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219화 (219/388)

◈ 75. 베어야 할 것은 (2)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아이른의 하루는 똑같았다.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고, 물을 베기 위한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검을 휘두른다.

실패하면?

위의 과정을 반복한다.

물론 아직까지 성공한 건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애초에 빠르게 깨달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던 적도 없었을뿐더러, 지금의 장소가 수련하기에 썩 괜찮은 곳이라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당연하지. 반쯤은 내 염원으로 이루어진 요술 세계니까.’

물을 베고 싶어 하는 자신의 의지에 맞게, 이곳은 온통 물로 가득 차 있다.

발치에도, 하늘에도, 그야말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물이다.

물론 나머지 반은 악마의 악의가 담겨 있다 보니, 찝찝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 정도는 견딜 수 있다.

전생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신념이 마기가 침범하는 것을 막아 주고 있었다.

“좋아. 다시 힘내자.”

아이른 파레이라가 중얼거렸다. 할 수 있다는 믿음이, 근성이 그에게 힘을 주었다.

광대 악마는 움직이지 않았다.

수면 아래 가라앉은 채, 조용히 그를 지켜볼 뿐이었다.

* * *

조금 더 많은 시간이 흘렀다.

아이른 파레이라는 여전히 검을 휘둘렀다. 허나 여전히 물을 베어 내지는 못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안 관주도 말하지 않았는가. 이를 깨닫는 건 결코 쉽지 않을 거라고.

아이른은 조급해지려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천천히 숨을 들이마신 뒤, 깊게 내뱉었다.

문제는…….

이러한 행위를 할 수 있는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투두두두두둑-!

투둑, 투둑, 두두둑!

언제부터인가 더욱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

태풍이 온 듯 시야를 가리는 것도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지만, 그것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수면이 예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다는 부분이다.

종아리를 넘어, 허리를 넘어, 이제는 가슴에까지 닿을 지경.

불쾌한 기분을 느낀 아이른이 더 세차게 검을 휘둘렀다.

쒜에엑-

촤아아아아아-!

이번에도 실패였다.

아이른은 가슴속에 무언가가 맺히는 듯한 기분에, 또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치 무언가를 토해 내려는 듯이.

“후우우우…….”

그러나 흘러나오는 것은 숨결뿐.

먹먹하면서도 답답한 무언가는 여전했다.

……그는 한 차례 고개를 흔들어 물기를 털어 낸 뒤, 다시 검을 휘둘렀다.

물론 효과는 없었다. 계속해서 내리는 비가 그의 피부를 타고 흘러내렸다.

광대 악마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씩 높아지는 수면 밑에서,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았다.

* * *

더, 더 많은 시간이 지났다.

더는 숨을 쉴 수 없었다. 머리끝까지 차오른 수면은 아이른으로부터 호흡의 자유조차 박탈했다.

생명에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목숨을 잃을 때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어둠을 받아들이는 순간뿐.

애초에 요술과 마기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상식을 논할 수는 없었다.

허나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고 해서 괜찮은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아이른은 계속해서 치밀어오르는 감정에, 거칠게 검을 휘둘렀다.

부우웅-!

부우우웅-!

전보다 훨씬 강맹한 공격!

허나 물을 베어 내는 건 여전히 불가능했다. 거대한 힘을 통해 잠시 밀어내 봐도 그뿐.

순식간에 밀려오는 물줄기에 아이른은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럴 수 없었다.

주변을 가득 채운 물이 그를 방해했다.

자신을 가득 채운 감정이 자신을 괴롭혔다.

언제부턴가 아이른은 물을 베어 내는 것보다, 물을 베어 내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감정에 집중하고 있었다.

언제까지 이 짓을 계속해야 하는 거지?

노력하고 또 노력하면, 거기서 또 한 번 노력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까?

만약에 그래도 안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턱 밑까지 차오른 이 짜증은, 감정은 어떻게 풀어야 하는 거지?

불이 아닌 물처럼 먹먹한 분노가 그의 몸과 마음을 지치게 만들었다.

문제는, 이것보다 더 큰 불안이 그의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여기서,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낸 거지?’

과거를 떠올린 아이른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나약하고 부족했던 자신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었던 요술 결계, 그곳에서 그는 전과 비교할 수 없는 단단한 의지와 뛰어난 검술, 그리고 자신감을 얻었다.

허나 잃은 것도 있었다. 5년, 무려 5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나 버린 것이다.

눈물로 얼룩졌던 동생의 얼굴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 한 곳이 찌르르 울리곤 했다.

그리고 지금, 그러한 일이 똑같이 벌어졌다.

아니, 오히려 더 심했다.

‘……이번에는, 정말로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어.’

부우우웅!

콰콰콰콰콰콰콰!

아이른이 이를 부드득 갈았다. 잔뜩 오러를 끌어올린 그가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일격을 선보였다.

그러나 똑같았다.

조금 더 거칠게, 조금 더 오랫동안 밀려났던 물이 제자리를 찾아오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보글보글……

아이른이 숨을 내쉬었다.

들이마실 수는 없었다. 이미 무언가가 더 들어올 수 없을 정도로 부정적인 감정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마치 이곳을 가득 채운 호숫물과 마찬가지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광대가 비로소 미소를 머금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되겠어.’

악마의 혐오스러운 시선이 아이른을 살폈다. 겉만이 아니라 그의 내면을 속속들이 들여다봤다.

거의 다 왔다. 고일 대로 고인 마이너스의 감정이 그를 더욱 초조하게,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녀석을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가라앉히고 있었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가?

그것은 생각할 필요도 없다.

감정에 매몰된 인간의 최후가 어떤지는 지금껏 수없이 많이 봐왔다.

광대가 더욱 진한 웃음을 보였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끊임없이 검을 휘두르는 젊은 영웅의 모습이 위태롭게 느껴졌다.

고일 대로 고인 수면 아래에서, 광대 악마가 느긋이 때를 기다렸다.

* * *

오랜 세월이 흘렀다.

쏟아지는 빗줄기도 더는 의미가 없었다.

머리를 넘어 수십 미터 위까지 차오른 호숫물의 아래에서, 아이른은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의미 있는 행동인지는 알 수 없었다.

여전히 자신의 검은 허무하게 물살만을 가를 뿐이었고.

여전히 자신의 마음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시간의 흐름에 대한 불안도 마찬가지였다.

최적의 수련 장소라고 생각했던 이곳의 환경은 일 분, 일 초도 빼놓지 않고 자신에게 괴로움을 선사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 건, 아이른에게 남아 있는 것이 노력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부웅!

아픔으로부터 도망쳤던 시절이 있었다.

어린 날의 트라우마를 잊기 위해 자신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고, 영원히 거기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했다.

부우웅!

또다시 찾아온 좌절감에 무너졌을 때도 있었다.

요술 결계 안에서 수백만 번의 검을 휘둘렀음에도 성장하지 못하는 자신에 실망하고, 의심을 키워 갔던 나날이 있었다.

부우우웅!

그러나 아이른은 이겨 냈다.

더는 도망치지 않았고, 더는 숨지 않았다.

두려움과 고난을 피하고자 밑으로 가라앉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고 위로 올라서기 위해 검을 들었다.

그리고 끊임없이 휘둘렀다.

그것이 정답이어서가 아니었다.

그러지 않는 것이 오답이라는 것을, 노력하지 않으면 성장할 기회조차 없다는 사실을 어느 순간부터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도통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포기한다면 거기에서 끝이었다.

가느다랗게나마 이어지고 있던 기회의 실이 끊어질 것이고, 자신은 영원히 이 호수를 빠져나오지 못할 터였다.

수면 아래 갇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할 터였다.

그럴 수는 없었다.

그래서는 안 됐다.

지금까지 아이른 파레이라는 지탱했던 근간이, 그를 멈추지 않고 움직이게 만들었다.

부웅

부우웅

부우웅!

그가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몇 번을 휘둘렀는지, 얼마나 오래 휘둘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마치 영원히 그러고 있을 것처럼 계속해서 휘둘러 댔다.

오로지 검을 움직이는 것에만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러자 초조함의 감정도 더는 밀려들지 않았고.

불안의 감정도, 괴로운 생각도 더는 들어차지 않았다.

수면 위로 올라오진 못했으나 더 밑으로 가라앉지도 않았다.

물이 가득 들어찬 결계의 한가운데서, 젊은 영웅은 하염없이 검을 휘저었다.

광대 악마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때였다.

“……어째서.”

“……?”

“어째서, 어째서어째서어째서쓸데없는노력을하는것이지?”

숨 쉴 틈조차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울려 퍼지는 악마의 목소리.

아이른은 대답하지 않았다.

말할 가치가 없어서는 아니었고, 그냥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로 가득 차서 입을 열 수 없기도 하고.

허나 광대는 이를 자신에 대한 무시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이개같은새끼rk씹어먹어도ahwkfkfvlfaufwksutjrdl감히나를dnfhdgkrhskdmlakfdmfantlgo! 빨리말하란말이다akfgkfksakfdldidj째서그런Tmfepdjqtsmsshfurdmfdldjrkrh있는지!”

아이른이 인상을 찡그렸다.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인간의 언어와 악마의 언어가 뒤섞여 나온 탓이었다.

그가 느낄 수 있는 거라고는 광대가 크게 분노하고 있다는 것과, 조급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

‘왜 저러지.’

고개를 저은 아이른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전과 마찬가지로 검을 휘둘렀다.

자신이 꽤 잘 버티고 있는 것은 맞다.

허나 어디까지나 버티는 수준이다. 여전히 물을 베기 위한 실마리는 찾지 못했다.

포기할 수 없으니 계속해서 움직이는 것뿐.

허나 광대는 뭐가 그리 불만인지 끊임없이 욕설을 내뱉었다. 분노를 표출했다.

물론 타격은 전혀 없었다. 자신이 녀석을 해할 수 없듯, 상대 역시 자신을 해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귀찮기는 했다.

물속임에도 불구하고 귓가를 파고드는 목소리에 아이른이 숨을 내쉬었다.

보글보글, 숨결이 기포가 되어 수면 위를 향해 올라갔다.

그것을 본 광대 악마가 또다시 발광해서 소리쳤다.

우연의 일치일까?

이번만큼은 문장 전체를 명확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넌 못해! 어차피 못 한다고! 물을 벤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넌 절대로 이곳에서 물을 벨 수 없…….”

우뚝

아이른의 신형이 멈추었다.

마치 시간이 정지한 듯, 미동도 하지 않던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광대를 바라봤다.

시선을 마주한 악마가 인상을 찌푸렸다.

“뭐, 뭐야?”

그런 그에게, 아이른이 입 모양으로 말했다.

너.

교묘하게 나를 속였구나?

“……무슨개같은소리를!”

광대의 말이 다시 빨라졌다. 가면 밑으로 흘러나오는 피고름과 악의가 더욱 많아졌다.

검붉게 물드는 호숫물이 질척하게 아이른을 휘감았다.

신경 쓰지 않았다.

과거, 처음 내기 장소로 끌려왔을 때를 떠올린 아이른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베어야 하는 것. 베어야만 하는 것. 그것을 벨 정도가 되어야 이곳을 탈출할 수 있다.’

분명했다.

광대는 자신이 베어야 할 것을 베어야 한다고 말했지, 물을 베어 내야 한다고는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다.

‘생각해 보면, 관주님도 물을 베라는 말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아이른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 것 같았다.

어째서 자신이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는지.

어째서 광대가 그토록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였는지.

지금껏 잘못 알고 있었다. 완전히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비로소 시야가 넓어진 그가 눈을 빛냈다.

‘베어야 할 것은, 물이 아니라…….’

아이른이 자세를 갖췄다.

한결 부드러운 자세로, 한결 편안한 모습으로.

그 어느 때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검을 들어 올린 그의 몸에서, 잔잔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우우우웅……

불꽃처럼 강렬한 기세는 없었다.

그야말로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마스터의 상징인 오러 소드조차 맺히지 않을 정도로 비루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주변을 가득 채운 물.

그것이 아닌, 자신의 마음에 가득 들어찬 감정.

과도한 ‘집착’을 베어 내기에, 이보다 어울리는 검은 없었다.

스윽-

아이른 파레이라의 검이, 호숫물을 가르고 떨어져 내렸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