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417화
강혜림이 무감정한 눈빛으로 자신을 주시했을 때.
권지아는 착각인지 순간이나마 방이 더 어두워졌다는 착각이 들었다. 피부 위에 닿는 공기의 감촉이 싸늘했다.
‘666마리의 짐승을 다루는 내가, 이렇게 싸늘한 어둠을 느끼다니.’
그러나, 이쪽도 겁먹을 필요는 없다.
“왜? 내가 너무 정곡을 찔렀나? 눈빛 한번 사납군. 당장에 검을 휘두를 기세야.”
“…….”
“아니면, 그때 마무리 짓지 못한 우리의 승부를…… 여기서 끝장이라도 볼 건가?”
그때의 승부라는 말에 강혜림이 몸을 움찔 떨었다.
유현에게 밝히지 않았지만, 권지아는 흑뢰군주였던 강혜림과 딱 한 번 싸운 적이 있었다.
혹시라도 그녀를 만나 대화를 나누면 될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을 품고, 권지아가 누구도 대동하지 않은 채 홀로 찾아갔을 때의 일이었다.
‘정말 어리석은 짓이었지.’
변한 사람은 다시는 바뀌지 못한다는 걸, 숱한 회귀를 통해서 배우지 않았던가.
안일함에 기대고, 혹시라는 거짓된 희망에 배신당해 세 자릿수가 넘는 목숨을 잃었었다.
뼈에 사무치게 후회하며 다시는 그러지 않을 거라 몇 번이고 다짐했지만.
이놈의 천성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그래도 유현을 만나기 전까지는 한계까지 날이 서 있어서 그런 일은 없었지만, 이번만큼은 그러지 못했다.
‘나도 정말 물러진 거야.’
결국 권지아에게도 강혜림은 소중한 동료였고, 그녀의 마음을 다시 예전으로 되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녀를 찾아갔지만, 싸움은 피할 수 없었다.
권지아는 그때 강혜림을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너무나도 뒤틀려 버린 흑뢰군주는, 더 이상 그녀가 알던 검후 강혜림이 아니었다.
그래서 죽이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제는 잊었다고 생각한 소중한 동료애가 그녀의 발목을 붙잡았고, 결국 권지아는 강혜림에게 큰 상처를 입고 패퇴하게 됐다. 그때의 그녀가 하지 못했던 것은 결국 유현이 대신했다.
“애석하게도, 지금의 나는 그때와 확연히 다를 거야.”
권지아의 등 뒤로 보랏빛 늑대의 형상이 떠올랐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주위로 검은 진흙이 꿀렁이며 무수한 짐승의 형태로 변했다가 무너지는 걸 반복했다.
권지아는 그때의 패배를 기점으로 더 강한 힘이 필요하다 느꼈고, 펜릴에 이어 묵시록의 짐승의 힘마저 취했다.
이 2가지 힘만 있으면, 아무리 상대가 1세대 성령이라 하더라도 그녀는 절대로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물론 이걸 사용한다는 것을 들킬 경우 혼성계의 공적이 될 가능성이 컸고, 이 힘이 그녀를 언젠가 집어 삼킬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만큼 이보다 더 적합한 힘은 없었으니까.
무엇보다.
다시는 그 남자에게 짐을 짊어지우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니까. 비록 상대가 옛 동료라 하더라도 그녀는 자신의 손을 더럽힐 각오를 마쳤다.
“그래서 어쩔 거지?”
두 사람의 시선은 한동안 떨어질 줄 몰랐다. 권지아는 강혜림이 보이지 않게 몰래 주먹을 꾸욱 쥐었다.
그녀라고 싸우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만약 여기서 서로 싸우게 된다면, 반드시 둘 중 하나는 죽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누가 죽더라도 결국 파국으로 치닫고 만다. 그것을 알기에 권지아는 긴장했다.
휘익.
“…….”
강혜림은 곧바로 권지아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그 행동은 마치 아이가 토라져서 대꾸조차 하지 않겠다는 것과 똑같아, 권지아는 괜히 긴장했다며 힘이 탁 풀리고 말았다.
그런가. 그게 네 대답인가.
권지아는 안도의 마음을 품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적어도 스스로가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것은 알겠어. 그래도…… 너도 언젠가 선택을 내려야 할 때가 올 거야. 과거에 저지른 죄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으니까.”
권지아는 그 말만 남기고 떠났다.
다시 혼자 남겨진 강혜림은 여전히 이불을 뒤집어쓴 채 멍하니 앉아 있기만 했다.
* * *
오엘로와 대화를 끝낸 유현은 숲 바깥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들과 재회했다.
익숙한 얼굴이 셋. 그것이 전 직장 동료라는 기이함에 유현은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모두 오랜만.”
“너……!”
유현을 보고 가장 격하게 반응한 것은 아리샤였다. 천체주식회사 내에서는 정장을 입고 있던 그녀는 지금 제복을 입고 있었는데, 상당히 잘 어울렸다.
“대체, 뭘 했기에 소식도 끊기고……!”
“아리샤 선배. 그만하세요. 유현 씨가 곤란해 하지 않습니까.”
“유현 씨?”
셀린이 나서며 아리샤를 만류했다. 하지만 유현은 셀린이 자신을 부르는 호칭에 오히려 당황했다.
셀린이 무표정한 얼굴로 답했다.
“왜요? 선배라 불리지 않아서 서운합니까?”
“아니, 뭐. 직장이 사라진 마당에 이제 와서 선배라 불리는 것도 웃긴 일이지. 그냥 적응이 안 돼서 그러네.”
“금방 하실 겁니다.”
단호하게, 그러면서 일방적으로 통보하듯 말하는 셀린의 말에 유현은 허탈한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의 시선이 팔짱을 낀 채 이쪽이 말을 걸기를 기다리는 셀레스티나를 향했다.
“셀레스티나 부장님도 오랜만이죠?”
“이젠 부장도 뭣도 아니야. 회사가 망했으니까. 지금은 해결사 셀레스티나다.”
“그렇군요. 용케도 새로운 직장을 구하셨네요.”
“다 내가 능력이 있어서 그런 거 아니겠냐? 나뿐만이 아니야. 우리 셀레스트리얼 빙 부서 녀석들은 전부 오엘로님의 산하 해결사로 들어가게 됐다. 아니, 전부는 아닌가?”
“누구 빠지기라도 했습니까?”
“로믈락시스.”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유현은 헬름 투구를 쓰고 있던 그 기묘한 텔러를 떠올렸다.
“아. 그 녀석…….”
“걔는 해결사도 뭣도 하지 않겠다고 하며 따로 떠나 버렸다. 소식도 없고,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언질도 주지 않았지. 매정한 녀석.”
“그 로믈락시스가요?”
유현은 로믈락시스의 행동이 의외라고 생각했다. 만약에 헤어진다면 누구보다도 호들갑을 떨면서 꼭 다음에 다시 만나자고 인사를 나눌 것 같은 녀석이, 아무 말도 없이 갑자기 사라졌다니.
“뭐, 애초에 좀 많이 특이한 녀석이기도 했지. 행동도 행동이지만, 출신부터 비밀리에 휩싸여 있었거든.”
“출신이요? 혹시 뭐 특별한 거라도 있었습니까?”
“아. 너는 몰랐겠구나. 사실 다 모르는 게 당연하지. 로믈락시스의 출신은 비밀에 부쳐져 있었으니까. 회장님이랑 나, 그리고 이사급 중에서도 극소수만 알고 있었거든.”
“소수만 알고 있었다니.”
“그 녀석은 사실 텔러가 아니야.”
“네?”
로믈락시스와 나름 안면이 있던 아리샤와 셀린도 처음 듣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니, 그걸 왜 말 안 해 줬어요?”
“아, 시끄러워. 애초에 물어보지도 않았잖아. 그리고 나도 녀석이 정확히 어디 출신인지 자세히 모른다고. 그냥 텔러가 아니라는 것만 들었지.”
“저와 비슷한 외부 편입이었던 건가요.”
셀린은 텔러가 아닌 순수한 기익족이다. 그렇다는 것은 로믈락시스 또한 셀린처럼 다른 종족으로서 텔러가 되기 위해 천체주식회사에 입사했다는 소리다.
“으음. 뭐, 그렇다고 볼 수 있겠지만…… 녀석은 조금 달랐어. 보통 아무리 대단한 종족이라 하더라도 보통은 자기가 누구라고 말해 주거든? 그런데 로믈락시스는, 회장님께서도 비밀에 부치려고 하셨을 정도였으니까.”
“회장님이요?”
“그랬다니까? 뭐 나중에는 녀석의 성격 때문에 정체고 자시고, 하루하루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벅찼으니까. 그때는 별로 못 느꼈거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이상하기는 해. 그 녀석, 대체 정체가 뭐였지?”
“뭐가 어찌 됐든, 우리가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된 것은 변함이 없는 사실이죠.”
유현이 웃으면서 분위기를 환기했다. 여기서 로믈락시스가 어쩌고 해 봤자 서로 머리만 아파 올 뿐이다.
하지만, 정작 유현 본인이 로믈락시스의 행방을 가장 심도 있게 고민했다.
분명 그때는 그저 그런 텔러라고 생각하고 넘겼지만, 갑자기 소식이 끊긴 것도 그렇고 뭔가 뒤가 구렸다.
직감이 그렇게 말해 주고 있었다.
“그보다 아리샤. 너 회사 망하기 전에 직급은 어디까지 갔었냐?”
“어, 엉? 그, 그건 왜 갑자기 묻는 건데?”
“뭐야. 말까지 더듬고. 설마 부장 못 달았냐?”
“그, 그런 거 아니거든?”
아리샤가 시선을 피하며 대답을 망설이자 셀린이 나서며 대신 답했다.
“아리샤 선배님은 과장에서 멈췄습니다.”
“어? 진짜?”
“야!”
“물론, 저도 과장까지는 달았습니다만.”
무표정한 얼굴로, 그러면서도 어딘가 뿌듯한 기색이 잔득 묻어 나오는 셀린의 모습에 유현은 ‘허’ 하고 감탄사를 흘렸다.
“그런가. 아리샤와 같은 직급이라.”
“차장까지 달고 부장의 자리를 넘어, 곧바로 이사 자리를 제안받은 유현 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요.”
“그건 쟤가 너무 괴물 같은 거고! 그리고 너는 그걸 또 왜 말하는 건데!”
“유현 씨가 궁금해하시는 거 같아서.”
“네 선배는 나거든?!”
서로 투덕거리는 셀린과 아리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사이좋은 자매를 보는 것 같았다.
한쪽은 빛의 날개를 지닌 기익족이고, 다른 한쪽은 불그스름한 피부에 뿔이 달린 적마인이었지만.
적어도 둘이 말하는 것을 보면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보기 좋았다.
아리샤가 변명하듯 황급히 말했다.
“워, 원래 나도 바로 진급할 수 있었어! 그런데 하필이면 차장 코앞에서 회사가 문을 닫아 버리는 바람에…….”
“어. 그래. 이해해.”
“전혀 이해했다는 얼굴이 아니잖아!”
“내 얼굴이 뭐가?”
“그…… 아무튼, 그런 거 있어!”
아리샤의 억지에 가까운 외침에 유현은 피식 웃었다.
“다들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이네. 만나서 정말 즐거웠어.”
“선배…… 아니, 유현 씨는 이제 가시려는 건가요?”
“응. 아직 만나야 할 사람들이 많이 남아 있거든.”
마음만 같아서는 더 오랫동안 머물면서 못다 한 회포를 풀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것은 해결사의 일을 하는 셀린과 아리샤도 느끼고 있는 바였다.
“……조심하세요.”
“그래. 조심해. 너 이번에는 그래도 좋게 넘어갔지만, 다음에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어.”
“걱정해 줘서 고마운데, 난 너희가 생각하는 것만큼 약하지 않거든?”
“그래. 이 녀석 말이 맞다.”
셀레스티나도 유현을 두둔하고 나섰다. 아직 셀린과 아리샤는 잘 모르는 것 같지만, 셀레스티나는 천체주식회사에서도 몇 없는 부장이기도 했기에 보는 눈이 있어서 잘 알고 있다.
지금 유현은 강하다. 그녀보다 더. 어쩌면 1세대 성령에 견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인간이 되었구나.’
텔러였던 유현은 더 이상 없다. 그는 인간이 됐다.
대체 어떻게 텔러에서 인간이 됐는지는, 방법은 하나로만 정해져 있지 않은가.
이야기의 지평선. 성령의 자리에 올라갔던 텔러가 마지막에 도달할 수 있다는 그 경지.
유현은 거기서 남들과 다른 선택을 내린 것이다.
“짜식. 힘내라.”
“예. 셀레스티나 씨도. 나중에 다시 만나면…… 그땐 맛있는 밥이라도 한 끼 합시다.”
유현은 옛 일행들과의 가벼운 만남을 마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아리샤와 셀린은 어딘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뒤이어 오엘로가 합류하자 아쉬움을 뒤로 할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오엘로와 동료들이 황금 마차를 타고 떠나게 되자, 기다렸다는 듯 누군가가 유현에게 다가왔다.
“멀린 씨.”
대성군 마비노기온 소속 대마법사 멀린.
그는 멀리 떠나가는 황금마차의 궤적을 응시하며 수염을 손으로 쓸었다.
“이 늙은이가 괜히 자네의 해후를 방해한 게 아닌가 싶군.”
“아니요. 그렇게 마음 쓰실 필요 없습니다.”
“그런가.”
“그보다 멀린 씨는 괜찮으십니까? 무리하게 전이 마법을 펼치시다보 니 마력 고갈이 심하셨을 텐데.”
“뭐, 조금 쉬면 멀쩡해진다네. 이래 보여도 카멜롯 최강의 마법사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내가 이렇게 자네를 찾아온 것은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 위해서네. 카멜롯을, 그리고 아서를 도와줘서 고마웠네.”
멀린의 갑작스러운 감사 인사에 유현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는 한 게 없는걸요.”
“그 검을 물려받았다는 것만으로도, 자네는 정말 많은 것을 해 준 거야.”
유현은 아서가 건네준 엑스칼리버를 떠올렸다. 그 남자는 마지막에 여정에 도움이 되라고 최강의 보검을 유현에게 선물해 줬다.
엑스칼리버는 혼성계에서도 유명한 신화급 무구다.
아서 팬드래건이라는 이름을 최강의 기사라는 반열에 올리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한 검이 엑스칼리버다.
하지만, 유현은 그것을 순수한 선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오히려 되돌릴 수 없는 큰 선금을 받은 것에 가까웠다. 이걸 받은 순간 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저도 뭐,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굳이 거절하지 않았죠.”
“엑스칼리버는 어쨌는가?”
“아, 그거요?”
유현은 손에 쥔 백련을 곧바로 엑스칼리버의 형태로 바꾸었다.
“여기에 있습니다.”
“그 검은…….”
“엑스칼리버의 이야기를 그대로 이어받았죠. 아, 혹시 이러면 안 됐습니까?”
백련의 [이야기 흡수]로 엑스칼리버의 모든 이야기를 빨아들였다.
엑스칼리버 자체가 지닌 상징성을 생각하면 눈이 뒤집혀도 이상할 게 없는 일.
정작 멀린은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그 검은 자네가 쥔 시점에서 자네의 것이 되었네. 내가 왜 검을 그렇게 쓰냐고 왈가왈부할 자격은 없어. 그보다 신비한 검이로군. 엑스칼리버와 맞먹는 신화급 무구지만, 발전 가능성은 그보다 훨씬 더 높다니. 인간이 이런 걸 만들 수 있던 거였나?”
어쩌면 살리오 제국은, 이런 무시무시한 무구를 만들었기에 제단의 손에 멸망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그 부분은 유현도 동감했다. 같은 신화급으로 묶이지만, 살리오 장검은 엑스칼리버의 이야기를 흡수해서 자신의 것으로 융화했으니까.
그로 인해 백련에 담긴 이야기는 어지간한 무구는 감히 비비지도 못할 정도로 방대해졌다.
백련의 안에 담긴 진짜의 영혼은 더 이상 없지만, 검 자체의 성능은 변하지 않으니까.
“멀린 씨는 이제 어쩌실 겁니까?”
“일단은…… 카멜롯의 시민들을 이끌고 임시로 머물 만한 거주지를 찾아야겠지. 그래도 같은 대성군 내에서 머물 곳은 많으니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
“중요한 건…….”
“그래. 그 이후의 일이겠지.”
카멜롯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것을 없앤 것은 대성군도 어찌하지 못하는 제단의 짓이다.
시민들은 절망하고 두려움을 품었지만, 과연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마지막에 아서가 한 말과 그가 보여 준 희생.
카멜롯에 있던 사람 중 그것을 보지 못한 자는 없었다. 그리고 슬픔을 넘어서 마음속에 거대한 불꽃을 발아한 존재들도 더러 있었다.
그것은 멀린도 마찬가지였다.
“싸우실 거군요.”
“왕이 그걸 바랐으니까. 걱정하지 말게. 누군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닌, 모두가 자신의 의지로 내린 선택이니까.”
흔들림 없는 멀린의 눈동자를 보면 유현도 절절히 전해지는 그들의 마음을 모르려야 모를 수 없었다.
“언젠가, 같은 전장에 설날을 기다리지.”
“예.”
분명, 그것은 머지않은 미래의 일이겠지.
멀린이 떠났고, 그다음으로 유현을 찾아온 것은 전혀 의외의 인물이었다.
“자네가, 아버지의 검을 하사받은 강유현이라는 인간인가?”
“당신은…….”
유현은 그 남자를 보며 말끝을 흐렸다.
외모는 아서왕을 빼닮았지만, 머리색은 마녀 모르간처럼 잿빛인 남자.
모드레드.
아서왕의 아들이자, 그의 죄업.
반역의 기사가 유현을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