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 크로노 검술관 (2)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자신을 보고 웃고 있는 우락부락한 사내들을 쳐다보며, 아이른 파레이라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 어이없는 나머지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아니, 그 전에 궁금했다.
눈앞의 거한은 도대체 어떻게 자신이 크로노 검술관에 볼일이 있다는 걸 알아챈 걸까?
“하하, 뭐 도전은 누구나 할 수 있지. 하지만 자신을 너무 과신하는 건 좋지 않아.”
“도전을 누구나 할 수 있다니, 무슨 개소리야!”
“그래! 헛소리하지 마! 애송이가 끼어들어서 순번 밀리는 것만큼 기분 더러운 일도 없다고!”
허나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거한은 2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주변 테이블의 남자들이 몇 마디 소곤대는 것이 들렸다.
이 역시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지만, 딱히 물어볼 곳이 보이지 않았다.
‘낯설다.’
모르는 사람들이니 당연한 거지만, 여관에 있는 모두가 더욱 낯설게 느껴졌다.
마치 자신만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인 것 같은 기분.
그때, 구석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거기 청년.”
“저 말입니까?”
“그래. 자네 말곤 늙은이나 아저씨들밖에 없잖아. 청년은 여기서 하나뿐이야.”
술도 음식도 시키지 않은 채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근육질의 중년인이었다.
그의 말을 들은 몇몇이 말이 심하지 않으냐고 따졌지만, 그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아이른은 그의 부름에 순순히 따랐다.
그리고 테이블에 앉으며 물었다.
“빈 테이블이 몇 개 없는데, 아무것도 안 시키고 자리만 차지해도 괜찮나요?”
“괜찮지, 괜찮고말고. 내 여관인데 누가 뭐라 그래?”
“아…….”
주인이었구나.
워낙 한량처럼 있기에 진상 손님인 줄 알았다.
착각을 정정한 아이른이 다시 물었다.
“그렇군요. 저를 부르신 이유가 있나요?”
“크로노 검술관의 손님이라고 했지?”
“예. 그런데 그걸 어떻게…….”
“모르고 왔나 보구만? 여기에 투숙하는 녀석들, 전부 크로노 검술관의 손님들이야. 애초에 여기는 그런 놈들만 오는 거로 유명해서 평범한 사람들은 얼씬도 않지.”
“아…….”
“신기한데? 알지도 못하면서 여기 ‘검의 요람’으로 찾아오다니 말이야. 하하하하! 음, 말하다 보니 목이 마르군. 어이, 여기 맥주! 아참, 내 이름은 에드가다.”
“아, 아이른입니다.”
아이른 파레이라는 굳이 자신의 성을 밝히지 않았고, 그렇게 짧게 서로의 소개가 끝났다.
그 사이 점원 하나가 맥주를 가지고 왔다. 딱 하나였다.
원래 마실 생각은 없었지만, 좀 그러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단숨에 한 잔을 비워버린 여관주인 에드가가 새 맥주를 주문하며 말했다.
“하여튼, 크로노 검술관의 손님이라면 알아둬야 할 게 있어.”
“예? 알아야 할 게 있다고요?”
“그래. 첫 번째로, 손님은 아무 때나 검술관에 들어갈 수 없어. 2주에 한 번만 허용이야. 마침 딱 내일이긴 하군.”
“2주에 한 번 만요?”
아이른이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손님을 가려 받는 거야 그럴 수 있다 치지만, 날을 정해서 받다니?
그것도 겨우 2주일에 한 번이라니, 그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때문에, 이에 대해 질문하려 했으나, 에드가는 틈을 주지 않았다.
두 번째 맥주를 또다시 한번에 들이킨 그가 새 맥주를 주문했다.
그리고 쉼 없이 설명을 이어갔다.
“그리고 이게 진짜 중요한데, 크로노 검술관의 ‘진짜 손님’이 되려면 필요한 게 있어. 자신의 실력을 증명할 수단이지. 뭐 가장 흔한 거는 용병패긴 한데…… 자네, 용병패 있나?”
“아니요. 음, 하지만…….”
“없겠지. 딱 봐도 집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풋풋한 얼굴인데. 아, 오해하지 마. 욕한 거 아니야. 부러워서 그래. 남자가 남자한테 기생오라비 같다, 풋풋하다, 고생 하나 안 해본 거 같다, 뭐 이따위 말을 하는 건 다 칭찬으로 들어도 좋아. 잘생긴 게 부러워서 그러는 거거든.”
“어, 그러니까…….”
“어쨌든, 용병패가 없으면 참여도 못 하고 끝날 가능성이 높아. 아까 들었지? 여기 있는 녀석들, 어중이떠중이가 끼어드는 거 무지 싫어해. 그러니까 용병패가 없으면 지금이라도 만들러 가는 편이 좋아.”
용병패는 없지만, 크로노 검술관의 정식 수련생임을 증명하는 패는 있습니다.
아이른 파레이라는 이 말이 무척 하고 싶었다.
하지만 도저히 끼어들 틈이 없었다.
이 여관주인은 숨도 제대로 쉬지 않고 말을 쏟아내다가, 점원이 올 때마다 맥주를 들이켜는 것만을 반복했다.
자신의 말은 전혀 들을 생각이 없었다.
“당연히 낮은 등급의 용병패는 안 돼. 저 거친 녀석들의 인정을 받아 ‘진짜 손님’이 되려면 목패, 철패는 거르고 적어도 동패는 되어야겠지. 물론 아무런 실적도 없는 사람이 단번에 동패를 따내는 건 어렵지만, 솔직히 짜증 나잖아?”
“짜증?”
“그래. 저 녀석들이 자네를 무시했지 않나.”
여관주인 에드가가 맥주잔을 쥔 손으로 다른 테이블들을 가리켰다.
맥주가 쏟아지는 일은 없었다. 이미 다 마셨으니까.
그런 것보다는 자신을 쳐다보는 사내들의 시선이 더 신경 쓰였다.
아이른은 이제야 겨우 자신이 말할 틈이 생겼다는 사실을 잊은 채 그들의 눈을 바라봤다.
확실히 그랬다.
그들은 자신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다.
‘이 정도로 기분 나쁠 건 없긴 하지만…….’
기분이 묘하긴 했다.
하지만 워낙 예전부터 더한 대접을 받기도 했고, 저들에게서 딱히 악의가 엿보이는 건 아니라 딱히 표정을 구기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헌데 에드가는 이를 얼굴이 굳은 걸로 착각한 모양이다.
“역시, 기분 나쁠 수밖에 없지.”
“예? 아니, 그렇지는…….”
“좋아. 지금 당장 용병 중개소로 가지. 마침 중개소장과 내가 아는 사이니, 편하게 테스트 보면 된다고.”
“어? 지금요?”
“그래. 기왕이면 바로 하는 게 낫지. 아, 그리고 여기서 묵을 거지? 며칠?”
“일단은 하루…….”
“이틀 숙박하면 깎아주는데?”
“…….”
“싫으면 말고. 2실버.”
“……여기 있습니다.”
“좋아. 그럼 가볼까. 어이, 나 없는 동안 여관 잘 보고 있어!”
크게 소리친 여관주인 에드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사이 맥주를 일곱 잔이나 마셨는데 멀쩡한 모습이다.
허나 그보다 더 대단한 건 시종일관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저 태도였다.
물론 이 역시 악의가 있는 건 아니긴 한데…….
“…….”
일단은 따라가 보자.
고개를 끄덕인 아이른 파레이라가 에드가의 뒤를 쫓았다.
* * *
크로노 검술관은 유명하다.
얼마나 유명하냐면 대륙에서 모르는 사람을 찾기가 힘들 정도다.
저 외진 나라의 시골 마을 골목대장 꼬맹이조차 크로노 검술관에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른다.
그야말로 검사에게 있어서는 꿈과 같은 단체인 것이다.
그 때문일까.
크로노 검술관에는 유독 ‘검을 든 손님’이 많이 찾아왔다.
자신의 실력을 증명해 명성을 얻고 싶은 손님.
명사와의 대련을 통해 자신의 성장을 꾀하는 손님.
그냥 행패를 부리고 싶은 손님.
그런 손님들이 하루에도 수십 명씩 크로노의 문을 두드렸다.
검술관 입장에선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수가 너무 많다 보니 일일이 상대해 주는 것도 부담스러웠고, 그렇다고 전부 거절하자니 ‘크로노 검술관은 겁쟁이다’라고 음해를 하는 세력들이 생겨났다.
몇몇 악질은 상대해줄 때까지 떠나지 않겠다고 떼를 쓰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하여 생겨난 크로노 검술관의 규칙이 바로 ‘손님맞이’였다.
검의 대화를 나누고 싶은 모든 사람은 크로노에서 정한 날, 즉 2주에 한 번 열리는 손님맞이 날에만 검술관에 입장할 수 있다는 뜻이다.
‘크로노 검술관의 손님이 그런 의미였구나. 순번이라는 것도…… 대련하고 싶은 사람들끼리 누가 먼저 나설 것이냐, 그걸 얘기한 거였어.’
아이른 파레이라는 이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질문을 통해 알아낸 건 아니었다.
에드가가 워낙 말이 많다 보니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정보가 들어왔다.
용병 중개소에 도착할 쯤에는 크로노 검술관의 역사까지 머리에 박힐 정도였다.
어찌 됐건, 이젠 알았다. 자신은 이곳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손님’이 아니라, ‘진짜 손님’이라는 것을 말이다.
즉, 2주에 한 번 열리는 손님맞이 행사에 참여할 필요가 없다.
당연히 용병 중개소에 들를 필요도 없다.
하지만…….
“어이, 중개소장.”
“에드가 아니야? 여긴 웬일…… 아, 젊은 손님분이 오셨군. 테스트인가?”
‘이미 무르기엔 늦은 것 같은데.’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하는 에드가의 수완을 보며, 아이른 파레이라가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정말로 하고 싶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그만둘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곤란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리고 아이른은 그 정도 상황에선 그냥 흐름에 몸을 맡기는 타입이었다.
똑 부러지는 성격이 아닌 것이다.
‘용병패…… 하나쯤 만들어둬서 나쁜 것 없기는 한데.’
딱히 좋은 것도 없긴 하지만, 그런 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아니, 생각할 틈 자체가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에드가는 어느새 여관으로 돌아갔고, 왼쪽 뺨에 흉터가 있는 중개소장이 건조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물었다.
“테스트 볼 거지?”
“예? 아, 예.”
“자신 있는 분야가 뭐지? 힘? 스피드? 기술? 크로노 검술관 손님이니까 당연히 무기는 검일 테고, 혹시 검 외에 다룰 줄 아는 무기 있나?”
“없습니다.”
“그래. 그래서 뭐가 편한…… 아니다, 됐다. 그냥 직관적인 걸로 합시다. 따라오쇼.”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가며 말하던 중개소장이 건물 뒷문으로 나갔다.
아이른은 순순히 그의 말을 따랐다.
밖으로 나가니 꽤 넓은 공터가 나왔다.
곳곳에 있는 훈련용 더미와 체력 단련 기구들, 그 밖에 용도를 알 수 없는 물체들이 눈에 들어왔다.
시끌벅적했던 여관과는 달리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며 도착한 장소는 웬 덩어리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곳이었다.
마치 바위나 쇳덩이의 겉면에 고무를 덧씌워놓은 것 같은 물체.
위에는 사각의 판이 달려 있었다.
“이게 뭐죠?”
“측정기. 이걸 힘껏 두드리면 위에 있는 사각 판에서 충격량이 나와.”
“마도구인가요? 마도구이면 엄청 비싼 거 아닙니까?”
“당연히 비싸지. 중개소 차원에서 산 건 아니고, 최근에 은퇴한 황금패 용병 하나가 은퇴 기념으로 선물해주고 갔어. 마법 유적 하나 발굴하고 대박이 났거든.”
기왕 줄 거면 그냥 돈으로 주지, 뭐 이런 걸 주는지 모르겠어. 혼잣말을 중얼거린 중개소장이 이어 말했다.
“어쨌든, 이걸 치면 됩니다.”
“주먹으로?”
“검으로. 충격량을 보고, 내가 등급을 판단해주고, 용병패를 발급해주고, 그러면 끝. 간단한 일이지.”
“검으로 두드렸다가 망가지면 어떡하죠?”
“음? 하하하…….”
중개소장이 웃음을 터뜨렸다.
오래 그러지는 않았다. 빠르게 표정을 수습한 그가 말했다.
“그렇게 약한 물건이 아니라서. 마도구긴 해도…… 위에 사각 판을 제외하면 거의 쇳덩이나 다름없으니까. 이런 걸 부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황금패 용병 중에서도 극소수일 거요. 아까 말한 은퇴한 용병도 못 부쉈다는군.”
“그렇군요.”
“그래, 그러니 걱정 말고 힘껏 휘두르쇼. 점수 잘 안 나왔다고 후회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죠.”
“어? 그런데…….”
검은 어디 있지? 놓고 오셨나?
중개소장이 그렇게 물어보려는 찰나였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갑자기 대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스르륵-
“……?”
금발의 청년이 당연하다는 듯이 그 검을 잡았다. 그리고 자세를 취했다.
두 팔을 들어 올리고.
거대한 검이 밤하늘의 달을 찌를 듯 높이 올라가고.
그 모습을, 중개소장은 멍한 표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쩌어어어어어어엉!
무지막지한 굉음이 공터에 널리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