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134화
“너, 너 뭐 한 거야! 내가 누군지 알아?! 이 나라에서 날 함부로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아냐고!”
권동진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몰라도,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는 것은 눈치로 알 수 있었다.
그는 유현에게 혹시라도 자신을 건드리면 안 될 거라고 으름장을 놨지만, 겁에 질린 자의 발악에 불과했다. 유현은 어깨를 으쓱였다.
“저는 아무런 짓도 하지 않습니다. 다만, 보여 드렸을 뿐이죠.”
“보여 줘? 뭘 보여 준 다는 거야? 이 새끼가 지금 나랑 말장난해?! 꼴에 텔러라고 좀 대접 좀 해 줬더니, 제까짓 게 뭐라도 된 줄 알아?”
“의, 의원님!”
그의 보좌인 남성은 벌써부터 기절할 것만 같았다. 저 하늘의 별, 그들로부터 흘러나오는 기세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상계의 성령은 하계의 인간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 그것은 제네시스 시스템의 엄격한 통제 아래에서 새겨진 법이다. 하지만 그 법이라는 것은 항상 완벽할 수는 없었다.
사대용왕 중 하나가 유현의 서재에서 강제로 난동을 부렸을 때처럼.
성령들이 마음을 먹는다면, 하계의 인간 하나에게 어느 정도 힘을 행사하는 것쯤이야 얼마든지 가능하다.
“으윽.”
권동진도 슬슬 무언가를 느낀 것인지, 갑자기 가슴을 움켜쥐었다.
“허억! 뭐, 뭐야!”
권동진은 숨결이 거칠어지고, 뺨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유 모를 오한이 멈추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자그마한 개미가 되었고, 아주 거대한 인간들 수십 명이 동시에 자신을 내려다보는 기분이었다.
“끄윽. 대, 대체…….”
“어떻습니까? 선악을 판별하는 지고한 자들의 눈빛은?”
“지, 지고한 자……?”
“당신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자신이 정의로운 사람이고, 제가 악이라고. 하지만 이 모습을 지켜보신 분들은 당신의 말만 믿지 않죠. 그들은 판단합니다.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결론을 내리죠.”
“대, 대체…….”
권동진은 그제야 자신이 무언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평소에 욕먹을 짓을 하고, 때로는 사람들의 비난을 들어도 그는 자연스럽게 넘겨왔다. 하지만 지금 받는 이것은, 무언가 질적으로 달랐다.
피부에 닿는 시선이 단순히 물리력을 지닌 것이 아닌, 그의 영혼까지 거센 손아귀로 쥐어뜯는 것 같았다.
유현은 여전히 버티는 권동진의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호오. 그래도 썩어도 의원은 의원이라 이건가? 아니면 사람들에게 욕을 자주 처먹어서 어느 정도 내성이라도 생긴 걸까?”
그게 뭐라 하더라도 권동진은 이제 슬슬 한계였다.
털썩.
권동진은 무릎을 꿇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서 도저히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어느덧 그의 얼굴은 땀범벅이 되었다. 권동진은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아.”
그리고 보았다.
사무실의 천장, 석면으로 이루어져 있어야 할 그곳에 펼쳐진 새까만 어둠을.
어둠은 어둠으로만 있지 않았다. 그 안쪽에, 거대한 무언가를 숨긴 자들이 눈동자를 빛내며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인간으로서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자만심에 가득 차 있던 그를 까마득한 저 아래로 처박히게 만들어 버리는 절대자의 시선들.
유현은 권동진을 보며 싸늘하게 말했다.
“잊지 마세요. 그분들이 당신을 주시하고 있음을.”
“아아아아!”
많은 것을 보고 겪어 온 권동진은 격이 다른 자들의 관심은 견디지 못했다.
그는 결국, 우스꽝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며 그 자리에서 졸도하고 말았다.
“의원님!”
그의 보좌가 황급히 달려와 쓰러진 권동진을 부축했다. 그는 유현을 노려봤지만, 이내 눈을 내리깔았다.
권동진이 감히 유현을 함부로 건드리려 했다가, 어떻게 됐는지 목격했으니까.
과연, 정치인의 보좌다운 눈치였다.
“데리고 가세요. 그리고 그가 깨어나면 전하세요. 그분들은 언제나 당신들을 지켜보고 있으며, 고작 국회 의원 따위의 잣대로 무언가를 하려고 드는 오만한 짓을 벌이지 말라고.”
“……네.”
보좌가 그 말을 가슴에 새겼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유현은 이 순간마저도 자신에게 이롭게 상황을 이끌었다는 점이다.
* * *
“끄으윽.”
“의원님! 정신이 드십니까?”
“어, 어. 김 보좌. 이게 대체 어쩐…….”
사무실의 바깥으로 부축을 받으며 나온 권동진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그는 이게 어찌 된 일인지 떠올리려 하다가, 이마를 송곳으로 찌르는 통증에 머리를 움켜쥐었다.
기억났다. 그가 무엇 때문에 기절했는지.
“이, 이 빌어먹을 텔러 자식……!”
유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이가 갈렸다. 그 이상으로 두려움마저 밀려왔다.
자신은 어딜 가서도 절대 꿀리지 않는 권력자였다. 컬렉터라 하더라도 국회 의원인 그에게 한 수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유현은 달랐다.
그는, 텔러는 자신 따위는 우습게 볼 정도로 다른 별세계에서 살고 있었다.
그가 지닌 이 같잖은 권력은 하늘의 별에 닿을 수 없었다. 권동진은 그 사실을 새삼 뼈저리게 느꼈다.
“우, 웃기지 마라. 나 권동진이야. 감히, 이 나라에서 지들 멋대로 설치게 놔둘 거 같아?”
권동진은 이를 갈았다. 보좌는 그를 옆에서 부축해 주며 유현이 남겼던 말을 곱씹었다.
그들은 지켜본다. 이 말을, 지금의 권동진에게 과연 하는 게 좋을까?
“김 보좌. 이만 가지.”
“네, 네. 의원님.”
권동진이 곧바로 주차해 놓은 차량에 탑승하려는 순간이었다.
퍽!
하늘에서 떨어진 새하얀 무언가가 권동진의 이마를 때렸다.
“이, 이게 뭐야!”
권동진은 황급히 자신의 이마에 묻은 새하얀 무언가를 손으로 닦아 냈다. 그것은 역한 냄새를 풍기는 새똥이었다.
“어떤 자식이야!”
이젠 하다 하다 새똥까지 맞게 되자, 권동진은 고혈압으로 기절할 것만 같았다.
그런 권동진의 머리 위의 하늘, 그곳에 새하얀 털 뭉치 하나가 목적을 달성해 기쁨의 울음을 토해냈다.
부엉.
* * *
보좌가 쓰러진 권동진을 데리고 떠난 뒤, 유현은 손뼉을 짝 하고 치며 분위기를 가라앉혔다.
“자자. 성령님들. 너무 노여워 마시죠. 설마하니, 저런 인간이 이렇게 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본인도 아주 잘 뉘우치고 있을 겁니다.”
유현은 권동진이 그에게 제안할 때부터 서재를 일시적으로 개방한 상태였다.
당연히 둘이 나누는 대화는 모두 성령들이 직접 본 것. 어떻게 보면 유현이 성령들의 위세를 빌려 권동진을 찍어 누른 셈이지만, 유현은 그 부분에 대해서 개의치 않았다.
유현은 하계의 권력자인 권동진에게 성령들의 위엄을 새겨 줬다. 오히려 성령들은 이번 기회로 자신들의 입지를 하계에 더욱 강하게 뿌릴 수 있어서 더욱 좋아했다.
[성령들은 아쉽지만, 당신의 말을 듣기로 합니다.]
[일부 성령들이 시화를 자주 보여 달라고 투덜거립니다.]
유현이 쉰 것은 고작 3일. 그럼에도 성령들은 유현이 매일 새로운 시화를 선보이길 바랐다. 얼마 전 유현이 어부지리를 취한 것은 그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더 좋고, 더 재밌는 이야기를 바랐다. 유현은 그 마음을 충분히 인지했다.
“물론이죠. 하지만 최근에 조금 바빠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저도 슬슬 세 번째를 찾기도 해야 하고, 따로 할 일이 있거든요.”
[성령들이 세 번째라는 말에 관심을 품습니다.]
[100TP 후원!]
[세 번째라 하면, 이번에도 또 눈이 확 뜨이는 미소녀겠죠?]
세 번째라고 하니, 대부분 성령의 반응은 비슷했다. 이번에도 여자다. 이번에도 예쁠 거다. 다 그런 소리였다. 이쯤 되니, 유현은 자신이 뭘 잘못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니. 왜 여자라고 생각하십니까?”
[100TP 후원!]
[첫 번째 두 번째를 보면 답을 알 수 있을 텐데? 강유현 텔러의 취향을.]
“……미리 말해 두는데, 혜림 씨와 지아 씨의 선택은 절대 저의 개인적 기호와 사심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단지 능력을 보고 뽑았는데, 그녀들이 걸린 거죠.”
[(익명) 100TP 후원!]
[나도 내가 로리콘이라서 어린 여자를 좋아하지 않았어. 좋아하는 여자가 어릴 뿐이었지.]
너 하데스지?
유현은 그 말이 목구멍까지 넘어오는 걸 막았다. 일부 성령들은 저렇게 장난스러운 직접 메시지를 할 때는 일부러 자신의 존재를 숨기는 짓을 하기도 했다.
“아무튼, 세 번째가 벌써 정해졌다느니, 여자라느니. 그런 건 터무니없는 모함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령들이 그러면 내기를 하자고 합니다.]
“내기요?”
성령들이 그렇다고 주장했다. 유현은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하기 위해 그렇겠다고 대답하려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대답을 망설이고 말았다.
‘아니 근데, 진짜 여자면 어떡하지?’
중요한 세 번째를 뽑는데, 일부러 성별을 가려서 뽑을 수는 없었다. 그는 무조건 뛰어난 재능, 훗날의 가능성을 볼 생각이었다. 당연히 상대방의 성별이 ‘우연히’ 또 여자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어쩌면 세 번째도 정말 성령들의 말처럼 될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에이, 설마…….’
유현은 애써 그 가능성을 부정했지만, 불안감은 여전히 피부에 묻은 끈적끈적한 오물처럼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내기는…… 좋지 않습니다. 흠흠. 그런 걸 대체 왜 합니까?”
[선술집의 취객이 100TP 후원!]
[아ㅋㅋ 쫄렸죠?]
“크흠. 아닙니다. 아무튼, 저 바쁩니다.”
유현은 곧바로 서재를 다시 닫았다.
“대체, 텔러를 뭐로 보고.”
“전 틀린 말한 거 같지는 않은데요?”
“혜림 씨…….”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지아 씨마저…….”
설마 퍼스트와 세컨드가 그런 말을 할 줄 몰랐는지, 유현은 적잖게 충격 먹은 얼굴이었다.
“하아. 됐습니다. 됐어요. 기대한 제가 바보죠.”
유현은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조금 전 권동진의 책에 적힌 내용을 상기했다.
그가 지니고 있는 은은한 은색의 책에서 읽었던 정보.
‘자신이 뒤를 봐주던 클랜이 물을 먹은 탓에 마음이 급해져서 날 찾아왔었지.’
권동진은 협회에 반(反)하고 클랜에 친화적인 정치인이었다.
만약 협회와 권동진이 어느 정도 커넥션이 있었다면, 최중모가 당했던 일을 권동진이 당할 거리가 없었다.
‘당마다 친‧협회파와 친‧클랜파가 나뉜 건가? 정치인은 기업에 이어서 컬렉터의 업계까지 어떻게든 손을 뻗었군.’
정치인은 유현의 관심사가 아니었지만, 오늘처럼 권동진이 나선 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조금 더 다양한 정보들이 필요하겠어.’
유현이 회귀를 했다고 하더라도 모든 걸 아는 건 아니었다. 유현도 모르는 부분은 있다. 일상적인 부분에서 벌어지는 자그마한 사고나, 혹은 정치인과 관련된 것들은 특히 그랬다.
그가 기억하는 것은 컬렉터들에 관한 큼지막한 사건이나 사상세계의 정보뿐.
다른 이슈들은 그의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다른 놈들이 우릴 건드리지 말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유현이 거기까지 생각을 했을 때였다.
띠링!
유현과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에만 보낼 수 있는 라인을 통해 메시지가 날아왔다.
[발신인: 최중모]
협회의 중진 중 하나인 최중모에게서 날아온 메시지였다.
내용은 짧았다. 그저 이른 시일 내에 만날 수 있냐는 물음이었다.
‘권동진 때문인가?’
그가 백화 매니지먼트 사무실에서 나온 것을 알아차려서 다급하게 해당 메시지를 보낸 것이었다.
‘혹시라도 내가 권동진과 무슨 커넥션을 이어가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라도 든 거로군.’
권동진은 협회의 편이 아닌 클랜의 편이었다.
어떻게 봐도 클랜의 뒤를 슬쩍 봐주며 자신의 사리사욕을 챙기는 부류다. 그가 사무실까지 찾아온 것은, 이번에 황혼의 장막의 세무 조사 건과 한울의 건이 겹쳤기 때문이리라.
반대로 최중모는 협회의 인물. 그 또한 다른 정당의 정치인들과 어느 정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흐음. 어디에 휩쓸리는 건 썩 질색인데.’
유현이 예전부터 느낀 것은, 정치인은 어느 파벌이라 하더라도 죄다 답이 없는 모임이라는 것이었다.
서로 똥통 속에 들어가 상대방에게 오물을 묻히며 누가 더 깨끗하고 못났나를 따지는 부류들.
유현은 그들과 별로 관계를 맺고 싶지 않았다.
문득, 이걸 잘하면 서로를 이용해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굳이 내가 싸울 필요는 없지.’
[지금 가겠습니다. 시간 되십니까?]
[최중모: 예. 됩니다만, 지금요?]
[네. 곧 가죠.]
유현은 최중모에게 가겠다고 연락을 보냈다.
권동진과는 이미 적대적으로 돌아섰다면, 역으로 그와 맞서는 다른 정치인과 친해지면 그만이다.
하지만, 물론 선은 지킨다. 서로 지킬 것만 깔끔하게 지키고, 얻을 것만 얻는 담백한 관계가 가장 좋다.
그들은 백화 매니지먼트의 좋은 방파제가 되어 줄 것이다.
유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협회로 갈 시간이었다.
‘이번 작전 이름은, 그래. 대충 이게 낫겠어.’
유현은 씨익 웃었다.
‘잘 알아들었지? 지금부터 서로 죽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