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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105화 (105/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105화

평일에도 협회를 오가는 컬렉터들은 많았다. 최근에 새로운 컬렉터 수료생들이 대거 사회로 나온 탓에 협회는 이전보다 훨씬 더 생동감을 띠고 있었다.

새로운 동료와 파티를 짜는 신입들, 언제나 같은 파밍을 위해 적당한 사상세계를 훑는 자들, 그런 컬렉터들을 보좌하는 사람들까지.

상당히 붐비는 내부를 보니, 아무래도 정산받으려면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았다.

“잠시 앉아서 쉴까요?”

“그러지.”

둘은 대기표를 뽑아 놓은 뒤, 협회 내부에 안치된 의자에 앉았다.

“아. 혹시 기다리는 동안 심심하니, 커피라도 드실래요?”

“커피? 어차피 사무실에서도 마실 수 있는 거 아닌가.”

“사무실 커피랑 여기랑 다르니까 그렇죠.”

백서련이 들으면 분통을 터뜨릴 말이었지만, 사실이었다. 아직도 자린고비 마인드를 벗어던지지 못한 백서련은 돈이 생겨도 함부로 쓰지 못했다.

이번에 꽤나 거금을 벌었음에도 사무실의 커피는 여전히 믹스 커피. 그나마 위안인 점은 타 먹는 녹차가 추가됐다는 것 정도다.

사무실의, 정확히는 백서련의 재정 상태를 떠올린 권지아는 괜히 머쓱한지 애먼 창밖을 바라봤다.

정문 바깥에서는 한창 시위가 벌어지고 있을 테지만, 협회 건물 안쪽에서는 그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다. 협회의 부지가 워낙 넓은 탓에 소리조차 이곳에 닿지 않았다. 사실상 다른 세계라고 봐도 좋았다.

“672번 고객님!”

“아. 저희네요. 가죠.”

“그러지.”

최근 부쩍 바쁜 일 때문에 눈가에 피로감이 깃든 안내원이 둘을 맞이해 줬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아. 이번에 사상세계 두 개를 클리어 했거든요. 그 보상을 받으려고요. 겸사겸사 저희 컬렉터의 등급 상승 신청서도 제출할까 해서요.”

딱히 숨길 것도 없어서 유현은 고저 없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듣는 상대에겐 전혀 그렇게 다가오지 않았다.

“네? 그게 무슨…….”

안내원은 뒤늦게 유현의 모습이 어딘가 낯익다는 것을 느꼈다. 어디서 본 사람 같은데? 그리고 이내 얼마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 걸 들은 그녀는 결국 유현이 누구인지 깨닫고 말았다.

“아!”

안내원은 뒤늦게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 표정 관리에 들어갔지만, 이미 그녀의 격한 반응은 주변의 시선을 모은 뒤였다.

“뭐야?”

“무슨 일이지?”

“아…….”

안내원은 어쩔 줄 몰라 눈을 굴렸고, 유현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권지아만이 주변에 시선에 별로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이 따분한 과정이 빨리 흘러가길 바랐다.

한 번 모인 시선은 쉽게 흩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권지아는 모인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빨아들일 정도의 미인이었다. 컬렉터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유현과 권지아에게 맴돌았다.

[킥킥. 귀찮게 됐네.]

이 상황 자체가 어딘가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말하는 백련. 유현은 속으로 시끄럽다고 전해 준 뒤, 안내원을 독촉했다.

“빨리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아, 넵! 아, 알겠습니다!”

이런 일이 처음인지, 안내원은 더욱 긴장한 듯 큰 소리로 말했다. 본인은 그것이 사람들의 시선을 더 모을 거라는 걸 모르는 걸까? 유현은 아픈 머리를 감싸 쥐고 싶은 기분이었다.

주위에서 수군거리는 소리. 컬렉터 중 일부, 나름 소문에 귀가 밝은 몇몇은 유현을 알아본 듯했다.

“저거. 백화 매니지먼트 사람 아닌가?”

“뭐야. 검후 말고 새로운 사람을 뽑았나 본데?”

“그럼, 여기 찾아온 이유는 뭐지? 설마, 또 사상세계 관련인가?”

그들의 의심은 유현이 등급 상승을 위한 신청서를 받았을 때 확신으로 변했다.

곳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란이 커졌다. 하지만 유현에게 접근해서 시비를 건다거나 말을 거는 사람들은 없었다.

요즘 분위기가 뒤숭숭한 것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유현의 곁에 선 권지아의 존재감 때문이었다.

‘저 컬렉터는 누구지? 처음 보는데.’

‘와 씨. 엄청 예쁘다. 검후랑 거의 맞먹는 거 같은데?’

‘백화 매니지먼트에서 새로 뽑은 건가? 아마 그런 거 같은데, 보아하니 이번에 수료식 끝낸 신입 같지?’

‘분위기는 전혀 신입이 아닌데?’

시선은 시선을 모으고, 그것은 마치 잔잔한 물결에 파문을 그리듯 퍼져 나갔다.

협회 건물의 2층. 중앙이 내려다보이는 테라스 쪽에서 동료들끼리 수다를 떨고 있던 5명의 컬렉터 또한 그 광경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야, 지유야. 봐봐. 저기 무슨 일 생겼나 보다.”

“아. 뭐가?”

컬렉터 김지유.

노랗게 염색한 머리와 일견 화려해 보이는 외모. 그녀는 이제 막 컬렉터 양성소를 졸업한 수료생 중 하나였다.

자신 친구의 말에 폰만 뚫어지라 보고 있던 그녀는 조금 짜증 어린 목소리로 대꾸하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향했다.

그녀는 사람들의 이목을 모으는 한 남녀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뭔데?”

“몰라. 그런데 주변에서 뭐라 하는 거 보면, 좀 유명한 사람들인가 봐.”

“유명하긴 무슨…….”

김지유는 관심을 끄려다가 순간이지만, 이쪽에 얼굴을 보인 권지아를 발견하고는 눈을 크게 떴다.

“어, 뭐야. 쟤, 걔 아니야?”

“걔가 누군데?”

“왜, 그 있잖아. 그때 그 싸가지 없는 년.”

“아. 걔? 이름이 뭐라 했지?”

“권지아.”

“맞다. 그랬었어.”

권지아를 알아본 김지유는 더욱 기분이 팍 상하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오장육부가 뜨겁게 불타올랐다.

옆에서 떠들던 동료는 김지유가 상당히 저기압임을 깨닫고 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야 그럴 것이 김지유는 양성소 내부에서 권지아와 악연으로 엮인 사이였기 때문이었다.

권지아가 먼저 시비를 건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성향상 타인을 그저 개, 닭 보듯 보기만 했다. 중요한 건 자기 잘난 대로 살고 자존심이 강한 김지유가 권지아에게 제멋대로 열등감을 품었을 뿐.

“아. 존나 짜증나.”

김지유는 컬렉터가 되기 전부터 나름 화려한 삶을 살았다. 화려한 외모를 지녔고, 꾸밀 줄 알아서 자연스레 사람들의 관심과 시선을 모았다.

그것은 컬렉터로 각성하고, 양성소에 들어갔을 때도 그랬다. 남자들은 항상 그녀에게 다가와 어떻게든 잘 보이려고 애를 썼고, 그녀는 그런 대접을 즐겼다.

반면에 권지아는 어둡고 음침했다. 주위에서 저런 사람이 있는지도 잘 모를 정도로 존재감이 희미했다.

김지유에게 권지아는 괴롭히기 좋은 대상에 지나지 않았다. 실제로 그녀는 양성소 초기에 권지아를 자주 괴롭혔었다. 잡일을 시키거나 면전에 욕설을 퍼붓거나 뺨을 때리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권지아가 변했다.

김지유는 그것이 막 회귀를 했을 때라는 걸 몰랐다.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다만, 권지아가 평소와 다르게 어딘가 달라졌다고만 여겼을 뿐.

김지유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짜증 나는 훈련 때문에 화장이 지워져서, 그 화를 권지아에게 풀려고 했다. 만만하니까. 때려도 좋으니까. 그래서 권지아에게 손을 휘둘렀다.

그때 권지아가 김지유의 손목을 강하게 잡았다.

‘죽고 싶나?’

처음이었다.

언제나 좋은 대접만 받고 온 김지유에게 수백 번의 회귀를 일삼은 회귀자의 살기는 상식을 뛰어넘는 공포였다. 그렇게 김지유는 입에 거품을 물고 기절했었다. 꼴사납게도.

‘하, 씨.’

그때의 수치심을 떠올린 김지유는 입술을 꽉 오므렸다.

복수를 생각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그래서 좀 적당한 녀석 시켜서 손 좀 보게 만들려고 했는데.’

김지유는 자신이 저런 녀석에게 겁을 먹었다는 것과 그리고 쪽팔리게 기절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고고한 귀족이 한낱 노예에게 겁을 먹어선 안 됐다.

그녀는 자기를 따르는 남자 무리 중 한 명을 시켜 권지아와 싸움을 붙이게 만들었다.

김지유에게 푹 빠진 남자는 그러겠다고 했다. 그는 훈련소 내부 평가에서 상위권을 차지했다. 당연히 하위권에 머무는 권지아가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김지유는 권지아가 볼품없이 망가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결과는 그 반대였다.

권지아가 보란 듯이 자신보다 등수가 훨씬 더 높은 상대를 쓰러뜨렸다. 그냥 쓰러뜨린 것도 아니고 개 박살을 내버렸다. 이빨을 깨부수고 뼈를 부러뜨리고, 근육을 파열시켰다. 회복력이 뛰어난 컬렉터인데도 전치 6주가 나왔다.

내부에서 벌어진 싸움은 교관들의 귀에도 들려왔고, 당연히 싸운 당사자들은 퇴소 조치가 취해질 뻔했다. 또 거기서 권지아가 무슨 짓을 한 건지, 해당 사건이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그 이후로 김지유는 두려움에 떨며 권지아를 피해 다녔다.

김지유는 권지아에게 관심을 끄기로 했다. 어차피 쟤는 밖에 나가도 안 될 거라고, 반대로 나는 나가자마자 바로 화려하게 성공해서 유명인이 될 거라고 정신 승리를 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녹록지 않았다.

‘왜! 내가 그딴 녀석들보다 못한 게 뭔데!’

언제나 남들에게 대접만 받고, 타인의 호의만 이용했던 그녀는 스스로 뭔가를 제대로 한 적이 없었다. 애초에 뭔가를 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컬렉터라면 결국, 사상세계에 들어가 싸워야 했다. 김지유는 그 싸우는 것 자체를 꺼렸다. 싸울 줄도 몰랐고, 싸우려 들지도 않았다. 자기 대신 남들이 대신 싸워 주길 바랐다.

대접만 받으면서 큰 탓에 그녀는 자립심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어떤 매니지나 클랜에도 소속되지 못했다. 그것도 모자라 무능하다는 딱지마저 붙고 말았다.

김지유는 그녀가 여태까지 깔보고, 우습게 보던 무소속 하급 컬렉터가 되고 만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 김지유는 모두의 시선을 받고 있는 권지아를 발견했다.

‘뭐야. 뭔데, 쟤는 왜 저런 곳에 있는데!’

핸드폰을 쥔 손에 자기도 모르게 힘이 가해졌다.

‘쟤가 왜 나보다 더 성공한 건데!’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권지아의 모습을 보니, 배알이 꼴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녀가 그토록 무시하고 깔보던 권지아는 성공하고, 정작 자신은 아무 곳에도 스카우트 제의를 받지 못한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김지유를 더욱 분노케 한 것은 바뀐 권지아의 외모였다.

양성소 내부에서는 정리도 안 한 머리를 길게 길러서 꼴불견이었던 그녀는 그야말로 눈이 확 뜨이는 미인이 됐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김지유는 자신의 마음속 어딘가에서 권지아가 훨씬 더 예쁘다는 걸 납득하고 있었다.

“아, 진짜 짜증 나네.”

김지유의 목소리에 음습한 진흙 같은 감정이 서렸다.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 쟤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옛날이었으면 내 눈도 못 마주쳤을 년이, 감히?

화가 난다. 질투심이 난다. 지금 당장이라도 저기에 있는 권지아를 구렁텅이 아래로 끌고 내려가고 싶었다.

권지아에게 느낀 두려움은 시간이 충분히 흘러 시간 속에 풍화된 뒤였다. 지금 새롭게 고개를 드는 감정은 격렬한 질투심이었다. 그녀는 치밀어 오르는 어두운 속내를 숨기려 들지 않았다.

‘응?’

문득 김지유의 시선에 권지아와 대화를 나누는 한 남자의 모습이 잡혔다.

부드러운 인상의 미남이었다. 길을 가다 보면 한 번 정도는 혹해서 빤히 볼 법한 외모다.

‘동료인가?’

말끔하게 차려입은 모습을 보니, 권지아를 영입한 매니저인 것 같았다. 그런데 검을 차고 있다. 권지아의 것을 대신 들어준 건가?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녀는 자신이 기특해서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 씨익 웃었다.

“야.”

“어? 왜?”

“우리. 권지아 저년 물 먹이자.”

“뭐? 진심이야?”

“야. 내가 장난으로 뭐 하자고 한 적 있어? 솔직히 권지아 저년. 예전부터 재수 없지 않았냐? 너희도 그때 그랬잖아. 쟤, 혼쭐 한번 나야 한다고.”

“아니 뭐, 그러긴 했는데.”

김지유의 친구인 여성 컬렉터는 대충 맞장구 쳐줬지만, 그녀의 속마음은 달랐다.

‘지랄. 자기 멋대로 덤비다가 코 깨졌으면서.’

물론, 그녀는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김지유가 무능해도 외모는 뛰어나서, 주위에 남자들이 자주 꼬였으니까. 당연히 그 덕을 많이 본 그녀는 김지유가 좀 꼴사나워도 참고 지낼 만했다.

“그런데, 어떻게? 뭐, 방법이 있나?”

“됐으니까, 할 거야 말 거야?”

“하지, 뭐.”

“너희들도?”

김지유의 시선을 받은 나머지 셋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다 고개를 끄덕였다.

“어? 어.”

“그러지, 뭐.”

“좋아. 그러면 됐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너희는 적당히 호응만 해. 알았지?”

쟤는 또 무슨 생각일까. 모두가 김지유의 행동에 그런 의문을 품으면서도, 딱히 말리려고 들지 않았다. 그야 그럴 것이 그녀들 또한 권지아의 모습에 적지 않게 질투심이 든 탓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김지유 패거리는 1층 로비로 향했다. 컬렉터들은 조금 전까지 유현과 권지아에게 관심을 가졌지만, 별다른 일이 없자 자연스레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주위의 시선이 사라진 걸 깨달은 김지유는 행동으로 들어갔다.

때마침 유현이 주문한 커피를 한 손으로 들고 오는 도중이었다. 김지유는 이쪽으로 발걸음을 향하는 유현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갔다.

김지유는 유현과 자연스럽게 스쳐 지나간 뒤, 모두에게 들으라는 듯 크게 소리 질렀다.

“꺄아악!”

비명이 모두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2층, 3층 난간에서도 무슨 일인가 싶어서 이쪽을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뭐야? 또 뭔데?”

“저기 무슨 일 생긴 거 같은데?”

김지유는 이때다 싶어서 유현을 가리키며 외쳤다.

“이, 이 사람이 지금 저를 만졌어요!”

“뭐?”

“지나가는데, 갑자기 제 엉덩이를…… 흐윽!”

김지유가 울먹이며 말하자 사람들의 시선이 유현을 향했다. 갑자기 벌어진 일에 유현은 김지유를 슬쩍 보고는, 전혀 울지 않는 그녀의 눈빛에 눈을 가늘게 뜨며 속으로 헛웃음을 터뜨렸다.

‘갑자기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은데.’

유현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재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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