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 돌아가다 (1)
“괜찮을까요?”
“으음, 별일이야 있겠어?”
“하지만, 좀 그렇잖아요. 어떻게 사람이 밖에 한 발자국을 안 나오지? 식사는 어떻게 하고?”
“밤이나 새벽에 나오나 보지.”
“그게 더 문제 아니에요? 안 그래도 주변 지나갈 때마다 무서운 소리가 난다고 하던데, 뭔가 일이라도 생기면…….”
“무서운 소리?”
“아무래도 검 휘두르는 소리 같아요. 애들이 그러더라고요.”
“맞아. 우리 애들도 그랬어.”
“가까이 가지 말라고 해야겠구만…….”
“으음…….”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촌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화제의 인물은 금발의 청년으로, 한 달 전쯤 이곳을 찾은 이방인이었다.
그는 정중하지만 어두운 표정으로 묵을 곳이 필요하다고 말했고, 촌장은 1년 전에 세상을 떠난 노인의 집을 잠시 빌려주었다. 돈은 굳이 받지 않았다.
‘다 같이 어려운 세상이니까.’
왕국끼리의 전쟁이 끊이지 않는 요즘이다.
권력자들 사이 영주전도 심심찮게 벌어졌고, 혼란스러운 틈을 타고 사건을 벌이는 악마들의 소식도 종종 들려온다.
몬스터나 마물 역시 지긋지긋할 정도로 많이 돌아다닌다.
그런 와중에 찾아온 아들뻘도 안 되는, 무언가 슬픈 사연이 있는 듯한 남루한 복장의 여행자에게 뭔가를 요구한다니. 그럴 수는 없었다.
‘가슴속에 무슨 아픔을 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잘 털어 내고 기운을 차렸으면 좋겠구먼.’
그것이 촌장의 바람이었다. 살 만큼 산 늙은이가 젊은이에게 줄 수 있는 배려였다.
허나 이는 자신만의 생각일 뿐. 다른 이들은 대체로 다르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계속해서 우려를 표하던 아낙네 하나가 재차 입을 열었다.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내보내자고?”
“아니, 내보내자는 게 아니라…… 여기서 계속 살 것도 아니잖아요? 마을에서 함께 살 것도 아닌데 언제까지 저렇게 놔둘 거예요? 솔직히, 아무리 오갈 데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한 달이나 묵을 곳을 빌려줬으면 할 만큼 한 거죠. 그렇지 않아요?”
“하지만 집이야 원래 남는 곳이었고…… 애초에 청소도 안 하고 방치됐던 장소인데, 그것 가지고 생색은 좀…….”
“지금 내가 생색내고 싶어서, 돈 몇 푼 못 받아서 이러는 거로 보여요?”
아낙네가 발끈했고, 말을 꺼냈던 나무꾼이 찔끔하며 입을 닫았다.
날카롭게 치켜뜬 눈초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절로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그렇듯 상대가 한발 물러섰지만, 아낙네는 표정을 풀지 않았다. 오히려 쌓여 있던 것을 쏟아 내려는 듯 거침없이 말을 이어 갔다.
“솔직히 말해서 불안해요. 걱정돼요. 내가 나쁜 사람이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아니, 그렇다고 쳐요. 내가 나쁜 사람이라고 쳐. 그래서, 어? 어디서 험한 일 당한 것 같은 청년 매몰차게 쫓아내는 거라고, 그런 거라고 쳐. 근데, 그래서 우리 마을이 안전해지면 그냥 내가 욕받이 할게요.”
“…….”
“만약에 저 양반이 흉악한 도적놈이면 어떻게 할 건데? 얌전한 척하다가 밤에 목책 문이라도 몰래 열고, 그 사이에 도적 떼가 들이닥치면, 어?”
“저기, 그건 너무 과한…….”
“뭐가 과해요? 다들 요술이라도 배웠어? 대충 겉보기에 착해 보인다고 진짜 착한 줄 알아? 아닐 수도 있다고, 아닐 수도. 아니, 설령 진짜 선한 사람이 맞다고 해도 위험할 수 있다니까? 어디 쓰레기 같은 귀족이나 용병대에 쫓겨 다니는 처지기라도 하면, 그때도 사정 차근차근 들어준 다음에 팔 걷어붙이고 도와줄 거예요? 그게 도리니까?”
“…….”
“…….”
“다들 정신들 좀 차려요. 애초에 받아 주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였다고.”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나무꾼도, 촌장도. 그 밖에 금발 청년에게 측은한 마음을 품었던 몇몇 이들도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아낙네의 말이 맞았다. 그들은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다.
꿍꿍이를 숨긴 나쁜 사람일 수도 있었고, 좋은 사람이지만 위험한 사람일 수도 있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쫓겨 다니는 처지라고 한들, 그 문제를 해결해 주면서까지 선의를 베풀 준비가 되어 있는가?
마을 사람들은 자문했고, 마음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청년 쪽이 문제라는 생각도 들었다.
더 살가운 태도를 보였더라면. 조금이라도 교류할 의지를 보였더라면. 그게 아니라면 약간의 성의라도 보였더라면. 이렇게까지 분위기가 나빠지진 않았을 터였다.
“……조금만 더 이야기를 해 볼까.”
내내 말을 아끼던 중년인 하나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낙네의 말에 반박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그는 처음부터 청년에게 머물 것을 내주는 게 싫었다. 그냥 싫었다.
다만, 그러한 자신의 마음을 최대한 숨기고 싶었다. 나쁜 사람이 되긴 싫었으니까. 조금 더 고민하는 척을 하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도 어느 정도 비슷한 생각을 품었다.
그렇듯 회의에 참석한 마을 사람들은 천천히, 그러나 착실하게 금발 청년을 추방하는 쪽으로 의견을 몰아갔다.
그때였다.
“잠깐만 기다려 보십쇼.”
불쑥 모습을 드러난 사내 하나가 회의에 끼어들었다.
부리부리한 눈매와 덥수룩한 수염, 장대한 골격과 몸 곳곳이 박혀 있는 커다란 근육.
장내가 꽉 들어찬 듯한 존재감에 대부분이 눈을 피했다. 엮이기 싫어하는 티가 역력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냥 일을 하는 저 사내는 여러모로 상대하기 힘들다.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주눅이 든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아낙네가 눈에 힘을 잔뜩 준 채 그를 쳐다봤다.
“뭘 기다려요?”
“쫓아내는 거.”
“그니까 뭘 기다리냐고. 이미 정해졌는데.”
“지금 정하지 말고, 얘기라도 해 보자고.”
“얘기는 무슨 얘…….”
“여기서 말이야.”
사냥꾼이 말을 끊었다. 그러자 분위기가 더욱 무겁게 바뀌었다. 곧바로 뭐라 쏘아붙이려던 아낙네도 하려던 말을 삼켰다.
사내는 그런 그녀를 더 자극하지 않았다. 대신 좌중을 돌아보며 하나하나 시선을 맞춘 뒤, 약간의 화를 담아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의 선의에 기대 보지 않은 사람, 한 명이라도 있어?”
“…….”
“없겠지. 이 마을에 있으면 그럴 수밖에.”
사냥꾼의 묵직한 저음에, 모두가 시선을 아래로 깔았다.
그렇다. 지금 그는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너무나도 뻔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 마을의 주민들은 모두가 누군가에게 빚을 졌다.
대가 없는 선의를 통해 재기에 성공했고, 안정을 이루었다. 험난하기 그지없는 세상 속에서 그럭저럭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그럼, 내가 지금 가 보도록 하지.”
“…….”
“남작님이라도 그럴 거야.”
할 말을 마친 사냥꾼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몸을 돌렸다.
금발 청년의 거처로 향하는 그의 머릿속에는, 그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과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고 있었다.
‘영주님이 아니었다면, 난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용병대에서 질 나쁜 짓을 하고 있었을 수도 있고, 도적단에 들어가 쓰레기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죽었을 수도 있다. 뭐가 됐든 지금만큼 행복하지는 않을 터였다.
그것이 사냥꾼이 청년에게 찾아가는 이유였다.
자신을 일으켜 세운 선의.
자식을 잃은 충격에 잠겨 세상 전부를 증오하던 자신에게 내려온 한 줄기 구원과, 그로 인해 시작된 새로운 행복.
금발의 청년도 그럴 수 있었다. 그렇게 만들 것이다. 남작께서 그러했듯, 자신 역시 선한 영향력을 세상에 퍼뜨릴 것이다.
그런 생각을 품자 기분이 좋아졌고, 어서 청년의 집으로 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그의 고충을 듣고, 무거운 짐을 나눠 들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목적지에 도착한 사냥꾼은 거처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
이상한 일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마주친 청년의 얼굴은, 분명 낯설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른 마을 주민들과 달리 그는 사냥터 임시 거처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이러저러한 일이 있다는 것만 들었을 뿐, 이야기의 당사자와 직접 마주치는 것은 처음이었다.
헌데, 상대의 눈빛이 묘했다.
마치 오래전부터 자신을 아는 듯한 분위기.
아니, 그것을 넘어 자신에게 적대감을 가진 듯한 느낌.
추측이 아니었다.
확신이었다.
아니, 그보다 거대한 두려움이 사냥꾼을 압박했다. 근육이 뭉개지고 뼈가 바스러질 정도로 무거운 감정이 그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돌아가시죠.”
후욱
잠시 후, 청년의 시선과 그에 따른 압박이 거두어졌다. 지그시 눈을 감은 그의 모습이 어딘가 먹먹하게, 쓸쓸하게 느껴졌다.
허나 사냥꾼은 이를 겨를이 없었다.
식은땀을 줄줄 흘리던 그는 온 힘을 다해 청년의 집으로부터 멀어졌고, 숨을 몰아쉬었다.
터질 듯 박동하는 심장을 가라앉히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도대체 뭐지? 왜?’
영문을 모르겠다.
자신은 청년에게 밉보일 짓을 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저런 괴물 같은 존재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졌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아직 청년이 싫어할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으니까. 그보다 조금 더 과거를 살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아이른 파레이라는 그를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이라고 해도 도저히 사냥꾼을 용서할 수 없었다.
아직도 눈에 선했다.
도끼날을 들이댔던 모습도.
따지듯이 사건의 경위를 물었던 모습도.
모든 진실을 알게 된 후에, 비겁하게 은인의 마지막을 외면했던 모습도.
“가스코 영지.”
비로소 자신이 어디 있는 건지를 깨달은 아이른이, 전생을 떠올리며 감정을 꾹꾹 내리눌렀다.
* * *
이그넷 크레센시아를 구하기 위한 여정에 나섰을 때, 아이른 파레이라의 마음속에는 악마를 향한 증오만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허나 그러한 마음은 점차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바뀌었다. 정확히는 분노가 향하는 대상이 달라졌다.
인간.
선의에 선의로 응하기는커녕, 악마보다 끔찍한 마음으로 다가왔던 이들.
비단 소매치기 소년을 해쳤던 이들만이 아니었다. 여정을 이어 가는 동안, 아이른은 정말로 끔찍한 일들을 많이 겪었다.
친자식을 헐값에 팔고 희희낙락하는 부부와.
사람 목숨을 빵 한 쪽보다도 가벼이 여기는 이들.
재미로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들.
세상은 영웅의 생각보다 훨씬 어두웠다.
선의에 선의로 보답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자신의 전생만 해도 그랬다.
카렌 윈커는 영지민을 위해 가족을 희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반당했다.
그를 아버지처럼 존경했던 이들 중 누구 하나 따라나서는 이가 없었다. 보장받은 50년의 안전을 잃을까 전전긍긍할 뿐이었다.
그 사실이 아이른을 괴롭게 했다.
화를 더욱 뜨겁게 만들었고, 슬픔을 더욱 먹먹하게 만들었다. 지난 몇 년간 심상 세계에서 해 왔던 노력이 모조리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저벅 저벅
“…….”
그렇듯 번뇌하는 그의 귓가에, 누군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른이 문 쪽을 향해 시선을 보냈다.
누굴까.
사냥꾼일까? 아니다. 그의 발소리는 아닌데.
‘상관없어.’
그렇다. 누구라도 상관없었다. 들여보내지 않을 것이다.
가스코 영지의 누가 됐든, 지금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올 수 있는 이는 없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상대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아이른은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카렌 윈커.”
“내 이름을 아나? 마을 사람들에게 들었나 보군.”
젊은 시절의 전생이,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