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무한전직-87화 (87/332)

# 87

* * *

그리핀도르 요새에 이유 모를 적막이 흐르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곳을 두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장난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터벅터벅.

한데 그때, 그 적막을 뚫고 발소리가 들려왔다.

요새의 성벽 위로 한 무리의 병사들이 모습을 내고 있었다.

하나같이 굳은 표정을 짓고 있는 그들은 마치 중대한 결심이라도 한 듯이 한 걸음마다 꾹꾹 힘주어 걸어가고 있었다.

처척.

그러다가 병사들이 한 명씩 멈춰 서기 시작했다.

그것이 반복되자 이내 한 사람씩 사이를 벌리고 길게 늘어선 형상이 되었다.

척!

곧이어 마지막 한 명의 병사가 멈춰 선 순간!

채앵!

일순간 병사들 전원이 갑작스레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곤.

촤아악!

그들 각자의 눈앞에 세워져 있던 목표물에 그 검을 휘둘렀다!

서걱!

그러자 무언가가 절삭되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휘우웅!

곧이어 그리핀도르 요새에 줄줄이 세워져 있던 높다란 깃대들이 잘려진 단면 그대로 미끄러지듯 서서히 균형을 잃기 시작했다.

쿵!

그리고 결국 깃대와 그 위에 걸려 있던 그리핀 왕국의 국기가 성벽 아래로 떨어져 내리며 큰 소음을 만들었다.

병사들은 흙먼지를 뒤집어쓴 볼품없어진 그리핀 왕국의 국기를 지그시 한 번 바라보고는.

처척!

시선을 돌려 각자 등 뒤에 메고 있던 물건들을 원래 깃대가 있던 자리에 곧추세우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모두 새로운 깃발들이었다.

그리고 그 펄럭이는 깃발에 그려져 있는 것은 네크로폴리스의 국기였다.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핀도르 요새에 꽂혀 있던 깃발의 주인이 달라진 것이다.

그 순간.

“우와아아!”

“네크로폴리스 만세!”

요새 아래로 도열해 있던 네크로폴리스의 병력들이 내는 우렁찬 환호성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몇 만에 달하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소리를 내니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소음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에 불만을 표출하는 이는 없었다.

귀를 막는 사람도 없었다.

오늘 같은 날은 이대로 귀가 터져 나가도 괜찮을 것 같다고 모두들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리핀도르 요새를 놓고 치열하게 진행되었던 길고 길었던 임무가 마침내 네크로폴리스 진영의 승리로 마무리된 시점이었다.

그리고 그 소리치는 군중의 한가운데에 레온과 백인대들 또한 자리하고 있었다.

레온은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기뻐하고 있는 백인대원들의 모습을 보며, 해맑게 웃음을 지었다.

그들은 이긴 것도 이긴 것이지만, 승리함으로써 포로로 잡혀 있던 열 명의 부대원들을 무사히 탈환한 것이 더욱 기쁜 모양이었다.

물론 레온도 그들과 함께 기뻐했다 그들을 탈환함으로써 첫 번째 임무에서 잃었던 5,000의 공헌도를 다시 회복하였기 때문이었다.

레온은 그제야 정말 길고 길었던 임무가 끝이 나고, 결과도 승리로 마무리했다는 것이 실감이 되어 속으로 감탄이 나왔다.

‘크으, 결국 이걸 이겼네.’

첫 전장만 하더라도 답도 없던 열세였는데도 불구하고 결국 최후의 승자는 그들이 되었던 것이었다.

물론 그렇게 상황을 반전할 수 있었던 일등공신은.

‘흐흐, 네크로폴리스는 복도 많지. 나 같은 판테라의 여봉선을 잠시나마 쓸 수 있는 영광을 얻고 말이야.’

단언컨대 레온 자신이리라.

한데 그 얘기는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임무를 이른바 ‘멱살 잡고 캐리’한 것은 레온이 분명했으니까 말이다.

그건 홀로 펴는 억지 주장이 아니었다.

객관적인 수치로도 드러나 있었다.

그가 이번 임무를 거치며 총 획득한 공헌도는 이러했다.

1차전 0.

2차전 104,000.

3차전 102,300.

4차전 133,000.

5차전 116,000.

6차전 106,000.

총 여섯 번의 전장을 거친 후.

그가 최종적으로 얻은 국가 공헌도는 무려 ‘561,300점’이었다.

순간 레온이 자신의 막대한 점수를 보며 함박웃음을 내지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본 드래곤아, 거기 딱 기다려라! 형이 간다!’

라고 말이었다.

그랬다. 레온은 본 드래곤의 유해를 얻기 위해 필요한 50만이라는 엄청난 양의 국가 공헌도를 이번 임무 하나만으로 해결했던 것이다.

참전한 모든 유저들은 레온의 국가 공헌도 수치를 볼 때마다 혀를 내둘렀다.

그럴 때마다 그들의 맘속에는 공통적으로 레온에 대해 한 가지 의문이 생겨났다.

그건 당연하게도 바로 도대체 어떻게 저 사람은 혼자 저렇게 많은 공헌도를 쌓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10만이라는 공헌도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단순 계산으로 적군 1천 명을 해치워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한데 그것은 유저에게만 해당되는 일이었다.

휘하의 병사들은 적군 한 명을 처치해도 레온과 달리 절반인 50의 공헌도만 얻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그가 대견 스켈레톤의 맹활약으로 수많은 적군들을 학살하듯 휩쓸었기는 하나 홀로 잡을 수 있었던 양은 한계가 있었을 터.

그들의 활약을 목격했으면서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의문이 들던 그때.

레온이 백인대원들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곤 속으로 때마침 그들의 의문의 해답을 떠올리고 있었다.

‘후후, 생각지도 못했어. 가신으로 받아들인 것이 이런 거대한 스노 볼(Snow ball)로 굴러올 줄은 말이지.’

2차전을 끝난 후, 10만 4천이라는 엄청난 점수를 받은 뒤, 처음은 레온도 어리둥절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백인대원들과 자신이 이 정도의 수치가 나올 정도로 많이 잡은 것 같지 않기 때문이었다.

한데 상세 보기를 눌러 국가 공헌도의 세세한 획득 경로를 살펴 보고 난 후, 그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50이 아니라 100이라고?’

그건 바로 레온의 병사들이 50이라는 절반의 공헌도가 아닌 온전한 100의 공헌도를 레온에게 가져왔다는 것이었다.

그랬다. 다른 유저들과 달리 레온 홀로 이런 엄청난 점수를 독식한 것은 또 하나의 히든피스 때문이었다.

병사를 가신으로 받을 시, 절반이 아닌 온전한 포인트를 소유주 유저가 획득할 수 있다는 것 말이었다.

‘으흐흐, 사람 일이 풀리려다 보니, 이런 식으로 풀리기도 하는구나!’

레온이 그렇게 자신의 국가 공헌도를 구경하고 있던 그때.

“백인장 레온 님, 어디 계십니까!”

병사 한 명이 기차 화통을 삶아먹은 듯한 큰 목소리로 레온을 불러 댔다.

‘뭐지?’

급하게 찾는 탓에 무슨 일인가 싶어 레온이 고개를 한 번 갸웃하고는 그 병사에게로 다가갔다.

“어, 어.”

그러자 레온을 호명한 병사는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아무런 설명도 없이 다급하게 그를 누군가에게로 이끌기 시작했다.

얼떨결에 끌려가던 레온이 병사에게 지금 누구에게로 가는 것이냐고 묻자, 병사는 그의 지휘관인 하갈이 그를 급하게 찾는다고 말했다.

‘하갈?’

레온은 누구더라 하고 생각했다가, 이내 그가 처음 들어올 때 보았던 그 재수 없는 상관 네크로맨서라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유저들을 혐오했었지, 아마?’

한데 그런 자가 자신을 왜 찾는 것일까.

의아함을 감출 수가 없던 레온이 어느새 그의 앞에 당도했다.

그리고 이어 레온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고, 왔는가. 고생했네, 고생했어.”

자신이 보았던 그자와 같은 사람인지 의심이 될 정도로, 완전히 다른 캐릭터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디 다친 곳은 없는가? 원한다면 신관도 불러 줄 수 있네만.”

‘왜 이러는 거지?’

그는 레온에게 비굴한 미소를 지은 채, 부담스러울 만큼 극진한 태도로 그를 대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레온은 의아할 따름이었다.

“……괜찮습니다. 한데 왜 저를 찾으셨는지?”

“앗, 하하, 내가 너무 반가운 나머지 먼저 해야 할 말을 못했구먼. 그, 사실 자네를 찾은 것은 내가 아니네.”

‘뭐라는 거야?’

사람을 불러 놓고 사실 자신이 부르지 않았다는 헛소리에 레온이 말없이 하갈을 응시했다.

그러자 무척이나 당혹스러워하는 하갈의 말이 이어졌다.

“……허허, 무슨 일이신지 탑주님께서 자네를 뵙기를 청하시는군. 지금 나와 함께 탑으로 떠나도록 하세나.”

탑주가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한다고?

전혀 생각지 못한 그의 말에 레온이 화들짝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띠링.

그리고 그때, 효과음이 그의 귓전에 들려왔다.

-퀘스트 획득 조건을 달성하였습니다.

-퀘스트 ‘네크로맨서의 탑주를 만나 대화를 나누자’를 획득하였습니다.

[네크로맨서의 탑주를 만나 대화를 나누자]

오랜 시간 동안 난공불락이었던 그리핀도르 요새가 네크로폴리스의 품으로 돌아왔다.

이는 물론 수많은 병사들이 열심히 전투를 벌어 주었기 때문이지만, 가장 큰 것은 당신의 맹활약 덕분이다.

이 놀라운 승전보는 순식간에 네크로폴리스의 시민들을 뜨겁게 달구었다.

모두가 당신을 함락신이라 칭하며 칭송하고 있다.

심지어 마탑의 탑주조차 이 성공으로 인해 당신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난 듯하다.

이례적으로 이계인인 당신을 만나 보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은 흔치 않은 기회이다.

마법진을 타고 마탑으로 이동하여 네크로맨서들의 정점에 있는 탑주를 직접 만나 보자.

조건 : 그리핀도르 요새 함락전에서 50만 이상의 공헌도를 획득한 자.

보상 : 막대한 경험치, 탑주의 하사품.

‘아하.’

퀘스트 내용을 쭉 읽어 본 레온은 그제야 하갈이 왜 이렇게 손바닥을 연신 비벼 대며 자기에게 굽실거리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내가 탑주와 독대를 하게 되면 너에 대해서 한 소리라도 할까 봐 똥줄이 탄 거구나.’

그가 탑주를 만나게 되면 분명 이런저런 이야기를 서로 나눌 것이 분명했다.

한데 그 와중에 혹여나 레온이 그에 대해 안 좋게 이야기라도 할까 전전긍긍하고 있는 처지였던 것이었다.

그것을 깨닫자 레온의 얼굴에 악마의 미소가 사르르 퍼졌다.

그러곤 속으로 생각했다.

‘후후, 걱정 마. 너에 대해선 이계인 병사들의 사기를 저하하는 독극물 같은 친구라고 말을 해 줄 테니.’

뭐라 뭐라 계속 시끄럽게 떠드는 하갈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레온은 잠시 후 그들이 미리 준비해 놓은 공간 이동 마법진으로 향하게 됐다.

다른 유저들과 달리 레온은 고위 네크로맨서들만이 이용하는 이 이동진을 통해 마탑 내부로 직접 이동하게 될 것이라 했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부러워하는 눈빛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전투에서 자신의 실력을 드러내고 이런 눈빛은 질리도록 맛본 레온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으며 곧장 이동진에 몸을 실었다.

슈웅!

우웅!

그와 동시에 빛줄기가 그의 전신을 휘감았고.

그에 레온은 두 눈을 꼭 감았다가, 천천히 다시 떴다.

‘오호!’

그렇게 서서히 시야가 돌아오자, 레온은 자신이 마탑 내부에 들어왔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화려하진 않지만 고풍스러운 느낌으로 꾸며진 내부의 모습은 품격이 느껴지고 있었다.

게다가 놀라운 것은 공간 자체에 음험하기 짝이 없는 기운이 감돌고 있다는 것이었다.

레온은 주위를 슬쩍 한 번 살피고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어우, 이런 데를 잠입하라고 한 거야? 미친 거 아냐, 클라크 아저씨?’

마법진을 둘러싸고, 뒤집어쓴 로브 틈으로 보기만 해도 위험한 눈빛을 쏘아내며 네크로맨서들이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었다.

딱 보아도 엄청난 레벨들로 보였다.

현재의 레온이 달려든다 해도 상대가 가능할까 싶었다.

다른 나라로 따지면 왕성 내부에 들어온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외부자를 경계하는 것은 당연한 듯싶었다.

“따라오시지요.”

그들의 호위 겸 감시를 받으며 레온은 탑주가 있다는 집무실로 향했다.

그렇게 마탑의 내부를 거닐고 있자, 문득 레온의 가슴이 두근거려 왔다.

‘흐흐, 이곳에 본 드래곤의 유해가 있단 말이지!’

그도 그럴 것이 이곳 어딘가에 있는 보상의 방에 드래곤의 유해가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탑주를 만나는 것보다 얼른 유해를 얻고 싶었다.

‘……쩝, 잠깐 가서 유해만 좀 챙겨온다 하면 안 되려나?’

그가 그렇게 보상의 방에 가서 챙길 것 좀 가져오면 안 되냐고 말해 볼까 고민하던 순간.

스윽.

앞장서던 네크로맨서 한 명이 레온에게 획하고 뒤돌아보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말을 건넸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어느새 탑주의 집무실에 도착한 것이었다.

레온이 입맛을 다시며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거대한 문을 밀고 들어섰다.

그렇게 문이 활짝 열리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양 벽면에 넓게 펼쳐진 수없이 많은 서적들이었다.

자신이 도서관을 잘못 들어왔나 착각할 정도였다.

‘대학자의 서재가 이런 느낌이려나?’

한데 그때 레온이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주위를 살피다, 집무실의 중앙에 서 있던 방의 주인과 눈이 마주쳤다.

머리가 지긋한 노신사 한 명이 지그시 레온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자군!’

레온은 그를 보자마자, 노인이 이 마탑의 탑주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레온이 조심스레 예를 갖추었다.

그러자 탑주가 자신의 긴 턱수염을 매만지며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며 말을 건네 왔다.

“그래, 자네가 그리핀도르 요새를 함락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는 자인가?”

그러자 레온은 영업용 미소를 얼굴에 지으며, 겉과 속으로 다른 말을 내뱉었다.

“어휴, 결정적인 공이라고 하시니 부끄럽습니다. 그저 네크로폴리스를 위해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열심히 노력한 것뿐입니다.”

‘네네, 그게 바로 저 맞습니다. 자, 그럼 보상부터 풀고 시작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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