조금 퉁명스럽게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저랑 진수도 같이 따라가도 될까요?’ 난 예상했던 물음에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나를 겁내고 있음에도 자신의 현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살기 위해서 나를 따라나서려고 하고 있었다. 난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사실 고민하고 있었다. 당연히 거절해야 한다. 식량 수급은? 난방은? 저 둘이 따라오면 더 빠르게 줄어들 식량은?

자전거 센터에서 발견했던 여성의 상황과 똑같았다. 그날 채연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난 매몰차게 그녀를 버리려고 했고, 채연이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그녀를 챙겼다. 난 한참을 그렇게 벽을 바라보며 생각에 빠졌다.

밤이 깊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부탁했다. 따라가기만 하겠다고 사정하고 또 울먹였다. 그리고 내가 대답이 없자 결국 지쳐서 잠이 들었다. 밤이 되자 남학생은 끙끙 앓고 있었다. 그녀가 완전히 잠이 든 걸 확인하고 나는 몰래 물병을 들고 그 학생에게 다가가 입에 물을 흘려 줬다.

참 앳된 얼굴에 그 또래답지 않은 작은 체구였다. 그런데도 겁도 없이 달려들었을 남학생이 왠지 대견했다. 그리고 작은 동정이 들어서 난 천천히 물 한 병을 다 먹였다. 그러자 남학생은 중얼거리다 고개를 푹 숙여 잠이 들었다. ‘고맙습니다.’ 학생은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채연이가 보고 싶었다. 밥은 먹었을까? 그 여자가 잘 챙겨 주고 있을까? 생각해 보니 그 여자 이름도 물어보지 않았는데. 혹시 그놈들이 그 주변을 어슬렁거리지는 않을까? 나는 생각만 해도 미칠 것 같아서 애써 눈을 감고, 잠을 자기 위해 노력했다.

밤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오늘 밤은 유난히 길고 추웠다.

* * *

그동안 겪었던 추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새벽에 너무 추워서 잠에서 깬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가방에서 핫팩을 꺼내 몸속에 집어넣고 얼굴에 비볐다. 그리고 남매도 내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일어났는지 나를 바라보고 있길래 손에 핫팩 하나씩을 쥐여 줬다.

이혜인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나에게 고마움을 표했고, 이진수는 이제 정신이 드는지 퉁퉁 부어 반도 뜨지 못하는 눈으로 꾸벅 인사를 해 보인다. 핫팩에서 나오는 작은 온기에 추운 몸을 달래며 나는 조바심이 생겼다.

아무런 난방 시설도 없는 공용 화장실. 거기에 산이라 체감온도는 더 낮을지도 모른다. 날카롭게 불어오는 칼바람에 채연이와 그 여자가 잘 버티고 있을지 걱정이었다. 하루빨리 채연이에게 가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운다. 남매는 핫팩을 받아들고 다시 잠들었고, 나는 물과 비스킷을 구석에서 씹으며 빨리 아침이 오기를 기다렸다.

심호흡도 하고 배도 채웠다. 창틈으로 여명이 보이기 시작하자 재빠르게 가방을 정리했다. 그리고 남매를 깨워 물과 비스킷을 내밀었다. 이혜인은 어젯밤보단 조금 누그러진 눈으로 먹을 것을 받아들고 감사를 표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이진수는 이제 정신이 드는지 어눌한 목소리로 고마움을 표했다. 밤새 끙끙 앓더니 다행히 잘 이겨낸 모양이다. 이혜인 얼굴에도 조금 안도하는 기색이 보였다. 나는 그들이 음식을 먹는 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난 지금 출발할 거야.’

이혜인은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고, 이진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도 나에게 더 부탁하기는 미안한지 다른 말은 꺼내지 않았다. 난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다 결국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따라오는 걸 막지는 않을 거야. 만약 음식이 필요하다면 나눠 주고 잠자리도 내줄 수 있어. 다만 너희들은 동등한 대가를 지불해야 해.’

이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사람이란 원래 한없이 받으면 한없이 원하게 되는 생물이다. 난 호구가 될 생각도 없었고, 내가 피해를 감수할 생각도 없었다. 그렇기에 처음부터 그들에게 선을 긋기로 했다.

이들을 단순히 보호하고 챙겨 줘야 할 대상이 아닌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를 돕고 협력한다. 각자 위치에서 할 일을 하고,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 인간이 태초부터 해 왔던 우리라는 개념이자 생존 방법이었다. 만약 그것을 하지 못하겠다고 하면 미련 없이 이들을 내칠 것이다.

내가 모든 설명을 마치자 이혜인은 깜짝 놀라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동생 이진수도 상처투성이 얼굴로 안도의 미소를 지었고, 이내 고개를 숙이며 고마움을 표해 왔다. 난 대신 남매에게 내가 빨리 움직여야 할 이유와 기다리고 있는 일행이 두 명 있음을 말해 주었다.

그리고 난 너희들에게 걸음을 맞춰 줄 여유가 없다고 말하자 이혜인 얼굴에는 살짝 걱정이 새겨졌다. 하지만 이진수는 그런 누나를 다독이며 걱정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다부지게 끄덕였다. 이진수는 조금 감동한 듯 호의가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데 조금 부담스러웠다.

이 둘을 신뢰하는 건 두고 볼 문제다.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듯 천천히 지켜보며 이 둘을 판단하기로 생각을 마쳤다. 난 남매에게 움직일 준비를 하라고 말하고 몸을 돌려 문 쪽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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