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133화
국회 의원이라는 말에 유현의 눈이 일순 가늘어졌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런 양반이 왜 안 오나 했다.
세계적으로 컬렉터와 텔러의 존재가 크게 부각된 지금, 당연히 정치인들은 어떻게든 컬렉터들과 연을 만들려고 했다. 유현은 그중에서도 텔러. 그것도 아주 특출난 텔러니, 접하는 소식이 빠른 정치인들이 침 고이게 만들기 충분했다.
유현은 웃는 얼굴로 손을 마주 잡으며 악수를 했다.
“만나서 반갑군요. 천체주식회사 시화실 소속 강유현 대리라고 합니다. 이야. 국회 의원이라니. 분명, 이 나라의 높으신 분이셨죠?”
“허허. 제가 높으신 분이라니요. 다 과분한 소리입니다. 국민이 저를 뽑아 줬을 뿐이죠. 전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흐음. 그런가요? 그보다 귀하신 분이 이곳엔 어쩐 일로…….”
유현은 슬쩍 대표 자리에 앉아있는 백서련에게 눈빛을 보냈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자기도 모른다 했다. 아무래도 권동진은 이곳에 죽치고 있으면서 백서련에게 아무런 언질도 주지 않은 것 같았다.
일방적인 방문인가? 유현은 속으로 권동진의 행동을 그렇게 평가했다.
권동진이 허허로이 웃으며 말했다.
“강유현 씨. 잠시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까?”
“그냥 여기서 하시죠.”
권동진의 말에 유현은 칼같이 거절했다. 권동진 국회 의원은 웃는 얼굴을 유지하며 살짝 돌려서 말했다.
“듣는 귀가 있을지도 몰라서…….”
“듣는 귀라고 하면 저희 매니지먼트 소속 컬렉터 둘과 대표님밖에 없을 겁니다. 그리고 저의 일은 매니지먼트의 일. 누가 들어도 상관없을 텐데요. 혹시라도 바깥의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면 걱정 마시길.”
유현은 지지 않고 답했다.
“이곳은 저의 특별한 힘 덕분에 도청 따윈 먹히지 않으니까요.”
“……허허.”
둘은 3초 정도 시선을 교환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죠.”
권동진이 먼저 한 수 접고 들어갔다.
둘은 사무실의 창가에 놓인 손님맞이용 소파에 마주 보며 앉았다.
유현은 곧바로 다리를 꼬며 본론부터 꺼냈다.
“그래서 절 찾아오신 이유가 뭡니까? 국회 의원이나 되시는 분께서 이런 곳까지 찾아온 걸 보면 꽤나 중요한 안건이신가 보죠?”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저는 돌려 말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허허. 그렇다면 이쪽도 단도직입적으로 묻죠. 강유현 씨. 혹시 저희와 손을 잡으실 생각 없으십니까?”
“저희? 손?”
갑작스러운 제안에 유현이 짐짓 놀랐다는 척을 하며 물었다. 권동진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이었다.
“저희 당에서 유현 씨의 존재를 눈여겨봤습니다. 특히 백화 매니지먼트를 황야에서부터 여기까지 일으킨 그 수완은 아주 감탄스러울 정도입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함께 일을 해 나가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찾아온 겁니다.”
“그런가요? 그런데 의원님 정도나 되시는 분이 직접 오실 정도라니. 좀 놀랍군요. 게다가 텔러인 저를 보려고 말이죠.”
“유현 씨는 컬렉터와 관련된 일에 꽤나 관심이 많으신 것 같더라고요. 컬렉터와 직접 함께 싸우신다고 하셨죠? 가호를 포기하셨다고요.”
“그것도 알고 계셨습니까?”
“정치권에서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귀에 들어오게 되죠.”
권동진은 유현에 대해서 상당히 조사를 하고 찾아왔다. 그의 당당한 말투에서부터 그런 티가 났다.
유현은 고개를 저었다.
“절 과대평가 하시는군요.”
“과대평가가 아닙니다. 그만큼 저희는 유현 씨를 대단하게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협업을 제안하기 위해 이렇게 직접 찾아왔죠.”
정치권 인사가 건네 오는 커넥션. 심지어 권동진이라 한다면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라 당내에서도 상당히 입김이 강한 사람이다. 차기 대권 주자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그가 내미는 손은 대부분 사람에게는 황금으로 치장된 동아줄처럼 보일 것이다.
세상이 무너져도 절대로 끊어지지 않을 동아줄.
‘글쎄. 과연 그럴까?’
하지만, 미래를 알고 있는 유현에게는 전혀 그러지 않았다.
“모쪼록, 저희 쪽으로 와 주시지 않겠습니까?”
“흐음. 확실히 매력적인 제안이로군요. 의원님이 직접 저를 찾아오실 정도니까요.”
“그러니…….”
“그런데 말이죠.”
유현은 권동진의 말을 끊었다. 권동진은 일순 몸을 움찔 떨었지만, 감정을 드러내거나 하지 않았다.
“네. 말씀하시죠.”
“제가 그쪽으로 가면 당연히 조직에 들어가는 거겠죠?”
“허허. 조직이라뇨.”
“하긴. 조직이라는 말은 좀 어감이 그렇군요. 하지만 뭐가 어찌 됐든, 어딘가에 소속된다는 것은 변함이 없지 않습니까?”
“물론 그렇습니다만, 유현 씨는 꽤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실…….”
“그건 저도 압니다. 하지만 그만큼 자연스럽게 조직의 규율에 얽매이겠죠.”
핵심을 찌르는 말에 권동진은 별거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허허. 그거야 조직이라는 것이 응당 그러지 않겠습니까? 얻는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죠.”
“새 발의 피, 말이죠?”
그 설명을 가만히 들으면 들을수록, 유현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았다.
국회 의원 권동진. 그가 대체 어떤 목적으로 자신을 찾아왔는지, 그 속내가 적나라하게 보였다.
“그러셨구나.”
유현의 얼굴에 참을 수 없는 유열의 미소가 맺혔다.
‘아.’
조금 떨어진 곳에서 곁눈질로 그 모습을 보던 백서련은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또 그 미소다.
저렇게 된 이상, 유현은 누구도 못 말린다.
“권동진 의원님의 말씀, 아주 잘 들었습니다.”
“그런가요?”
“제안은 고맙지만, 역시 그건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군요.”
유현의 거절에 권동진의 표정에 처음으로 금이 갔다. 그의 눈동자는 처음부터 호의적이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조금 전보다 훨씬 더 매서워졌다.
괜히 국회 의원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 아니었다. 정치인으로서 노련한 기세가 컬렉터도 되지 못한 일반인인 그에게는 있었다.
“어째서죠?”
“저는 말이죠, 조직의 위상이니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니, 다 좋다고 생각합니다. 다 좋죠. 다 좋은데…… 딱 하나. 그 딱딱하고, 권위주의적인 분위기가 마음에 안 든단 말이죠.”
“……아이고. 권위주의적이라니.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본인의 조직에 권위를 내세우는 문화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자신이 그 주역이 아닐까 고민해 보는 걸 추천하죠.”
권동진의 행동은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가 사무실에 없을 때 멋대로 방문한 것도 그랬다. 분명 백서련이 말렸겠지만, 그는 자신의 직위를 들먹이며 유현이 올 때까지 일부러 사무실에 머무는 걸 택했다.
그가 찾아오자 자신이 대단한 사람임을 내세웠고, 곧바로 자리를 옮기자고 전했다. 그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그의 권위의식이 담겨 있었다.
유현의 직설적인 말에 권동진은 당황스러웠다. 설마하니, 그가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몰랐던 탓이었다.
“대체, 어디서 뭘 듣고 찾아왔는지는 모르겠는데. 저를 그쪽이 바라는 ‘법의 테두리’에 넣으려는 짓은 뻔히 속이 보이니, 그만두라고 하고 싶군요.”
“…….”
거기까지 말하니, 권동진은 더 이상 웃지 못했다. 그가 유현을 찾아온 목적이자, 절대로 드러나서는 안 될 이유가 유현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유현은 권동진을 보며 눈을 차갑게 빛냈다.
“제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나요?”
물론, 보통은 모를 법도 했다. 어리숙한 사람이라면 권동진의 말에 쉽게 휘둘렸을 것이다. 그가 지니고 있는 권력, 사회적인 위엄, 그와 손을 잡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다양한 혜택까지.
모든 것들이 사람의 마음을 흔들기 충분했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나한테는 전부 필요 없는 것들인데.’
필요가 없지는 않았다. 다만, 굳이 손을 잡으면서까지 얻을 필요는 없었을 뿐.
그 모든 것들은 ‘일반 사람’에 한해서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유현은 거기에 현혹되지 않았다. 유현은 처음부터 권동진을 믿지 않았다.
“누구 사주입니까?”
“그게 무슨 소리인지…….”
“제가 많이 거슬렸나 보군요. 인간도 아닌 녀석이 인간 행세를 하면서 설치고 다니니, 여간 고깝게 보였나 봅니다. 이렇게 심부름꾼을 시킬 정도로 말이죠.”
“심부름꾼이라고요?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이런. 지나치게 들렸습니까? 이거, 참. 죄송하네요. 최대한 점잖게 말한 것이 이 정도라서 말이죠.”
웃으며 속을 박박 긁는 유현의 말에 권동진은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강유현 텔러. 지금 저랑 말장난하자는 겁니까?”
“그렇게 보였습니까?”
“그냥 싫다면 싫다고 말하면 되는 걸, 꼭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가 있었냐는 겁니다.”
“네. 그럴 필요가 있습니다.”
유현의 당당한 말에 권동진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설마, 그가 이렇게까지 직설적으로 나올 줄은 그도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이런 젠장. 고작 텔러, 그것도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라면서.’
권동진은 속으로 자신에게 제안을 부탁한 얼굴을 떠올리며 욕지거리를 씹어 댔다. 그 또한 부탁받은 이상으로 유현의 존재가 거슬리기는 했다.
감히 텔러가, 인간의 흉내를 낸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가 유현을 찾아온 이유는 간단하다. 그에게 동업을 제안하며 조직으로 끌어들이고, 천체주식회사와의 커넥션을 늘리며 강유현 텔러가 함부로 설치고 다니지 못하게 만들 심산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유현은 이미 권동진의 등장과 동시에 이런 내력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그냥 물러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정말 듣던 대로 예의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텔러로군.”
유현이 이쪽을 대놓고 적대하니, 권동진도 결국 본색을 드러냈다.
그 또한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에서도 이름 높은 의원인 자신이 찾아왔는데, 매니지먼트 대표라는 인간은 제대로 대접도 안 하고, 저 시건방진 텔러는 마치 자신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행동했으니까.
나는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이 뼛속까지 틀어박힌 권동진에게는 그런 자그마한 행동이 버릇없게 다가왔다.
“자네가 텔러라는 지위를 이용해 누군가를 폭행하는 걸, 국회 의원인 내가 가만히 두고 볼 거라고 생각했나?”
“오호. 그 이야기를 들은 걸 보니, 클랜의 사주를 받으셨군요?”
“……착각도 유분수지!”
“당황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도 다 알고 있거든요. 음, 어디 보자. 대충 몇몇 클랜이 동시에 부탁을 해 왔겠네요. 한 곳은 한울이고, 다른 곳은 또…… 황혼의 장막인가? 그 밖에 몇몇 후보들도 떠오르고요.”
“너…….”
권동진은 혹시 자신의 정보가 바깥으로 새어 나간 게 아닌가 불안감이 들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유현이 저렇게 다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는 유현이, 조금 전까지 자신의 책을 훑어봤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백화 매니지먼트를 그냥 건드리기 힘드니, 이제는 정치인까지 엮어서 뭘 어떻게 해 보겠다. 이거 아닙니까? 정말 속이 뻔히 보이는 행동이군요. 구역질이 날 정도입니다.”
“입 조심하게. 고작 텔러 따위가 감히 함부로 말해도 된다고 생각하나?”
“텔러니까 더욱 가감이 없는 겁니다. 그러면 제가 묻죠. 고작 국회의원 ‘따위’가 텔러인 제게 무슨 제재를 할 수 있죠? 당신 인간의 법으로, 제게 모욕죄로 고소를 하기라도 할 겁니까? 텔러인 제게?”
“……자네가 계속 그렇게 하면 백화 매니지먼트는 멀쩡할 줄 아나? 우리가 텔러인 자네를 건드리지 못한다 해서, 다른 것까지 못 할 거라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아.”
“큭큭. 이제야 제대로 나오는군요. ‘주위 사람을 인질로 삼는다’라. 딱 국회 의원다운 발상이라 좋습니다.”
“감히 의원을 욕보이는 건가? 우린 정의를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이야! 이 나라에는 이 나라의 법이 있고, 그걸 따르지 않는 텔러 나부랭이인 네가 악이라고!”
권동진은 조금 전부터 유현의 살살 긁어 대는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것이, 그나마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지닌 그의 마음을 제대로 건드리는 것으로 폭발하고 말았다.
권동진이 씩씩거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유현은 살짝 나른한 눈빛으로 말했다.
“앉으세요.”
“네까짓 게 무슨…….”
“앉으라고.”
순식간에 주위 분위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권동진은 전신에 소름이 내달리며 두 다리에 힘이 빠지는 걸 느꼈다.
유현의 시선이 자신의 피부 위로 쏟아지는 것을 느끼는 순간부터 탈력감이 밀려왔다.
그가 힘없이 의자에 털썩 앉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그의 보좌가 나섰다.
“멈춰라.”
“거기까지예요.”
그 보좌를 막아선 것은 강혜림과 권지아였다. 보좌도 일반 사람이 아닌 컬렉터라 하지만, 이 두 사람을 상대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방해꾼은 사라졌다. 유현은 양손으로 깍지를 끼며 큭큭 웃었다.
“뭐, 뭐가 그렇게 웃기지?”
“본인 스스로가 정의를 위해 행동한다고, 떳떳하게 믿고 있다니. 그거참 재미있는 말을 하시는 거 같아서요. 보통 정의롭다는 인간이 다른 사람의 사주를 받고 뻔뻔하게 남을 협박을 하나?”
“네까짓 것이 정의에 대해서 뭘 알고 그렇게 멋대로 떠드는데!”
“글쎄요. 저는 딱히 그 기준을 잘 알지 못해서 말이죠. 하지만 당신이 그렇게 말하는 정의니, 선악이니 하는 걸 아주 잘 아시는 분들은 알죠.”
“뭐?”
“그렇지 않습니까? 성령님들?”
유현은 허공에 대고 그렇게 말했다. 각성조차 하지 못한 일반인인 권동진은 유현이 지금 뭘 하려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 명. 그의 보좌로 온 남자는 순식간에 사색이 되었다.
“의, 의원님!”
보좌의 시선에는, 이미 권동진의 추태를 모두 목격한 성령들이
무서운 기세로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