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
‘오직 네크로폴리스를 위해 노력하시는 탑주님의 노고를 떠올리며 전투를 치렀습니다!’
‘이게 다 우리 수령, 아니 탑주님 덕분입니다!’
그 뒤로 레온은 탑주의 말이 끝날 때마다 황송하다는 듯한 메소드 연기를 해 가며, 모든 승리의 전공을 탑주에게 돌렸다.
너무나 속 보이는 행동이었지만, 계속된 금칠에 안 넘어갈 자가 없었다.
탑주의 입꼬리는 점점 올라갔고.
그러다 결국.
“허허, 이계인답지 않게 실력과 더불어 예의를 갖추고 있는 자로군.”
레온의 아부에 홀딱 넘어간 탑주가 레온을 바라보는 얼굴에 환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띠링.
-탑주의 호감도가 상승하였습니다.
곧이어 그의 호감도가 상승했다는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하자.
‘예스.’
레온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제 웬만한 NPC들은 세 치 혀로 구워삶을 자신이 생긴 그였다.
한데 그때, 일순간 탑주가 진지한 표정을 짓더니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10년간 난공불락이었던 그리핀도르 요새를 되찾게 해 준 그대에게 모든 네크로폴리스의 시민들이 감사를 표하고 있다. 그래서…….”
‘오호’
그 말을 듣는 동시에 레온의 두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저 말 다음에 나올 이야기가 짐작이 갔던 것이었다.
“……나는 모든 네크로맨서들과 시민들을 대표해 그대에게 그대가 해낸 일에 상응하는 보상을 내리도록 하겠다.”
그와 동시에 레온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연이어 주르륵 떠오르기 시작했다.
‘역시! 이제 시작이구나!’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보상 타임이 시작된 것이었다.
-‘네크로맨서의 탑주를 만나 대화를 나누자’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보상으로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첫 번째는 막대한 경험치였다.
‘오호! 2레벨이나 올랐네.’
레온은 레벨이 단번에 두 계단이나 상승하자, 밝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임무를 마친 뒤에 확인한 그의 레벨은 88이었다.
한데 이렇게 2레벨이 추가로 올라 90레벨이 된 것이었다.
레온의 레벨은 정말 쾌속 전진하고 있었다.
첫 아이디를 삭제했었던 100레벨도 이제 10레벨밖에는 남아 있지 않아 있었다.
이전의 육성 속도와 비교하면 말도 안 되는 성장세였다.
그때 레온이 속으로 생각했다.
‘쩝, 다시 초기화를 하게 되면 1레벨이 될 운명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고레벨을 찍어 놓을수록 복구가 편할 테니 높을수록 좋지.’
그런 와중에도 메시지는 계속해서 떠오르고 있었다.
다음으로는 상당히 오랜만에 칭호를 획득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칭호 ‘네크로폴리스의 맹우’를 획득하였습니다.
-모든 상점을 이용할 때, 10%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가 가능합니다.
-네크로폴리스의 모든 숙소를 50% 할인된 가격으로 사용이 가능합니다.
‘오오! 이런 혜택을? 개꿀인데?’
무려 상점과 숙소의 이용에 할인을 받는 효과가 붙어 있는 칭호를 획득하자, 레온은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이어 레온이 일전에 쟈켄에게서 받았던 할인 혜택과 이 칭호의 혜택이 서로 중첩이 될까 고민하며, 꼭 들러 봐야겠다고 생각하던 그때.
탑주가 레온을 손짓하며 불렀다.
“이리 오게나, 줄 것이 있으니.”
줄 것이 있다는 말에 레온은 기다렸다는 듯이 성큼성큼 그에게 다가갔다.
과연 무엇을 줄까 기대가 되어 가슴이 격하게 두근거렸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통 좀 크게 써 보슈!’
처척.
레온이 가까이 다가와 한쪽 무릎을 꿇자, 탑주가 부하가 가져온 물건을 레온에게 건네주었다.
세뱃돈을 받을 때처럼 머리 위로 양손을 뻗고 있는 레온은 손바닥에 물건의 촉감이 느껴지자,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흐흐, 안 보이니까 더 기대되네. 무엇이려나?’
그때 그런 레온의 속마음을 읽었는지 탑주가 입을 열었다.
“고개를 들어 확인해 보게.”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레온이 고개를 번쩍 들어 손에 담긴 물건을 확인했다.
눈에 들어온 순간 레온의 얼굴에 화색이 감돌았다.
‘오호, 투구인가?’
자신이 좋은 것으로 가지고 있지 않은 아이템이었기 때문이었다.
음험하기 짝이 없는 형상의 가면은 딱 보아도 네크로맨서 전용으로 보였기에 더욱 기뻤다.
‘……몰래 확인해 볼까?’
레온이 티 나지 않게 몰래 아이템의 상세 정보를 눈앞에 띄웠다.
그리고.
‘흐억!’
순간 식겁하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안개 여신의 장식가면 / 계정 귀속]
분류 : 투구
등급 : 영웅
내구도 : 4,800 / 4,800
제한 : 최소 레벨 100
방어력 184
사신이 깃든 눈으로 타인의 죽음을 보았다 알려진 저주받은 존재의 얼굴을 본떠 만든 가면.
-마력 +22,300
-체력 +3,400
-스킬 ‘안개 분신’ 사용 가능.
-언데드 적에게 직접 공격을 적중할 때, 20% 확률로 그 적을 15% 확률로 2초 동안 매혹.
(보스 몬스터에게 적용 불가)
-남아 있는 적의 수에 따라, 자신과 소환수가 받는 피해 2~5% 감소.
-모든 언데드 소환수 소환 시, 지속 마나 소모량 15% 감소.
‘지, 진짜야? 영웅 등급 아이템이라고?’
보상으로 받은 아이템이 유일 등급보다 한 단계 높은 영웅 등급이었기 때문이었다.
리미트를 유일 등급 정도로 잡고 있었기에, 레온은 이 뜻하지 않은 행운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
정말 그의 공적을 크게 치부하고 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와씨! 진짜 대박이다!’
점차 정신이 되돌아오자 레온은 정말 뛸 듯이 기뻤다.
그도 그럴 것이 50만이라는 막대한 공적치를 쌓아 놓고도 드래곤의 유해를 얻어야 하는 이유 때문에 다른 좋은 아이템으로 바꾸지 못해 여간 속이 상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이렇게 유일 등급을 넘어 영웅 등급의 아이템을 얻다니, 정말 꿈만 같았던 것이다.
‘헉! 이럴 때가 아니지.’
그러다가 불현듯 탑주가 마음을 바꾸기 전에 얼른 못 빼앗도록 계정 귀속을 진행하려 마음먹은 그 순간.
“아, 잠깐.”
탑주가 무언가 생각이 났다는 듯 레온의 행동을 제지했다.
“……네?”
진짜 줬다가 뺏는 줄 안 레온이 슬며시 들고 있던 가면을 자신의 품 뒤로 숨겼다.
그러곤 삼엄하게 경계 태세를 유지하며 탑주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무슨 일이신지?”
“허허, 자네에게 꼭 부탁하고 싶은 일이 생각났다네. 오늘부터 적임자들을 찾고 있었는데 자네라면 딱 알맞겠군그래.”
‘뭐지?’
레온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한편 그가 부탁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생각나는 것이 없어 의아할 따름이었다.
“무엇이든 말씀하시지요.”
‘투구만 안 가져가시면 됩니다.’
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꺼낸 그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탑주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꺼냈다.
“자네에게 북방의 영지 중 한 곳을 하사하고 싶네만. 어때, 생각이 있는가?”
‘……뭐?’
오늘은 하도 연속해서 놀라느라 심장이 남아나질 않을 것 같았다.
레온이 경악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영지를 하사하다니.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말인가?
레온은 순간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었지만.
띠링!
그 순간 귓가에 선명한 효과음이 들려오자, 똑바로 들은 것이 맞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레온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고 있었다.
[북방 지역의 영주가 되어 영지를 부흥시켜라(길드)]
대륙의 동쪽에 있는 여러 왕국들은 모두 지속적인 북방 영지로의 진입을 시도했다.
서쪽은 강대한 세이란 제국이 가로막고 있고, 남쪽은 광활한 사막지대가 펼쳐져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북방에는 강력한 몬스터들이 너무나 많았기에 한 왕국의 국력으로는 감당하기 힘들었다.
지지부진하던 그때 동부 왕국들이 연합을 맺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연합 토벌군을 결성한 것이었다.
그렇게 지금까지 수차례의 원정이 진행되었고, 드디어 상당한 영토를 획득하게 되었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획득한 영토들이 너무나 척박하기 그지없었던 것이었다.
각 나라들이 관리하기에는 국비의 지출이 너무 심각하게 날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힘겹게 얻은 영토를 그냥 둘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결국 며칠 전 각국의 수장들이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눈 후 한 가지 결정을 내렸다.
그건 바로 각 왕국에서 믿을 만한 이계인들을 추려 영주로 임명한 후, 획득한 북방 영토의 개간을 맡겨 보자는 것이다.
퀘스트 난이도 : A+
보상 : 무작위로 채택된 북방 영지 중 한 곳의 소유권
-‘북방 지역의 영주가 되어 영지를 부흥시켜라’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Y) or (N)
동부 왕국 연합에 소속되어 있는 국가들이 각각 선택된 유저들에게 북방의 영지를 부여하고 개간을 맡기려 한다.
그리고 네크로폴리스의 유저들 중 한 명으로 자신이 뽑히게 되었다.
‘대, 대박이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순간, 레온은 영웅 등급 아이템이 잠시 머릿속에서 사라질 정도로 큰 충격을 먹었다.
그럴 만도 했다.
아직 판테라에서 한 번도 유저에게 영지가 하사된 경우는 없었으니까.
그리고 이 말인즉슨 앞으로 업데이트될 콘텐츠를 레온 자신이 먼저 획득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판테라는 불규칙적이게 대규모 업데이트가 진행되곤 했다.
한데 그중에는 공식 홈페이지의 공지에 올라오기도 전에 미리 이렇게 유저들이 우연히 먼저 찾아낼 수 있는 콘텐츠들이 존재했다.
정말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
‘내 영지를 가질 수 있다니!’
레온은 정말 너무 기쁜 나머지 소리를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왜냐하면 자신에게는 이미 다른 이들보다 영지를 앞서 나가게 할 수 있는 요소들 여러 개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암살자 지부를 설립할 수 있는 ‘지부 설립증’과 클라크와 백인대원들까지 101명이나 되는 가신들의 존재였다.
여러모로 생각해 볼 때, 이 기회는 절대 놓쳐서는 안 됐다.
그에 레온은 망설이지 않고 시스템 창에 떠올라 있는 두 선택지 중 예스를 선택했다.
그러곤 두 눈을 빛내며 크게 소리쳤다.
“맡겨만 주십시오!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그런 레온의 패기를 보고는 탑주가 연신 고개를 주억였다.
“오오! 그런가! 좋아, 알았네. 그럼 바로 진행하도록 하지.”
그로부터 상황은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듯 보였다.
‘으하하! 이제 내 영지가 생긴다!’
레온이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던 그때.
아무도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삐익!
삐익!
‘어라?’
갑자기 귓전에 들려오는 요란한 경고음에 레온이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 소리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생기는 효과음이었다. 곧이어 그의 눈앞으로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이게 뭐야!’
그에 적힌 내용을 보고는 레온이 경악한 반응을 만들었다.
-‘북방 지역의 영주가 되어 영지를 부흥시켜라’ 퀘스트를 획득하지 못하였습니다.
-퀘스트 조건, 미충족 상태입니다.
-‘길드’에 소속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
그제야 레온은 퀘스트의 제목의 뒤에 ‘길드’라는 단어가 적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랬다. 이 퀘스트는 길드 퀘스트였던 것이었다.
길드 퀘스트는 길드를 지니고 있거나, 소속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진행할 수 없는 퀘스트였다.
레온의 낯빛이 하얗게 질렸다.
그리고 이내 상황을 알아차린 탑주가 난처하다는 듯 말을 꺼냈다.
“자네 설마 소속된 길드가 없는 건가?”
그에 레온이 황망한 표정으로 힘없이 대답했다.
“……길드가 없으면 안 되는 거겠죠?”
“허, 참. 이거 아쉽게 됐군. 왕국끼리 미리 결정한 조건이 이계인이 길드를 지니고 있거나, 혹은 소속이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어서 말일세…….”
길드가 없으면 안 된다는 탑주의 확답을 듣자, 레온은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이대로 포기해야 하는 건가.
그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이 기회를 놓치는 건 바보나 할 일이라는 것이었다.
순간 마음을 먹은 레온이 탑주에게 한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시간을 좀만 주십시오! 어떻게든 조건을 맞추고 오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를 바라보는 탑주의 표정은 고민에 빠진 듯해 보이고 있었다.