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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416화 (416/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416화

오엘로는 걱정과 분노가 반쯤 섞여 든 목소리로 유현을 추궁했다.

“대체, 어쩌다가 갑자기 연락이 뚝 끊긴 채 사라지게 된 거냐?”

“조금…… 일이 있었거든요.”

“나도 대충은 들어서 알고 있다. 그래도 당사자의 더 정확한 설명을 듣고 싶어서 묻는 거야.”

“배려가 참 부족하시군요.”

“내가 굳이 그런 걸 지켜야 할 위치는 아니지 않나?”

“그건 인정합니다.”

유현은 어깨를 으쓱이며 5년 전에 자신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오엘로에게 전부 털어놨다.

“그런가. 선각자, 그가 자신을 희생해서…….”

“그분도 아마 제게 파편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제게 큰 기대를 걸었던 거겠죠.”

유현은 아직도 석가모니가 자신에게 마지막까지 안배를 베푼 것을 잊지 않았다.

그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가 남긴 자그마한 연꽃 봉오리가 없었다면 그는 강혜림을 살리지 못했을 것이고 평생 슬픔 속에서 지냈을 것이다.

살면서 도저히 갚지 못할 은혜를 입었다. 그러나 그 은혜를 갚을 대상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

그렇다면 도움을 받은 입장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단 하나.

석가모니가 자신을 희생해 가면서 목숨을 구해 줬으니, 이 목숨을 다해 그가 원하는 바를 대신 이뤄주는 것이야말로 떠나간 자를 향한 최소한의 예의였다.

“그러는 오엘로님은 못 보던 사이에 신수가 훤해지셨습니다. 멋들어진 제복까지 입으면서 해결사라는 일까지 하고.”

“비아냥대는 거냐? 네가 몰라서 그러는 거 같은데, 애초에 해결사는 내가 예전부터 꾸준히 해 오던 일이야.”

오엘로는 투덜거리면서 ‘본격적으로 한 건 최근이지만’이라는 말을 뒤에 덧붙였다.

유현의 시선에 여전히 의문이 가시지 않자 오엘로가 변명하듯 말했다.

“말했잖아. 나는 편력왕이라고. 내가 가지 못할 곳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어.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며 정보를 모으고, 정보를 팔기도 하지. 그러다 보면…… 필연적으로 온갖 잡다한 일들에 손을 대게 돼.”

“그렇게 하다 보니 해결사 일을 하게 된 거군요.”

“내 다른 형제들이 단 하나의 확고한 신분을 가진 것과 다르게 나는 다양한 신분을 지녔지. 프라이티온을 찾아야 하는데, 대놓고 ‘나 오엘로요.’ 하고 떠벌리고 다닐 수는 없잖냐. 그래서 몇 가지 신분을 다뤘고, 그중에 이야기 제작사에 정보 상인이, 해결사, 용병도 있었어.”

“그런 분이 왜 지금은 해결사로 일하고 계신 겁니까? 원래 운영하던 이야기 공장은 어떻게 하고요?”

“그거 쫄딱 망했다. 도산했어.”

“망했다고요?”

“나뿐만이 아니야. 그냥, 나랑 비슷한 처지에 있는 녀석들은 대거로 짐 쌌어. 천체 시장이 지금 어떤 꼴인지 넌 아직 모르지?”

유현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천체 시장에 들른 것도 오엘로와 만나기 위함이지, 그 외의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으니까.

“천체 시장은 큰 타격을 입었어. 그냥 타격도 아니지. 유통되던 이야기가 반토막 아래로 뚝 떨어졌으니 경제 대공황이라 해도 이상할 게 없거든.”

“그건 설마…….”

“맞아. 천체주식회사, 엑소도스, 그리고 희극단패. 녀석들이 동시에 문을 닫은 바람에 천체시장은 그야말로 판데믹의 파도를 맨몸으로 맞고 말았지.”

혼성계 3대 텔러 조직이 시화를 통해 유통하는 텍스트의 양은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그리고, 그러한 텍스트는 흐르고 흐르며 천체 시장의 큰 축을 담당했다. 그런 거대한 시장이 하나도 아니고, 무려 3개나 문을 닫은 것이다.

국가로 치면 국책을 먹여 살리는 대기업 3개가 줄도산을 한 셈이니 천체 시장에 타격이 없으려야 없을 수가 없었다.

“나처럼 텍스트를 이용해서 이야기 꾸리는 공장은 다 망했어. 기존에 차원 상점으로 이익을 취하던 녀석들도 마찬가지. 원래라면 시화를 벌이는 텔러들이 하계의 존재들을 이어 주는 유통업자 역할까지 해 줬는데, 그게 전부 무산된 거니까. 그나마 나는 신분이 여러 개고 벌이던 사업도 여러 개라 조금 아쉬운 정도에서 끝났지만…….”

“다른 존재들은 그러지 않았다는 거군요.”

“아무튼, 그 이후에는 해결사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텔러들의 조직이 전부 문을 닫은 이후로 약속이라도 한 것마냥 혼성계에 책벌레들의 출현이 빈번해졌거든. 프라이티온, 그 녀석이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겠지.”

오엘로는 그렇게 해결사의 일에 집중하기 위해 인재들을 끌어모았다.

혹시라도 수면 위로 얼굴을 드러내는 프라이티온의 흔적을 잡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품으며.

그중에서는 역시 몸담은 회사가 사라져서 자연스럽게 FA로 풀린 텔러들이 눈에 띄었다.

“싹 다 데려왔다. 재능이 있거나 이미 검증된 녀석들 전부.”

“그런 거치고는 은근 제가 아는 텔러들만 가득하던데요.”

“다른 녀석들도 많아. 다만 이번 임무에 하필이면 네가 아는 놈들로 모였을 뿐이고. 뭐, 그만큼 네가 아는 녀석 중에 능력자들이 많이 엮여 있다는 뜻이겠지.”

“희극단패나 엑소도스는 건드리지 않았습니까?”

“건드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오엘로는 천체주식회사를 제외한 나머지 두 개의 조직이 어떻게 됐는지 말해 줬다.

“희극단패는, 워낙 제멋대로에 자유분방한 녀석들이라 일자리가 사라져도 자기들끼리 모이면서 저마다 팀을 알아서 꾸리더군. 애초에 위계질서나 업무 시스템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녀석들이었기에 오히려 타격을 덜 받았지. 그러다 보니 내가 끼어들어서 인재를 빼낼 기회도 없었다.”

“그렇군요.”

“반면, 엑소도스 녀석들은…… 워낙 이상해서 말이야.”

“그건 저도 알 거 같네요.”

유현은 엑소도스를 떠올렸다.

떠올린다고 해도 그에겐 나쁜 기억밖에 없었다. 자신에게 절망을 강요했던 놈들은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치가 떨렸으니까.

“놈들은 마치 이렇게 될 걸 알았다는 듯 가만히 있었다. 천체주식회사처럼 다른 비즈니스를 찾아 떠나지도 않고, 희극단패처럼 그저 순간의 쾌락을 위해 움직이지도 않았지. 그저 담담히 사태를 받아들이고 가만히 있더군. 마치 시간이 얼어붙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야.”

“왜 그런지 오엘로님도 모릅니까?”

“내가?”

“3대 텔러 조직이 전부 문을 닫은 것은 이야기의 왕들이 내린 선택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들이 그런 선택을 내렸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건데…… 오엘로님 형제 아닙니까. 오엘로님이 직접 찾아가서 물어보면 알려 줬을 텐데요?”

“알려 주기는 개뿔. 안 그래도 롯피우트 녀석을 찾아가서 물어본 적은 있었다.”

“회장님을…… 아니, 이제 전 회장님이군요. 찾아가 보니 뭐라고 합니까?”

“말해 줄 수 없다더군.”

“네? 형제 아닙니까? 그런데 왜 오엘로님한테 그 사실을 숨깁니까?”

“난들 알겠냐. 사실 우리가 형제 사이라 해도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니니까.”

생각해 보니 그 말도 맞았다.

당장 3대 텔러 조직의 관계만 놓고 봐도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을 내던 사이가 아닌가.

조직의 수장들이 서로 형제라 하더라도 조직원들의 관계가 나쁘다는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그렇다 해도 서로 동시에 활동을 중단했다는 것은 모종의 합의가 있지 않고서야 불가능 한 일인데 말이죠.”

“녀석들이 그렇게 합심해서 움직일 만한 조건은 딱 하나 있지.”

“……로고스.”

“그래. 우리 아버지.”

오엘로는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단이 움직였어. 얼마 전에는 연합 내전의 살리오 제국을, 이번에는 대성군 마비노기온의 카멜롯을 지웠지. 제단은 어지간해서는 절대로 나서지 않아. 그게 움직였을 때는 먼 과거, 우주의 첫 시작 때 존재했다는 신화 대전이 있었을 때뿐이었지.”

“그 이후에는 한 번도 없었다는 거고요.”

“심지어 책벌레들이 나타나서 곳곳에서 난리를 피울 때도 제단은 움직이지 않았어. 책벌레들의 수준이 신화급 괴수가 아니라 그저 그런 녀석들이라 하더라도, 그 정도의 숫자가 나타났으면 반응이라도 보였어야 했는데 말이야.”

정작 제단이 움직인 계기는 다른 것이었다.

제단은 자신의 손으로 혼성계의 세력을 직접 지웠다. 그 소문은 특히나 이번 카멜롯 사태로 확실히 혼성계 전역에 각인됐다.

“아버지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러시는 건지도 모르겠고, 나머지 형제라는 것들도 속을 모르겠어.”

“왕따 당하는 거 아닙니까?”

“뭐 이 새끼야?”

“농담입니다. 아무튼, 여러 가지로 일이 많았다는 거로군요.”

“그러는 너도…… 참 고생이 많았군.”

“피차일반 아니겠습니까.”

유현은 문득 얼마 전 꿈에서 보았던 흰 존재와 검은 존재에 대해서 떠올리며 혹시 알고 있냐고 물어볼지 고민했다.

오엘로라면 무언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미쳤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꿈의 내용이 너무 허황한 것도 있지만, 오엘로에게 이런 것을 직접 물어보자니 마음 한쪽의 어딘가가 걸렸다.

“너도 조심해라.”

오엘로가 불쑥 말을 걸었다. 유현은 무덤덤하게 반응했다.

“뭐가 말입니까?”

“책벌레가 이렇게까지 움직인다는 것은 프라이티온 그 녀석도 이제 숨기지 않겠다는 소리니까. 녀석은 널 주시하고 있어. 그건 너도 알고 있지?”

“그래서 제가 그 꼴을 겪었죠.”

유현은 문득 그 새하얀 존재에 대해서 떠올렸다.

설마 녀석이 프라이티온인가? 확실히 책벌레를 마주했을 때 느끼던 그 기묘한 파동을 그 흰 존재에게서 똑같이 느낀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 검은 녀석은 대체 뭐란 말인가.

고민의 시간은 짧았다. 팅! 무언가 튕기는 소리와 함께 금화 하나가 날아왔다.

유현은 그것을 허공에서 잡아챘다.

“강유현. 혹시라도 프라이티온 그 녀석이 너에게 접촉하면, 그걸 사용해라.”

“평범한 금화가 아니군요.”

“나를 부르는 물건이다. 그때 롯피우트 녀석과 마주했을 때와는 달라. 프라이티온 녀석은 어디서 뭘 어떻게 숨어 있는지 모르니, 나도 이동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매개체가 필요한 법이거든.”

“감사히 받죠.”

유현은 금화를 품 안에 넣었다. 가지고 있으면 일단 좋으니 굳이 거절할 필요가 없었다.

“자.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다. 넌 이제 어쩔 거냐?”

“저 말인가요?”

유현은 살짝 고민하다가 답했다.

“일단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많네요.”

* * *

카멜롯 사태.

혼성계는 이번 카멜롯의 멸망과 아서의 죽음을 그렇게 칭했다.

제단이 살리오 제국을 지웠을 때와는 수준이 달랐다. 살리오 제국은 성령이 끼지 않은 그저 그런 자들이 모인 연합의 중추였을 뿐이지만, 카멜롯은 대성군 마비노기온에 소속된 거대한 세력이었으니까.

“이야기 들었어요? 카멜롯이 사라졌다네요.”

용의 동상이 무수히 진열된 거대한 신전의 중심.

백룡왕 샤루리엘은 인간의 모습을 한 채 누군가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나도 들어서 알고 있다.”

그녀의 말에 무뚝뚝한 목소리로 답한 것은 올라온 보고 자료를 묵묵히 읽고 있는 용인족 남성, 갈리아츠였다.

이쪽을 향해 시선조차 돌리지 않는 그의 야속한 행동에 샤루리엘은 쀼루퉁하게 입술을 내밀더니 그의 맞은편에 앉으며 양손으로 턱을 괬다.

“별로 놀라지 않으시네요?”

“언젠가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은퇴하시면서 롯피우트 회장에게 뭔가 들었다고 했죠?”

“그렇지.”

“그게 정확히 뭔지는 말 못 하고요?”

“여전히 그래.”

“아이, 참.”

이 남자는 이런 부분에서는 정말 타협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꽉 막혔기에, 샤루리엘은 결국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그보다 이야기 들었어요?”

“또 뭐지?”

“강유현 텔러. 돌아왔더라고요.”

“뭐?”

갈리아츠의 눈동자가 처음으로 샤루리엘을 향했다.

“이제야 저를 제대로 봐주시네요.”

“녀석이, 돌아왔다고?”

“네. 건강해 보이던데요? 오히려 예전보다 훨씬 더 강해지기도 했고요.”

샤루리엘은 장난스럽게 미소 지었다.

“자세히 알려 줄까요? 막상 그러자니, 제가 좀 지금 입이 많이 무거워졌는데.”

“……끄응.”

갈리아츠는 샤루리엘의 태도에서 그녀가 보통 삐진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침음성을 흘렸다.

그녀의 마음을 달래 주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았다.

* * *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가서 일 보세요.”

아래에서 올라오는 연락을 끝낸 백서련은 수화기를 놓고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나?”

사무실 내에서 그녀를 보좌하던 권지아가 물었다.

그녀는 여전히 머리에 후드를 뒤집어쓴 채였는데, 왜 그런지 이유를 아는 백서련은 그녀가 편한 채로 놔두고 있었다.

“그렇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카멜롯 사태 때문이군.”

“그쪽에서도 제단이 나섰다고 하니까요.”

제단의 악몽은 연합 내에서도 뿌리 깊게 박혀 있었다.

살리오 제국을 없앤 것이 그들이니까. 살리오 제국이 비록 적이었다 하더라도 연합의 일부였고, 무엇보다 제단이 그들을 지웠을 때의 그 강렬함은 절대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권지아는 그것이 곧 일어날 전쟁의 전조라는 것을 알았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대성군이 움직이고 있어요. 그들도 이제 발등에 불이 떨어졌죠. 갑작스러운 제단의 과격한 움직임에, 어떻게 해야 할지 눈치를 보고 있으니까요.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지만요. 연합은 전보다 훨씬 더 약해졌으니, 자연스럽게 강한 편에 붙을 수밖에 없어요.”

“고생이 많군.”

“그래도 어쩌겠어요. 그렇다고 마냥 겁먹은 채 가만히 있을 수도 없죠. 저희도 나름 대비는 해야죠.”

“좋은 마음가짐이야.”

권지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자리 좀 비울게.”

“혜림 언니를 보러 가는 거죠?”

“그래. 괜찮은지 자주 확인해야 하니까.”

“……너무 지아 씨에게 이런 일만 시켜서 죄송하네요. 제가 많이 바빠서.”

“그냥 앉아 있어. 사람마다 해야 할 일이 다를 뿐이니까.”

권지아는 백서련을 적당히 달래며 사무실을 나왔다. 그녀는 곧바로 강혜림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강혜림의 개인실 입구에는 경비병이 서 있었다.

바깥의 침입자로부터 그녀를 지키기 위함인지, 혹은 안에서 밖으로 나가려는 그녀를 막기 위함인지.

권지아는 굳이 그것에 대한 답을 내리지 않기로 했다.

경비병들은 권지아를 알아보더니 곧바로 길을 터 줬다. 권지아는 문을 똑똑 두드렸다.

“들어간다.”

안에서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어차피 대답을 바라고 한 행동도 아니었기에 권지아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조금 어두운 방 안, 하나뿐인 침대 위에 누군가 이불을 뒤집어쓴 채 앉아 있었다.

“밥은 잘 먹고 있어?”

“…….”

인사차 말을 걸었지만, 강혜림은 답하지 않았다. 권지아는 기대도 안 했다며 적당한 의자 하나를 끌고 와 앉았다.

“어차피 대답을 바라고 하는 것도 아니지만, 일단 새겨들어. 듣는 것은 가능하니까.”

“…….”

“제단이 나서서 카멜롯을 지웠어. 그리고 유현도…… 거기에 있었다고 해.”

유현의 이름이 나오자 강혜림이 몸을 움찔 떨었다.

제대로 듣고 있기는 하군.

권지아가 말을 이었다.

“보고에 의하면 흰 머리의 여성이 함께 있었다고 하니, 수민이 그 아이와 합류했다는 거겠지. 수민이가 돌아오는 것도 시간문제야. 그렇게 하면 네 상태를 더욱 호전시킬 수 있을 테고.”

“…….”

“그런데, 우리 둘만 있어서 하는 말인데…….”

권지아는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다리를 꼬았다.

그녀의 도발적인 시선이 강혜림을 응시했다.

“사실, 다 기억하고 있지?”

“…….”

“너, 이미 전부 떠올렸잖아. 일부러 아닌 척하고 있는 거고.”

권지아의 말에 강혜림이 처음으로 제대로 된 반응을 보였다.

그녀의 고개가 돌아가며, 뒤집어쓴 이불의 틈새로 그녀의 눈동자가 권지아를 향했다.

‘역시.’

그녀의 눈빛을 본 순간, 권지아는 이 순간 의심을 확신으로 바꿨다.

이전까지 맹해 보이던 강혜림의 눈동자는 한기를 품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마치, 흑뢰군주라 불리던 시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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